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정말 이걸로 되는 겐가?”
“그렇대두.”
하룬은 내가 부탁한 아티팩트를 잘 만들어 놓고도 이해가 안 가는 듯했다.
“대체 이런 걸 어디에 쓰려고…….”
주먹만 한 마핵을 중심으로 양쪽에 긴 줄을 덧댄 아티팩트.
난생처음 보는 생김새에 하룬도 고갤 갸웃했다.
“이쪽이 입구고 반대쪽이 출구지?”
“그렇다네.”
“좋아.”
난 얼른 성능 시험을 위해 디아를 불렀다.
“디아!”
“으윽… 배, 백작님?”
먼 길 여행 떠날 준비에 한창이던 디아.
녀석은 내 부름에 얼른 달려왔다.
낯빛이 거무죽죽한 게 어딘가 많이 힘들어 보였다.
“몸 상태는 어떻지?”
“…괜찮습니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해서 그렇다. 나중에 광폭화가 진행되고도 멀쩡한 척 할 건가?”
“아, 아닙니다!”
“그래.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얘기하도록.”
“음… 우선 온몸이 소금물에 절여진 것마냥 무겁습니다. 속은 물 한 잔만 마셔도 토할 것 같이 더부룩하구요.”
“…그렇군.”
그런 상황에서도 용케 참았네.
광폭화는 만들어진 블랭크의 체내 특성 탓에 생기는 부작용이다.
급속도로 채워진 단전의 마나.
보통 사람이라면 적당한 선에서 끝나겠지만, 만들어진 블랭크는 다르다.
평범한 사람이 적당히 마나를 빨아먹고 끝난다면, 블랭크는 목이 떨어져 나가도 다시 붙는 재생력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마나를 빨아들인다.
‘그러다가 터지는 거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광폭화는 상황을 반전시키는 역전의 발판이 되니까.
문제는 광폭화가 끝나고 살아남을 확률이 극악이라는 거지.
“자, 그럼 이걸 한 번 매어 봐라.”
“…네!”
디아는 하룬이 만들어 준 아티팩트를 받아 들었다.
특이한 생김새다.
한쪽 줄 끝엔 허리띠 같은 게 매달려 있고, 그 반대쪽엔 벨브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철컥!
허리띠를 고정시키자 걸쇠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우우웅……!
그러자 마핵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반대편 벨브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걸…….”
난 벨브를 마차의 엔진부에 연결했다.
우우웅……!
마차는 따로 시동을 걸지 않았는데도 힘찬 엔진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오…….”
디아는 통증이 감소한 듯 미간의 잔주름이 펴졌다.
“잘 되는군.”
예상했던 대로 억지로 마나를 뽑아내니 디아의 상태가 나아졌다.
광폭화란 마나가 폭주하는 현상.
때문에 억지로 마나를 뽑아내면 광폭화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거지만.
디아의 마나를 빨아들인 마차는 평범한 마핵으로 시동을 걸었을 때보다 힘이 좋아 보였다.
“자, 넌 이대로 뒷 칸에 앉아라.”
“옙.”
디아는 벨트를 맨 채로 마차에 뒤편에 쪼그리고 앉았다.
짐짝 취급에 기분이 상할 법했지만, 일단은 통증이 줄어들어서 그런지 표정이 한층 밝아 보였다.
“짐은 이제 다 실었겠지?”
“네, 백작님.”
프리아나와 이슬린이 고갤 끄덕였다.
꽤나 긴 여행이 될 거다.
대륙 반대편에 위치한 셀리버트 대숲림까지 가야 하니까.
적어도 일주일은 꼬박 마차 타고 달려야 도착하지 싶다.
‘그러고 보니 크로드 녀석. 잘 있으려나.’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크로드 녀석은 내 말만 믿고 머나먼 셀리버트 대숲림까지 걸어갔다.
연합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요리조리 숨어서 갔으니 길은 더 험했을 거다.
그 난리를 쳐서 갔더니 개고생이었단 걸 알았을 땐, 아마 날 찢어 죽이고 싶었을 거다.
‘미안하군.’
라크레시아가 되살아난 지금.
영겁의 기사단 녀석들도 고민이 많을 거다.
그야 녀석들이 지금까지 따랐던 건 라크레시아가 아닌 ‘그 녀석’일 테니까.
‘뭐 그건 그거고.’
“좋아. 그럼…….”
주인공을 차량 연료마냥 쓰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원래 타던 마차처럼 멀쩡했다.
