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엘프들의 식문화는 특이하게도 향신료 쪽으로만 발달되어 있었다.
금욕이랍시고 육식이나 디저트 같은 식문화는 없었지만, 셀리버트 전역에서 자라나는 향신료들을 통해 공허함을 달랜 거다.
마치 지점토를 꾹꾹 누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손가락 틈으로 삐져나오는 것처럼, 어딘가 이상한 방향으로 분출되고 있다 해야 하나?
덕분에 엘프 기준에서 평범한 샌드위치에 햄 하나 추가하는 것만으로 훌륭한 한 끼 식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이한 식문화를 바탕으로 둔 엘프들의 향신료.
지난 5일간 녀석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꽤나 기발한 생각이 들었다.
‘이거 적당히 섞으면 콜라 맛이 나겠는데?’
가히 지구 최고의 음료라 할 수 있는 콜라.
물론 21세기 지구의 공장에서 찍어 낸 콜라는 못 만든다.
나도 그건 먹어 본 지 수십 년은 됐지 싶다.
내가 지금 말하는 건 22세기 무렵의 콜라.
대격변과 발할라 시스템의 여파로 난장판이 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각성자들이 만든 수제 콜라다.
‘인산… 인산이 뭐냐?’
‘대충 시큼한 거 넣으면 될걸?
‘슬라임 점액 넣으면 되지 않을까?’
‘색은 맞춰야 되니까 어둠땅 슬라임으로 해 보자구.’
콜라 캔에 적힌 구성 성분을 어떻게든 따라 맞추고, 구할 수 없는 건 비슷한 맛이 나는 것들로 조합했다.
먹다 배탈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시행착오가 계속된 결과.
1년간의 고생 끝에 그나마 맛이 비슷한 콜라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원본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X카콜라와 X15콜라 간의 차이 정도랄까.
그 뒤로도 심심하면 만들어 먹던 터라 콜라 비스무리한 것을 만드는 데도 도가 텄다.
셀리버트의 엘프들이 내어오던 가시처럼 삐죽삐죽하게 뻗은 풀.
‘사슴뿔 엉겅퀴였나.’
씹으면 끈적한 점액이 나오는 두툼한 버섯.
‘그건 큰우산 버섯이라 했지.’
난생처음 보는 식재료들이었지만 시험 삼아 먹어 본 결과 콜라의 재료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마지막으로 장로들만이 겨우 먹을 수 있다던 달빛 이슬.
괴상한 색상의 혼합물에 달빛 이슬을 한 방울 떨어뜨리자 투명했던 액체가 혼합물과 반응해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거기에 설탕을 왕창 때려 넣으면.
‘완성이지.’
혹시나 해서 넣어 본 달빛 이슬이 최적의 판단이었지 싶다.
푸르딩딩한 정체 모를 혼합물보단 검은 탄산수가 더 먹음직스럽게 보였으니까.
난 장로 뒤에 선 엘프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채 수제 콜라를 한 모금 홀짝였다.
“…크!”
달달하게 퍼지는 기분 좋은 탄산.
단순히 탄산수에 설탕을 탄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끈적하게 밀려 들어오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냄새가 기분 좋게 폐부를 찔렀다.
“뭐, 뭡니까? 그건?”
프리아나가 슬쩍 귀엣말로 물었다.
디아도 난생처음 보는 음료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아.”
어젯밤 급하게 이슬린이랑 만들어 본 터라 둘에겐 미처 설명해 주지 못했다.
솔직히 시간 여유가 있었어도 둘에겐 안 알려 줬을 거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설탕이 부족했기에 둘에게까지 알려 줬다간 금세 바닥 나 버렸을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셀리버트에도 탄산수가 있긴 하단 거지.’
“그냥 심심해서 만들어 본 차다. 홍차 비슷한 거지만… 색이 검으니 흑차(黑茶)라고 해야겠군.”
“오오…….”
“나, 남는 거 있습니까.”
디아는 이슬린한테 슬쩍 물었다.
이슬린은 대답 대신 고갤 한번 살짝 가로젓고는 말았다.
어제 여유분으로 3잔 정도 만든 것 같은데.
한잔은 여기 장로 녀석 꼬드길 때 써야 되니까 어쩔 수 없지만…….
‘하난 이슬린이 먹었나?’
“…크흡.”
잠시 헛기침 하는 척 입을 가리는 이슬린.
달달한 향이 미약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자자. 일단 진정하시고. 앉아서 얘기하시지요.”
“으음…….”
웃는 얼굴에 침 뱉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체면을 중시하는 엘프들의 장로 입장에선 더더욱.
