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위드라 빈민촌의 쓰레기가 한군데 모이는 쓰레기장.
왠만한 쓰레기는 빈민들이 어떻게서든 재활용하기 마련이다.
판잣집에 보강을 한다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불쏘시개로 쓰니까.
덕분에 이곳 빈민촌의 쓰레기장엔 진짜 더 이상 쓸 수조차 없는 쓰레기들만 모였다.
자연스레 빈민들의 발걸음도 뜸한 건 덤.
위드라 빈민촌을 노린 흑마법사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이른 새벽부터 쓰레기장에 모여들었다.
“준비는 모두 끝났나?”
“네! 대장!”
“흐흐흐! 아주 좋아!”
하이베른은 간만에 벌이는 피의 축제에 잔뜩 기대한 듯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오히려 흑마법사들의 왕국에 있던 그로선 쉽게 벌일 수 없는 일이었다.
흑마법사들의 왕국이라고 반드시 흑마법사만 있는 게 아니다.
식량을 나를 이들부터 흑마법사들의 각종 수발을 들 이들까지.
놈들을 제외하면 모두 노예에 불과한 이들이었다.
모두 수명이 다 하거나 기력이 쇠하면 흑마법의 제물로 바쳐지긴 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 탓에 대규모 학살 같은 건 꿈에도 못 꿀 일이었다.
어찌 됐건 노예도 흑마법사들에겐 귀중한 자원 중 하나였으니까.
“간만에 굴라르 님께서 흡족해하시겠군!”
“그럼요! 거지 녀석들 사는 구역이야 금방 대장님의 권속으로 떨어질테고! 이대로 시장 거리까지 집어삼키기만 하면!”
“후후…. 임페라 백작이나 그 호위기사 녀석까진 무리겠지만… 아마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겠지?”
“하핫! 여부가 있겠습니까!”
놈들은 벌써부터 피비린내라도 맡은 것마냥 잔뜩 흥분해 있었다. 이미 자신들의 계략이 대부분 읽힌 건 꿈도 모르는 채.
딱 하나.
이곳 임페라 백작령 사람들도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게 있긴 했다.
[크르르…….]
“어우. 깜짝이야.”
하이베론의 부하 녀석은 쓰레기 더미에서 난 괴음에 움찔했다.
녹슨 철판과 곰팡이 핀 나무 쪼가리 틈에선, 푸른 안광이 하나 일렁이고 있었다.
“후후! 이번에 특별히! 본국에서 지원 나온 녀석이다.”
“오오… 서,설마 이 녀석. 제가 생각하는 그겁니까?”
“그래! 데스 나이트다!”
죽은 기사를 제물로 바쳐 만든 죽음의 기사 데스 나이트.
과거 기사라 불리웠던 녀석은 이제 하이베른의 명령에만 따르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히야! 역시 본국은 다르군요!”
“흐흐. 아무래도 만만찮은 상대다 보니 전하께서 특별히 보내 주신 녀석이다. 아마 여기 있는 늬들 다 합쳐도 얘한텐 상대도 안 될걸?”
“으음… 그렇군요.”
부하 녀석은 살짝 기분 상한 듯 보였지만 반박은 할 수 없었다.
그야 데스 나이트는 흑마법 랭크 6은 돼야 겨우 만들 수 있는 녀석이니까.
그마저도 동 랭크의 기사들은 데스 나이트로 만들지도 못한다.
‘애초에 이 녀석. 나도 못 이긴다구.’
[크르륵!]
“허윽! 흠흠…….”
짙푸른 안광에 녀석의 주인인 하이베른마저 살짝 오금이 저려 왔다.
본국에서 지원 나온 녀석을 소유권만 겨우 이전 받았을 뿐이니까.
이 녀석을 만든 자라면 더욱 복잡한 명령도 가능했겠지만, 하이베른은 ‘공격해라!’ 정도가 최대였다.
‘뭐 그 정도만 해도 제법 강한 녀석이니.’
하이베른은 어쩌면 임페라 백작까지도 골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던 그때.
“이거 놔요!”
느닷없이 카랑카랑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대장! 수상한 녀석이 있습니다!”
부하 흑마법사 하나가 어린 꼬맹이 하나를 붙들고 오고 있었다.
뼈만 앙상히 남은 체구 탓에 단련 한 번 안 한 흑마법사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뭔가 뒤통수가 근질근질해서 가 보니, 쓰레기장 구석에 숨어서 우릴 옅보고 있더군요!”
“수상한 녀석은 너희들이지! 쓰레기장에 숨어서 꿍시렁거리고 있던 주제에!”
“호오.”
