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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01화 (101/222)

101화

네크로노미콘.

악마가 만들어 낸 이 마법서를 사용하게 될 경우, 시전자의 영혼을 대가로 흑마법 랭크 5의 강자로 거듭날 수 있다.

랭크 5만 하더라도 프리아나 수준의 상당한 강자다.

평생 랭크를 올려 본 적 없는 이마저 일순간 상당한 강자가 될 수 있는 사기적인 아티팩트.

거기엔 한 가지 비밀이 존재했다.

-사용 시 대상의 흑마법 랭크를 영구적으로 5로 고정시킨다.

네크로노미콘을 사용한 이상 대상은 평생 거기서 끝난다.

아무리 흑마법을 연구하고 랭크를 올리려 해도 흑마법 랭크는 5가 끝.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대상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네크로노미콘에 종속된 꼭두각시로 끝나 버리고 마는 거다.

이는 죽을 때까지, 심지어 죽은 다음에도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네크로노미콘의 악마에게 종속되어 고통 받는다.

갈렌은 이를 알 리가 없겠지만.

“후.”

절그럭.

난 품 안에서 챙겨 온 아티팩트를 하나 꺼내 들었다.

마스크처럼 생긴 단단한 철편으로 이루어진 안면갑.

헤카테의 안면갑이었다.

주인공 디아가 흑마법 랭크 5인 상대.

원래 줄거리대로의 나, 이안 임페라를 상대 가능하게 만들었던 아티팩트다.

“이걸 또 쓰게 되다니.”

그것도 네크로노미콘을 사용해 흑마법사가 돼 버린 녀석을 상대로.

“후후.”

운명이란 게 이런 걸까.

돌고 돌아 결국 이안의 시작이자 끝인 아티팩트를 상대하게 될 줄이야.

난 헤카테의 안면갑을 쓴 채로 알현실로 향하는 계단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며칠 전에도 와 보긴 했다.

그땐 미친 왕 갈렌이 아닌 에런골드 2세가 있었지만.

끼이익……!

알현실의 문에 힘을 싣자 육중한 두 문이 천천히, 기괴한 소릴 내며 입을 벌렸다.

작게 열린 문 틈 사이로 보랏빛 안개가 구름처럼 새어 나왔다.

‘읍…….’

순간 시큼한 냄새가 안면갑을 뚫고 들어왔다.

다만 호흡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과연 이게 바로 주인공조차 고전하게 만든 흑마법 랭크 5의 힘.

예전에 한 번 상대해 본 로물루 같은 조무래기 흑마법사 녀석과는 차원이 달랐다.

“…왔나.”

이내 난 알현실의 왕자에 앉은 한 남자를 발견했다.

놈은 희고 광택이 나는 책 한 권을 오른손에 쥔 채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망할 책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멍청이.

녀석은 신줏단지라도 모시듯 네크로노미콘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엔 백골 사체 하나와 구울로 변해 버린 한 남자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백골은… 두아트리스 재상이로군.’

에런골드의 명에 따라 아이소테르를 굴려 가던 남자.

뼈만 남은 모습이었지만 생전에 입고 있던 차림새 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럼 그 반대편이 있는 구울은…….

“미친 놈.”

“크흐흐.”

괜히 미친 왕이란 타이틀을 얻는 게 아닌 건가.

놈은 제 아비를 구울로 만들어 자신의 옆을 장식 시키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소테르를 지배하던 에런골드.

그는 지금 시체나 다름없는 구울의 모습으로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어떤가? 내 아비의 모습은.”

“…….”

놈의 역겨운 행태에 말을 잃었다.

아이소테르를 그토록 강성하게 만들 자였지만. 결국 자신이 낳은 아들의 손에 죽었을 왕, 에런골드 2세.

운명이란 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건가.

“결국 이렇게 되는구만.”

놈을 향해 안쓰럽다는 듯 되뇌었다.

