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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68화 (168/222)

168화

“공간 도약 기술이라니… 그게 진짜 실존하는 건가요?”

“당연하지.”

그거 한 방이면 반나절이면 자이겔론드까지 갈 수 있다.

그럼 그게 어디서 사용 가능하냐가 또 문젠데.

다행히 그건 내 영지에서도 가능했다.

정확히는 엔델로 광산.

과거 ‘고대인의 영약’을 얻을 수 있었던 광산의 최하층.

고대인의 보고에서 가능했다.

보고 자체는 다 무너져 내리긴 했지만, 공간 도약로는 아직 멀쩡할 거다.

그건 던전 안에 있는게 아니라 용맥에 설치된 거니까.

그간 위험 부담도 크고 해서 굳이 쓸 생각은 없었다.

‘뭐랄까… 가성비가 안 나온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으니 셈을 다시해야 한다.

난 반드시 자이겔론드에 있는 왕의 대장간을 써야 한다.

다소 위험 부담을 감수한다 하더라도.

“역시 대단하세요! 백작님! 전 그냥 전설 속 이야기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이스바르트는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채로 날 우러러봤다.

이런 여자가 영겁의 기사단이 가진 책사, 뱀의 머리 볼턴이었다니.

아마 지금 시점쯤이 딱 이스바르트가 흑화 할 시점일 거다.

약혼자를 살해당하고, 이단으로 몰려 화형까지 당했다가, 운 좋게 크로드에 의해 살아나 연합을 향한 복수심만이 남은 복수귀.

뱀의 머리 볼턴.

“…….”

난 이스바르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원작과 줄거리가 바뀐 이후로 인생이 변한 이들도 많았다.

아마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 녀석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그 약혼자랑은 연락하고 있으려나?’

언뜻 지나가면서 언급된 내용에 따르면 회계 장부 다루는 일을 하다가 만났다고 그랬는데.

그럼 지금은 인연이 없으려나?

나 떄문에 괜히 천생연분이랑 헤어지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엇… 가, 갑자기 왜 그런 눈빛으로…….”

녀석은 나랑 눈 마주치는 건 껄끄러운 건지 시선을 회피했다.

“음. 별거 아니다.”

“네엣…….”

녀석의 두 뺨이 붉게 상기됐다.

맨날 일만 해서 그런지 남자에 면역이 없는 건가?

고작 눈 좀 마주쳤다고 저렇게 되다니.

‘뭐. 괜찮겠지.’

알아서 잘 할 거다. 똑똑한 여자니까.

녀석 덕분에 엔델로 광산 수입은 몰라보게 상승했다.

체계적으로 광물을 캐고 새로운 광맥까지 찾아낸 터라 왕국에서도 손에 꼽는 생산량을 자랑했으니까.

마음 같아선 계속 내 밑에서 일해 줬으면…….

‘…아니지.’

여리여리한 여자 몸으로 광산 관리 일을 하는 건 꽤나 고된 일이다.

나중에라도 다른 일이 하고 싶다면 보내 줘야겠지.

일단 공간 도약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먼저 확인해 봐야 했다.

나와 이스바르트는 엔델로 광산의 최하층으로 향하는 승강기에 탑승했다.

쿠르르…….

돈이 꽤 나오자 이런것까지 설치했다.

“…….”

이스바르트는 승강기에 타자 몸을 베베 꼬았다.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괜히 엘리베이터 타면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는.

때문에 괜히 왜 그러냐고 묻지는 않았다.

“…요새 일은 할 만한가?”

“아… 네! 이게 다 백작님 덕분이에요.”

“후후.”

그러고 보니 이스바르트 녀석.

지난번 고대인의 보고에서 마셸라의 반지를 줬었다.

손에 잘 끼고 있는 걸 보니 제법 쓸 만하긴 했나 보다.

마셸라의 반지.

