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교황청은 일단 한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넓어서 그렇지.
지상 뿐만 아니라 지하로도 만들어진 거대한 교황청 건물은 옛 지구의 복합 문화단지처럼 꾸며져 있었다.
“안에 사람이 꽤 많군요.”
“그렇지.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마차에서 내린 프리아나가 교황청 내부의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러다 코 앞에 높다랗게 쌓인 곡물을 보곤 고갤 갸웃했다.
“이건……?”
“메르군. 풍요의 신을 섬기는 수도원에서 기른 것 같은데.”
“…….”
자세히 보니 좌판까지 깔아 놓고 메르를 팔고 있었다.
여기 메르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좌판을 깔곤 물건을 사고 팔고 있었다.
종교 시설이라기보단 시장 바닥 느낌이 강하달까.
신기한건 좌판 주인은 팔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지 흥정이나, 호객 행위가 전혀 없었다.
이윤을 추구하려는 게 아니니 그럴 만했다.
테라리움이 외적을 막기 위해 내부에 작물을 기를 공간을 만들었다면, 교황청은 외적을 막기보단 일종의 고행을 위한 장소 같았다.
마음의 악은 풍족한 삶을 먹고 자란다는 게 히테라교의 교리 중 하나.
때문에 풍족한 삶을 최대한 경계하고 수도원 사람들이 기른 작물만으로 생활한다.
가격도 외부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이들에게 돈이란 건 어디까지나 물물교환 수단일 뿐 이윤을 남기려 하지 않았으니까.
노동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비싸게 팔수록 본질이 훼손된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렇게 나름 내부에서만 지낼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교황청 안에 위치한 수도원 사람들 중엔 1년에 한 번만 외부로 나가는 이도 있었다.
한가득 쌓인 메르를 보고 신기한 듯 계속 쳐다보고 있자 좌판 주인이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사실 겁니까?”
“아, 아뇨.”
“…네.”
좌판 주인은 짧게 대답하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곤 허릴 꼿꼿이 편 채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식은땀까지 삐질삐질 흘리는 걸 보면 꽤나 다리가 아픈가 본데.
파앗!
푸르딩딩하게 변색되어 있던 그의 발가락.
별안간 그의 발가락이 밝게 빛나더니 다시금 혈색을 되찾았다.
신성 랭크를 통한 고행과 회복의 반복.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조금 돋았다.
“아! 오셨군요! 이안 임페라 백작!”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듯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누구지?’
짤랑.
동시에 들려오는 청아한 종소리.
분명 청아한 종소리인데 뭔가 께름칙한 기운이 솔솔 풍겼다.
짤랑.
이윽고 소리의 정체가 누군지 밝혀졌다.
허리에 종 하나를 찬 채로 천천히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오는 한 남자.
창백한 낯빛에 하얀 신관의 옷을 입은 그는 날 보곤 묘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 임페라 백작령에 이단 심문관 자격으로 왔던 녀석이었다.
지금은 죽어 버린 베네르 백작.
녀석은 막판에 급발진 하는 바람에 흑마법까지 고용해 시귀폭을 만든다.
왕국 연합 법상 대역죄에 준하는 행위였기에 교황청에서 이단 심문관까지 파견됐었다.
자잘한 뒷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어찌어찌 잘 마무리됐달까.
그래도 녀석을 대할 때 묘한 께름칙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군요. 교황청 이단 심문관. 텔레인입니다.”
“이, 이단 심문관…….”
이단 심문관이란 말에 디아가 침음을 삼켰다.
“…….”
프리아나와 이슬린도 이단 심문관이 뭔 짓을 주로 하는 녀석인지 알기에 표정이 그리 밝진 못했다.
하지만 텔레인은 흔히 있는 일인 듯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했다.
“…기억 못 할 리가 있나요. 오랜만입니다. 텔레인..”
텔레인은 옅은 눈웃음과 함께 악수를 권했다.
난 떨떠름한 얼굴로 녀석의 손을 맞잡았다.
일단은 아이소테르에서 온 사신 자격이니 누군가 마중 나올 것 같긴 했다.
하지만 텔레인은 이단 심문관.
아무래도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나라도 녀석을 마주하면서도 괜히 가슴이 떨려 왔다.
‘혹시 교황청에서 날 담그려고……?’
“그런데 이단 심문관님이 왜 손님맞이 같은 걸……?”
“하핫. 아무래도 한 번 얼굴 뵀던 자가 마중 나가는 게 나을 듯싶더군요. 오랜만에 바깥 바람도 쐬고 좋지요.”
“…그렇군요.”
바깥 바람이라.
외부인들에게 허용된 공간은 1층과 2층이 전부다.
