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왕의 대장간은 알현실 너머에 위치해 있었다.
다행히 알루윈은 어디 다른 데 가 있는 듯했지만 알현실이다 보니 근처에 경비병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쩌죠? 백작님?”
벌써 늦은 시간대라 경비병이 많진 않다만, 굳이 녀석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경비병들을 제압하고, 검만 수리한 다음 도망칠 계획이었다만.
레오윈 덕에 그럴 필요는 없어졌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레오윈은 알현실 근처에 얼쩡거리는 경비병 드워프들을 향해 다가갔다.
“누구냐!”
어둠 속에서 걸어온 레오윈에게 경비병이 소리쳤다.
“괜찮습니다. 접니다, 레오윈.”
“…왕자님?”
경비병들은 금세 왕자를 알아보곤 경례 자셀 취했다.
그런 와중에 경비병 하나가 고갤 갸웃하며 물었다.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알기론 왕자님께선 국왕 전하의 명으로 수감 중이셨던 게…….”
“그, 그랬죠! 하지만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던 거 기억하실 겁니다. 앞으로 말 잘 듣겠다 맹세하면 풀어 주시겠다고. 간수 분들한테 얘기하니 바로 풀어 주시더군요. 아버지의 언질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아. 그렇다면…….”
“네. 이제 저도 더 이상 아버지께 거역하지 않고 얌전히 따를 생각입니다. 다 자이겔론드를 위한 뜻이셨을 텐데. 제가 너무 어리석었죠.”
“하핫!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국왕 전하께 연락을…….”
“아! 괜찮습니다. 벌써 만나 뵙고 오는 길이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안 그랬다면 제가 이렇게 돌아다닐 수도 없었겠죠.”
“음… 그렇군요.”
“그러면서 한 마디 하시더군요. ‘왕의 대장간’을 보면서 앞으로 자이겔론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그럼 이 아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아…….”
경비병 드워프들은 레오윈의 말에 고갤 끄덕거렸다.
난 복도 벽 너머에 숨은 채 녀석이 내뱉는 거짓말에 감탄했다.
충분히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그 짧은 틈에 이런 거짓말까지 만들다니.
대단한 놈이다.
“그럼… 한 번 들어가 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왕자님!”
레오윈은 알현실에 들어서려다 멈칫했다.
“…미안하지만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 그런데. 자릴 비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하오나 왕자님. 그건…….”
“생각할 게 많아서 그러는 겁니다. 이미 시간도 늦었고, 나중에 아버지께 따로 잘 말씀드릴 테니 부탁드립니다.”
“으음…….”
다른 드워프도 아니고 왕자의 부탁.
외아들인 터라 차기 국왕 자린 따 놓은 당상인 왕자의 부탁인데, 일개 경비병 따위가 거절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솔직히 졸리기도 하고. 왕자가 저렇게까지 얘기해 주면 오히려 좋을 거다.
“그럼… 전하껜 잘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마 아버지께서도 같은 마음이실 겁니다.”
“흐흠, 그런가요?”
비실거리며 웃는 경비병 드워프들은 이내 짐을 꾸리곤 숙소로 되돌아갔다.
아마 얼마 못가 들통나긴 하겠지만, 그 안에 검만 수리하면 된다.
“…지금입니다! 어서 오세요!”
경비병들이 모두 빠져나간 걸 확인하곤, 레오윈은 우리 일행을 불러들였다.
배낭에 숨어 있던 하룬이 고갤 빼꼼히 내밀며 걱정스런 낯빛을 띄웠다.
“허어… 괜찮겠느냐? 네 아비 심성에 그냥 넘어가진 않을 듯한데…….”
“후후. 그래 봤자 죽이기야 하겠어요? 제 아버지가 삼촌께 한 짓을 생각해 보면 이걸론 한참이나 부족하죠.”
“흐흐. 그렇긴 하지.”
하룬의 대답에 레오윈은 멋쩍게 미소 지었다.
“…….”
난 그런 레오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고마운 녀석이다.
알루윈 성격 상 거의 초죽음이 될 때까지 맞을지도 모르니까.
‘아무래도 그건 좀 그렇지.’
나름 빚을 진 셈인데 그렇게 넘어가기엔 뒷맛이 껄끄러웠다.
“레오윈.”
“네?”
“감사의 표시로 공간 도약 기술을 어떻게 쓰는 건지 알려 주지.”
“저, 정말입니까?”
“그래. 대신 알려 줘도 마음대로 쓰진 못할 거다.”
“그게 무슨……?”
“자, 봐라.”
난 품 안에서 빈 마핵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나중에 기술 이전할 때 예시로 보여 주려고 가져왔던 거다.
