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뭐지? 이건?”
농사짓는 구울이라.
나조차 소설에서 읽은 적 없던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빈트하겐에게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이, 이게 뭐지……?”
[크르륵…….]
어리둥절하는 우릴 향해 구울들은 경계심 어린 자세를 취했다.
곡괭이나 삽을 들고 주춤거리는 게, 평범한 농부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평범한 사람인가 싶으면서도, 썩어 문드러진 살점들을 보면 구울인 건 확실했다.
구울은 본디 이성을 잃은 마물.
흑마법사의 통제가 없는 한 살아 있는 생명체를 향해 끝없는 적의를 표출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는 건 흑마법사가 지금 이 구울 놈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건데.
“어이! 거기 뭐하는 놈들이냐!”
주춤거리는 사이, 누군가 달려와 소리쳤다.
“칫.”
아마 저놈이 이 구울들을 통제하는 흑마법사이리라.
빈트하겐은 로브 안에 숨겨 둔 검에 손을 얹었다.
수틀리면 그 즉시 목격자를 제거할 심산인 듯했다.
“잠깐. 진정하라고.”
“…….”
난 녀석을 제지하며 달려온 흑마법사를 살폈다.
사실 녀석을 마주한 감상을 얘기해 보자면…….
흑마법사보단 그냥 평범한 사람 같았다.
끔찍한 몰골을 하지도 않았고, 어두컴컴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지도 않았다.
여느 논밭에서나 볼 수 있는 농부의 차림새에 가까웠다.
정확히는 한 손에 책을 든 채 돌아다니는 게 농부보단 농부 관리인 같았다.
“이놈들이…….”
녀석은 나와 빈트하겐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리곤 영문 모를 소릴 내뱉었다.
“또 악마 숭배자 놈들이냐? 여긴 셀렌교 영역이니 넘보지 말라 했을 텐데?”
“…응?”
악마 숭배자는 대충 뭔지 알겠고.
셀렌교는 또 뭐지?
셀렌이 뭔지는 안다.
달의 악신 셀렌.
모든 몬스터들의 주인인 최악의 악신이자 히테라 주신들과 정반대에 서 있는 신.
그런 놈을 숭배하는 놈이니 그리 정상적인 종교는 아닌 것 같다만.
지금껏 봐 온 흑마법사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인 건 분명했다.
“그…….”
“또, 또 변명! 이번엔 그냥 안 넘어갈 줄 알아! 신관님한테 말씀드릴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하라고!”
녀석은 손에 들고 있던 마법서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녀석의 말대로 신관이란 자한테 통신 마법을 쓸 작정인 듯했다.
“…죽여야겠군.”
“자, 잠깐만.”
빈트하겐이 검을 뽑으려는 걸 가까스로 막았다.
놈을 죽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뭐 있겠나.
보아하니 말도 어느 정도 통할 것 같긴 한데.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오해?”
“그, 그게… 저희는 아이소테르에서 온 흑마법사들입니다.”
“…뭐라고?”
난 로브 안에서 황혼을 등 뒤로 돌려 매며 숨겼다..
그리곤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를 반쯤 벗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 묻은 진흙도 대충 닦아 내자 비교적 멀쩡한 상태가 됐다.
“…아이소테르에 흑마법사가 여기까진 무슨 일이지?”
“그야…….”
난 주윌 둘러보며 재빠르게 현 상황을 파악했다.
보아하니 포르겔 지방엔 계파가 둘로 나뉜 듯했다.
하난 악마 숭배자 놈들이고, 다른 하난 셀렌교 신자들.
지금 눈앞에 녀석은 셀렌교 신자 같았다.
그리 나쁜 놈 같진 않았다.
악마 숭배자 같은 놈들이었다면 곧바로 마탄을 쏟아부었을 테니까.
애초에 구울로 농사를 짓는 짓 따윈 하지도 않았을 테고.
“포르겔에선 더 이상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살 수 있단 소문을 들었으니까요.”
“…호오.”
“아이소테르에선 흑마법을 배웠단 이유만으로 우릴 처형시키려 했습니다. 나쁜 짓이라곤 전혀 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죠.”
“…흑마법이 연합의 땅에선 불법인 건 다 알고 있었을 텐데? 멀쩡한 놈이 뭐하러 흑마법을 배워서 그 지경까지 간 거지?”
“그야… 돌아가신 아버질 보고 싶었으니까요.”
꽤나 그럴싸한 거짓말이 나왔다.
이제 녀석이 이걸 물기만 하면…….
“그럼 같이 온 저 남자는 뭐지?”
“이분은… 제 큰아버지십니다. 흑마법을 배운 절 보호하시다가 같이 쫓겨 다니시게 되셨죠. 그날 일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크흑!”
난 눈물까지 흘리며 연기했다.