하이베른은 당돌한 꼬맹일 보곤 미소를 지었다.
그와는 달리 다른 부하 녀석은 입술을 이죽거렸다.
“뭐 그냥 애새낀데 별거 있겠어?”
그래 봐야 어린 놈인데 뭐 대단한 게 있겠다는 말이었다.
“흐흐, 뭘 모르는군. 이놈이 진짜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라면 이렇게 깝죽거릴 수나 있겠어?”
“오호! 역시 대장이십니다!”
“허읍…….”
꼬마는 정곡을 찔린 듯 헛바람을 삼켰다.
“그리고… 무슨 상관이겠나? 이놈이 뭐든 간에 어차피 곧 죽을 텐데.”
“흐흐! 그렇죠!”
하이베른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 꼬마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꼬마의 두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끄아악!”
고통에 가득찬 비명 소리.
흑마법사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그만둬!”
보다 못한 파르뎀은 흑마법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퍼억!
하지만 이름도 모를 흑마법사 녀석한테서 쏘아진 마탄에 파르뎀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흐흐! 왠지 몇 놈 더 있을 것 같더라니!”
“으으…….”
“누, 누나…….”
파르뎀은 동생을 향해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뻗었다.
“그, 그러게 조심하라니까…….”
“흐흑! 누나… 미안해…….”
하이베른은 이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파르뎀에게 말했다.
“꼬마야. 분하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네 모습이!”
하이베른의 도발에 파르뎀은 나지막히 말했다.
“…아니.”
“후후! 그래 분… 뭐라고?”
“분할 리가 없지. 너희들을 찾은 덕분에 그분께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됐으니까!”
파르뎀은 쓰러진 채로 호출기 버튼을 마구 눌렀다.
이를 알 턱이 없는 녀석은 꼬마의 마지막 발악인 줄로만 알았다.
“푸하하! 그래! 어디 구울이 되고 나서도 똑같이 까부는지 한 번 보자고!”
하이베른은 검지 손가락을 파르뎀에게 가까이 했다.
녀석의 손가락이 파르뎀에게 닿으려는 순간.
…콰아아앙!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
“이 몸. 등장.”
“…뭡니까? 그 대사는.”
“좀 그런가? 예전부터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건데.”
“…취향이 독특하시군요.”
디아는 고갤 홰홰 젓고는 더 이상 딴지 걸지 않았다.
뒷목에 소름이 조금 돋은 것 같기도 하고.
“뭐, 뭐냐 네놈들은!”
파르뎀을 붙잡고 있던 녀석은 나와 디아의 등장에 소리쳤다.
그러면서 몸에 밴 건진 몰라도 꼬맹이 둘을 인질로 잡아 버렸다.
“남의 영지로 쳐들어와 놓고 주인 얼굴도 몰라?”
“주, 주인? …설마!”
“그래. 나야 나, 이안 이페라. 그리고 이쪽은 내가 새로 키우고 있는 기사 녀석이지.”
“…그렇습니다.”
디아는 멋쩍은 듯 뒷통수를 긁적였다.
“우, 움직이지 마라! 한 발짝이라도 움직였다간…….”
“고건 안 되지.”
파앙!
손가락을 가볍게 퉁기자 자그마한 화염구가 쏘아졌다.
겉엔 옅은 바람까지 감싸 안은 마탄은 그대로 인질을 붙잡았던 놈들의 미간에 적중했다.
“끄악!”
“어르신!”
“백작님!”
덕분에 인질은 놓치게 되자 꼬맹이 둘은 얼른 내 쪽으로 달려왔다.
“이익……! 이 멍청한 놈이 꼬맹이 하날 못 붙잡고……!”
“죄, 죄송합니다!”
부하 녀석에게 호통 치던 놈은 별안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흐흐! 바보 같은 놈! 저놈이 여기에 있다는 건 분명 영지는 텅텅 비어 있다는 소리겠지?”
“…그렇군요!”
“어서 술식을 펼쳐라! 저 뻔뻔한 낯짝이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대장 녀석의 말에 부하들은 품 속에서 자그마한 책자를 꺼내 들었다.
제대로 엮이지도 않은 책은 악마의 마법서라기엔 너무나도 볼품없어 보였다.
“…….”
마법서를 들고 주문을 외기 시작한 흑마법사들.
녀석들의 낯빛에 언뜻 승리를 확신한 미소가 드리웠지만 얼마 가지는 못했다.
“어엇……?”
“왜, 왜들 그러느냐!”
“그게… 분명 제물의 의식이 발동돼야 하는데…….”
“아. 그거?”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에 놈들의 낯빛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 * *
피시이익……!