태연하게 타이르는 듯한 말투에 장로는 어쩔 수 없이 잠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문 밖에 멀뚱히 세워 둔 감시병 엘프들을 흘긋 쳐다보곤 혀를 찼다.
“…….”
다들 아무 말도 못 한 채 입을 굳게 담은 엘프들.
장로 입장에선 군기 바짝 든 모습이었겠지만 내겐 좀 달랐다.
한 모금이라도 얻어먹을 순 없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밖에 안 보였다.
“…우리 엘프들은 금욕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습니다. 그건 아십니까?”
호록.
“네.”
“…때문에 걸음걸이 하나에도 신중함을 담고, 먹는 것 하나에도 선조들을 향한 감사가 묻어나…….”
호록.
“…….”
장로의 대사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불협화음.
그럴 때마다 녀석의 미간이 좁혀졌다.
“계속하세요.”
“…묻어납니다. 혹여 그릇된 탐욕에 빠지는 걸 경계하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호록.
“…거 좀 조용히 못 드십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이건 이렇게 먹어야 맛있어서.”
“이익……!”
“아차차. 제가 그만 실례를 했군요. 여기까지 오셨으면 엄연히 제 손님일 텐데. 이슬린. 한잔 내어 드려라.”
“네, 백작님.”
이슬린은 마지막 하나 남은 수제 콜라를 장로에게 건넸다.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검은 음료에 장로는 고갤 갸웃했다.
기포를 보곤 뜨거운 차라 생각했는지 녀석은 조심스레 입술을 축였다.
“으읍!”
그리곤 못 먹을 거라도 먹은 것마냥 경기를 일으켰다.
“이, 이건 탄산수 아닙니까!”
장로는 탄산수를 아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엘프들도 탄산수를 쓰긴 했다.
대신 하급 엘프들은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아는 정도고, 여기 앞에 장로급은 돼야 탄산수를 사용하는 정도다.
물론 엘프답게 식용은 아니다.
이따금 수련이랍시고 목욕재개 할 때나 쓰는 거지.
장로 입장에선 목욕물을 마시라 내온 거나 다름없던 터라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걸 먹으라고 내어 오시다니! 저를 능멸…….”
고래고래 소리치던 녀석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음?”
뒤늦게 밀려온 수제 콜라의 달콤한 맛.
순수 탄산수만 봐 왔던 그에게 달달한 탄산수는 전혀 다른 맛이었을 거다.
이는 수백 년을 살아온 장로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호록.
시끄럽게 먹지 말라던 건 언제고 똑같이 수제 콜라를 홀짝이는 녀석.
호로록.
그리곤 연거푸 녀석의 입술이 흑차에 닿았다.
호로로록.
수제 콜라가 줄어들수록 장로의 낯빛은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수백 년간 느끼지 못했던, 억눌려 있던 쾌락.
잊혀져 있던 그의 안에 내재된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건……!”
제대로 된 표현도 없이 허겁지겁 콜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난 그런 장로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그와는 대조되게 문 밖에 선 엘프들의 표정은 절망으로 뒤덮였다.
한 모금만 나눠 줬으면 했을 거다.
미안하지만 이젠 없다. 새로 만드는 게 아니면 모를까.
…탁!
어느새 한 잔 가득 들어 있던 콜라를 비워 낸 장로.
그는 멍하니 충격 받은 얼굴로 허공을 바라봤다.
“아…….”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녀석은 다시 고갤 처박곤 빈 잔을 바라봤다.
“이건……. 이건…….”
충격 받은 듯 얼빠진 얼굴로 말을 되뇌기까지 하는 엘프 장로.
방 안에 설치된 마법등의 빛에 녀석의 눈망울이 반짝였다.
수백 살 먹은 녀석이 콜라 한 잔 먹었다고 눈물까지 글썽이나 싶겠지만.
오히려 반대다.
수백 년간 살아오면서 느껴 보지 못한 맛이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다.
그간 목욕하는 데만 써 오던 탄산수가 이런 맛을 내다니! 하면서.
“너희들…….”
장로는 엘프 감시병들을 슥 훑어봤다.
장로의 눈빛에 흠칫 놀라는 엘프들이었지만, 장로는 한 번 피식 웃곤 말았다.
“임페라 백작…님.”
“네, 장로님.”
“오늘까지 있었던 일들은… 모두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호로록!
난 내 잔에 남아 있던 콜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곤 개운한 얼굴로 싱긋 웃으며 장로에게 말했다.
“저도 없던 셈 치죠 뭐.”
“…….”
장로는 고맙다는 듯 눈빛을 보내 왔지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는 듯했다.
