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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74화 (174/222)

174화

“이런.”

나름 바로 온 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고대인의 팔 하나가 알루윈의 복부를 관통한 뒤였다.

난 지체 없이 허리춤의 용린검을 뽑아 들었다.

방금 수리를 마친 에고 소드.

위력만 놓고 본다면 녀석이 훨씬 강하겠지만, 그건 너무 위험했다.

아직 정신 차리지도 못한 검으로 고대인을 상대하는 건 검에 가해지는 부담이 상당할 테니까.

그랬다간 자이겔론드까지 와서 생고생 한 이유가 없어진다.

최대한 아껴야…….

“크아아악!”

방 안을 가득 메울만한 거대한 포효성.

이는 알루윈이 내지른 비명 소리였다.

“이 망할 놈이……!”

하복부에 커다란 관통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알루윈은 기세 좋게 고함을 내질러 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닥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흐흐흐…….]

기분 나쁜 조소가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녀석이 정말로 아쉬타르와 같은 힘을 쓸 수 있다면, 알루윈이 쌩썡 할수록 득을 보는 건 녀석이었으니까.

쿠구구구……!

포효성에 이어 알루윈 주위로 지축을 흔드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아. 이러면 안 될 텐데.’

그럴수록 지옥 같았던 옛 적과의 악몽이 떠올랐다.

마신 아쉬타르가 내질렀던 첫 번째 공격.

이는 대지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그저 대지에 내지른 손 하나.

훗날 멸망할 세상 속 각성자들은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녀석이 강림한 첫날, 온 힘을 다해서라도 이를 제거해야 했었다고.

만약 그게 성공하기만 했더라면, 지구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니까.

“…….”

난 얼른 두 눈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그러자 신기한 광경을 마주했다.

알루윈이 쓴 거인의 왕관.

이를 통해 대기의 마나가 알루윈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는, 더 빠른 속도로 고대인을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게 아쉬타르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뭣 같은 힘.

우린 그걸 ‘흡기’라 불렀다.

녀석은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여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덕분에 대지 깊숙이 박은 첫 번째 손으로 온 세상을 황폐화 시킬 수 있었던 거다.

나중 가선 발할라 시스템으로 힘깨나 쓴다던 놈들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미 강해질 대로 강해진 녀석에게 새로운 영양 공급원이 될 뿐이었다.

“이깟 공격에 내가 무릎을 꿇을 것 같으냐!”

알루윈의 망치에 붉은 오러가 소용돌이쳤다.

크로드가 쓰는 소드 오러와 비슷하게 보였지만, 저건 크래프트 오러다.

기사들이 쓰는 검에 비하면 그 위력이 한참이나 떨어지는 힘.

콰아앙!

녀석의 오러 해머가 고대인의 팔을 내려쳤다.

역시나 예상대로 팔엔 흠집조차 가지 않은 채 알루윈을 꿰뚫고 있었다.

[프흐흐……!]

고대인은 두 눈을 가늘게 떠 가며 비웃었다.

알루윈은 분한 듯 계속 망치를 휘둘렀지만, 그럴수록 고대인을 향해 마나만 쏟아부어 주는 꼴이었다.

“프리아나!”

“네! 백작님!”

“녀석이 가진 ‘결’을 노려라!”

“…네!”

검에 일가견이 있는 녀석답게 대충 던진 한 마디를 용케 이해했다.

“하아압……!”

푸른 오러를 머금은 프리아나의 검.

이는 곧 고대인의 팔을 향해 호를 그었다.

그저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녀석의 검선은 정확히 팔을 통해 흐르는 마나의 결을 노리고 있었다.

서걱!

망치론 아무리 두드려도 꿈쩍도 않던 팔이 무 썰리듯 썰려 나갔다.

“크윽…!”

그제서야 자유의 몸이 된 알루윈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침음을 흘렸다.

“아버지!”

“…레오윈?”

배때지에 큼지막한 구멍이 난 녀석이 레오윈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살짝 놀라는가 싶었지만, 이내 미간을 구겼다.

“네 녀석이 어떻게 나와 있는 거냐!”

“…….”

“저 인간 놈들은 또 뭐고!”

“아버지…….”

“이익…….”

절박한 상황에서도 되려 화를 내는 알루윈.

그러는 와중에도 구멍 난 상처에선 피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멍청한 놈.”

“…뭣?”

자이겔론드의 왕을 향해 내뱉은 불손한 발언에 알루윈이 고갤 쳐들었다.