지금 보이는 것처럼 좌판을 깔고 수도원에서 기른 작물을 파는 1층.
거기에 1층 한켠엔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보살피는 고아원까지 마련되어 있다.
외부인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게 1층이다.
불쌍한 이를 구원하고, 고행을 통해 성장하고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는 이들의 모습.
겉보기엔 꽤나 괜찮은 모습이다.
그리고 2층.
2층에선 주로 성서를 연구하고, 간단한 신성 랭크에 관해 토론을 벌이기도 하는 공간이다.
여기까진 괜찮다.
문제는 지하다.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금지된 지하.
혹여 실수로 지하 1층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그 즉시 이단으로 내몰려 심판 받게 된다.
왜냐고?
그야 지하 1층부터 이단 심문관의 영역이니까.
지금도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교황청 1층의 모습관 달리, 지하에선 이단 심문이 한창이다.
블랭크로 만들어 버리고 자백제를 먹이는 건 어디까지나 잡범 대할 때 하는 방식이다.
모종의 이유로 블랭크로 만들어 버릴 순 없으면서, 자백을 얻어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뭐가 있을까.
‘고문이지.’
방금까지 이단 하날 심문하다 온 건지, 텔레인의 몸에선 옅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이단들을 심문하다 피 냄새가 몸에 밴 걸 수도 있고.
그런 녀석도 사람은 사람인지 바깥 바람 쐰다고 좋아라 하고 있었다.
“…….”
그러면서 소설 속 등장인물 하나가 떠올랐다.
아마 지금 시점이면 교황청 제일 깊은 연옥에 수감되어 있을 거다.
‘…그렇겠지?’
라크레시아가 봉인에서 깨어나고 녀석을 풀어 주긴 하는데.
풀어 줬을라나?
하지만 원래 시점보다 훨씬 일찍 라크레시아의 봉인이 풀렸다.
그럼 녀석을 풀어 주는 것도 앞당겨지려나?
“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텔레인에게 물어보면 되겠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그 녀석’을 어떻게 아는지, 그건 왜 궁금한 건지 꼬치꼬치 캐물을 테니까.
뭐 그렇다고 아이소테르의 백작이자 여왕의 약혼자를 이단 심문하진 않겠다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욘 없었다.
“…아닙니다. 그간 잘 지냈나 해서요.”
“후후… 덕분에 잘 지냈지요. 백작님 덕분에 제4위계 심문관까지 갈 수 있었으니까요.”
“제4위계요?”
제4위계면 꽤 높은 건데.
교황이 제0위계고.
제4위계면 웬만한 부수도원장급은 된다.
아무리 이단 심문관이 승진이 잘된다 해도, 텔레인의 나이엔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만한 승진이 가능했던 건 아마 나와 친분이 있다 판단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과거 망나니 공자 시절, 텔레인의 손짓 한 번이면 임페라 백작령은 그대로 날아갔을 거다.
그게 텔레인의 변심으로 막을 수 있었고, 결과만 놓고 본다면 아이소테르의 신흥 백작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이소테르의 예비 부군과 연줄이 닿은 신관이라. 제4위계까지 승진하는게 당연하달까.
“…축하드립니다.”
“후후. 감사드립니다.”
묘한 미소에 뭔가 거릴 두고 싶은 녀석이었지만, 아마 녀석은 진심으로 내게 호의를 갖고 있는 듯했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데 말입니다.”
텔레인은 별안간 검지 손가락을 추켜들곤 고갤 갸웃했다.
그런 녀석의 시선 끝엔 디아가 있었다.
“…왜, 왜 그러시죠?”
이단 심문관의 악명을 들어온 터라 디아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런 그에게 텔레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신성한 장소에서 장갑을 끼고 계시다니… 신께서 불쾌히 여기시지 않을까 걱정이군요.”
“허윽…….”
디아가 끼고 있던 미스릴 건틀렛.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텔레인은 입을 이죽였다.
그도 그럴 게 랭크 시스템은 히테라 주신이 내려 준 은총.
양손도 아닌 반쪽자리 장갑은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뭐 텔레인이야 그냥 랭크 숨길라 그러는 줄 알겠지만.’
사실 랭크를 숨기려는 게 아니라 랭크 자체가 없단 걸 숨기려는 용도였지만.
“그, 그럼…….”
디아는 어찌할 줄 모르는 채 눈칠 살폈다.
이걸 벗으면 더 큰일난다.
일반인들도 블랭크를 혐오하는데, 이단 심문관이면 오죽할까.
난 우물쭈물거리는 디아를 대신해 나섰다.
