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이게 무슨……?”
중요한 얘길 하려던 찰나.
별안간 들려온 소음에 잠시 말이 끊겼다.
굉음과 함께 느껴진 묵직한 진동음을 보면, 분명 보통 일은 아닌 듯했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저도요!”
디아와 프리아나가 쏜살같이 바깥을 향해 뛰쳐나갔다.
“어엇…….”
덕분에 디아한테 해 주려던 말도 하지 못하게 됐다.
일단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긴 해야 했던 터라 나도 녀석들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교황청에서 우리 일행들에게 내준 숙소는 2층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은 마침 외부인들의 방문도 적었던 터라 우리들 말곤 숙소에 머물고 있던 이들은 없었다.
다만 교황청 2층은 주로 성서를 연구하고, 신성 랭크에 관해 토론을 벌이는 공간.
고갤 빼꼼히 내밀어 보자 어리둥절한 낯빛의 신관들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이죠?”
“저,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꺄아악!”
상황 파악에 한참이던 그때,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 건 1층 쪽이었다.
“어서 가 보죠!”
“으음. 그래.”
허둥지둥거리는 다른 이들과 달리, 난 조금은 시큰둥한 반응을 한 채 1층으로 달려갔다.
아직도 좌판이 한가득 펼쳐져 있는 교황청 1층.
그곳에 시선을 사로잡는 뭔가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저, 저건……?”
프리아나는 녀석들을 보곤 허리춤의 검집에 손을 얹었다.
난 그런 그를 향해 손을 들며 제지했다.
“아서라. 저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편이라구.”
“…네?”
프리아나는 질색한 얼굴로 녀석들에게 다시 고갤 돌렸다.
팔방으로 퍼진 깃털.
마치 천사들의 날개를 뜯어 내 한곳에 뭉쳐다 놓은 흉측한 외관은 처음 보는 이라면 공포심이 절로 생길 것 같은 생김새였다.
중간중간에 소름 끼치게 생긴 눈알까지 박혀선, 그 가운데 무뚝뚝한 표정의 얼굴 하나가 주윌 둘러보고 있었다.
“저게… 우리 편이라구요?”
“그래.”
프리아나는 아직까지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듯 검집에 얹은 손을 떼지 못했다.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긴 한데, 괜히 검 뽑았다가 적으로 인식되면 안 되니까 조심하라구.”
“아앗…….”
그제야 프리아나는 억지로나마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저게 뭐죠?”
“뭐긴. 천사지.”
“…네?”
“제3형 치천사(熾天使)다. 교황청의 수호를 맡고 있는 녀석들이지.”
“그런…….”
지금껏 아름다운 외관의 천사 이야기만 들어왔던 터라 프리아나는 영 마음이 안 가는 듯한 눈치다.
그럼 뭐 어쩌겠나.
진짜 천사 맞는데.
그나저나 제3형 치천사가 나온 걸 보면 진짜 무슨 일이 난 거 같긴 한데.
설마 드래곤 슬레이어 그 녀석이……?
“이, 이게 무슨……!”
치천사의 모습은 처음 보는지 1층에서 메르를 팔던 신도 하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덕분에 치천사의 경계 대상이 된 녀석.
1층을 배회하던 치천사 하나가 신도에게 다가갔다.
“주, 주여…….”
[두려워 말라.]
“히익……!”
파앗!
중앙에 위치한 얼굴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눈을 가려라. 다들.”
“…네!”
내 말에 같이 달려 나온 셋은 황급히 눈을 가렸다.
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로 치천사의 스킬을 감상했다.
그닥 몸에 좋은 건 아니지만, 왠만해선 구경하기 힘든 스킬이니까.
코 앞에서 빛을 마주한 신도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
그리곤 이내 바람 빠진 풍선마냥 풀썩 주저앉았다.
치천사들이 쓰는 정신 제압 스킬에 그대로 혼이 빠져나가 버린 거다.
뭐 생명에야 지장은 없겠다만…….
‘다시 깨어나려면 한 달은 걸리겠군.’
일반인들이 감당하기엔 좀 버거운 스킬이다.
아마 나나 프리아나도 저거에 맞으면 반나절은 정신 못 차릴 거다.
시끌시끌했던 교황청 1층의 소란이 어느새 조용해졌다.
치천사를 아는 이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올리기 바빴고, 그러지 못한 이들은 치천사들의 빛 세례에 기절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소란의 원인이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지하인가.’