프리아나에게 준 이시스의 반지가 실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마셸라의 반지도 제대로 된 이름이 있다.

반지에 박힌 보석.

치유의 암석.

덕분에 이스바르트의 얼굴에 나 있던 흉터도 다 사라진 뒤였다.

그런데도 녀석은 얼굴을 반쯤 가린 반가면을 여전히 쓴 상태였다.

왜 굳이 저걸 아직까지 쓰고 있나 싶긴 하지만, 저걸 쓰고 있는 덕에 묘한 카리스마가 풍기는 것 같기도 했다.

거친 광부들을 휘어잡으려면 필요한 거겠지.

“…가면은 안 답답한가?”

“네? 아앗… 버, 벗을까요?”

“뭐. 상관없긴 하다만.”

“헤헤… 그럼 쓰고 있을게요. 이건… 백작님이 주신 거니까요.”

“어… 그랬지.”

베네르 백작 녀석이 벽에 걸어 놨던 상아빛 가면.

적당히 반쯤 잘라서 줬던 거 같은데.

뭘 그런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고마워하나.

쿠르르……!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다 보니 어느새 승강기가 엔델로 광산 최하층에 도착했다.

최하층은 용혈이 날뛰는 곳이라 광부들의 출입이 제한됐다.

광맥이 있어도 괜히 용혈을 건드렸다간 그 즉시 터져 죽어 버릴 테니까.

때문에 엔델로 광산 최하층은 지난번 들렀을 떄와 비슷한 상태 그대로였다.

부서진 돌덩이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고대인의 보고가 있었던 자리엔 무너져 내리며 쌓인 돌덩이들만이 가득했다.

보고 자체는 아마 그대로 땅으로 꺼져 용혈 틈으로 빨려 들어갔을 거다.

“오우.”

이걸 다 언제 치우나.

“꼬물이를 데리고 올 걸 그랬나요?”

“으음… 아니다.”

여길 아지트로 개조하려는 게 아니다.

공간 도약로의 이정표가 되는 웨이 포인트를 찾으려는 거지.

“흡.”

두 눈을 부릅 뜨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지난번 프리아나가 그랬던 것처럼 두 눈 주위로 힘줄이 불룩 솟아 나왔다.

당시 프리아나가 볼 수 있었던 풍경.

바닥으로 용솟음치는 용혈이 눈에 들어왔다.

그 상태로 무너진 바위 쪽을 살피자, 황금 빛깔로 용혈이 모여든 한 지점이 나타났다.

콰르르…….

마법을 사용하자 바위들이 잘게 부스러지며 길을 내었다.

괜히 용혈을 건드렸다간 큰일이기에 세심한 조정을 하면서 길을 튼 결과.

용혈이 모여든 자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긴…….”

이스바르트는 마핵등으로 어두운 곳을 비췄다.

그러자 네모반듯한 석판 하나가 무너진 잔해 틈에서 용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 너덧 정도는 올라갈 수 있을 법한 큼직한 크기.

회색 빛깔의 석판은 네모반듯한 것만 빼면 그저 평범한 돌판 같았다.

룬 문양이 새겨져 있지도 않고, 마나가 느껴지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난 석판을 발견하자 싱긋 미소 지으며 쾌재를 불렀다.

“찾았다.”

“이게 뭔가요?”

“뭐긴. 공간 도약 기술의 원천이지.”

“…네?”

이스바르트는 석판을 요리조리 살펴봤다.

마핵등으로 불도 비춰 보고 주머니에서 마핵도 하나 꺼내 석판에 가져다 대기까지 했다.

하지만 석판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저 가만히 회색빛깔만 띠고 있을 뿐이었다.

이스바르트는 영문 모르겠단 얼굴로 고갤 갸웃했다.

“이게… 공간 도약 기술의 원천이라구요?”

“그래.”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지금은 사라진 기술.

그리고 드워프들이 아무리 되살려 보려 애썼지만 살릴 수 없던 기술.

