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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02화 (102/222)

102화

콰아아앗!

거대하게 자라난 불꽃이 그대로 내던져졌다.

“으왓!”

난 이를 피하려 잽싸게 뒤로 물러났지만 불덩이는 계속해서 날 쫓아왔다.

[프흐흐! 날파리마냥 도망치는 꼬락서니 하곤!]

갈렌은 그런 내 모습이 재밌다는 듯 비웃었다.

가능하면 피하려 했지만 못 피한다고 안 될 건 없다.

이번엔 피하는 게 아닌 오히려 앞을 향해 돌진하며 용린검을 휘둘렀다.

서걱!

오러를 담은 검격에 무처럼 두 동강 나 버리는 화염구.

하지만 녀석은 둘로 갈라지자마자 본연의 임무를 펼쳤다.

콰아앙!

이어지는 거대한 폭발.

[크하하하! 고작 그거냐?]

“어쩜 대사가 딱 삼류 악역 그 자체냐.”

[뭐, 뭣이!?]

폭발로 자욱이 일어난 먼지 구름을 뚫고 강하게 지면을 박차 올랐다.

방금 폭발로 전신이 화끈거렸지만 괜찮다.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카아앙!

“오호.”

갈렌이 팔을 들어 내 검을 막았다.

오러를 잔뜩 머금은 용린검이었지만 녀석의 피부를 뚫진 못했다.

[삼류 악역은 네놈 아니더냐!]

뭔가 말에 뼈가 있는 발언이었다.

당연히 내 정체를 하고 내뱉은 말은 아니었을 거다.

카가각!

갈렌의 한쪽 손이 오러를 머금은 검을 붙잡았다.

날카로운 발톱까지 자라난 놈의 손은 더 이상 사람의 것이라 보기 힘든 생김새였다.

[이대로 부러뜨려 주…….]

“그게 되겠니?”

프스스스!

난 그대로 용린검에 마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곤 용린검에 내재된 오러의 둑을 허물었다.

콰과과과!

확실히 랭크가 사기긴 사기다.

개화를 충전하려면 크로드랑도 몇 합은 나눴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 난 한 남자와 단 일 합만을 나눴다.

빈트하겐 칼로스.

아이소테르의 기사단장이자 검술 랭크 7의 진짜 괴물.

덕분에 개화를 사용하기 충분한 양까지 충전이 가능했다.

[크, 크아아악!]

빈트하겐에게서 받아 온 오러가 터져 나오자 갈렌의 피부가 뚫리기 시작했다.

“죽어라!”

그대로 녀석의 뿔을 베려 검에 체중을 실었다.

…서걱!

“쳇,”

하지만 그 전에 녀석이 뒷걸음질 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갈렌의 양팔과 가슴팍에 깊은 상처를 남기긴 했지만, 놈이 악마화된 이상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크윽……!]

놈은 양팔이 잘린 채로 침음을 토했다.

[이, 이 자식이 내 팔을……!]

“뭘 겨우 팔 좀 자른 거 가지고.”

[이 자식이!]

그러자 잘린 갈렌의 양팔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가슴팍에 깊게 난 상처도 빠른 속도로 아물었다.

그 모습에 되려 놀란 쪽은 내가 아니라 갈렌이었다.

[호오! 이런 것도 가능하다니!]

놈은 새로이 자라난 팔이 신기해하고 있었다.

방금 그걸로 확실해졌다.

‘악마에 대해서 잘 모르는가 보네.’

악마의 신체는 어디까지나 본체에서 형상화만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본체는 놈의 머리에 달린 뿔.

저걸 잘라야 놈이 죽는다.

그것 말고도 길이 하나 더 있긴 한데.

[크하하! 이것 참 아쉽겠구만! 기껏 쓴 비장의 수가 헛짓거리로 돌아가다니!]

“그런가?”

[…그 잘난 허세가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고!]

다시금 갈렌의 공격이 시작됐다.

놈은 육중한 팔을 휘적거리며 내게 돌진했다.

후웅!

팔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거친 풍압이 터져 나왔다.

딱히 힘을 쓰는 게 아니더라도 놈의 피부는 오러 소드에 버금 갈 정도로 단단했다.

카앙! 캉!

난 그런 녀석의 검을 차분히 흘려 냈다.

우로보로스의 눈물이라도 있다면 바로 썰어 버렸겠지만 아쉽게도 없다.

그럼 놈을 처치할 방법은…….

[언제까지 도망만 칠 테냐!]

“음……. 조금만 더?”

[이익!]

살살 약 올리는 듯한 발언에 녀석의 공격이 점점 거세졌다.

공격을 피할 때마다 놈의 표정이 구겨져 갔다.

콰앙!

갈렌은 강하게 발을 한 번 굴렀다.