뭐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진짜 교황청의 연옥에 갇힌 그 녀석이 깨어난 거라면…….
…쿠웅!
잠잠해진 1층 주위로 다시 한번 큰 소음이 일었다.
…쿠웅!
그리고 한 번 더.
…쩍!
두 번째 소음이 일었을 땐, 1층 중앙에 거대한 균열이 갈라졌다.
어째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그리고 갈라진 균열 틈으로 마지막 소음이 터져 나오던 순간.
…콰앙!
어렵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바닥이 화산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건물 잔해가 어지럽게 흩날리고 뿌연 먼지 구름이 시야를 가렸다.
…텅!
먼지 사이로 묵직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이내 먼지가 가라 앉자 일곱 개의 가시가 돋아난 구리 투구가 바닥을 볼썽 사납게 나뒹굴고 있었다.
이단 심문관들의 우두머리, 심문관장의 머리통이었다.
이미 구리 가면과 일체화한 그의 머리는 가면 째로 몸과 분리된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숨이 끊어진 건 당연한 듯했다.
‘난리 났군.’
소설 속 드래곤 슬레이어가 풀려났을 때와 똑같았다.
하필이면 내가 왔을 때 이런 일이…….
[…….]
동동 떠다니던 치천사들의 무뚝뚝한 얼굴.
이는 심문관장의 죽음을 확인하자마자 매섭게 일그러졌다.
1층을 배회하던 치천사들이 한순간에 바닥에 난 균열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먼지가 가라앉자, 연옥에 숨겨져 있던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석푸석한 백발을 늘어뜨린 채, 온몸엔 상처가 가득한 거친 피부.
잔주름 가득한 얼굴 가운데엔 공허한 눈빛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울 키르엔.
한때 신성 왕국의 기사단장까지 오른 첩자.
그의 등장에 주변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그의 얼굴을 알아서가 아니다.
애초에 대전쟁 당시 인물인 터라 잊혀진 지 수십 년은 지난 뒤였다.
그가 뚫고 나온 건 이단 심문관들이 득실대는 교황청 지하.
거길 모조리 뚫고 왔다는 건…….
적어도 뼛속까지 이단 그 자체란 소리였으니까.
“…….”
키르엔은 공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경악스런 낯빛의 신도들과 매섭게 일그러진 얼굴의 치천사들이 그와 눈빛이 교차했다.
“이……! 불경한 놈이……!”
신도 하나가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걸 시작으로, 주변 치천사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파아아앗!
치천사들의 얼굴이 다시금 환하게 빛났다.
동시에 겹쳐진 수십 개의 광채.
이는 모두 한 남자에게로 향해 있었다.
과연 치천사들로 저 남잘 막을 수 있을까?
‘충분히 막지.’
내가 괜히 호들갑 안 떠는 게 아니다.
이미 치천사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건 확인했다.
소설에서도 라크레시아조차 함부로 건들지 못했던 장소.
교황청.
괜히 그토록 강한 놈조차 교황청을 직접 건드리는 걸 피한 게 아니다.
교황청 내에서 만큼은 그 누구도 함부로 나댈 수 없으니까.
‘오베론이면 가능하겠지만.’
오베론이라면 아마 끝까지 싸운다 가정할 때, 녀석이 이길 거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 시점에서 라크레시아의 힘은 오베론보다 한 수 아래.
아무리 녀석이라 해도 교황청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럼 그런 녀석을 따르는 드래곤 슬레이어라면?
‘당연히 쨉도 안 되지.’
“으윽…….”
순식간에 쏟아진 빛 무리에 키르엔이 고통스러운 듯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일반 신도들과는 달리 정신은 잃지 않은 채 머리통을 부여잡고 부들거렸다.
그가 오베론이 만든 최초의 실험체긴 해도, 정신 공격엔 얄짤 없었다.
오히려 과거 기사단장의 자리에 오른 그가 아니었더라면, 금세 삶의 의지를 잃고 소멸했을 거다.
애초에 지금까지 연옥에서 형체를 유지한 게 대단한 거다.
카잔 황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직까지도 삶의 의지를 놓치 않고 버틴 놈이니까.
그럼.
이 싸움을 이렇게 지켜만 보고 있어도 되는 걸까?
‘하울 키르엔이라.’
소설에서 비중 자체는 꽤나 큰 녀석이다.