그런 반면 빈트하겐은 이게 뭔 소린가 하는 눈빛이었다.
난 그런 그의 옆구릴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뭐해? 빨리 장단 맞추지 않고.’
‘네놈 같은 조카는 둔 적 없다만.’
‘아잇……! 지금 그게 중요해?’
‘…….’
빈트하겐은 한 번 날 째려보곤 고갤 푹 떨궜다.
“…동생을 보고 싶어 하는 조카의 마음. 아무리 연합의 땅에 산다 해도 마냥 나무랄 순 없겠더군.”
다행히 빈트하겐도 괜찮게 받아 줬다.
“…….”
그 덕분인지 우릴 쏘아보던 흑마법사 녀석의 눈빛도 조금은 누그러진 듯한…….
“…크흑!”
“음?”
“그 맘 다 이해한다.”
녀석은 목이 메인 듯 먹먹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리 와 봐라.”
거기서 그치지 않고 녀석은 양팔까지 활짝 펼친 채 다가왔다.
“…….”
녀석은 눈물을 글썽이는 채로 날 꼭 안아 줬다.
그런데 왜 반말이지?
뭐 이해는 간다.
이 몸뚱이가 그래도 액면가는 이십대 초중반이니까.
이 흑마법사 녀석은 적어도 빈트하겐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수준이었고.
“…감사합니다.”
“크흑! 아버질 보고 싶어서 흑마법 좀 배운 것 가지고 그 난리라니…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라니깐!”
“…그러게요.”
일단은 녀석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
빈트하겐이 옆에서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긴 했지만, 흑마법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날 다독이느라 빈트하겐은 안중에도 없었다.
“내 그런 줄도 모르고 불쌍한 어린 양을 내칠 뻔했구만.”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 껴안아 주던 흑마법사는 고갤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내 이름은 쿠스켈. 그냥 쿠스켈이라 불러 주게. 나도 자네와 비슷한 이유로 흑마법을 배운 뒤로, 가문의 이름은 버렸으니 말이야.”
“그쪽도 비슷한 사정이셨나 보군요.”
“뭐… 그렇지. 지금은 그냥 평범한 농부지만 말이야.”
“평범……?”
난 주변에 멀뚱히 서 있는 구울들을 흘긋 쳐다봤다.
“…아! 외지에서 온 자라면 익숙치 않겠군. 여긴 다 이런 식으로 한다네. 아무래도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말이야.”
“호오…….”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방식이다.
구울은 이미 죽은 시체다 보니 임금을 줄 필요도 없고, 하루 종일 일을 시켜도 불평은커녕 괴성만 지르는 게 전부다.
이따금 마나가 다 소모된 녀석들은 다시 흑마법사들이 채워 주면 그만이고.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내 포르겔 구경이나 좀 시켜 주지. 어때. 괜찮은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흐흐! 좋아! 따라오게! 그… 같이 오신 큰아버지 분도 따라오시고!”
“…알겠다.”
빈트하겐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입을 비죽 내밀고 있었다.
콧수염에 덮여 있는 덕에 들키지는 않았다.
‘표정 풀라고. 안전하게 포르겔을 훑어볼 수 있게 된 건데. 좋은 거 아니겠어?’
‘…그건 잘 모르겠군. 어차피 저들도 다 평범한 인간들을 구울로 만든 거 아닌가?’
‘으음… 그건 그렇네.’
빈트하겐은 멍하니 서 있는 구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쿠스켈은 그런 그의 생각은 전혀 모르는 듯 다시 구울들에게 마나를 주입하며 일을 시켰다.
“자자. 넌 여기부터 저기까지 쭉 파내고. 넌 자갈 같은 거부터 좀 골라내고. 내 손님을 대접할 때까지 다 끝내야 된다. 알겠지?”
[크르르…….]
먹잇감을 마주한 구울마냥 침을 질질 흘렸지만, 다들 쿠스켈의 명령에 따라 느릿느릿 움직였다.
“…….”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 쿠스켈이 고갤 갸웃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 실례지만 이 구울들은……?”
“아차차! 내 정신 좀 보게! 그걸 말 안 해 줬구만!”
쿠스켈은 깜빡했다는 듯 손뼉을 쳤다.
“이 녀석들은 대부분 포르겔에 쳐들어왔던 놈들일세. 또 몇몇은 기증 받은 녀석들이고.”
“기증……?”
포르겔을 쳐들어왔던 놈들을 구울로 만든 건 이해가 갔다.
카잔 제국의 땅은 혼란 그 자체의 땅이다.
남의 땅에 약탈하러 온 놈들 사정까지 봐줄 필요는 없다.
그때 죽은 놈들을 구울로 만든 것까지 뭐라 할 순 없었다.
하지만 기부?