그러자 그는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넌……!”

“아직까지도 네놈은 자신만 생각하는군.”

하룬 론 말라크.

왕위를 찬탈한 거짓된 왕이 아닌, 자이겔론드의 진짜 정당한 후계자.

하룬은 바닥에 쓰러진 채 부들거리는 알루윈에게 차가운 눈빛을 내보냈다.

“네, 네놈이 어떻게…….”

알루윈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왕관을 부여잡고 발버둥 쳤다.

그토록 왕좌가 갖고 싶었던 걸까.

죽음을 마주한 상황에서까지.

“뭐, 뭣들 하는 게냐! 저 반역자 놈을 당장 죽여라!”

“반역자?”

“어, 어서… 레오윈! 네놈도 빨리 저 놈을 죽여!”

“….”

레오윈은 추한 아비의 마지막 모습에 고갤 떨궜다.

“이, 이놈들이……! 난 자이겔론드의 정당한 왕이다! 내 명을 거역하기라도 할 셈인가! 어, 어서 저 망할 놈을 죽…….”

…쾅!

알루윈의 고개가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동시에 거인의 왕관으로 비대해졌던 덩치가 다시 평범한 드워프들 크기로 되돌아갔다.

“…하.”

하룬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동생의 시체 앞에서 한숨을 내뱉었다.

수십 년간 자신을 좇던 그가 이토록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하다니.

“…레오윈.”

“삼촌…….”

“미안하지만 이건 잠시만 빌리겠다.”

“…네.”

하룬은 쓰러진 알루윈의 머리에서 왕관을 벗겨 냈다.

그리곤 이를 제 머리에 얹었다.

…파아앗!

녀석의 머리에 얹혀진 왕관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왕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면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아티팩트.

이는 하룬을 향해 정당한 힘을 퍼부어 줬다.

이내 거대한 덩치로 자라난 녀석은 내게 외쳤다.

“…이안! 이제부터 뭘 해야 하는지 알려 주게!”

커진 덩치와 함께 목소리에도 힘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래!”

자세한 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고대인을 쓰러뜨려야 할 때.

“하룬! 이슬린! 주변 부상자들을 저 녀석에게서 떨어뜨려 놔라!”

“크흐흐! 그래!”

“네! 백작님!”

둘은 얘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친 이들을 하나 둘 옮기기 시작했다.

거대한 덩치로 자라난 하룬은 허리에 드워프 서넛을 번쩍 들어 올리곤 내달렸다.

“하, 하룬 왕자님?”

“왕자는 무슨! 언제적 소릴 하는 게냐?”

하룬이 그렇게 애를 쓰는 와중에, 이슬린은 지면을 얼려 드워프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으윽… 차, 차갑습…….”

콰드득!

“으븝…….”

부상자의 불평은 듣고 싶지 않았는지 입술을 꽁꽁 얼려 버리곤 드워프를 컬링하는 것마냥 밖으로 밀어냈다.

뭐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

일단 부상자 구출은 둘에게 맡겼다.

용린검을 뽑아 든 난, 검 위로 푸른 오러를 쏟아부었다.

“하압!”

이내 선명한 빛을 띤 오러 소드를 든 채로 프리아나 쪽으로 가세했다.

카가가각!

“으읏…….”

고대인을 상대로 힘겹게 버텨 내고 있던 프리아나.

무수히 많은 팔과 턱에 난 촉수들이 녀석을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지금껏 사람을 상대로 싸워 본 게 주였던 터라, 지금의 고대인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공격엔 버거워했다.

“프리아나! 숙여라!”

“예!”

내 말에 프리아나가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고대인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음?]

느닷없는 자살 행위에 고대인의 촉수가 꿈틀했다.

난 그러는 사이 프리아나의 등 뒤로 용린검을 휘둘렀다.

검을 벗어나 쏘아진 푸른 검기.

서걱!

이는 정확히 고대인의 사지를 잘라 내고 프리아나에게 길을 열어 줬다.

그 틈에 녀석과 거릴 좁히는데 성공한 프리아나.

그는 곧 짙은 오러의 검을 녀석에게 휘둘렀다.

…파앙!

“으읏……?”

하지만 이는 반투명한 막에 금세 가로막혔다.

한 번 더 뒤이은 연격을 넣어 보려 하자, 난 다급히 프리아나에게 외쳤다.

“…물러서라!”

“예!”

내 외침에 녀석은 금세 검을 집어넣고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반투명한 막 너머로 푸른빛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콰아앗!