자신을 동정하는 듯한 말투에 갈렌의 미간에 골이 깊게 파였다.

“네가 사용하는 그 힘. 끝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나?”

“…하! 그까짓 영혼 따위! 힘만 얻을 수 있다면…….”

“힘? X랄 하고 있네. 네놈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거다. 아마 죽어서도 그 악마 놈한테 고통 받으며 후회하겠지. 영원히.”

“닥쳐라! 감히 대역죄를 저지른 주제에 국왕을 능멸하려는 거냐!”

“대역죄? 에런골드를 죽인 것도 너고. 소테라를 제물의 의식에 빠뜨린 것도 너다. 내가 무슨 대역죄를 저지른 거지?”

“…….”

갈렌은 날 씹어 먹어도 시원찮아 하는 눈빛으로 쏘아봤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을 풀었다.

“후후. 같잖은 도발에 내가 넘어갈 것 같나?”

“도발은 무슨. 사실을 얘기 한 것뿐인데.”

“…닥쳐!”

사실 내가 갈렌한테 잘못한 건 딱히 없다.

그저 에런골드를 향한 뒤틀린 가정사에 분노 표출 대상이 나였던 것뿐이다.

“숨이 끊어지고 나서도 그 망할 입을 나불대나 보자고!”

갈렌은 들고 있던 책, 네크로노미콘을 펼쳤다.

소테라를 집어삼킨 미친 성능의 아티팩트.

이미 알현실이 그의 영역이 된 이상, 그리 간단하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난 녀석을 향해 용린검을 뽑아 들었다.

용케 지금껏 잘 버텨 준 덕에 하룬한테 무사히 수리를 맡길 수 있었다.

레서 드래곤의 마핵이라도 있었다면 한층 더 강해졌겠지만, 이미 그런 게 없어도 용린검은 충분히 강했다.

파아앗!

용린검 주위로 푸른 오러가 샘솟았다.

이대로 놈에게 달려들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니다.

네크로노미콘을 공략하기 위해선 잠시 기다려야 한다.

“죽어라!”

콰아아앗!

미친 왕 갈렌의 손에 들린 책.

그 안에서 검은 구름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이는 곧 알현실의 천상에 격돌하며 방 전체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알현실 내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갔다.

‘이거구만.’

소설의 진짜 주인공, 디아 제니스가 이안 임페라를 상대했던 구절이 떠올랐다.

주인공 버프로 똘똘 뭉친 디아마저 첫 싸움은 패배시킨 네크로노미콘의 힘.

네크로노미콘은 책이다.

한 사내의 인생을 담은 책.

그가 어떻게 살아갔으며, 어떻게 죽었고, 어떻게 악마가 되었는지를 다루는 연대기다.

이 연대기가 사실인지, 아니면 그저 악마의 장난에 불과한지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건.

이 이야기의 끝에 도달해야 갈렌을 죽일 수 있다.

콰콰콰콰……!

검게 물든 알현실 바닥이 푹푹 파였다.

단단한 대리석 타일로 만들어졌던 바닥은 어느새 모래 알갱이처럼 잘게 바스러졌다.

꽉 막혀 있던 사방이 뻥 뚫리고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 찬 천장이 밤하늘로 바뀌고 붉은 달 하나가 떠올랐다.

네크로노미콘의 저자.

엘 아지프란 사내가 가진 이야기의 첫 구절이다.

[그는 사막의 왕이었다.]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알현실은 어느새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밤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그에겐 수만의 전사들이 있었으며.]

프스스스……!

모랫바닥을 뚫고 검과 창을 든 해골 병사들이 일어섰다.

수많은 병사들은 뻥 뚫린 두 눈을 통해 날 노려보고 있었다.

[수만의 주술사들이 있었다.]

그 뒤엔 조금은 다른 차림새의 해골 병사들이 뒤이어 나타났다.