이미 소 발굽처럼 변해버린 녀석의 발길질에 육중한 소리와 함께 모래 구름이 자욱이 피어났다.

힘 하나만큼은 어마 무시했다.

아마 저기 밟히면 그대로 날파리마냥 터져 죽을 거다.

한 가지 중요한 건, 안 맞으면 그만이다.

콰앙! 콰앙!

갈렌은 계속해서 주먹을 내리쳤다.

중간 중간 화염구도 쏴 보고 날개를 이용해 모래바람을 일게도 해 봤다.

하지만 내게 닿는 공격은 없었다.

[이익! 왜! 왜 닿지 않는 거냐!]

“음……. 너가 너무 느린 게 아닐까?”

[닥쳐! 이게 다 이 망할 책 때문이다……! 어째서 이따위 힘밖에 주지 않는 거지!]

갈렌은 애꿎은 네크로노미콘 탓만 했다.

그에 반해 녀석의 머리에 자라난 뿔은 처음 악마화 됐을 때보다도 곱절은 더 자라나 있었다.

‘슬슬 빡세지는군.’

악마는 체력 제한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악마화가 진행되며 더 강해진다.

자라난 뿔이 그 증거다.

하지만 놈과 내겐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경험.

랭크로는 구분 지을 수 없는 전투의 경험.

놈은 그게 없었다.

갈렌에겐 그저 남에게 빌려 온 힘만 있을 뿐이다.

왕자란 자리도 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진 힘이었고.

지금 무작정 휘두르는 단단한 몸도 네크로노미콘에게서 주어진 힘이었다.

녀석이 지닌 것 중 어느 것 하나 제 손으로 일궈 낸 게 없었다.

갈렌이 직접 전투를 해 본 게 언제였을까?

아니, 애초에 진심으로 싸워 본 적은 있나?

고작해야 어렸을 때 왕족을 위해 의례적인 대련이나 몇 번 해 보고 말았을 텐데.

[크아악!]

마침내 놈의 머리에 자라난 뿔이 최고조에 달하자, 놈은 결심한 듯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이 주위를 통째로 날려 버려 주마!]

쿠구구구……!

놈의 양 뿔 사이로 지금껏 볼 수 없던 거대한 화염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붉은 걸 넘어서 푸르게 빛나는 화염구는 태양보단 차갑게 빛나는 달빛에 가까웠다.

“…….”

그런 녀석의 최후의 일격에 난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흐흐! 드디어 공포로 맛이 간 건가?]

“…아니.”

[…뭐라?]

“더 이상 피할 필요가 없어졌거든.”

[이 미친놈이 드디어 죽을 때가……!]

빠직!

바로 그때.

단단한 갈렌의 몸뚱이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아까 치유된 가슴팍에 상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이게 무슨……?]

갈렌의 힘은 어디까지나 빌려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방금.

빌려온 힘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이안도 그랬지.’

소설에서도 이안은 디아의 손에 죽지 않는다.

헤카테의 안면갑으로 장기전이 가능해진 디아는, 이안을 상대로 싸움을 질질 끌게 된다.

어디까지나 바로 처치하지 못하는 바람에 길어진 전투였지만 결과는 디아의 승리로 돌아간다.

단련 한 번 안 한 거지 백작, 이안 임페라의 몸이 악마의 힘을 계속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갈렌도 마찬가지다.

힘에 취해 폭주를 넘어선 녀석의 끝은 자멸이었다.

빠지지직!

[크아아악!]

가슴팍에 난 균열이 점차 갈렌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갈렌의 두 눈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이, 이건 사기다! 이 망할 악마 놈이……!]

“그럼. 악마한테 받는 힘이 뭐 영원할 줄 알았나?”

[크아아아악!]

챙그랑!

결국 유리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갈렌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프스스…….

그러자 사막으로 변해 버렸던 알현실이 다시금 제 모습을 되찾았다.

“…끝난 건가.”

어두컴컴했던 알현실이 점차 밝아졌다.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창 밖에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한 거다.

이내 빛을 되찾은 맑은 하늘은 그간 소테라를 감싼 악몽을 씻어 내려 애썼다.

“하.”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났다.

오히려 네크로노미콘의 최종장보다 그 전이 더 힘들었달까.

달칵.

얼굴을 감싸고 있던 헤카테의 안면갑을 벗어 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상쾌한 공기가 폐부에 말끔히 채워졌다.

“끄으윽…….”

“아직 살아 있었냐.”

네크로노미콘의 힘이 끝나고, 갈렌은 용캐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몸뚱이 반절이 날아간 터라,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 어째서 내가… 너 같은 거지새끼한테…….”

“아직도 그 소리네. 그리고 나 이제 거지 아니야. 돈 많아.”

“으윽…….”

갈렌은 반 밖에 남지 않은 몸뚱이로 힘겹게 고갤 돌렸다.