이내 빛이 폭발하며 반투명한 막 바깥으로 분출됐다.

프리아나의 검기와 똑 닮은 결의 마나.

만약 프리아나가 한 번 더 검격을 넣었더라면 치명상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후! 감사합니다! 백작님!”

“…칫.”

이를 본 난 지난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른바 아쉬타르가 가진 ‘반격’이란 스킬.

저 망할 스킬 때문에 원정대 상당수가 큰 피해를 입었었다.

실컷 공격을 피하다 마침내 일격을 쏟아부었더니, 이를 그대로 되돌려 버리는 악랄한 스킬.

마신 아쉬타를 마주했던 그날부터.

최후의 날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헛된 목숨을 잃었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녀석이 마신 아쉬타르와 같은 녀석일지도 모른단 사실을.

하지만 생김새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기술마저도 빼다 박았다.

하지만 왜?

왜 아쉬타르가 여기에?

소설에 따르면 녀석은 그저 고대인이 사용하는 생체 병기 중 하나일 뿐이다.

“…….”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이내 생각하는 걸 멈췄다.

일단은 놈을 처치하는 게 먼저다.

내가 아는 아쉬타르와 같은 녀석이라면, 이미 예전에 처치해 본 적 있으니까.

“프리아나.”

“네! 백작님!”

“놈의 팔이 텅 빈 것처럼 보일 때를 조심해라.”

“네!”

말하기 무섭게 고대인의 팔 두 개가 우릴 향해 뻗어 나왔다.

그런 녀석의 팔은 마치 마나가 텅 빈 것처럼 평범한 살더미로만 보였다.

프리아나는 반사적으로 이를 막으려 검을 들어 올렸다.

“막으면 안 된다! 피해라!”

“네!”

우리 둘의 급소를 향해 들어온 공격.

이건 절대 막으면 안 된다. 반드시 피해야 했다.

쐐애액!

바람을 찢어발기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들어온 두 팔.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피하는 데 성공했다.

뒤이어 팔이 변칙적으로 꺾이며 들어왔지만, 아예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나가 텅 빈 것처럼 보이는 팔은 두 개뿐.

중간중간 섞여 들어오는 공격 중, 피해야 할 건 피하고 베어 낼 수 있는 건 베어 나갔다.

꾸준히, 그리고 침착하게 녀석의 공격을 받아 내며 머릿속으로 아쉬타르를 상대했을 당실 떠올렸다.

그때에 비하면 이건 아기 장난 수준이다.

내가 상대한 건 지구의 모든 생기를 빨아들여 강해질 대로 강해진 아쉬타르였으니까.

계속된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고대인은 뻗어 냈던 팔을 되돌렸다.

아직 활성화된 팔은 여섯 개뿐.

잘라 내도 다시 자라나긴 했지만 추가로 늘어나는 팔은 없었다.

아직 그만한 수준은 아니란 뜻.

‘애초에 크기부터가 차원이 다르고.’

난 녀석의 눈치를 살피며 다음 공격을 예상했다.

[…신기한 놈이군.]

이쯤 되자 고대인 녀석도 뭔가 이상하단 걸 깨달았다.

마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것마냥 대처하는 상대방.

이상하게 느끼는 게 당연했다.

“그딴 식으로 생겨 놓고 신기한 녀석이라니. 양심도 없나?”

[…뭐?]

녀석은 갑작스런 인신공격에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이는 못생긴 걸 가지고 기분 나빠서 그러는 게 아니다.

자신이 어떤 몸뚱이에 들어가 있는지조차 인지를 못하고 있었을 뿐.

[…이, 이게 뭐지?]

지금껏 자유자재로 촉수며 사지며 쓰던 녀석이 이제 와서 제 몸뚱일 내려다봤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신체.

녀석의 두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난 녀석을 자극 시킬 생각으로 더 도발했다.

“아주 징그럽기 짝이 없구만. 넌 뭐 어디 사는 몬스터지?”

[몬…스터……? 내가……?]

“설마 그렇게 생겨 놓고 인간이라 말하려는 건가?”

[인간… 인간…….]

녀석의 자아가 빠른 속도로 붕괴되는 거 같았다.

이대로 빈틈을 노리기만 한다면…….

수많은 팔다리로 머릴 쥐어 싸매며 고통스러워했다.

‘혹시 스스로 자멸하나? 제발 그래라!’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녀석의 주위로 마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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