‘한 잔 더 없냐는 거겠지.’
장로라는 체면 상 차마 꺼낼 수 없는 이야기.
이럴 땐 이쪽에서 해 줘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필요한 것까지 슬쩍 얹는 게 바로 협상의 묘미랄까.
“이슬린. 혹시 흑차 남은 것 좀 더 있나?”
흑차.
수제 콜라라고 했다간 뭔 의민지도 모를뿐더러 직관적인 이름도 아니다.
앞으로 수제 콜라를 흑차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죄송하지만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이슬린은 금세 내 의중을 파악하곤 한 마디 덧붙였다.
“재료도 없으니 새로 만들 수도 없겠군요.”
“아…….”
나라 잃은 사람마냥 탄식을 내뱉는 엘프 장로.
난 어깰 으쓱하며 아쉬운 척했다.
“미안하지만 재료가 없다네요.”
“그, 그런…….”
“흐흑…….”
문 밖에 서 있던 엘프 감시병들 사이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그 무섭던 장로마저 단 한 잔으로 포섭한 극상의 음료.
차라리 못 봤으면 모를까 이미 두 눈으로 봐 버렸는데 얼마나 아쉬울까.
난 속으로 비릿한 미소를 띤 채 녀석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뭐 비슷한 재료라면 구할 수도 있지 싶은데.”
“그, 그게 정말입니까!”
엘프 장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크흠…….”
그리곤 부하들의 눈치가 신경 쓰이는 듯 괜히 엉덩일 훌훌 털곤 다시 앉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저흰 여기 귀.빈.실에서 나갈 수 없는 입장이라.”
“으윽…….”
조금은 날 선 발언에 장로가 침음을 흘렸다.
여긴 말이 귀빈실이지 사실 감옥이나 다름없다.
감시병들을 붙인 것뿐만 아니라, 녀석들을 먹을 걸로 포섭하기 전까진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던 게 우리였으니까.
“…필요하신 재료가 뭡니까.”
장로는 굳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녀석의 말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신기했다.
엘프 장로란 양반이 체면 다 구겨 가면서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나올 줄이야.
“뭐 별건 없고…….”
난 시큰둥한 태도로 이슬린에게 손을 까닥였다.
“여기 있습니다.”
이슬린이 자그마한 종이와 깃펜을 건넸다.
거기에 흑차를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셀리버트에 다시 못 올지도 모르니 이왕 적는 거 필요량보다 한참이나 많은 양을 적곤 장로에게 건넸다.
“이거면 되겠군요.”
“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가는 겁니까?”
“그런 맛이 아무렇게나 해서 나오는 줄 압니까? 이왕이면 뿌리째로 가져다주셨으면 좋겠군요.”
“으음… 알겠습니다.”
뿌리째로 가져가면 임페라 백작령에서도 키울 수 있을 거다.
셀리버트의 환경을 재현하려면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흑차의 재료입니다.”
“…그렇군요.”
“여기에 한 가지 재료만 더 들어가면 딱 좋을 것 같은데…….”
“한가지?”
“옛 고서에 따르면 천사의 포옹마냥 달콤한 약초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걸 넣으면 아마 이 흑차보다 훨~씬 맛있는 녀석이 나올 것도 같고…….”
“이, 이 흑차보다 더!”
장로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가지곤 귀를 기울였다.
“하… 근데 거길 함부로 드나들 수도 없고……. 이왕 대접해 드리는 거, 진~짜 맛있는 흑차를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어디든 말씀해 주십시오! 그게 대체……!”
“세계수.”
“…허억.”
장로도 거기까진 예상 못 했는지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릴 냈다.
세계수.
셀리버트 대숲림의 기원이자, 엘프들에겐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
세상의 기원과 함께 했다는 셀 수조차 없는 오랜 세월 살았다는 거목.
“듣자 하니 세계수의 근처에만 자라는 어떤 풀이 그렇게나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으윽…….”
장로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 이를 악물었다.
대전쟁 이후론 단 한 번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세계수다.
아무리 먹고 싶은 게 있다 해도 그는 장로다.
음료 한 잔에 정신이 팔려 세계수에 외지인을 들인다라.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던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녀석의 말 한 마디에 주위에 있던 이들도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중 오직 나만이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대신. 여러분들만 움직이는 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어디까지나 우호를 위한 일이니만큼 호위와 함께…….”
“아잇!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델 저희끼리 갈 생각을 하겠어요?”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로는 착잡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대에 부푼 얼굴로 내게 손을 건넸다.
난 녀석을 향해 싱긋 미소 지으며 그의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