“…….”

그리곤 풀썩 고갤 떨궜다.

놈이 마지막까지 발버둥친 시선의 끝엔 구울화가 풀려 차가운 시체로 되돌아간 에런골드가 앉아 있었다.

“쯧.”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평생을 아비의 그늘에서 열등감에 몸부림치다 죽는 아들이라니.

하지만 동정이 갈 정도는 아니다.

갈렌 이놈이 죽어서도 계속해서 악마 녀석한테 고통받는다 하더라도.

“할 건 해야지.”

난 갈렌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왕관을 벗겨 냈다.

그리곤 테라리움에 위치한 테라스로 향했다.

어느새 해가 높게 뜬 환한 대낮.

어두웠던 소테라에 밝은 빛이 비추고 있었다.

“와아아…….”

아직 외성에선 싸움이 한창이었다.

이제 이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한 짓이다.

“후읍.”

난 있는 힘껏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곤 크게 외쳤다.

“미친 왕 갈렌은 죽었다!”

* * *

“미친 왕 갈렌은 죽었다!”

“뭐, 뭐라고?”

싸움이 한창인 소테라에 힘찬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그러고 보니 하늘이……!”

마침내 밝은 햇빛을 되찾은 소테라.

그제야 사람들은 싸움을 멈췄다.

“아…….”

“와아아아!”

사람들의 반응 차이는 극명했다.

갈렌을 따르던 이들은 탄식하며 절망했고, 이글렌을 따르던 이들은 하늘 높이 검을 세워 든 채로 승리를 만끽했다.

“여왕님! 백작님께서 성공하셨습니다!”

“…네! 저도 들었어요!”

이글렌은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뒤섞인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오늘 소테라는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렸다.

이글렌의 아버지인 에런골드 2세.

그리고 그녀를 지키다 죽은 충성스런 기사 피츠 라이트.

그뿐 아니라, 희생된 이들이 스쳐 지나가며 이글렌의 눈시울을 붉혔다.

“흐읍.”

하지만 이글렌은 얼른 눈물을 닦아 내곤 표정을 고쳤다.

그리곤 여왕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마저 했다.

“모두 검을 내려놓으십시오!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합니다!”

“하, 하지만…….”

“미친 왕 갈렌은 죽었습니다! 아이소테르를 짓밟은 패륜아 갈렌은 더 이상 없습니다! 모두 투항하세요!”

“으으…….”

챙그랑!

마침내 갈렌의 편에 선 병사들이 검을 내려놓았다.

동시에 녀석들을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도 말끔히 사라졌다.

* * *

“어우. 목이 칼칼하네.”

산뜻한 공기를 마시긴 했지만 목구멍에 생채기라도 났는지 목이 시큰거렸다.

싸움이 끝나곤 다시금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그런 내 한 손엔 갈렌이 쓰고 있던 왕관이 들려 있었다.

그러다 아까 기절한 프리아나를 발견했다.

잘 살아 있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색색거리며 잘 자고 있었다.

찰싹찰싹.

“어이. 일어나.”

“어윽……!”

이제는 좀 기력을 되찾았는지 프리아나가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작님? 그렇다는 건……!”

“그래. 이겼다.”

난 녀석에게 왕관을 흔들어 보였다.

“흐흑! 역시 백작님이십니다! 믿고 있었다구요!”

“믿었다면서 왜 울어?”

“흐흑…….”

“됐고. 이제 가야지.”

“어딜… 말씀이십니까?”

“어디긴 잃어버린 물건 제 주인 찾아 줘야지.”

“…아!”

그렇게 난 곧장 소테라 밖 전초기지를 향해 걸어갔다.

벌써 승리를 확인한 이들은 서로 싸우는 걸 멈춘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글렌이 은빛 갑옷을 반짝이며 서 있었다.

“여왕님.”

“고생했어요, 이안 백작.”

“그럼.”

난 여왕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갈렌에게서 되찾은 왕관을 그녀에게 바쳤다.

“…….”

이글렌은 조용히 왕관을 받아 들었다.

그리곤 그녀는 자신의 머리에 스스로 왕관을 올려 썼다.

“와아아아!”

“여왕 전하 만세!”

소테라 전역을 가득 메울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스윽.

이글렌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

난 무심결에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대부분 약식으로 넘어가긴 하지만 원래는 이게 제대로 된 충성 서약이니까.

“앗……. 그… 이, 일어나시라구요.”

“…아. 그런 거였군요.”

그냥 일어나라고 손 내민 거였는데. 내가 괜히 오버 한 모양이다.

그렇게 이글렌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그녀의 손은 붙들려 있는 상태였다.

“고마워요. 이안.”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왕 전하.”

우리 둘은 서로 한참 동안 눈을 마주친 채 웃고만 있었다.

이제 싸움은 끝났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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