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너와 다른 사람들 간에 차이점이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디아는 프리아나가 신경 쓰이는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차이점이야 찾아보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가장 큰 건 바로 랭크 시스템이고, 그다음은 신체를 이루고 있는 구조였다.
내가 고대인의 영약으로 억지로 단전을 연 것마냥, 만들어진 블랭크도 단전을 가지고 있다.
‘고대인들처럼 말이지.’
오베론 스테이라.
그가 마법 랭크 9를 달성한 순간, 그는 첫 걸음마를 뗀 갓난아기마냥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아무런 적의도 없이 그저 인간의 한계를 돌파한 마법사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
때문에 그는 그의 한계를 알고 싶었다.
처음엔 간단한 돌멩이를 만들어 보고, 종이도 만들어 본다.
그러다 욕심은 점점 커져 스스로 마법도 만들어 보다, 그 끝에 신의 영역까지 침범한다.
인간의 창조.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디아 제니스다.
처음엔 실패도 많이 한다.
신의 영역을 침범한 대가인지는 몰라도, 오베론이 만든 첫 번째 작품은 수 분 만에 자아가 분열돼 버리고 말았으니까.
무에서 창조된 인간은 얼마 못 가 스스로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발견한 게 바로…….
‘라크레시아 카잔.’
참으로 악취미인 녀석이다.
삶의 의지를 불어넣기 위해 오베론이 한 선택.
그것은 바로 원본을 복제하는 모조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하면 자연스레 모조품은 원본을 없애고 본인이 원본이 되고 싶을 테니까.
간단하면서도 잔인한 생각이었다.
‘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건지 도망쳐 버리긴 했지만.’
오베론은 디아를 만들곤 모습을 감춘다.
아무튼 오베론이 라크레시아 카잔을 본떠 만들어진 이 소설의 주인공 디아 제니스.
그런 그에겐 평범한 이 세상 속 사람들과 달리 랭크 시스템의 가호를 받지 못했다.
이 세상의 신이라는 작자가 만든 신의 가호이자 벗어날 수 없는 틀.
이는 오베론이 만든 생명체에겐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 결과 랭크란 한계도 없이 끝없이 강해지는 주인공스러운 생명체가 태어난 거다.
오히려 이런 틀이 정해지기도 전에 살았던, 고대인들에 가까운 몸을 가진 채로.
“…….”
소설 속 신이란 녀석들을 떠올리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건 그거고.’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던 난 고개를 홰홰 저었다.
“흠흠.”
비밀을 말해 주려다 가만히 서 있자 디아가 괜한 헛기침을 했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알려 달라는거였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자면…….”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하기 쉬울까.
나야 단전이 뭔지 알고 있었으니 상관없지만, 디아는 다르다.
자신이 가진 힘의 근원도 모르는 채 살기 바빴으니까.
누가 알려 주는 이도 없고.
“아.”
그러다 설명하기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에고 소드 황혼. 그 녀석은 잘 쓰고 있나?”
“네.”
스릉!
디아는 방금까지 신나게 휘둘렀던 검, 황혼을 뽑아 들었다.
아직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인지는 몰라도, 황혼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평범한 철검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꽤나 요란하게 생긴 놈이었는데.’
황혼이란 이름에 걸맞게 저녁노을마냥 붉게 타오르는 도신.
거기에 검 손잡이도 꽤나 화려하게 묘사되던 놈이었다.
“어이. 다 아는 사이끼리 이러지 말고 슬슬 나오시지.”
[…흥!]
순간 검이 밝게 빛나며 황혼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머리칼을 양 갈래로 묶은 꼬마 소녀.
녀석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디아의 뒤로 숨었다.
자세가 익숙한 게 꽤나 사이가 좋아 보였다.
황혼이 지금껏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철검인 척하긴 했지만, 그래도 수년간 같이 생활해 온 검이라 금방 친해진 듯했다.
“야, 야… 왜 숨고 그래?”
[흥! 난 저놈이 싫어. 기분 나쁜 맛이 난단 말이야!]
“후후.”
황혼은 내게 손가락질하며 짜증을 냈다.
기분 나쁜 맛이라.
에고 소드인 녀석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 기분 나쁜 맛이란 게 뭐지?”
“배, 백작님…….”