그 이유는 단순했다.

찹.

난 석판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곤 단전에서 끌어올린 마나를 불어넣었다.

…우우웅!

그러자 요란한 소릴 내며 진동하기 시작한 석판.

동시에 석판 위로 룬 문양도 아니고, 대륙 어디에서도 쓰지 않는 문자가 떠올랐다.

“허억……!”

이를 본 이스바르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녀석이 놀라는 건 일단 내버려두고.

석판이 제대로 작동하는 걸 확인한 난, 서둘러 석판에 주입했던 마나를 거둬들였다.

“잘 되는군.”

“이, 이게 대체 무슨……?”

“웨이 포인트라는 거다. 이게 설치된 지역엔 공간 도약을 할 수 있지.”

“허억…….”

이스바르트는 여전히 영문 모르겠단 얼굴이었지만.

‘다행이군.’

혹시나 엔델로 광산 지하에 웨이 포인트가 없었더라면, 따로 찾으러 고생 좀 했을 거다.

웨이 포인트.

고대인의 마나를 통해서만 활성화 가능한 기술.

현대 인류에겐 사장된 기술이지만, 고대인들에겐 스마트폰마냥 흔히들 쓰는 기술이었다.

엔델로 광산 지하에 뭍혀 있던 고대인의 보고는.

사실 멸망한 고대인들이 준비해 놓은 초심자 전용 아이템 보관함 같은 거다.

자기네들의 멸종을 예상한 고대인들이 만든 보험.

여기 말고도 이런 보험은 온 대륙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들 사이를 이을 공간 도약로 쯤은 만들어 놨을 터.

지금은 웨이 포인트 대부분이 소실됐겠지만, 아직 남아 있는 곳도 많을 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이겔론드에 위치한 웨이 포인트.

자이겔론드 광산 최심부에 마련해 둔 또 다른 보험.

거긴 여기처럼 초심자를 위한 세트 보관함 같은 게 아니긴 하지만.

“흠…….”

거기 있을 녀석을 떠올려 보니 내심 살짝 쫄리긴 했다.

녀석은 꽤나 성장한 주인공 일행마저 고전케 한 괴물이니까.

녀석의 특성상.

공간 도약술를 쓰면 쓸수록 녀석의 봉인이 풀릴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지금껏 공간 도약술 쓰길 꺼려 했던 거나.

하지만 어쩌겠나.

급한 건 난데.

그 정도 리스크 감수하는 게 싫으면 1년 동안 자이겔론드에서 배송 오는 걸 기다려야지.

‘그건 안 되지.’

어차피 언젠간 상대해야 할 놈이다.

드워프 녀석들한테 공간 도약 기술을 전수해 주려면.

“이게 정말… 공간 도약 기술을 가능케 한다는 건가요?”

“그래.”

“호오…….”

처음엔 놀라기 급급한 이스바르트였지만, 이내 그 가치를 알아차리곤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딘가 맹해 보이는 눈빛은 녀석이 집중할 때만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맹한 눈빛을 내보이던 녀석은, 곧 셈을 끝냈다.

“…이거. 굉장히 귀한 값어칠 하겠군요.”

“그렇지.”

“아까 얘길 듣기론 이 기술을 자이겔론드의 드워프들한테 넘겨줄 수도 있다셨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벌써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이스바르트.

물류는 상업의 기반이 되는 일이다.

그것도 다른 물류가 아닌, 자이겔론드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물류 라인.

그걸 고작 검 수리 한 번 하는 걸로 넘겨주는 건 수지가 맞지 않았다.

“물론 그냥 넘겨주면 우리 쪽이 손해지.”

난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입가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이스바르트가 또다시 고갤 갸웃했다.

“그럼…….”

“한 번 마나를 흘려 넣어 봐라. 이스바르트.”

“넵.”

찹.

