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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40화 (140/222)

140화

“흐.”

디아의 상태를 전해 들은 난 곧장 녀석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

침대, 탁자 하날 제외하곤 별다른 가구조차 없는 방.

내 밑으로 들어온 이후 녀석에게 마련해 준 방 그대로였다.

전쟁 고아 출신에 그간 기사 학교에서만 지내 온 터라 별다른 취미 같은 것도 없다 보니 개인 가구 같은건 하나도 없었다.

“…….”

그닥 넓지도 않은데도 공허함이 느껴지는 방.

가운데 놓인 침대에 이 소설의 주인공 녀석이 누워 있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마냥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녀석.

그 모습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원작대로라면 녀석은 지금쯤 떠돌이 용병으로 여기저기에서 연을 쌓아 나갔을 거다.

시골 마을에 나타난 몬스터도 처치해 주고, 못된 도적단 녀석들도 혼내 준다.

그러다 거지 백작령의 흑마법사 영주 얘길 듣고, 그를 처치하러 가게 됐을 거다.

하지만 지금 디아의 운명은 크게 틀어졌다.

원래라면 처치했어야 할 대상의 밑에 들어가 가신이 됐다.

“…….”

주인공을 영입한게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힘 자체만 놓고 본다면 원작의 같은 시점보다 훨씬 강해진 건 맞다.

하지만 그 덕에 최종 빌런까지 만나 버렸고.

이 지경까지 와 버렸다.

광폭화.

체내의 마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는, 어쩌면 던전화보다 심각한 대재앙.

“백작님.”

디아의 상태를 살피던 이슬린이 날 보자 고갤 꾸벅 숙였다.

“아! 임페라 백작님! 깨어나셨군요!”

그런 그녀의 옆엔 처음 보는 중년의 남자가 같이 있었다.

하얀 로브를 입고 있는 걸 보니 신관 같았다.

“허허. 어제까지만 해도 다들 상태가 심각하셨는데. 벌써 두 분께선 일어나시다니! 임페라 백작가엔 다들 강골뿐인가 보군요.”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인 것 같았다.

이런 남자랑은 얘기하다 보면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다.

난 얼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디아의 상태는 어떻지?”

“…아, 이 젊은 기사분 말씀이시군요.”

신관은 조용히 눈 감고 있는 디아의 상태를 살폈다.

맥도 잡아 보고 꼭 감고 있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빛도 비춰 봤다.

“그게… 신관 생활 20년 동안 이런 분은 처음 보는군요.”

“…어떤 점이?”

“분명 맥은 잡히질 않는데 다른 신체 활동은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 같습니다. 보통 죽은 몸이라면 빛을 비춰도 눈동자에 아무런 반응이 없어야 증상입니다만. 그런 것도 아니고. 시취는커녕 상처가 회복되기까지 하고 있으니.”

신관은 신기하다는 듯 잠든 디아를 살폈다.

그런 그의 눈빛은 디아의 건틀렛 부근에서 맴돌았다.

아마 평범한 건틀렛이었으면 한 번 벗겨 봤을 거다.

‘진작에 새 걸로 주길 잘했군.’

“…알았다. 나머진 내가 알아서 알 테니 돌아가 보도록.”

“어엇?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직 백작님이나 기사님 회복도 끝나지 않았는데….”

“…두 번 말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만.”

“아, 여부가 있겠습니다. 그럼. 혹시나 문제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 주시길.”

신관은 고갤 가볍게 까닥이곤 서둘러 자릴 빠져나갔다.

“이슬린. 발광석 남는 건 좀 있나.”

“…네, 백작님.”

마나를 빨아들이면서 빛을 토해 내는 광석.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은 광석이다.

상위 랭커가 하위 랭커들을 상대하는 지도 결투.

마나를 빨아들이는 특성 탓에 오러를 제한하는 결투에서 마나 발산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요긴히 쓰인다.

거기에 마핵등에 불을 밝히는 원료로도 쓰이니 창고에 쌓아 두고 쓰는 녀석이다.

“여기 있습니다. 백작님.”

“그래.”

이슬린이 건넨 발광석을 디아의 손에 가져다 댔다.