디아는 내가 황혼이랑 말싸움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는지 둘 사이에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싸우려는 게 아니다. 그저 궁금해서 그러는 거지. 에고 소드님이 맛본 오러의 맛이란 게 어떤 건지 말이야.”
사람이 밥을 먹듯, 에고 소드는 기사의 오러를 먹는다.
뭐 굳이 오러를 안 먹는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때문에 에고 소드와 기사 간에 상성이 존재하기도 했다.
붉은 오러를 좋아하는 에고 소드가 있는 반면, 푸른 오러를 좋아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나름 기호가 있다고 해야 하나.
“…그렇습니까?”
[…흥.]
디아의 바짓가랑일 붙잡은 황혼의 두 볼이 부풀었다.
“진짜래두?”
[…흠.]
그러다 녀석은 못 이기는 척 감상을 늘어놨다.
[네 녀석의 오러는 이상해. 너희들 입장에선 치약이랑 초콜릿을 같이 먹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겠지.]
황혼은 꽤나 신박한 예시를 들었다.
랭크와 단전을 한 몸에 보유한 자의 오러는 그런 맛이란 건가?
“우욱… 그런 끔찍한…….”
“왜? 은근 맛있을 수도 있지.”
“으음… 전 모르겠습니다.”
디아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맛인 듯 헛구역질까지 했다.
“그럼 이 녀석은 어떠냐.”
난 프리아나를 가리켰다.
프리아나는 어깰 한 번 으쓱하고 말았지만 조금은 궁금한 듯 귀를 쫑긋 세웠다.
[뭐. 평범하지. 평범한 소고기 스테이크 같은 맛이야.]
“…….”
평범하지만 소고기 스테이크 같은 맛이라.
프리아나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는 듯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얘는.”
이제 이 이야기의 목적인 디아를 가리켰다.
[으음…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구?”
황혼의 말에 디아는 고갤 갸웃했다.
수년간 함께 해 온 평가가 잘 모르겠다니.
[아니! 이상하다는 뜻은 아니고… 지금껏 맛본 적 없는 맛이랄까……. 분명 맛있긴 한데 뭔가 이상해.]
“흐음…….”
아리송한 황혼의 평가였다.
황혼이 비록 어린 꼬마애의 모습을 하고 있긴 했지만, 살아온 세월만 놓고 보면 수백 년은 산 노인네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백 년을 살아온 황혼에게도 단전에서 나오는 오러는 처음인 것이었다.
‘그야 고대인이 멸망한 건 수천 년도 더 전의 일이니까.’
황혼의 평가에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 디아.
난 그런 그에게 말했다.
“이게 너와 일반적인 사람들 간에 차이다. 오러의 종류 자체가 다르지.”
“호오! 역시 그랬군요! 무색의 오러는 저도 처음 봤던지라.”
프리아나는 고갤 주억거렸다.
“그럼… 저는 뭐죠?”
“그걸 벌써부터 알면 재미없지. 대신 네 오러의 근원이 랭크완 다르다는 건 알려 주지.”
“으음…….”
“프리아나. 잠시 자릴 비켜 주겠나.”
“아! 네!”
더 얘기했다간 디아의 비밀을 프리아나가 들을 수도 있어 그를 잠시 내보냈다.
디아와 단둘이 연무장에 남자, 한 가지 예시를 들었다.
“나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나?”
“으음… 햇빛을 쬐면서 살죠.”
“그래.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다. 온몸이 마치 나무의 입사귀가 된 것마냥, 대기에 떠다니는 마나를 흡수하고 인체의 원동력으로 삼는 거지.”
“아…….”
디아는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그럼 넌 뭘까?”
“전…….”
내 질문에 디아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녀석의 몸은 짐승 같은 거다. 물론 먹이를 안 먹는다고 굶어 죽는 건 아니지만.”
“음…….”
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는 큰 장점이다. 식물처럼 가만히 대기의 마나를 받아들이는 게 다가 아닌, 네 녀석의 의지대로 마나를 빨아들일 수 있는 거니까.”
“…그렇군요.”
이만하면 충분한 설명 같은데도 디아는 여전히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됐다. 설명보단 직접 보여 주는 편이 낫겠지.”
“넵.”
난 연무장 한가운데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숨을 쉬어 봐라.”
“네? 아까부터 계속 쉬고 있습니다만…….”
“그래. 그럼 뭐가 느껴지나?”
“흐읍…….”
