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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34화 (134/222)

134화

“으어억…….”

“어째 사람 사는 데면 다 똑같냐.”

건들먹거리던 놈들은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예전에도 한 번 이랬던 거 같은데.

예상했던 대로 놈들은 디아가 검을 뽑을 필요도 없었다.

거지 왕초 녀석이 단검을 들고 위협하긴 했지만 디아의 미스릴 건틀렛 한 방에 산산조각 나 버린 뒤였다.

그 뒤로 일방적인 린치가 이어졌다.

그저 주먹 몇 번 휘두른 것만으로 놈들은 피떡이 되어 픽픽 쓰러지기 바빴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

디아는 어린아이들의 몰골을 보곤 다시 분노 게이지가 풀충전 됐는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사, 살려 주십쇼! 다신 까불지 않겠습니다…….”

“죽이긴 왜 죽이나? 내 귀여운 영지민들을 말이야.”

“내, 내 영지민이라심은……?”

“…설마?!”

“그래. 맞아. 나야 나. 이안 임페라.”

난 품속에서 손수건 한 장을 꺼내 살랑살랑 흔들었다.

손수건엔 이안 임페라 가문의 문양, 한 마리의 사자가 녀석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허억……!”

“그, 그렇다면…….”

“아주 돌 대가리들은 아니네. 그래. 니들은 아무 죄 없는 어린 꼬마들을 겁박한 것도 모자라, 이를 계도하려던 영주님을 급습한 놈들이지.”

“으윽…….”

놈들은 이제 살긴 글렀다 생각하는지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죄목은 뭐… 귀족 암살 미수 정도로 하면 되나? 영내 분란 야기도 있고. 다 즉결처형 받아도 할 말 없는 죄목들이군.”

“부, 부디 자비를……!”

놈들은 지금껏 신나게 까불어 놓곤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디아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역정을 냈다.

“자비는 무슨! 그러는 네놈들은 이 아이들한테 자비를 베풀기나 했어?”

옛 기억이라도 떠올랐는지 디아의 두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으으…….”

“백작님! 이런 쓰레기들은 이 자리에서 바로 치워 버려야 합니다!”

“에이. 그러면 쓰나.”

“…네?”

내 말에 디아는 제 귀를 의심했다.

난 그런 녀석의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애초에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 다 잊었나?”

“…아.”

“지금 필요한 건 흑마법사 놈들에 대한 정보다. 지금 당장은 죽여 버리기 아까운 놈들이다 이거지.”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백작님. 그만 일을 그르칠 뻔…….”

우리가 속닥이던 중이었다.

“여, 영주 어르신…….”

디아가 분노를 삭히려는 그때, 거지 왕초 패거리들한테 얻어맞던 꼬마들 중 하나가 다가왔다.

열 살이 조금 안 되어 아이는 비쩍 말라 여잔지 남잔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어쩌면 못 먹어서 그런 거지 실제 나이는 좀 더 먹었을지도.

목소린 여자아이 같긴 한데.

“…뭐지?”

설마 지금 기회에 이 건달 녀석들을 죽여 달라는 건가?

그럼 좀 골치 아파지는데……. 이런 꼬맹이가 내 복잡한 사정을 알 리도 없고.

“…부탁드립니다! 이분들을 죽이지 말아 주세요!”

“응?”

죽여 달라는 것도 아니고 죽이지 말아 달라.

“호오…….”

소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내뱉은 그녀의 목소리엔 복합적인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난 푸르딩딩한 멍을 보면 이 쓰레기들이 여자라고 봐주진 않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쓰레기들의 목숨을 대신 구걸했다.

마음 속으론 녀석들이 죽도록 미울 거다. 당장 나나 디아한테 저 망할 놈들을 치워 달라 애원하고 싶을 정도로.

만약 이들이 여기서 내 손에 죽는다면?

그럼 그걸로 끝이다.

쓰레기는 다시 새로운 쓰레기로 채워질 테니까.

그렇게 새로운 쓰레기로 이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제일 피를 보는 건 힘 없는 아이들이다.

당장 오늘 하루 끼니도 기대하기 어려운 아이들이니까.

아마 이 꼬마 애들 중 절반은 굶어 죽어 나가겠지.

차라리 그럴 바엔 이들을 살려 두는 편이 나았다.

‘조금이나마 환심도 살 수 있을 테고.’

이는 다분히 계산적인 행동이었다.

이 쓰레기 놈들이 거기까지 생각이 가능한 놈들인지는 의문이지만.

“후후. 지금 너 같은 거지 꼬맹이가 내게 반기를 드는 건가?”

“으으…….”

소녀의 앙칼진 제안에 괜히 장난을 쳐 주고 싶어졌다.

“여, 영주님께 반기를 든 죗값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걸로 노여움이 풀리신다면…….”