그건 대체 뭐지?
“후후. 우리 포르겔의 흑마법사들은 헛되이 낭비하는 게 없지. 수명이 다해 죽는 흑마법사들은 모두 자신의 시신을 셀렌교에 기증한다네. 그럼 이런 식으로 다시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는 거지.”
“아…….”
이런 해괴한 문화가 다 있나 싶기도 했지만.
뭐 저들이 좋다고 하는 건데, 흑마법사도 아닌 외지인이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
여전히 못마땅해하는 빈트하겐은 내버려뒀다.
“자. 그럼 가 보실까?”
“하하. 좋습니다.”
쿠스켈은 그렇게 우리 둘을 데리고 포르겔로 발걸음을 옮겼다.
*
[크워어어…….]
“이야…….”
포르겔 성채 너머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세상이었다.
‘구울이 득실대는 건 맞았지만.’
구울들은 다들 저마다 할 일이 있기라도 한 듯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등에 짐을 짊어지거나 상점 좌판에 멍 때리고 서 있는 모습은 신기하게 보이기만 했다.
“오! 사르스! 잘 지냈나?”
[그웍.]
개중엔 자아까지 갖추고 있는 건지 쿠스켈의 인사를 맞받아치는 녀석도 있었다.
여느 영지에서나 볼 수 있는 활기찬 시장 거리의 모습이었다.
그중 절반이 구울인 것만 빼면.
“여기가 바로 포르겔일세!”
쿠스켈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포르겔의 전경을 가리켰다.
성채 한켠에 위치한 광장.
그 주위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길을 따라 주욱 가다 보면 포르겔의 내성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렇게 높은 성은 아니었지만, 외적을 막기엔 충분한 높이였다.
과거 마법이 발달했던 영지답게 드문드문 결계의 흔적이 보였다.
내성 한복판엔 검은 염료로 칠해진 룬 문양도 있었다.
하지만 흑마법 랭크 보유자들이 많다 보니 룬 문양은 모두 빛을 잃은 채였다.
“…신기하군요.”
“후후! 그렇지?”
난 처음 도시에 온 촌놈마냥 주변을 구경하기 바빴다.
“하핫! 나 잡아봐라!”
“하하! 나도!”
[그워억…….]
구울 한 마리가 어린아이들 무리에 뒤섞여 놀고 있었다.
꼬마 아일 뒤쫓는 구울이라.
아이소테르였다면 끔찍한 상황인 게 분명했지만, 여기선 아니었다.
아일 돌보는 보모 같은 거나 다름없었다.
“어때. 평화롭지?”
“저로선… 도저히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군요.”
“흐흐. 이게 다 셀렌 님의 보살핌과 전하의 치세 덕분이지.”
“…….”
전하라.
르델 아르칸을 칭하는 말 같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놈은 분명 내 영지에 흑마법사들을 선동해 테러까지 일삼았던 놈이다.
내부론 유하게 대하고, 외부론 그런 악마 같은 짓도 서슴지 않았던 건가?
난 모르는 척 쿠스켈에게 물었다.
“전하라심은……?”
“으음. 이곳 포르겔을 다스리시는 그분을 칭하는 말이지. 자네라면 몰라도 큰아버지 분은 누군지 아시겠군.”
“르델 아르칸 말인가.”
빈트하겐은 겁도 없이 르델의 이름을 불렀다.
덕분에 쿠스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긴 했지만, 이내 험상궂던 표정을 풀었다.
“뭐 아래쪽에서 올라온 이들이라면 거부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 전하께서 잘못하신 게 없진 않으시니까.”
“흥.”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야. 지금 여길 보라구. 흑마법사들이 이토록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땅이 어디 또 있겠나?”
“그렇…긴 하죠.”
지금 흑마법사들의 인식을 땅에 처박은 것도 모자라 땅굴로 파고들게 만든 장본인.
르델이 내뱉은 거짓말 한마디로 북방인들은 애먼 신성 왕국을 상대로 어마어마한 피를 흘렸다.
그 여파로 흑마법이 연합법으로 대역죄 취급을 받게 된 거고.
그런 녀석이 흑마법사들을 위한 낙원을 만들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뭐 그런 게 한두 개도 아니고.’
르델이 잘못한 건 맞지만, 연합법을 만들고 죄 없는 흑마법사들까지 처형시킨 건 어디까지나 연합이다.
르델은 그 틈에 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선택한 거고.
“…흠.”
르델을 생각하다가 문득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그… 아까 말씀하셨던 악마 숭배자들 말입니다. 그자들은 대체 뭔가요?”
“으음… 그건…….”
악마 숭배자 얘기에 쿠스켈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말이야…….”
“…….”
난 내심 르델과 유리한 협상 조건을 내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쿠스켈의 답변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