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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85화 (185/222)

185화

“악마 숭배자들이 뭔지는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렇죠.”

일반적인 루트가 아닌, 악마들과의 계약을 통해 흑마법사가 된 자들.

이들은 죽어서도 영혼이 소멸하지 않는다.

이 세상 사람들에겐 모두 영혼이란 게 있다.

소멸한다는 게 말 그대로 뿅! 하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새로운 육신을 찾아 환생하는 걸 영혼의 소멸이라 한다.

일단 한 번 환생하면 기존에 있던 기억과 인연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다.

거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딱 사흘.

그 이후론 강령술로 되살려 봤자 움직이는 시체일 뿐이다.

그럼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흑마법사들이 강령술로 되살린 자들은 대체 뭘까?

사실 이들도 진짜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는 건 아니다.

이미 죽어 버린 육신에 남은 영혼 찌꺼기들을 그러모아 일시적으로 흉내만 내는 것일 뿐.

죽은 지 사흘 내에 강령술을 사용하는 거면 몰라도, 그 이후엔 그저 움직이는 시체에 불과했다.

때문에 죽은 이들을 되살리는 강령술은 제대로 된 부활이 아니다.

간혹 되살아난 영혼 찌꺼기가 오랜 세월 지내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건 영혼 찌꺼기에 새로운 살점이 붙어 또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것일 뿐이다.

‘아까 본 구울이 그런 거고.’

그렇다면 악마들과의 계약을 통해 영혼을 팔면 어떻게 될까.

“불쌍한 녀석들이지. 일순간의 힘에 눈이 멀어 영혼을 팔다니.”

“…….”

놈들은 죽어서까지 영원히 악마들에게 영혼이 귀속된다.

악마들이 영혼을 모으는 이유?

그건 악마들마다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힘을 주는 대가로 얻어낸 영혼을 애지중지 대하진 않는단 거다.

영원한 고통 속에 악마들의 유희거리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이 밥을 먹고살 듯, 악마들에겐 고통에 몸부림치는 영혼이 주식이니까.

‘뭐 안 먹는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흑마법사들이라고 꼭 악마들과 계약 한 이들만 있는 건 아니야. 자네나 나처럼 그저 흑마법을 탐구하다 흑마법사가 된 이들도 많지.”

“그런 분들이 모여 셀렌교를 이룬 거군요.”

“뭐 그런 거지.”

아무리 흑마법사라 해도 모든 몬스터들의 신인 셀렌을 섬긴다라.

인간이 아닌 마물들의 신 셀렌.

그런 녀석을 섬기는 종교라니.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애초에 따지고 보면 히테라 주신을 섬긴다고 뭐가 떨어지진 않는다.

이 세상 신이라는 건 군림만 할 뿐 보상 같은 걸 내려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셀렌은 다르다.

흑마법사들이 부리는 시체들도 결국엔 마물.

밤엔 셀렌의 영향을 받아 이들의 힘도 강해진다.

이는 곧 흑마법사들의 힘도 강해짐을 뜻한다.

굳이 따지자면 히테라보다 셀렌이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을 주는 녀석이긴 했다.

“하지만 꼭 보통 흑마법사라고 셀렌 님을 섬겨야 할 필요는 없지. 무조건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건 악마들이나 다름없는 짓이니까.”

“오호.”

어디까지나 쿠스켈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긴 했지만, 이 셀렌교 녀석들은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들 같았다.

‘문제는 악마 숭배자들인데.’

“그럼… 악마 숭배자들은 뭡니까?”

“…일단 뭣 좀 먹으면서 걷지.”

쿠스켈은 좌판 한곳에 다가갔다.

[그웍.]

그곳엔 피골이 상접한 구울 한 마리가 좌판을 지키고 있었다.

“3개만 가져가지.”

[그워웍.]

쿠스켈은 자그마한 동전을 건네곤 좌판에 쌓인 사과 비스무리한 과일 3개를 집어 들었다.

구울은 고맙다는 듯 고갤 꾸벅 숙이곤 돈을 받아 들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

딱히 주변에 주인으로 보이는 흑마법사는 없었다.

주인 녀석이 꽤나 높은 경지의 흑마법사인 듯했다.

“자. 하나는 자네 거고, 하나는 큰아버지분 거야.”

“고맙습니다.”

“…….”

빈트하겐에게 과일을 건네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를 받아 들었다.

“후후. 포르겔에서만 자라는 바나클이란 과일일세. 독은 없으니 걱정 말고 먹게나.”

“하하. 아무렴요.”