“…프흐흐. 재밌는 녀석이군.”

난 소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히끅!”

잔뜩 겁 먹은 녀석의 떨림이 머리에 얹은 손에서 느껴졌다.

“으으…….”

디아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놈들은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바들바들 떨며 눈치를 살폈다.

“이름이 뭐지?”

“파, 파르뎀입니다….”

“좋아, 파르뎀. 네 용기를 높이 사 이놈들은 살려 주도록 하지.”

애초에 지금 당장 죽일 생각도 없었고.

“…감사합니다. 영주님…….”

파르뎀은 눈을 꼭 감은 채 내게 고마워했다.

어린 녀석치곤 제법 영리한 녀석이다.

“감사합니다요! 나으리!”

파르뎀 덕에 목숨을 구사한 놈들은 내게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뭐든 말씀해 주십쇼! 나으리!”

파르뎀이 나서 준 덕에 일이 편하게 흘러갔다.

대뜸 수상한 자가 수상한 자가 있지는 않았나? 했으면 낌샐 눈치채곤 이것저것 요구했을 텐데.

‘뭐 그래 봐야 후두려 패면 술술 불었겠지만.’

놈들은 내가 흔치 않게 자비라도 베푼 거라 생각했는지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애썼다.

“…요 근래 내 영지에 흑마법사 놈들이 드나든다더군.”

“흐, 흑마법사!”

제아무리 깡패 새끼들이라 해도 결국엔 랭크도 보잘것없는 놈들이다.

놈들도 흑마법사들의 악명은 아는지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그래서 순찰 차 여기까지 온 건데 말이야. 어린 아이들을 겁박하는 놈들이 있길래 착각했지 뭐냐. 내 정보의 흑마법사들이 바로 네 녀석들이라고 말이야.”

“…그래 봤자 이놈들이나 흑마법사 놈들이나 그게 그거지만요.”

옆에서 지켜보던 디아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한마디 거들었다.

거지 왕초 녀석은 기겁하며 자기네들을 변호했다.

“그, 그럴 리가요! 저흰 흑마법은커녕 랭크도 보잘것없는 놈들입니다요…….”

“그래요! 대장도 엄청 뻗대긴 하지만, 무투 랭크 3밖에 안 된다구요!”

“뭐? 너 이 새끼…….”

자신들이 흑마법과는 관련 없단 걸 말하고 싶었는지 쫄따구 녀석이 괜한 말을 내뱉었다.

“아잇! 시끄러! 내가 니들 투닥거리는 거 보려고 온 줄 알아?”

따아악!

제일 가까이 엎드려 있던 녀석의 이마에 딱밤을 달렸다.

그대로 허리가 뒤로 휜 녀석은 흰자윌 까뒤집으며 정신을 잃었다.

“허억……!”

“죄송합니다!”

“흥.”

손수건으로 손을 한 번 닦곤 다시 이야길 이어 나갔다.

“그래서. 수상한 놈들이 있었으면 지금 당장 말해라.”

“그게…….”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난 지금 매우 짜증이 나 있는 상태야. 난 흑마법사라면 아주 치를 떨거든. 내 소문에 대해선 잘 알지?”

“아앗…….”

미친 왕 갈렌.

한때 흑마법으로 소테라를 악마의 제물로 바치려던 미친 왕.

녀석 때문에 피똥 싼 걸 생각해 보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아무튼 그 녀석 덕분에 난 흑마법사라면 치를 떠는 연합의 영웅쯤으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갈렌이야 네크로노미콘을 감당 못 해 스스로 반갈죽 한 거지만.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다.

신성 왕국에 도는 소문으론 창조신의 가호를 받은 내가 녀석의 몸뚱일 반으로 찢어 버렸다나 뭐라나.

‘뭐 그 소문 때문에 흑마법사들이 내 영지를 첫 타자로 고른 거지만.’

“그래서. 기억나는 건?”

“으음… 사실 요 며칠 전부터 신경 쓰이는 녀석들이기 있긴 했습니다요.”

“호오.”

거지 왕초가 쭈뼛거리며 손을 들며 얘기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자세히 얘기해 봐라.”

“실은 제가 이래 봬도 이 근방에 건달 놈들은 다 꿰고 있습니다요. 누가 어느 패거리 놈인지, 어디 구역을 맡은 놈들인지까지도 다 말입니다.”

“그래서.”

“근데 저번 주였나? 처음 보는 놈들이 위드라 시장 거리를 쏘다니더군요. 거무죽죽한 망토까지 차려입고선.”

“흠. 그냥 타지에서 놀러 온 귀족들 호위나 상단 소속 용병일 수도 있을 텐데.”