빈민가 곳곳에 위치한 제물의 의식 발동 마법구.
제대로 된 악마의 마법서라면 필요도 없는 아티팩트였지만, 임페라 백작령에 모인 이들은 아니었다.
“으윽……!”
“모두 물러서라! 독기를 마시면 안 된다!”
“예엣!”
미리 이안의 명령을 받은 순찰대원들은 그가 일러 준 장소에서 이미 대기 중이었다.
빈민촌을 거닐며 수상한 장소들을 알려 준 빈민촌의 꼬마 아이들 덕분이었다.
챙강!
호흡기를 천으로 꽁꽁 싸맨 순찰대원들이 망치를 내려치자 마법구는 금세 박살 나고 말았다.
“수상쩍은 이는 없는지 확인해라!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제압해도 된다!”
“옛!”
* * *
“뭐 다 깨졌나 보지. 아니면 애초부터 고장난 걸 들고 왔다거나.”
“으윽…….”
“그러게 왜 남의 영지에 함부로 장난감을 들고 오나.”
“…이익! 뭣들 하는 거냐! 이번 임무의 목표가 눈앞에 있는데!”
“…와아앗!”
흑마법사들은 고함과 함께 나와 디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놈들의 낯빛엔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한다는 마음이 묻어 나왔다.
이미 내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안 된다는 건 저들도 알고 있는 거겠지.
“제가 나서겠습니다, 백작님.”
“흐흐, 좋아.”
디아는 허리춤에서 에고 소드, 황혼을 꺼내 들었다.
녀석이 마음껏 뛰놀 수 있게, 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흑마법사들은 오히려 약한 놈을 상대하는 거라 생각했는지 약간의 희망이 맴돌았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나보다 살짝 약할지 몰라도 이 녀석은 이 망할 소설의 주인공이다.
파앙!
사방에서 쏟아지는 흑마법사들의 마탄 세례.
한순간에 모든 이들에게서 쏟아진 집중 포화는 꽤나 매서웠다.
콰과과과!
놈들의 마탄이 쏟아진 자리엔 부연 흙먼지가 자욱이 일어났다.
이만한 마탄이라면 해볼 만하다 생각했는지, 놈들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하지만.
서걱!
흙먼지를 베고 나타난 디아.
녀석은 가장 가까이에 선 녀석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리곤 내지른 일격.
“끄악!”
녀석의 검격에 흑마법사들은 두부 썰리듯 양단됐다.
“마,막아라!”
맨 뒤에 대장 녀석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디아는 흑마법사들의 품을 파고든 뒤였다.
랭크엔 상성이 존재한다.
같은 종류의 랭크라면 상하 관계를 거스를 수 없지만, 거리가 좁혀진 이상 검술 랭크 보유자를 흑마법 랭크 보유자가 이길 리는 없었다.
‘뭐 랭크는 없는 녀석이지만.’
난 뒤로 물러선 채 디아의 활약을 감상했다.
과연 주인공 다운 녀석이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할 수 있는건 피하고, 못 피하는 건 검으로 막아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전투 센스가 몸에 배었달까.
이따금 놈들의 마탄을 미스릴 건틀렛을 튕겨 내 다른 녀석을 맞추기도 했다.
“이익……!”
이쯤되면 도망칠 만한데.
이번 습격의 대장 녀석은 발만 동동 구르며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허억!”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녀석은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니.”
난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녀석의 뒤를 쫓았다.
단숨에 베어 버려도 되겠지만,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졌다.
일부러 날 끌어들이는 것 같달까.
“오, 오지 마라!”
“흠…….”
“오지…….”
뭔가 좀 어색한데.
그렇게 놈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디아와 조금 떨어진 곳까지 왔다.
그러자 흑마법사 녀석은 낯빛을 바꾸곤 돌변했다.
“…흐하하! 멍청한 놈 걸려들었군!”
“…….”
그런 거였나.
이렇게 된 거 무슨 꿍꿍이인지나 한 번 보자.
“아무리 네놈이라도 죽음의 기사를 이길 순 없을 거다! 이안 임페라 백작!”
“…뭐?”
죽음의 기사라면.
설마 데스 나이트?
그건 흑마버부랭크 6부터 가능한 걸 텐데?
하지만 아무리 봐도 눈앞의 녀석이 그 정도로 강해 보이진 않았다.
“크하하! 당장 눈앞의 저놈을 죽…….”
푸각!
아니니 다를까.
쓰레기 더미에서 튀어나온 흑빛의 칼날은, 그대로 흑마법사 녀석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윽고 제 주인을 처치한 기사는.
푸른 안광을 이글거리며 쓰레기 더미에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