쿠스켈의 말대로 독은 없어 보였다.

난 받아 든 바나클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까드득!

단단하면서도 까슬까슬한 독특한 식감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사과보단 잘 익은 대추 맛에 가까웠다.

많이는 못 먹겠지만 그래도 가끔 별미로 먹을 만은 했다.

“맛있네요!”

“흐흐! 그렇지?”

“…….”

…까득.

빈트하겐은 못마땅한 얼굴로 바나클을 야금야금 깨물어 먹었다.

그런 녀석은 잠시 내버려두고.

난 다시 쿠스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쩝쩝… 앞으로 이 포르겔에서 잘 지내려면, 세력 구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하네.”

“세력 구도라…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군요.”

“뭐 그렇지. 쩝쩝…….”

금세 바나클 하날 다 먹어 치운 녀석은 남은 씨앗을 대충 주변 바닥에 뱉곤 손을 툭툭 털었다.

“…우선은 아르칸 님께서 포르겔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건 말했고. 그 밑에 3명의 마공작과 3분의 신관님이 계시다네.”

포르겔은 르델 휘하에 총 여섯의 주요 인물들을 소개했다.

아무래도 셀렌교 신자인 녀석이다 보니 정보가 좀 편향되긴 했지만, 그럭저럭 걸러 들으면 괜찮았다.

‘그런 거군.’

우선 악마 숭배자들의 지도자격인 놈들이 바로 마공작.

끗발 좀 있는 악마들과 계약한 놈들이다.

덕분에 흑마법사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꽤나 강력한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다.

놈들이 세를 불린 지역은 포르겔 근처의 자그마한 영지들.

이런 지역까지 모두 아우르는 게 바로 흑마법사들의 왕국, 라스하겐이었다.

포르겔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포르겔은 불필요한 학살을 최대한 지양했지만, 마공작들이 지배하는 영지에선 노예니 뭐니 잔뜩 있었으니까.

일단은 왕국이란 이름 아래 하나로 묶여 있긴 했지만, 사실 왕국보단 연합체 느낌이 강했다.

르델이란 든든한 방파제가 있었기에 포르겔을 중심으로 그나마 정상적인 왕국이 형성될 수 있었다.

아마 르델이 없었더라면 이곳 포르겔도 내가 상상하는 흑마법사들의 왕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피와 살육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의 왕국.

보면 볼수록 르델은 쓸 만한 녀석 같았다.

‘그때 내 영지를 습격한 놈들은 굴라른가 하는 놈을 섬기는 악마 숭배자들이었단 거군.’

임페라 백작령을 습격한건 상당히 괘씸했지만, 녀석의 입장에선 꽤나 괜찮은 정치적 판단이었다.

내부론 악마 숭배자들과 셀렌교 신자들 사이에서 적당한 줄타기도 하면서.

외부론 흑마법사들의 영향력을 높힐 수 있는 행동이었으니까.

실패한다 해도 결국 악마 숭배자들의 책임일 테고.

머리가 제법 돌아가는 놈 같았다.

‘뭐 그런 놈이니 카잔 제국의 편에 든 거겠지.’

“…아무튼 그런 걸세.”

“꽤나 복잡하군요.”

“후후. 그렇지?”

포르겔은 멋쩍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평범한 농부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진짜 평범한 농부였더라면 이토록 자세히 정치적인 상황을 알진 못할 테니까.

“그런데 이런 걸 다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사실 나도 1급 신도라서 말이야.”

“1급 신도?”

“신관님들 바로 아래에 있는 신도를 말하는 걸세.”

“오…….”

하긴.

구울들을 그렇게 아무런 문제없이 다룰 수 있는 경지면 꽤나 강할 거다.

적어도 흑마법 랭크 4, 아니면 랭크 5?

“그런 자가 왜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 이렇게까지 대해 주는 거지?”

빈트하겐은 아직도 쿠스켈이 못 미더운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조금은 예의 없는 말이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린 어디까지나 외지에서 온 이들이다.

그런 우릴 이렇게까지 격의 없이 대해 주는 건 좀 이상하긴 했다.

“후후.”

포르겔은 빈트하겐의 날선 말투에도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자넬 보면… 내 아들이 생각나서 그러는 걸세.”

“아들……?”

“아마 녀석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딱 자네 또래 정도 되겠군.”

그러고 보니 쿠스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와 비슷하다던 그의 사정.

지금 난 돌아가신 아버질 되살리려 흑마법사가 된 청년이란 설정이다.

