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75화 (175/222)

175화

“피해…….”

미처 반응 할 틈도 없이, 고대인의 주위로 응집됐던 마나가 폭발했다.

이는 녀석이 가진 광역 스킬 중 하나.

‘방출’이었다.

네이밍 센스가 최악이긴 했지만, 이보다 더 저 스킬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거다.

마나를 응집해 한순간에 내뿜어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스킬이니까.

콰아아앗!

“으악!”

그 바람에 녀석과 가장 가까이 있던 프리아나가 튕겨지듯 나가떨어졌다.

나름 안전권까지 빠져 나와 있던 이슬린과 하룬까지 모두.

[난…….]

정신이 빠져나간 놈마냥 중얼거리기 시작한 고대인.

순식간에 주변을 초토화시킨 녀석은 잠시 그로기 상태에 빠진 듯 추욱 늘어졌다.

지금이 공격 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주변에 움직일 수 있는 녀석은 없었다.

심지어 프리아나까지 바닥에 쓰러진 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크윽……!”

프리아나가 힘겹게 일어서며 검이 정신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뭔가가 단단히 녀석의 힘을 틀어막고 있는 듯, 프리아나의 검 주변엔 오러가 뭉쳤다 흩어지길 반복했다.

프리아나까지 저 상태라면…….

까드득!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 용린검을 집어 들었다.

“…응?”

뭔가 이상했다.

분명 힘이 들어가지 않아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힘이 더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는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이상하리만치 충만하진 대기의 농도.

마치 일곱 번째 대격변을 겪은 지구의 상태와 가까운 대기 농도였다.

“…프리아나! 지금 상태가 어떻지?”

“그, 그게… 마, 마나가 모이질 않습니다…….”

순간 머릿속으로 과거 ‘이진수’의 삶을 살았을 때가 떠올랐다.

각성자들은 아쉬타르를 처치하기 위해 수많은 도전을 시도했다.

모두 실패하긴 했지만, 나름 성과도 있었다.

녀석이 가진 공격 패턴들을 파악하고,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이지만 차츰차츰 공략 범위를 늘려 갔다.

그러던 중, 공격 패턴이 한 번 바뀐 적이 있었다.

크게 변한 건 아니다.

똑같은 스킬이었지만, 그 여파가 살짝 바뀐 게 다니까.

아쉬타르를 향한 첫 번째 원정대.

이는 두 번째 대격변 이후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름 최강의 원정대였지만 결과는 원정대원 9할이 전사한 참혹한 패배.

그래도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녀석의 ‘방출’ 스킬 이후에 대기 농도가 짙어지면서 각성자들의 힘도 강해진단 걸 알았으니까.

‘문제는 일곱 번째 대격변 이후론 사라진 패턴이란 거지.’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겨우 알았을 뿐.

지금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난 확실했다.

지금 이게 내가 겪었던 그것이라면, 프리아나가 마나를 그러모으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갑작스레 충만해진 마나에 신체가 무의식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거니까.

하지만 난 이미 한 번 겪어 본 상황이다.

지금의 나라면 녀석을 상대할 수 있다.

“…프리아나. 물러서라.”

“하, 하오나 백작님…….”

“나머진 내가 하겠다.”

지금껏 너무 안일했다.

내겐 이 소설 속 주인공도 있고, 소설 속 주조연급인 프리아나도 있던 게 독이 되었다.

둘을 키우기만 하면, 앞으로 닥칠 재앙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때문에 내 자신을 성장시키는 걸 게을리 했다.

원작의 줄거리라면 이미 옛적에 죽었어야 할 삼류 엑스트라보단, 둘이 성장하는 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세상이 옛 지구보다 마나 농도가 짙긴 했지만, 13번의 대격변을 겪었던 당시보단 한참이나 모자랐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다르다.

“스읍.”

대기에 충만한 마나를 빨아들였다.

“하아…….”

마치 물고기가 바닷물을 빨아들이고 산소를 저장하는 것처럼.

대기에 가득했던 마나가 단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카득.

벌써 허용치를 초과한 단전이 괴로운 신음을 냈다.

왈칵!

진득한 핏덩이가 한 움큼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퉷!”

끈적한 핏덩일 가래마냥 뱉어 버렸다.

내장이 터질듯이 고통스러웠지만 괜찮다.

내겐 단전만 있는 게 아니니까.

랭크 시스템의 가호로 전신에 퍼져 있는 마나.

이는 금세 균열이 가기 시작한 단전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주인공 녀석 마냥 한계를 모르는 괴물까진 아니더라도.

비슷한 수준까지 흉내는 낼 수 있었다.

