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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31화 (131/222)

131화

이름 모를 조그마한 영지의 작은 오두막.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엔 정체 모를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시커먼 두건을 쓴게 뒤가 구린 놈들인 건 분명했다.

“본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개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오……! 뭐라십니까? 그분께서는!”

“예정대로 진행하면 된다시더군.”

“크흐흐… 그래. 이 망할 이단자 놈들에게 심판을 내려 줄 수 있다니. 상상만 해도 몸이 떨리는군요!”

“흐흐! 그렇습니다!”

이단.

참으로 애매모호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창조신을 믿는 이들에겐 다른 이들이 이단이고, 다른 신을 믿는 이들에겐 창조신 신봉자가 이단이니까.

그들은 이단이라 칭하는 자들을 학살할 생각에 잔뜩 신이 났다

그런 그들의 왼쪽 손목엔 뿔 달린 검은 해골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신을 섬기고 있었다.

정확히는 신이 아닌 악마, 탐욕의 악마 굴라르를 섬기는 자들이었다.

왕국 연합법상 금지된 랭크.

여기 모인 이들 모두 흑마법 랭크를 보유한 흑마법사들이었다.

“더러운 이단 놈들! 굴라르 님의 이름으로 지옥을 보여 주지!”

“흐흐! 기대되는군요!”

삼류 악당이나 내뱉을 법한 대사.

하지만 녀석들 중엔 꽤나 끗발 있는 놈도 있었다.

여기 모인 흑마법사들의 대장은 ‘본국’에서 온 자였으니까.

흑마법사들의 왕국 라스하겐.

왕국 연합법상 흑마법사들은 즉결 처형 대상이다.

그런 이들이 왕국을 꾸렸다는 게 의아할 수도 있다.

대전쟁에서 카잔 제국이 패배한 이후.

연합은 흑마법 랭크를 대역죄에 준하는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자연스레 흑마법사들은 저마다 보유한 랭크를 숨긴 채 연합의 감시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연합의 감시에서 벗어나면서 비교적 흑마법에 대한 처우가 괜찮은 땅.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카잔 제국의 옛 영토였다.

주인도 없고 연합이 사실상 버려진 카잔 제국의 옛 영토는 흑마법사들에겐 감시를 피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땅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이고 모이던 흑마법사들은 어느새 카잔 제국의 영토 한 귀퉁이에서 독자적인 왕국을 설립할 정도로 강성해졌다.

여기 모인 흑마법사들의 우두머리, 하이베른도 이 라스하겐에서 내려온 자였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아직 대륙에 남은 흑마법사들.

그런 이들 중엔 하이베슨마냥 라스하겐을 떠나 이역만리 타지까지 온 이도 있었다.

수많은 감시망을 피해 먼 땅까지 온 이유는 그닥 깨끗하지는 않았다.

이단을 향한 무자비한 학살.

그저 죄없는 이들을 저들이 섬기는 악마를 위해 제물로 바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꽤나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었다.

“전하께서는 뭐라십니까?”

“…어떤 거 말이냐?”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라크레시아 카잔의 재림! 흑마법사들의 왕께서는 무슨 생각이신지 궁금하다구요.”

“으음…….”

하이베른은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인 듯 침음을 흘렸다.

라크레시아 카잔.

그의 등장은 어느새 대륙의 호사가들 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멸국의 황태자.

언뜻 듣기만 해도 자극적인 이야기 탓에 소문은 삽시간에 대륙 전역을 통해 알려졌다.

이는 카잔 제국의 옛 영토에 눌러 앉은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카잔 제국의 땅에 황제를 섬기는 이는 없었다.

그런 이들은 이미 옛적에 털끝만큼이라도 연관되어 있다면 삼족을 멸했으니까.

지금 카잔 제국의 영토를 점거한 건 힘깨나 쓴다는 무지렁이들뿐이었다.

라스하겐에 위치한 흑마법사들의 왕도 그러했다.

그도 그저 흑마법에 심취했었던 것일 뿐, 카잔 제국에 충성을 맹세했던 이는 아니었다.

그의 입장에서 라크레시아의 재림은 딱히 기쁘지만은 않은 소문이었다.

‘연합 놈들과 적을 같이 하고 있긴 하다만…….’

하이베른은 그가 섬기는 왕이 전언을 떠올렸다.

“전하께선…….”

“전하께선……?”

“…아직 속단하기엔 이르시다더군.”