디아는 내 말에 무언가 실마릴 얻은 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난 녀석의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옅든 푸른 빛깔의 마나가 디아의 코와 입을 통해 흘러 들어갔다.
이는 곧 녀석의 몸을 떠돌다 다시 바깥으로 내뱉어졌다.
“좀 더 호흡에 집중해라.”
“흡…….”
“마치 배 속에 그릇이 담겨 있다 생각하고. 이를 채워 넣는다 생각해 봐라. 그럼 이해가 갈 거다.”
“…….”
지금은 멸망한 세상.
거기서 한때 유행했던 수련 방식이었다.
대기에 짙은 마나를 느끼는 것.
이는 발할라 시스템의 촉매가 되는 힘이었다.
옛 세상의 동료들이 느끼고 함께했던 마나를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게 단전을 키우는 첫걸음마였다.
디아의 하복부에 위치한 푸른 마나의 소용돌이.
분명 녀석에게 단전은 있었다.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스스로 체득한 단전.
녀석은 그저 이 세상 속 랭크의 틀에 갇힌 사람들마냥 무작정 오러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살아온 거다.
그런 녀석이 온전한 단전의 힘을 느끼고 사용할 줄만 안다면?
“…으읍.”
얌전히 대기의 마나를 느끼던 녀석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럴수록 푸른 마나의 소용돌이는 더욱 강해졌다.
“잘 하고 있다. 계속 그 감각을 유지해라.”
“으읍…….”
소설 속 디아도 한 번 했던 수련법이다.
원작보다 시점도 훨씬 앞서고, 전승해 주는 스승도 다르긴 했지만, 소설의 주인공답게 간단한 설명과 지도만으로 녀석은 마나를 제 것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으윽……!”
디아의 호흡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어느새 자그마한 주먹만 했던 마나의 소용돌이는 디아의 배 속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해졌다.
더 이상 녀석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지는 순간.
쿠구구구……!
디아의 몸 주위로 푸른 광풍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폭발하기 직전의 풍선 같았던 그때.
따악!
“…악!”
녀석의 이마에 딱밤을 날려줬다.
덕분에 집중이 흐트러지자 디아의 체내에 소용돌이치던 마나도 한순간에 흩어졌다.
여전히 소량의 마나가 은은하게 체내에 흐르고 있긴 했지만, 마나가 폭주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으으…….”
디아는 벌겋게 달아오른 이마를 부여잡은 채로 눈물을 찔끔 흘렸다.
“뭔가 좀 감이 오나? 네 녀석의 몸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으음…….”
디아는 방금 일이 꿈만 같았는지 몸 구석구석을 들여다봤다.
여전히 사지 멀쩡히 달린 디아의 몸 그대로였다.
“방금은… 뭐였죠?”
“뭔지는 앞으로 알게 될 거다. 시간 날 때마다 오늘 있었던 걸 다시 반복해 보도록. 대신 방금처럼 폭발할 것만 같을 땐 그만 멈추도록 하고.”
“…네!”
디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훌훌 털었다.
“…뭔가 몸이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후후, 그렇고말고.”
그저 간단한 마나의 호흡법을 전수해 줬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녀석은 새로운 몸뚱일 얻은 것마냥 방방 뛰는 수준이었다.
‘솔직히 방금은… 나도 놀랐네.’
마나는 양날의 검이다.
애초에 단전의 크기를 늘리는 건, 한계에 도달한 단전에 억지로 마나를 쏟아부어 그릇의 크기를 늘리는 방식이다.
조금이라도 과한 양이 주입된다면, 이는 곧 단전이 터져 죽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수련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디아는 만들어진 블랭크다.
목이 잘려도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다시금 붙는 미친 회복력을 가진 몸뚱이.
이는 단전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억지로 단전이 찢어질 만큼의 마나를 들이부었다면, 다시 회복해 찢어진 크기만큼 단전을 늘린다.
말 그대로 한계가 없는 미친 성능의 몸이었다.
‘이러니 주인공이지.’
그래도 소설 작가가 양심은 있는지 한 가지 제약을 걸어 놨다.
발할라 시스템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과도한 단전의 급상승은 곧 폭주로 이어진다.
‘광폭화…였지.’
후에 디아도 한 번 겪는 일이긴 했지만.
그건 나중 가서 생각하자고.
“오오……!”
디아는 마나 호흡의 부작용 따윈 꿈에도 모르는 채,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방방 뛰며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