‘그런 나와 비슷한 사정이라는 건…….’

보아하니 쿠스켈은 아버지가 아닌, 아들을 되살리려 한 듯했다.

그러다 결국엔 돌고 돌아 포르겔의 농부가 돼 버렸지만.

“…….”

슬픔에 젖은 듯한 쿠스켈의 눈빛을 보자 가슴이 쿡쿡 찔려 왔다.

“그러고 보니 내 아들 녀석도 바나클을 좋아했지.”

녀석은 내가 반쯤 먹은 바나클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흡…….”

“…하나 더 먹겠나?”

“…괜찮습니다.”

“후후. 그래.”

까득!

난 반쯤 남은 바나클을 다 먹어 치웠다.

“자.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아무튼 포르겔에 온 걸 환영한다네.”

“…감사합니다.”

“저기 저쪽에 신전으로 가면 신관님들이 계실 걸세. 아마 그분들께 말씀드리면 앞으로 지낼 거처를 마련해 주실 거야.”

“음…….”

앞으로 지낼 거처라.

“뭐 정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머무는 곳 근처에서 사는 것도 괜찮을 테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후후. 그래. 그럼 또 보자고.”

쿠스켈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다시금 제 밭을 향해 걸어갔다.

“이거 괜히 미안하네.”

“흥. 저놈의 말이 사실이란 보장도 없지 않나?”

“뭐 그렇긴 하지.”

그래도 쿠스켈의 아련한 눈빛을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덕분에 귀찮은 일은 덜었군.”

“그래. 그것만으로 감사해야 하지 않겠어?”

“…흥.”

쿠스켈이 아들 얘기를 해서 그런가?

빈트하겐의 불만스런 표정이 조금은 풀어진 것만 같았다.

일단 포르겔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강 파악했다.

이대로 신관을 만나 보고, 녀석도 상태가 괜찮다면 르델과의 연결을 부탁해 보리라.

“그럼.”

멀어지는 쿠스켈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부디 일이 잘 풀리길.

난 쿠스켈을 향한 미안함을 간직한 채 신전으로 향했다.

***

“놈은 어디 있지?”

“지금은 자릴 비운 것 같습니다.”

“흐흐… 마침 딱 좋군.”

남자는 모처럼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라스하겐의 제1마공작 리베라.

남자는 그의 휘하에 있는 흑마법사였다.

‘하이베른 그 멍청이가 일만 그르치지 않았어도…….’

아이소테르에 난동을 부리러 갔던 흑마법사 하이베른.

남자와 비슷한 서열의 흑마법사였던지라 모종의 신경전이 오가기도 했던 녀석이다.

그랬던 녀석이 허무하게 죽어 버렸다.

난동은커녕 피해자 단 하나 없이 흑마법사들만 잔뜩 죽는 성과를 남긴 채.

‘공작 전하께서 주신 데스나이트까지 잃고 말이지.’

리베라가 직접 만든 데스 나이트.

마공작들과 왕 간에 신경전에서 데스 나이트는 중요한 전력 중 하나였다.

그걸 빌려 가 놓고 아무런 피해도 못 입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등신 같은 놈.’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포르겔 남문 근처에 머무는 흑마법사 한 놈.

별것 아닌 농부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포르겔 주윌 순찰하는 성가신 놈들 중 하나였다.

이미 몇 번 포르겔 주윌 염탐하러 오긴 했었지만, 대부분 녀석에게 들키는 바람에 어물쩍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놈이 뭔 일인진 모르겠지만 마침 자릴 비웠다.

남자의 입장에선 절호의 기회인 셈.

“흐흐흐…….”

“그럼… 시작할까요?”

“그래.”

남자와 그를 따르는 흑마법사들은 조심스레 밭을 매고 있는 구울들에게 다가갔다.

[크륵……?]

“까불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크륵…….]

남자의 눈에서 검은 안광이 일렁이자, 처음엔 경계하던 구울들이 이내 추욱 늘어졌다.

저마다 손에 농기구를 든 채 멍하니 서 있는 구울들.

남자는 그런 구울들을 보며 입술을 이죽였다.

“구울로 농사나 짓고 있다니. 한심한 놈.”

“흐흐! 그러게나 말입니다!”

놈들은 멍하니 서 있는 구울들을 뒤로한 채 쿠스켈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포르겔로 잠입하기 위해선 쿠스켈의 감시를 피하는 게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인질이 필요한 법이지.’

남자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

그리곤 쿠스켈에게 인질이 될 만한 뭔갈 찾기 위해 천천히 오두막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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