파앗.

“어엇.”

옅은 빛을 발하는 발광석.

이를 천천히 디아의 단전으로 가까이 했다.

그럴수록 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퍼억!

그러다 결국 발광석은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단전에 닿은 순간 폭발한 발광석.

그렇다는 건 아직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란 거다.

광폭화의 바로 전 단계에선 손끝에 닿는 것만으로도 발광석이 폭발하니까.

“으윽…….”

발광석이 마나를 약간 흡수해 준 덕분인지 디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정신이 드나?”

힘겹게 눈을 뜬 디아.

“오오! 정신이 드는 겐가!”

프리아나는 겨우 눈뜬 제자에게 반가운 듯 소리쳤다.

그런 그의 주변엔 임페라 백작령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녀석은 지금 무슨 상황인지도 이해가 안 가는 눈치다.

“배, 백작님? 이게 지금 무슨…….”

“솔직히 저도 궁금합니다. 백작님.”

목에 부목을 매단 프리아나는 날 향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적어도 며칠은 걸릴 것 같았던 상처가 곧바로 회복되지 않나.

발광석이 복부에 닿은 것만으로 폭발하질 않나.

여러모로 이해가 안 가는 게 당연했다.

“…광폭화라고 들어 봤나.”

“광폭…화? 그건 뭐죠?”

프리아나는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갤 갸웃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이슬린을 쳐다보는 게, 그녀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미안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이 대륙에 얼마 없다.

광폭화를 위해선 지금 대륙 사람들론 불가능하니까.

만들어진 블랭크.

그리고 블랭크와 거의 비슷한 몸을 가진 소수의 고대인들까지.

이 둘만 가능하다.

고대인이야 이미 수만 년 전에 멸망한데다 블랭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있지도 않다.

자연스레 전설 속 이야기 쯤으로 치부되는 게 당연했다.

“…설명해 주지.”

“네.”

“이건 어디까지나 옛 고서에서 읽은 내용이다. 시골짝 할머니 할아버지나 겨우 알 법한 전설 속 이야기나 다름없지.”

“…그렇군요.”

“그러니 알아서 걸러 듣도록. 특히.”

난 힘겹게 반쯤 누운 디아를 향해 말했다.

“넌 적당히 그런 게 있었나 보다. 하는 정도로 들어라.”

“…네. 백작님.”

디아는 용케 내가 말하는 게 뭔지 눈치채곤 굳은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녀석에게 했던 약속.

날 섬길수록 밝혀 주기로 했던 디아의 비밀.

“먼 옛날. 고대인이 산 건 알고 있겠지.”

“음… 그런 전설이 있죠. 랭크 시스템의 가호도 못 받은 불쌍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그렇군요.”

수만 년 전.

그때의 사람들에게 랭크는 없었다.

이들이 가진 힘에 제약은 없었다.

강해질 수 있는 재능과 노력만 겸비된다면, 한계도 없이 끝까지 강해질 수 있었다.

“으음… 그럼 지금보다 훨씬 좋았던 거 아닙니까? 랭크의 제약 없이 밑도 끝도 없이 강해질 수 있다는 건?”

“…….”

프리아나의 물음에 괜히 옆에 듣고 있던 디아가 눈치를 살폈다.

확실히 좋긴 했다.

소설 설정 상 고대인들 중엔 오베론 급으로 강한 이도 심심찮게 등장했으니까.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었다.

그저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만으로 대륙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는 힘.

그런 이들이 대륙에 하나도 아니고 심심찮게 등장한다면?

이미 이 대륙뿐만 아니라 별 자체가 산산조각 나고도 남았다.

“…끔찍해지겠군요.”

“그렇지.”

프리아나는 라크레시아와 한 번 마주해 본 터라 한계 없는 힘의 끔찍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래서 생긴 게 이거다.”

“이거…라면?”

난 녀석들에게 왼손을 보여 줬다.

복잡한 룬 문양이 겹쳐진 왼손.

이는 신의 축복 같은 게 아니다.

언젠가 또다시 대륙을 집어삼킬 먼치킨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

랭크 시스템.

만에 하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놈이 있다면, 이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틀.