바아앙.
마핵 안에 마나를 불어 넣자 텅 비어 있던 마핵이 작은 빛을 내뿜었다.
“그걸 웨이 포인트 파편에 대 봐라.”
“어…….”
레오윈은 내 마나가 담긴 마핵을 목에 걸고 있던 파편에 가져다 댔다.
우우웅……!
그러자 조용하던 웨이 포인트 파편이 옅은 떨림과 함께 빛나기 시작했다.
공간 도약이 발동되려는 순간, 녀석의 팔을 낚아챘다.
“어때.”
“이, 이건 대체 어떻게……!”
“별거 아니다. 난 다른 사람들과 마나 성분이 조금 다르거든. 그래서 그게 가능한 거다.”
“아… 그래서 우리 드워프들이 그렇게 애를 써도…….”
“그래. 대신 이 마핵처럼 내 몸 안에서 뽑아낸 마나를 저장만 한다면, 다른 이들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지.”
“오……!”
레오윈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감탄했다.
왕의 대장간을 쓰게 해 주는데, 이 정도는 알려 줘야지.
애초에 그러려고 온 거고.
“물론 영구적인 건 아니다. 마핵의 마나가 다 소모되면 끝나는 거니까. 그러니…….”
“그걸 자이겔론드와 거래하고 싶으시단 거군요?”
“…얘기가 빨라서 좋군. 아직 가격까지 정한 건 아니다만. 1회에 몇 백 골드 정도로 하지 않을까…….”
“허억!”
원래는 1회분으로 백 골드에 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적당히 부풀렸다.
좀 세게 불렀나?
“고작 몇 백 골드로 공간 도약을 하다니! 그렇게 퍼 주셔도 되는 겁니까?”
“…응?”
몇 백 골드가 고작?
이게 자이겔론드 클라스였나?
씀씀이 자체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괜히 좀 민망해지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뭐 이미 꺼낸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을 노릇이고.
“그, 그렇지. 이게 다 왕의 대장간을 쓰게 해 줘서 그러는 거라구.”
“아… 감사합니다! 아마 이거라면 아버지께서도 별말씀 안 하시고 넘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으음.”
괜히 배알이 꼴리는 것 같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렇게 레오윈과의 구두 계약이 끝났고.
녀석이 나서 준 덕에 별 소란 없이 알현실 너머로 향할 수 있었다.
알루윈이 앉아 있던 옥좌 옆에 위치한 거대한 문.
난 조심스레 왕의 대장간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익……!
파파팟!
문이 열리자 대장간 천장 주위로 거대한 마핵등들이 빛을 터뜨렸다.
밝게 빛나는 마핵등들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밝게 빛났다.
“오…….”
하늘을 수놓은 밝은 빛들 아래.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으리으리한 도구들이 즐비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집게부터, 쇳물이 타고 흐를 것만 같은 복잡한 구조의 수로까지.
하나 같이 인간들의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장비들이었다.
개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천장에 가득한 마핵등.
아직 절반도 채 켜지지 않은 마핵등들은 보통 마핵등과는 비교가 민망 할 정도로 크고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오랜만이구만.”
배낭에서 나온 하룬의 얼굴엔 그리움이 가득했다.
드워프들에게 있어서 최고로 영광스러운 자리.
한때 그의 소유였던 대장간의 모습에 눈물이 글썽였다.
“삼촌…….”
“…감상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녀석은 괜한 큰 소릴 내며 고갤 세차게 털어 냈다.
그리곤 능숙하게 왕의 대장간에 위치한 기구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안! 검을 내어주게!”
“그래.”
녀석에게 부러진 검의 도신을 건넸다.
이제 남은 건 온전히 그의 몫이다.
난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녀석의 움직임을 감상했다.
하룬은 제일 먼저 제단처럼 생긴 뭔가에 도신을 올려놓았다.
그리곤 검의 손잡이로 쓸 재료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붉은 도신에 맞춰 불그스름한 광석을 골라낸 하룬.
이내 재료 선택을 마치자 대장간 한켠에 위치한 레버를 당겼다.
“모두 눈 조심하게! 절대로 천장을 봐선 안 되네!”
녀석의 말에 다른 이들이 모두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난 궁금하기도 해서 눈을 가늘게 뜨곤 천장을 올려다봤다.
파아앗!
이내 천장에 위치한 마핵등들이 일제히 빛을 내뿜었다.
“…으악!”
덕분에 눈뽕 제대로 맞은 난 고갤 황급히 돌렸다.
“크흐흐! 그러게 조심하래도!”
“으윽…….”