“우린 아이소테르를 대표해서 왔습니다. 교황청의 지시를 받을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요.”
강하게 나오자 텔레인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이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 지시라니요.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만.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가볍게 고갤 꾸벅인 그는 디아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
“이해해 주시겠지요?”
“…네.”
“그럼. 따라오시지요.”
살짝 험악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텔레인은 교황청 제일 높은 곳을 향해 앞장섰다.
좌판으로 가득한 1층을 지나치자 교황청에서 고아들을 보살피고 있는 고아원이 언뜻 보였다.
“여기도… 고아원이 있군요.”
“그럼요.”
디아는 전쟁 고아 출신이라 그런지 고아원을 보며 푸근한 눈빛을 보냈다.
광신도적인 모습이 있긴 해도 나름 고아원도 운영하고 좋은 곳이라 생각하고 있을 거다.
“…….”
디아가 푸근한 눈빛을 보내는 한편, 난 아이들의 입모양을 눈에 힘주고 쳐다봤다.
그러자 주변 소음 탓에 들리지 않던 꼬마들과 교사들의 대사가 대충 유추 가능했다.
‘하늘은 낮엔 왜 파랗다가 저녁엔 붉어지나요?’
‘창세신 크리오스 님이 그렇게 만드셨으니까 그런 거란다!’
‘그럼 바다는 왜 파란 건가요?’
‘그것도 크리오스 님이 그렇게 만드셨으니까 그런 거란다!’
‘그럼… 전 왜 고아…….’
“…이크.”
더 둘의 대화를 엿들으려다 고갤 홰홰 저었다.
불쌍한 이들을 구휼하는 건 좋긴 하다만, 얘들이 다 커서 뼛속까지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괴물이 되는 거다.
내가 알기론 이단 심문관 대부분이 교황청에서 운영하는 고아원 출신 사람들이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사람을 고문하고 블랭크로 만들어 버리는 광신도.
끔찍한 광경이지만 딱히 제지 할 맘은 없다. 제지할 수도 없고.
어쩌겠나. 여기 아니면 당장 굶어 죽을 아이들인데.
“에잇.”
괜한 생각으로 기분만 잡쳤다.
고갤 세차게 털어 기분 나쁜 생각을 물리쳤다.
그렇게 고아원을 지나치자 교황청 중앙에 위치한 높다란 계단이 보였다.
달팽이집마냥 빙글빙글 회전하며 올라가는 계단은 교황청의 가장 높은 곳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이 끝엔 바로 참회의 방, 교황이 있다.
일단은 사신 자격으로 온 터라 교황한테 얼굴 한 번 비추긴 해야 했다.
“…….”
문제는 참회의 방은 13층 높이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고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광신도.
덕분에 13층 높이임에도 엘리베이터 하나 없다.
‘이글렌은 여길 어떻게 올라갔데냐.’
그 가냘픈 다리로 낑낑거리며 13층까지 올라갔을 거 생각하니 괜히 가슴 한켠이 짠해졌다.
“그럼. 올라오시지요.”
텔레인은 터덜터덜 참회의 방을 향해 앞장섰다.
그런 계단 바닥엔 검붉은 자국이 참회의 방까지 이어져 있었다.
사람의 피였다.
“윽.”
나도 모르게 징그럽단 표정을 지었다가 얼른 표정을 고쳐먹었다.
“…….”
텔레인은 살짝 기분 나쁜 듯했지만 흔히 있는 일인지 조용히 앞장섰다.
바닥에 이 붉은 흔적은 고행의 흔적이다.
13층짜리 계단을 오르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지만, 그걸로 만족 못하는 놈도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따금 여길 무릎을 꿇은 채 기어 올라가는 녀석도 있다.
이 검붉은 자국은 그런 이들의 고행이 쌓여 생긴 흔적이리라.
다행히 우리들한테까지 그런 고행을 요구하진 않았다.
따라온 우리 모두 체력 하난 자신 있는 몸들이라 13층짜리 계단을 오르는건 그닥 어렵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이슬린이 좀 걱정이긴 한데.
사라락.
“…….”
슬쩍 이슬린을 보니 녀석은 마법으로 옅은 바람을 만들어 자기 등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땀 한 방울 없이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백작님도 해 드릴까요?”
“흐흐. 괜찮다.”
프리아나와 디아는 그보다 더한 수련도 하는 터라 역시 멀쩡했다.
반절쯤 오르자 텔레인이 조금 가쁜 숨을 내뱉긴 했지만, 신성 랭크의 힘인지 온몸이 밝게 빛나더니 이내 원기를 되찾았다.
그렇게 이어진 고생 끝에.
마침내 우린 참회의 방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