그럼 이걸 만든 건 누굴까.

오베론?

아니다.

그도 그저 랭크 시스템에 속박된 초월자 하나일 뿐.

“그, 그런…….”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다. 프리아나. 이건 어디까지나 옛 고서에서 읽은 전설 같은 거니까.”

이미 벌써 철썩같이 믿고 당황해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그럼…….”

디아는 흔들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의 건틀렛을 바라봤다.

아직 다른 이들이 신경 쓰이는 듯 건틀렛을 벗진 못 한 채 목소리가 옅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 자릴 비워 주겠나.”

“…네.”

내 말에 디아를 제외한 다른 이들 모두 방에서 나갔다.

남은 건 디아와 나 둘뿐.

난 녀석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넌 랭크 시스템에서 자유로운 몇 없는 인물 중 하나다.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하, 하지만 어째서 저 같은 게……?”

“…그건 다음 비밀이다. 왜 하필이면 너가 랭크 시스템의 제약에서 자유로운지에 대한 건.”

“아…….”

디아는 믿기 힘들다는 듯 눈알을 데룩데룩 굴렸다.

뭐든 너무 충격적인 사실은 처음엔 부정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알게 될 거다.

내가 말한 건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걸.

‘그래도 녀석이 인조 생명체란 사실은 비밀로 해야겠지.’

아직 거기까지 디아의 비밀을 밝힐 순 없다.

그랬다간 가뜩이나 광폭화로 불안정한 상태인데 삶의 의지까지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마 그걸 말해 주는 건…….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자. 이제 들어와라.”

“네!”

내 말에 다시 나가 있던 녀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 모양이 좀 웃기기도 했지만 디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흠흠.”

난 다시 목을 한 번 가다듬곤 얘길 이어 나갔다.

“그래서 말이다. 내가 봤을 땐 이 녀석이 그 고대인의 피가 조금 흐르는 게 아닐까 싶군.”

“예?”

터무니없는 말에 다들 나와 디아를 번갈아 가며 봤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디아도 놀랐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찡긋.

난 그런 녀석에게 슬쩍 한쪽 눈을 깜빡였다.

다른 녀석들한테는 적당히 그런 걸로 해 놓자는 뜻이었다.

“…그, 그렇군요! 신기하네요. 래, 랭크도 멀쩡히 있는데 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니. 하하하…….”

“호오.”

프리아나는 내 말에 홀딱 넘어가서는 대충 둘러 댄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뭐 그렇다고 보통 사람들이랑 크게 다를건 없지만, 아마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특이한 질병 중 하나. 광폭화가 발병한 게 아닐까 싶군.”

반은 맞고 반은 거짓말인 말이었지만 프리아나는 별 의심 없이 고갤 끄덕였다.

그도 그럴게 나한테 거짓 간파 스킬을 쓸 생각은 이젠 하지도 않았으니까.

“광폭화…….”

“이 광폭화라는 건 마나가 폭주하면서 발생하는 병이다. 아마 라크레시아와의 싸움 때문에 발병했을 가능성이 크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 젊은 기사 친구는?”

“음…….”

잠시 고민하던 난 바닥에 떨어진 발광석 파편을 주웠다.

“광폭화란 마나가 계속해서 몸에 주입되는 병이다. 그럼… 이렇게 되겠지.”

“허억…….”

디아는 자잘하게 바스라진 발광석을 보곤 닭살이 돋았다.

“어, 어쩌면 좋죠?”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질병이라면 이젠 치유 할 방법도 안 알려져 있을 텐데.”

이슬린이 제법 날카로운 의문을 던졌다.

제대로 된 병명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병이니 치료법도 없는 게 당연할 테니까.

하지만 광폭화가 병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디아의 몸에 대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 둘러댄 거짓말이다.

이건 병이 아니다.

스킬에 가까운 거지.

“다행히 그건 아니다. 내가 본 ‘고서’에 의하면 치료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오오…….”

이대로 내버려두면 주인공은 이 수류탄마냥 터져 버릴 거다.

‘그건 좀 그렇지.’

끔직한 대참사를 막기 위해, 내 머릿속은 광폭화를 막기 위한 계획을 짜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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