눈을 부비적거리며 하룬을 살폈다.
천장을 가득 메운 마핵등.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빛 덕에 대장간의 열기가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끄으응차!”
하룬이 다시 힘껏 레버를 돌리자 마핵등이 고갤 꺾기 시작했다.
조금씩 움직이던 빛은 점차 하나의 점으로 모여들었다.
이는 온전히 제단에 위치한 검을 향해 강렬한 열기를 쏟아부었다.
우우웅…….
한 점으로 이글거리는 빛의 열기.
흡사 태양을 마주한 것마냥 내리쬐는 열기에 도신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룬은 얼른 배낭에서 자신의 망치를 꺼내 들었다.
크래프트 오러의 붉은빛이 망치 주위로 맹렬히 소용돌이쳤다.
…카앙!
이어진 첫 번째 망치질.
망치가 광석을 내려치자, 엉겨 있던 불순물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카앙!
그다음 망치질에 광석이 점차 검 손잡이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카앙! 카앙!
망치질은 그 뒤로도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이를 보고 있는 이들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맹렬한 열기.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광석을 두드리는 하룬은 고통스럽다기보단 오히려 신이 난 듯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카앙!
어느새 완벽한 검 손잡이의 형태를 가진 광석.
붉게 달아오른 도신은 빨리 자신과 합체시켜 달라 아우성치는 것만 같았다.
치이익……!
하룬은 조심스레 도신에 손잡이를 이어다 붙였다.
그리곤 다시금 망치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카앙! 카아앙!
거칠면서도 섬세한 그의 손길에 점차 부러졌던 검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난 그런 모습을 손에 땀을 쥔 채 바라봤다.
그러면서 마음 한켠으론, 녀석이 내가 생각하는 ‘그’ 검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그저 비슷하게 생긴 에고 소드이길.
…카앙!
마침내 하룬이 마지막 망치질을 끝마쳤다.
레버를 다시 원위치시켜 놓자, 천장에 가득하던 빛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후우!”
굵은 땀방울을 훔쳐 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 하룬.
녀석은 제단 옆에 위치한 수로에 검을 흘려보냈다.
치이익!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요란을 떠는 검은, 그렇게 수로를 따라 내려와 내 앞에 나뒹굴었다.
…챙그랑!
날카로운 금속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따끈따끈한 열기가 남아 있긴 했지만, 못 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난 녀석을 집어 든 채 검을 요리조리 살펴봤다.
타오를듯 붉게 빛나는 검.
“…….”
조심스레 오러를 불어넣었다.
우우웅……!
이내 밝고 선명한 푸른빛의 오러가 터져 나왔다.
“오……!”
이를 본 프리아나가 감탄했다.
프리아나의 오러와 견주어도 모자람 없는 선명한 빛깔.
에고 소드가 가진 보정치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흠.”
하지만 검은 여전히 조용할 뿐이었다.
아직 고친 지 얼마 안 돼 정신을 못 차린 걸지도.
“크하핫! 어떠한가! 이안!”
“…완벽하군.”
“흐흐! 그럼! 당연하지! 누구 솜씬데!”
“역시 대단해요! 삼촌!”
레오윈은 마치 자기가 한 것인양 뛸 듯이 기뻐했다.
“그래도 당분간은 조심해서 쓰는 게 좋을 거다! 수리한 녀석이니 정신을 차릴 때까진 시간을 좀 줘야겠지.”
하룬은 왕의 대장간에 있는 적당한 검집 하날 집어 건넸다.
스릉!
마치 제 집인양 스르르 들어가 꽂히는 검.
“음…….”
난 탐탁치 않은 얼굴로 녀석을 허리춤에 매달았다.
일단 수리는 마무리됐으니 돌아가야…….
[…너희들은 누구지?]
“응?”
마치 누군가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설마 검이 벌써 정신을 차린 건가?
황급히 검을 다시금 살펴봤지만 조용했다.
“…방금 저만 들은 건가요?”
“…뭐?”
“저, 저도 들었습니다.”
[네놈들은 누구냐고 물었다.]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윌 살펴봤다.
게다가 지금 들리는 건 분명 전언.
검의 소유자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이들한테까지 전언을 보낼 순 없을텐데?
혹시나 검도 다시 살펴봤지만, 녀석에게서 나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광역으로 전언을 쏠 수 있는 녀석이 내가 알기론 딱 하나 더 있으니까.
난 나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시선의 끝엔, 자이겔론드의 최심부에 위치한 ‘그 녀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쿠구구구……!
그 말을 끝으로, 자이겔론드 전역을 뒤흔드는 듯한 지진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