“흐음… 하지만 이미 소문에 의하면…….”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그러니 우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흐흐! 알겠습니다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흑마법사들이 해야 할 일.

왕국 연합의 감시가 라크레시아에게 쏠린 지금, 그 누구도 무시 못할 참혹한 학살을 일으켜라.

그리한다면 카잔 황제의 아들이란 녀석도 흑마법사들을 무시하지 못할 터.

이른바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테러를 계획하고 있었다.

“시작은… 역시 ‘거기’겠죠?”

“당연하지!”

요근래 흑마법사들과 아주 연관이 깊은 왕국.

무려 국왕이란 녀석이 악마의 마법서로 흑마법 랭크를 얻은데다, 전왕이자 제 아버질 제 손으로 죽인 미친 왕 갈렌.

아이소테르.

“수도인 소테라는… 아무래도 힘들겠죠?”

“당연하지! 시작부터 그런 거물을 건드렸다간 골로 가기 마련이다.”

하이베른은 부하의 말에 호통치듯 다그쳤다.

이미 소테라는 한 번 흑마법의 재앙에 크나큰 피해를 봤다.

때문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흑마법사 탐지 결계가 상시 가동 중이었다.

그것도 미친 왕 갈렌이 흑마법의 제물로 테라리움을 바치는 바람에 가능했던 거지.

당장 흑마법사들의 왕인 그가 온다 해도 테라리움을 공략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비교적 방비가 약하면서, 수도 소테라를 공략하는 것에 준하는 파급을 일으 킬 수 있는 영지라면?

딱 하나 있다.

영지 주인 녀석은 꽤나 강하다곤 하지만, 하이베른이 알기론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피똥싸게 가난했던 영지.

임페라 백작령.

아마 이안 임페라 라는 녀석도 여왕 치맛폭에 빠져서 제 영지엔 신경조차 제대로 쓰고 있지 않을 거다.

그런 녀석의 영지라면……!

하이베른은 벌써부터 무고한 이들을 학살할 생각에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 덕에 시커먼 두건을 쓴 부하들 중 하나가 어딘가 낯선 얼굴이란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후후! 굴라르 님께서 기뻐하시겠군!”

“흐흐흐! 그럼요!”

***

“라는 게 놈들 생각이란거군.”

“네, 백작님.”

오늘 아침.

이슬린은 한 장의 첩보를 들고 내게 왔다.

굴라르란 악마를 섬기는 흑마법사들이 내 영지를 노리고 있단 내용이었다.

‘하긴. 딱 이맘때쯤부터 흑마법사들이 날뛰긴 했어.’

카잔 제국 땅의 원래 주인이 나타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대륙 각지의 흑마법사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모두 흑마법사들의 왕이란 자가 꾸민 계략이었다.

“후후.”

나름 머리 좀 쓴답시고 한 계략이었지만, 녀석의 최후를 아는 나로선 우습기 그지 없었다.

놈들이 자랑하는 흑마법 랭크니 계략이니 하는 건 라크레시아 카잔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모두 무용지물이었으니까.

“걱정은 안 되시나 보군요.”

이슬린이 눈을 내리깐 채로 물었다.

그러면서도 입가엔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흑마법사들이 내 영지를 노리고 있다는 건 꽤나 큰 위기다.

그럼에도 태연한 내 모습에 뭔가 계획이 있단 걸 아는 눈치였다.

어쩌면 조금은 기대하고 있는 걸지도.

‘그럼 기대에 부응해 줘야겠지.’

“마침 잘 됐군. 새로 들어온 녀석을 어따 써먹을지 고민 중이었는데 말이야.”

“그렇군요.”

“디아 제니스. 그 녀석 지금 어디 있지?”

“간단하게 끼니만 떼우고 프리아나와 대련 중입니다.”

“흐흐, 좋아.”

깜깜이 숲에서 돌아온 디아에게 내린 명령은 간단했다.

‘강해져라. 다음 있을 재앙을 막을 만큼.’

그 이후로 보름간 줄곧 프리아나와 검술 연습에 한창이었다.

타르옌도 며칠 구경하다 가문 일이 바쁜지 결국 자릴 비웠다.

애초에 아직 둘은 제대로 사귀거나 하는 건 아니다.

타르엔이 디아 뒤꽁무닐 쫓아 다니는 거지.

“그럼. 일단 내 명령대로 잘 크고 있는지 봐야겠군.”

“네.”

난 곧장 디아와 프리아나가 있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카앙! 카캉!