이번에 하룬에게 부탁해 새로 붙인 에어컨도 쌩쌩 잘 돌아가고 있었다.
후우웅!
“오… 이건 뭐죠? 백작님?”
“아. 이건 에어컨이라는 거다.”
“에어컨! 그 비싼 걸!”
프리아나는 에어컨이 뭔지 아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확히는 에어컨이란 발음은 아니었지만, 방열석과 흡열석을 적절히 엮어 만든 녀석이다.
소설 속 세상이라고 에어컨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나 소모가 너무 심해 잘 상용화가 안 되는 녀석이다.
소테라에 여왕 개인 집무실쯤은 돼야 달려 있을 정도였다.
“오……! 그런 사치스러운 아티팩트를 마차에……?”
마차를 굴리는 데만 해도 상당한 마나가 소모되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원래 쓰던 마핵으로 마차를 굴렸다간, 얼마 가지도 못하고 마차가 퍼져 버릴 거다.
하지만 지금 마차의 연료는 어중띤 마핵이 아닌 주인공 녀석이다.
가능한 마나를 소모시켜 줘야 좋은 상태인지라 에어컨까지 추가로 장착해 굴릴라 했던 거다.
“뭐 마나야 차고 넘치니까.”
쌩쌩 돌아가는 에어컨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세상 속 에어컨이 돌아가는 방식은 흡열석과 방열석의 힘이었다.
나름 대한민국의 공돌이었던 난 하룬에게 제대로 된 에어컨에 대해 설명했었다.
“그러니까 냉각수가 응축되거나 팽창하면서 생기는 열 변화를…….”
잠자코 설명을 듣던 하룬은 처음엔 신기한 듯했지만 이내 고갤 갸웃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저 방열석과 흡열석을 쓰면 될 것을!”
처음 듣는 기술은 하룬의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는 이론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설득하던 난 이내 포기하고 마차에 장착한 게 이거다.
그냥 흡열석과 방열석을 이용한 평범한 소형 에어컨.
“크흡…….”
후에 시간이 남는다면 하룬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눠 보리라.
어쩌면 일반 가정에서도 쓸 수 있는 에어컨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
그럼 한 대당 1골드에 팔면…….
“후후.”
벌써부터 고래등 기와 꿈을 꾸며 마차에 올랐다.
* * *
광폭화.
소설에서도 디아가 한 번 겪었던 이벤트다.
자이겔론드 광산 에피소드.
하룬의 동생이 싸지른 똥에 지하 깊은 곳 봉인되어 있던 고대인 하나가 깨어난다.
덕분에 자이겔론드 왕국이 쑥대밭이 된 건 물론이고, 애꿎은 주인공 일행까지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때 시작된 게 주인공의 광폭화.
의도한 건 아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무리를 하다 보니 마나가 폭주해 버린 것뿐.
어찌어찌 봉인에서 깨어난 고대인도 무찌르긴 했다.
그 덕에 반죽음 상태가 된 디아.
이대론 죽는 건가 싶었던 그때, 주인공 일행 중 하나가 혹시 모를 해결책을 제시한다.
자기 고향 사람들이라면 오래 살았으니 디아를 치료할 방법도 알고 있을 거라면서.
‘정확히 따지자면 ‘사람’은 아니지.‘
셀리버트 대숲림에서 온 현자.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소설 주인공 녀석도 넘기지 못했을 고비도 많았다.
‘지금쯤이면… 셀리버트에 있으려나?’
아직 그건 확실치 않았다.
소설의 줄거리가 워낙 크게 틀어진 탓에, 조연들의 운명도 꽤나 많이 달라졌으니까.
최악의 경우엔…….
‘예전에 쳐들어간 크로드 손에 죽었을지도.’
셀리버트 대숲림의 레인저 출신이었으니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가능한 기우였으면 좋으련만.
상념에 잠김 채 창 밖을 내다봤다.
어느새 마차는 길고 긴 여행의 끝.
셀리버트 대숲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히야…….”
“셀리버트는 다들 처음이겠군.”
프리아나와 디아는 창 밖 셀리버트 대숲림의 풍경을 보며 감탄했다.
구름을 뛰어넘을 정도로 높게 자란 세계수.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푸른 나무들은 세계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제일 작아 뵈는 나무마저 허리만 해도 양팔로 못 안을 정도니.
엘프들이 사는 땅답게 거대한 나무들로 가득했다.