“하핫! 그럴 리가요! 저는 척 보면 압니다. 놈들의 두 눈, 그건 분명 살인을 저질러 본 자들의 눈이었습니다요. 그것도 숱하게 말이죠.”

거지 왕초는 신이 난 듯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지? 그냥 내버려뒀나?”

“그야… 타지에서 온 건달 패거리들일 거라 생각했죠. 저희 영역을 넘보러 온 타지의 건달 녀석들 말입니다. 자주 있는 일입니다요. 그럴 때마다 한 번 쾅! 붙어서 서열 정리 좀 해 주면 해결되고 그러죠.”

“흐흐! 우리 왕초가 그래도 싸움은 꽤나 하니까요!”

놈들은 자기네들 입장은 금세 까먹었는지 실실 쪼개기 시작했다.

“아하. 그래서 그런 거였군.”

“…네?”

“다른 패거리들이랑 싸우려면 힘 좀 쓰는 놈들도 모아야 하고, 연장도 챙기고 그래야겠지.”

“…….”

“그러려면 돈도 필요할 테고. 그치?”

“그, 그게…….”

“그래서 애들을 쥐 잡듯이 잡은 거야. 다른 패거리들과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에헤헤.”

따아아악!

“어억!”

“뭘 쪼개. 이 새끼야.”

거지 왕초의 이마팍에 꿀밤을 때려 넣었다.

구슬 하나가 딱 들어갈 만한 홈이 우묵하게 파였다.

‘죽었나?’

“그르륵…….”

입에 게거품을 물긴 했지만 숨은 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콱 죽어 버렸음 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히히.”

거지 왕초의 꼴사나운 모습에 어린아이들이 키득댔다.

파르뎀도 나름 속이 시원한지 작게 조소를 흘리고 있었다.

“이익…….”

그런 아이들을 향해 거지 왕초의 부하 녀석들이 눈알을 부라렸다.

“…히끅!”

아이들은 금세 겁을 먹곤 헛바람을 삼켰다.

내가 앞에 있는데도 이러네 이놈들은.

“방금 애들 째려본 거냐?”

“아, 아닙니다요! 그냥…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흠… 이젠 거짓말까지 하네. 눈을 뽑아 줄까? 아님 거짓말한 혀를 뽑아 줄까?”

“앗, 아아…….”

다시금 꼬랑질 마는 건달 녀석들.

전형적인 강자한텐 약하고 약자한텐 강한 쓰레기들이었다.

이런 놈들은 옆에서 꽉 잡고 흔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슬린에게 맡기기엔 그녀는 지금도 할 일이 태산이었다.

‘아마 이런 놈들이면… 내가 또 안 볼 때 애들을 못살게 굴겠지.’

아마 파르뎀한테도 감사한 마음은 있겠다지만…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았다.

‘흐음.’

순간 꽤나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쓰레기들을 적당히 관리하면서, 영리한 꼬맹이한테 상까지 줄 수 있는 방법.

“디아. 내가 준 호출기는 가지고 있나.”

“네. 백작님.”

디아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나무 상자를 꺼냈다.

엄지 손가락만 한 크기의 나무 상자 정 중앙엔 동그란 버튼 하나가 장착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나도 품속에서 비슷하게 생긴 녀석을 꺼내 들었다.

시험 삼아 버튼을 눌러 보자 상대방 호출기의 버튼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한 호출기였다.

“나중에 새로 하나 주지.”

“네.”

“그럼…….”

난 디아의 호출기를 파르뎀에게 건넸다.

“이, 이건…….”

“네 용기를 높이 사서 주는 선물이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가운데에 이 단추를 누르도록. 비싼 거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파르뎀은 호출기를 든 채 동그란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이, 이런 귀 한걸 왜 저 같은 것한테…….”

“왜긴? 수상한 놈들이 나타나면. 바로 알려 줘야 할 거 아냐?”

“…….”

“저기 저놈들한테 줬다간 신나서 팔아 버릴 테고. 그치?”

“그, 그럴 리가요…. 헤헤.”

넙죽 엎드려 있던 깡패 녀석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한번만 더 이빨 보이면 다 뽑아 버린다.”

“으븝…….”

“아무튼. 파르뎀이라고 했나?”

“네. 어르신…….”

“그냥 백작님이라고 불러라. 앞으로 매일 정오에 내게 그날 하루 있던 일을 보고하도록. 단추를 꾹 누르고 있으면 짧게나마 대화도 가능하니.”

난 건달패거리 녀석들이 들으라는 듯 일부러 크게 말했다.

호출기만 주면 거지 왕초 부하 녀석들이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

더불어 이 꼬맹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억제기 역할도 톡톡히 해 줄 거다.

“…네!”

파르뎀은 내 말 뜻을 이해했는지 헤실헤실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좋아.”

“으으…….”

건달패거리들은 그 모습을 착잡한 얼굴로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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