아침 댓비람부터 둘의 검이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채 대련에 집중하는 디아.

그런 그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 프리아나.

둘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자 그제서야 둘의 검이 멈췄다.

“백작님! 오셨군요!”

“허억… 허억……! 오, 오셨습니까!”

“바쁜가?”

“하하! 아무리 바빠도 백작 뵐 시간도 없겠습니까?”

“후후.”

“마침 잘 됐군. 어린 기사 친구. 조금만 쉬었다 할까?”

“허억… 네!”

디아는 소매로 굵은 땀방울을 훔쳤다.

다행히 둘의 상성은 잘 맞는 듯했다.

소설에서도 프리아나와 꽤나 검을 섞었던 사이니까.

물론 그땐 아이소테르의 기사단장과 여기저기 떠도는 용병 사이였지만.

“자! 한잔하라구!”

프리아나는 미리 준비해 뒀던 물병을 디아에게 건넸다.

“벌써 꽤나 친해졌구만그래.”

“후후! 가르칠 보람이 있는 녀석이더군요! 하나를 가르치면 더 나아가 세 개를 배운다고나 할까요?”

“호오.”

“으음… 과찬이십니다.”

디아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곤 멋쩍은 듯 머릴 긁적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금 저 녀석 수준은 어느정도 되나?”

“음… 아마 적갑 기사단에서도 꽤나 손에 꼽는 수준일 겁니다. 이대로 계속 정진해 나간다면 조장 자린 따 놓은 당상이겠죠.”

프리아나의 후한 평가에 디아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그럼… 나랑 붙으면 누가 이길 것 같나?”

“하하! 그거야 당연히 백작님이지요.”

“흐음. 그렇군.”

딱히 백작이라고 띄워 주는 건 아닐 거다.

그 말에 디아는 살짝 분한 듯 입을 앙다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백작님. 왜 저 친구는 랭크를 비밀로 하는 건지…….”

“응?”

프리아나는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디아를 가르치라 할 때 말했던 한 가지 전재 사항.

절대 디아를 랭크로 판단하지 말고 순수한 검술 실력으로만 판단해라.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선 다소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였을 거다.

그야 검술 랭크가 곧 검술 실력이었으니까.

하지만 디아는 다르다.

만들어진 블랭크.

랭크 시스템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녀석이다.

이는 이 세상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축복이면서도 독이었다.

일단 랭크만 올리고 나면, 하위 랭크와의 싸움에선 질 수 없는게 랭크 시스템이었으니까.

디아에겐 한계가 없으면서 반대로 바닥도 없는 애매모호한 상태였다.

‘그 덕에 프리아나랑 검을 섞고도 내장이 터져 죽지 않는 거지만.’

프리아나한테도 디아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줄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프리아나는 고지식하기론 둘째가 서러운 남자.

지금이야 날 따른 덕에 소설과 많이 달리지긴 했지만, 이 세상 사람인 이상 뿌리 깊은 블랭크를 향한 편견까지 없어지진 않았다.

때문에 적당히 전재조건이랍시고 프리아나에겐 비밀로 한 상태였다.

“그야 그래야 너도 검술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들지 않겠나? 옛날에 내가 했던 말. 기억 안 나나?”

“으음… 기억 납니다. 랭크에 연연하지 말고, 진짜 검술이 뭔지 깨달으라셨던…….”

“그래. 다 널 위해 한 말이라구.”

“오오… 죄송합니다 백작님! 백작님의 큰 뜻을 제가 몰라 보고…….”

“흐흠. 알면 됐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프리아나는 별다른 의심도 없이 그냥 내 말을 믿는 듯했다.

소설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한 녀석이 날 이렇게 믿는다니.

괜히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건 그렇고.”

난 디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프리아나 말대로라면 첫 만남 때보단 꽤나 강해진 것 같더군.”

“흐흠. 그런 것 같습니다.”

디아는 별 부정 없이 고갤 끄덕였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꽤나 실력이 상승한 것 같았나 보다.

“그럼. 내 두 번째 명령을 잘 따라 줬으니. 다음 비밀을 알려 줘야겠군.”

“…네?”

강해져라.

딱히 명령이라 하기에는 애매한 말이었지만, 어쨌건 순순히 내 말에 따라 수련을 한 거니까.

그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 줘야겠지.

디아는 벌써 내려지는 포상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웠다.

난 그런 그에게 싱긋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두 번째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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