“…나무가 많군요.”
“흐흐, 그렇지?”
이슬린다운 감상평이었다.
그러면서도 신기하긴 한지 곁눈질로 셀리버트의 정경을 흘긋거렸다.
“엘프라… 과연 그들이 우릴 반겨 줄까요?”
“…아마 아니겠지.”
소설 속 엘프들의 이야길 떠올린 난, 그닥 유쾌한 여행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대전쟁 당시 있었던 끔찍한 사건.
덕분에 엘프들은 왕국 연합에 참여도 안 하고 중립을 표방했다.
그 뒤로 줄곧 국경을 굳게 닫은 채 쇄국의 길을 택한 셀리버트 대숲림.
이는 왕국 연합과 제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게 아니다.
그저 인간이란 종족 자체에 대한 혐오감으로 택한 선택이다.
“…쯧.”
우리 일행을 태운 마차는 천천히 대숲림을 향해 들어섰다.
점차 주윌 둘러 싼 나무들이 높아지고 수풀이 우거졌다.
쿠르르…….
거친 흙길을 따라 흔들리기 시작한 마차.
불청객의 방문에 산짐승들이 신경질적인 울음소릴 내뱉었다.
크르르…….
아마 신경이 날카로워진 건 산짐승들뿐만이 아니리라.
나무 곳곳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엘프 레인저들에겐 제 영역이나 다름없었기에 두 눈 크게 떠도 녀석들을 찾아볼 순 없었다.
모두 숲 곳곳에 몸을 꽁꽁 숨긴 채 외부인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음…….”
“조용하군요.”
미개척지를 탐험하는 기분이다.
“서신은 보내긴 했겠지?”
“네. 아이소테르의 사신 자격으로 셀리버트 대숲림과 우호를 쌓고 싶다고…….”
파악!
“꺄앗!”
갑작스레 쏟아진 화살 한 발.
이는 마차의 코앞에 우뚝 박혔다.
화살 세례에 놀란 이슬린은 급히 핸들을 틀어 버렸다.
그 바람에 마차는 바퀴가 틀어진 채로 흙밭에 미끄러졌다.
“이 X부랄 놈들이……!”
아무리 인간을 배척하는 놈들이라 해도 이건 아니지.
얌전히 친하게 지내자고 보낸 사람들한테 선제공격을 해?
벌컥!
난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배, 백작님! 위험합니다!”
프리아나가 이를 막아 보려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난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을 빼곡히 둘러싼 나무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떤 X끼야! 당장 안 튀어나와?”
“…….”
아무런 대답 없이 조용한 숲.
난 그런 숲 사이에 숨어 있을 레인저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평화를 사랑하느니 뭐니 하더니만! 이렇게 무방비한 상대한테 화살부터 날리는 게 평화였나? 으이!”
“…그쯤하시죠.”
타닷!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내 앞으로 무언가가 낙엽처럼 떨어졌다.
한 마리의 고양이마냥 사뿐히 내려앉은 놈은 우리 일행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오뚝한 코와 큼지막한 눈.
비단처럼 부드럽게 흩날리는 금발은 단정히 묶인 채 반짝이고 있었다.
전형적인 미남자의 얼굴.
소설 속에서나 보던 엘프의 모습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몇 개 있긴 했다.
녀석의 왼쪽 눈엔 깊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거기에 뭔가 묘하게 인간미 넘치게 생긴 얼굴.
소설 속 묘사에 따르면 엘프는 아무리 잘생긴 사람이라 해도 엘프를 옆에 두면 오징어로 보이게 하는 마법이 있다고 했다.
물론 진짜 마법은 아니고 그만큼 잘생기고 이쁘단 소리였지만.
“흠.”
난 눈앞의 녀석을 슥 훑어보곤 생각했다.
어쩌면 이 녀석은. 그냥 엘프가 아닌, 반쪽짜리 엘프가 아닐까 하고.
마치 소설 속에 나오는 셀리버트 대숲림의 현자처럼.
‘에이 아니겠지.’
녀석이 진짜 그 현자라 하기엔 뭔가 다른 게 많았다.
얼굴의 흉터도 그렇고. 뭔가 성질 더러워 보이는 외모도 그렇고.
같은 거라곤 하프 엘프에 나잇대만 비슷한 것 말곤 없었다.
애초에 셀리버트 대숲림의 하프 엘프면 나잇대가 다 비슷했다.
긴가민가하는 그때.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