대전쟁 이전 과거 회상 씬에 주로 나오던 녀석은 대전쟁의 판도 자체를 바꿔 버린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비중에 비해 퇴장할 땐 스쳐 지나가듯 리타이어 해 버린 놈이다.
라크레시아에게 그저 시선 끄는 용도로 쓰이고 버려졌으니까.
“어, 어쩌죠? 백작님? 저희도 가세해야…….”
프리아나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을 동동 굴렀다.
“괜찮다. 괜히 나섰다가 천사들한테 적으로 인식당할 수도 있으니. 그냥 잠자코 구경이나 하자구.”
왜 하필 우리가 교황청에 들른 시점에 일이 터진 건지 석연찮은 구석이 많지만.
일단은 저 드래곤 슬레이어 녀석이 제압 당하고 생각해 볼 일이다.
‘치천사들의 싸움을 구경하게 될 줄이야.’
소설에서도 꽤나 긴박감 넘치는 장면이었다.
지금껏 몬스터나 사람끼리 싸우기만 하던 소설에서 처음으로 천사들의 싸움이 나오던 거였으니까.
마음 같아선 팝콘이라도 튀겨 놓고 보고 싶달까.
아수라장이 된 주변에 메르가 한가득이긴 했지만, 여기서 튀겨 먹었다간 미친 놈 소리 들을 게 뻔하니 일단 참았다.
…쩌억!
순간, 치천사 한 기가 벼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중앙에 머리통이 뭔가에 꿰뚫린 치천사는 그대로 먼지처럼 흩날리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빛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키르엔의 손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반짝였다.
교황청 병사들이 쓰는 투구. 거기에 달린 뾰족한 가시들이었다.
그저 서열을 확인 시키기 위한 장식에 불과했지만, 생전에 검술 랭크 7까지 도달한 그에겐 훌륭한 암기에 가까웠다.
…파각!
다시금 녀석의 손에서 발사된 가시는 또 다른 치천사의 머리통을 터뜨렸다.
치천사 자체는 전투 용이 아니다.
광채를 뿜어내 적의 전투 의지를 상실시키는 게 녀석들의 용도.
애초에 싸울 팔다리도 없이, 그저 날개로만 둥둥 떠다니는 놈들이다.
이따금 깃털을 날려 공격하기도 하지만, 정신 제압이 먹히지 않는 상대에게 깃털 공격 같은 게 먹힐 리가 없다.
그렇다면.
…바아앙!
치천사 두 구가 사라지자, 허공에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나타난 균열 틈에선, 거대한 손이 하나 나타났다.
교황청의 수호를 맡은 4번째 병사.
제4형 거천사(巨天使).
손만 둥둥 떠다니는 녀석은 그대로 히테라교의 적을 향해 움직였다.
크기에 걸맞게 힘도 어마무시한 녀석이다.
갑작스레 나타난 거대한 손은 그대로 하울 키르엔을 낚아챘다.
“커…헉……!”
거천사에 붙잡힌 녀석은 그대로 짜부라질 일만 남았다.
이러면 제5형 천사까지 나설 필요도 없을 듯했다.
‘소설에선 5형까지 버티더만.’
녀석에겐 미안한 소식이지만, 거천사에게 잡히면 그걸로 끝이다.
아무리 강한 그여도 치천사의 광채와 거천사의 힘까지 퍼붓는 마당에 살아 나갈 방법은 없으니까.
이게 모두 교황의 힘이다.
신성 랭크 7부터 가능한 신성 마법.
천사 소환.
이는 단순히 이쁘장한 마스코트용 천사만 소환하는 스킬이 아니다.
총 다섯 가지의 천사를 소환해 제 수족처럼 부리는 최상위 신성술.
지금 1층에 가득한 천사들 모두가 교황의 의식을 담은 그릇이다.
‘아까 참회의 방에서 본 천사처럼 말이지.’
그건 제1형 천사.
별다른 능력은 없다. 진짜 그냥 마스코트용이라고 해야 되나.
“끝났군.”
아무튼 싸움은 이대로 끝난 듯했다.
거천사의 악력에 짜부라진 녀석은 다시 연옥에 갇힐 거다.
소설보다 좀 싱겁게 끝났다고 해야 하나.
‘이러면 외부 지원도 필요 없겠군.’
그럼 이제 왜 하필 내가 온 타이밍에 녀석의 봉인이 풀린 건지 알아볼 차례다.
대체 왜…….
파아앗…….
“…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려던 그때.
치천사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