[랭크가 변경되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오랜만에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익숙한 알림음.

이를 무시한 채 호흡을 계속했다.

난 나도 모르게 디아와 프리아나에게 의지가 아닌, 의존을 해 온 걸지도 모른다.

그래선 소설 줄거리랑 똑같이 흐르게 된다.

프리아나는 결국 라크레시아에게 죽을 테고, 연합의 수장들은 모두 죽을 거다.

원작과 달라졌다 해도 이글렌이 그 칼날을 피할 수 있을 리는 없을 테고.

이미 나라는 존재 때문에 대재앙이 앞당겨진 이상.

그 뒷수습은 온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파아앗!

용린검 주위로 선명한 오러가 빛을 냈다.

“…오랜만이군.”

검을 모르는 이들이 봤더라면 큰 차이가 느껴지진 않았겠지만, 난 안다.

발할라 시스템으로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나가던 당시의 아름다운 자태.

전신을 옥죄던 수갑들이 이제 대부분 해제된 느낌이었다.

콰직.

한 발짝 앞으로 내딛자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졌다.

단단한 암반이 살얼음을 걷는 것마냥 가볍게 느껴졌다.

“이거지.”

익숙한 감각이다.

난 옛 기억을 떠올린 채 용린검을 허리춤에 가져다 댔다.

검술 랭크 6.

혼신의 힘을 다 한다면 산조차 갈라 버릴 경지.

난 그 일격을 위해 검에 오롯이 정신을 그러모았다.

“후우.”

그러는 와중에도 호흡은 멈추지 않았다.

[난…….]

아직도 얼빠진 놈마냥 중얼거리는 고대인.

난 그런 녀석을 향해 온힘을 쏟아부은 검을 휘둘렀다.

콰과과과……!

맹렬히 퍼져 나가는 거대한 일격.

이는 그대로 고대인을 집어삼켰다.

[……?]

얼빠져 있던 녀석이 이내 살기를 감지했는지 머릴 감싸고 있던 팔을 반사적으로 뻗어 냈다.

이내 녀석의 사지와 검격이 격돌했다.

콰아아앗!

거대한 빛이 둘 사이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크아앗!]

파각!

검격에 당한 팔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자라긴 하겠지만, 그 전에 녀석의 숨통을 끊어 놓기만 하면 그만이다.

파각! 파가각!

어느새 남은 건 마지막 팔 하나.

이대로 녀석의 목을 베기만 하면…….

…챙강!

“…이런.”

마지막 팔 하나만 남기고 있었던 그때.

용린검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부서진 검의 파편이 날아가 왼쪽 뺨을 깊게 베었다.

피가 흘러내리긴 했지만 그딴 건 문제가 아니었다.

[…….]

힘의 근원을 잃은 검격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자리엔 너덜너덜한 팔 한쪽을 남긴 고대인이 서 있었다.

잘려져 나갔던 팔들이 빠른 속도로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걸론 부족했던 걸까.

아니, 너무 과했던 걸까.

갑작스레 쏟아진 마나에 용린검이 버티지 못하고 파괴되어 버렸다.

하룬한테 부탁하면 새로 만들어 주긴 하겠다만, 지금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

하는 수 없나.

난 허리춤에 대충 메어 둔 검을 뽑아 들었다.

붉게 물든 도신.

우우웅…….

이는 자신을 써 달라 말하는 듯 작게 울렸다.

“후읍.”

호흡을 멈추지 않은 채 녀석에게 정신을 집중시켰다.

팔이 새로 달린 듯 부드럽게 마나를 빨아들이고 내뱉길 반복하는 검.

방금 부서진 용린검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래서 오러소드를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크르륵…….]

이젠 이성조차 모두 잃고 생체 병기에 동화되어 버린 고대인.

어느새 잘려 나간 팔을 모두 재생시킨 녀석이 천천히 날 향해 걸어왔다.

바라던 바다.

지금 내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난 차분히 눈을 감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과거 마신 아쉬타르를 홀로 상대했던 그 순간.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던 대 재앙.

눈을 뜨자 녀석을 작게 축소시켜 놓은 듯한 고대인이 서 있었다.

이 정도면 전투력 테스트로 딱이다.

콰아앗!

놈의 등 뒤로 자라난 팔이 날 향해 뻗어 나갔다.

눈에 힘을 주고 이를 보자, 마나가 텅 빈 것처럼 보이는 팔이 분간 갔다.

조금은 힘을 되찾은 건지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어난 텅 빈 팔.

그게 텅 빈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것도 아쉬타르가 쓰던 스킬이다.