녀석은 석판에 손을 얹고 눈을 지긋이 감았다.

마법 랭크가 낮긴 해도 마나를 흘려 넣는 것 정도는 이스바르트도 가능했다.

“…….”

하지만 석판은 내가 했을 때완 달리 미동도 없었다.

“이, 이게 왜 안 되죠?”

“그야 이건 나만 가능하니까. 이유는 얘기하면 기니까 비밀이다.”

굳이 따지자면 단전이 있는 녀석들만 가능한 거지만.

자이겔론드에 그런 녀석은 없다.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마나의 결.

거의 비슷한 성분이었지만, 미세하게 다른 마나의 결 차이가 이러한 결과를 내보였다.

“그럼… 설마……?”

이스바르트는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만 가능하다면서 기술을 이전해 주겠다.

그건 사기다.

하지만 드워프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건 좋지 못한 생각이다.

밴댕이 소갈딱지도 울고 갈 만한 놈들이라 자기네들한테 사기를 쳤다간 지옥 끝까지 찾아가는 종족들이니까.

하지만 괜찮다.

이번만큼은 뒤통수를 치려는 게 아니다.

새로운 거래 자원을 만들겠다는 거지.

“대신 내 마나를 담은 마핵이 있다면 똑같이 사용 가능할 거다. 그럼…….”

“…아!”

역시 이해가 빨라서 좋다.

난 단전에서 끌어올린 마나를 빈 마핵에 담아 팔 계획이다.

“아마… 한 번 쓰는 데 100골드 정도? 그만하면 어떨까 싶다만.”

“으음… 그 부분에 관해선 제가 좀 더 계산해 볼게요!”

“후후. 그래.”

드워프 놈들 입장에선 배알이 뒤틀리겠지만, 이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기술이었다.

난 돈도 벌고, 녀석들은 공간 도약 기술을 쓸 수 있고.

이런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나.

* * *

“짐은 다 챙겼나?”

“네!”

자이겔론드로 향하는 공간 도약.

이번 여정엔 디아는 놓고 가기로 했다.

“백작님…….”

디아는 뭔가 섭섭한 듯 입을 비죽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 일에 녀석을 데려가는 건 좀 꺼려졌다.

아무래도 확인하려는 게 있다 보니.

대신 녀석에겐 다른 임무를 줬다.

“다 널 위해 그러는 거니 섭섭해하진 말라구. 그리고 내가 시킨 건 벌써 잊었나?”

“아, 아닙니다!”

“갔다 와서 바로 확인할 거니까 농땡이 피울 생각 말라고.”

“네엣!”

군기 바짝 들어간 대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끄응… 이,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럼.”

“으으…….”

허리 아래쪽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큼지막한 배낭 안.

그 안에서 몸을 우겨 넣은 하룬이 낑낑거리고 있었다.

알루윈 성격 상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망치를 잡아 줄 것 같지는 않았고.

왕의 대장간을 쓰려면 하룬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하룬은 알루윈에게 있어 가장 제거해야 할 대상.

때문에 이렇게 배낭 안에 넣어 가기로 했다.

펑퍼짐한 몸이긴 했지만, 키가 작아서 그런지 그렇게 무겁진 않았다.

‘내가 들 것도 아니고.’

“무, 무겁진 않은가?”

“괜찮습니다! 하핫!”

프리아나는 하룬을 들쳐 업은 채 크게 웃었다.

나름 수련의 일종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자.”

준비가 다 끝난 걸 확인하자 석판 위에 손을 얹었다.

찹.

우우웅……!

“오오……!”

밝게 빛나는 석판을 본 이들의 눈빛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석판 위로 글자들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정확히 무슨 글인진 모르겠지만, 머릿속으로 그 내용이 주입되는 것만 같았다.

난 마음속으로 원하는 지역을 읊었다.

‘자이겔론드.’

…파앗!

그러자 이내 밝은 빛이 터져 나오며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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