그땐 두세 개가 아니라 하늘을 가득 메우던 사지 모두가 저 상태였지만.

따로 부르는 명칭은…….

‘죽음의 손길이었나.’

지독한 네이밍 센스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막는 게 불가능한 공격이니 그렇게 지을 만하긴 했다만, 저건 단순한 살덩이가 아니라 스킬이 가미된 공격이다.

팔 주위로 수많은 쉴드를 덧댄 고도의 스킬.

덕분에 막는 게 불가능한 거다.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 있는 녀석 같은 거니까.

하지만 못 막을 건 없다.

지금의 나라면.

쐐애액!

사방이 아닌 팔방에서 쏟아지는 팔.

그 가운데 쉴드를 덧댄 팔이 제일 먼저 쏘아졌다.

“후읍.”

이번엔 피하는 게 아닌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고 검이 녀석의 팔에 닿으려는 순간, 마법 하날 시전 했다.

‘디스펠.’

완벽한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마법이, 검과 닿는 순간 시전 되었다.

미약하게나마 쉴드에 균열을 만들었고, 그 틈으로 검이 파고들었다.

서걱!

[……?]

분명 먹혔어야 할 공격이 너무나도 간단히 파훼됐다.

제일 껄끄러운 녀석이 잘려 나갔으니, 나머지를 상대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서걱! 서걱!

계속해서 쏟아지는 놈의 팔을 숭덩숭덩 썰어 넘겼다.

그러면서 천천히 녀석을 향해 걸어 나갔다.

[…크라아아악!]

녀석은 발악하듯 팔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주변에 살덩이만 쌓여 갈 뿐, 걸음 속도를 늦출 순 없었다.

서걱! 서걱!

그토록 단단하던 녀석의 팔이 무 썰리듯 썰려 나갔다.

금세 새로운 팔이 뒤를 이었지만, 그럼 나도 다시 베어 버리면 그만이다.

“후읍.”

…왈칵!

순간 배 속에서 묵직한 핏덩이가 한 번 더 쏟아져 나왔다.

이번엔 단순히 입으로만 흘러나오는 게 아닌, 두 눈과 코에서까지 핏물이 흘러나왔다.

덕분에 머리가 어질어질하긴 했지만, 기분은 되려 상쾌했다.

뱃속을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몸을 옥죄던 사슬이 뜯겨지는 기분이다.

[크륵!]

파앙!

녀석의 턱에 자라나 있던 촉수가 튀어나왔다.

단단한 바위처럼 엉긴 녀석이 그대로 내 하복부를 강타했다.

그 바람에 허리가 살짝 숙여지긴 했다.

“백작님!”

“이, 이안!”

이를 본 주변 녀석들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크흐흐.”

아프다.

아프지만 상쾌했다.

그간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하듯 상쾌했다.

[크, 크르륵!]

이성을 잃은 고대인마저 두려운 듯 뒷걸음질 쳤으니.

주변 녀석들이 내 뒤에 서 있어서 다행이지 싶었다.

얼굴에 난 다섯 구멍에서 피를 쏟은 채 미소 짓는 얼굴이라.

주변 녀석들이 이 모습을 봤더라면 기겁하지 않았을까.

[크라악!]

최후의 발악으로 고대인은 휘두를 수 있는 건 모두 휘둘렀다.

새로 돋아난 팔도 휘둘러 보고, 주변에 바스러진 바윗덩일 집어 던지기도 했다.

콰앙!

미안하지만 이딴 걸론 날 죽일 순 없다.

허공에 검을 휘두르자 산발적으로 날아오던 공격이 한순간에 가루처럼 흩날렸다.

녀석이 무의식적으로 ‘방출’을 쓴 순간부터, 승패는 결정난거나 다름없었다.

어느새 녀석과 나 사이엔 검이 닿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콰과과과…….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쏟아진 공격이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난 고대인 앞에 우뚝 선 채로 한 번 더 깊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읍.”

[랭크가 변경 되었습니다. 확인하시겠…….]

“아니.”

또다시 들려오는 알람을 무시한 채 검을 들어 올렸다.

우우웅……!

맹렬한 푸른빛을 띠는 오러 너머로 붉게 빛나는 검.

이는 그대로 고대인의 목덜밀 향해 또렷한 검선을 그었다.

…서걱!

고대인의 등 뒤로 거센 풍압이 일었다.

이는 녀석의 뒤에 위치한 벽에까지 깊은 검격을 새기고 나서야 멈춰 섰다.

…차르륵!

이내 마지막 일격을 당한 녀석의 머리통이 미끄러지듯 바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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