목엔 보석을 이어 만든 장신구를 착용한 채 손엔 기다란 지팡이가 붙들려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귓가에 울려 퍼지는 글귀들마냥 수만에 달하진 않았다는 거다.

절그럭!

모랫바닥에서 솟아난 해골 병사들이 기분 나쁜 뼈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모두 검은 기운에 잠식된 창과 칼을 든 채 놈들이 진영을 갖췄다.

놈들은 순식간에 내 주위를 에워싼 채 수많은 창과 칼을 내질렀다.

카아앙!

“어딜!”

오러를 잔뜩 머금은 용린검 한 방에 놈들의 병장기가 수수깡 잘리듯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잔뜩 부식된 녀석들의 무기는 그닥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퍼엉!

“윽!”

동시에 검붉은 화염구가 등판에 격돌했다.

시큰거리는 통증이 계속 등에 어른거렸다.

등 쪽이라 보이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내 살갗을 태우고 있는 듯했다.

콰드득!

난 검붉은 불길에 휩싸인 상처 부위를 얼려 버렸다.

그리곤 저 멀리 떨어진 놈들 향해 주문을 외웠다.

…파지직!

메마른 사막에 떨어진 강렬한 번개.

이는 그대로 주변 다른 놈들을 향해 섬광을 내뿜으며 퍼져 나갔다.

덜그륵…….

놈들의 수를 줄여 나가자 네크로노미콘의 다음 구절이 시작됐다.

[하지만 부족했다.]

동시에 밤하늘 한켠에 위치해 있던 붉은 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점차 거대해진 녀석은 어느새 밤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해졌다.

붉게 타오르는 달의 눈빛에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았다.

[그의 타오르는 갈증을 해소시키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게 많았다.]

계속해서 달려드는 해골 병사들을 상대할수록 달빛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헤카테의 안면갑 너머로 들어오는 독기도 점차 짙어졌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실 때마다 목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아마 안면갑이 없었다면 그대로 죽어 버렸으리라.

“크흐흐! 이걸 버텼다는 거 아냐! 주인공 녀석은!”

안면갑 없이 살아남은 게 용했다.

[모든 걸 알고 싶었지만, 그에겐 시간마저 부족했다.]

점차 해골 병사들의 수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공격 또한 강해지고 더 매서워졌다.

다 낡아 빠진 창칼은 어느새 마나를 머금은 마검이 되어 있었고, 쏟아지는 화염구는 더욱더 뜨겁고 강렬했다.

두두두두……!

“크으윽!”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이젠 막는 게 급급했다.

온 몸에 마나를 흘려 넣어 치명상만은 피하려 애썼다.

이제 조금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순간, 나도 모르게 한 기술이 떠올랐다.

주변을 향해 오러를 뿜어내 체내의 마나를 뒤틀어 버리는 기술.

크로드가 자주 사용했던 기술이었다.

이미 당한 것만 해도 몇 번인지 가늠도 안 되는 터라 어렴풋이나마 따라하는 게 가능했다.

콰아앗!

“꺼져라!”

모랫바닥을 뚫고 날카로운 오러의 창날이 터져 나왔다.

이내 주변을 가득 메운 해골 병사들의 가슴팍이 한순간에 폭발했다.

덜그럭…….

다행히 먹혔는지 놈들은 그대로 원래의 뼈다귀만 남긴 채 허물어졌다.

이내 뼈다귀들은 모래바람에 휩쓸려 먼지처럼 사라졌다.

“허억……! 허억……!”

남의 기술을 따라한 거라 그런지 벌써부터 단전이 뻐근했다.

숨 쉴 때마다 폐부가 쓰라렸지만 가까스로 진정을 되찾으려 애썼다.

주변 해골 병사들이 대충 정리되자 이제 네크로노미콘의 최종장에 도달했다.

계속해서 자라나던 붉은 달빛이 그 기세를 멈췄다.

[그리고 마침내.]

엘 아지프.

지식에 대한 끝없는 탐욕으로 인해 결국 스스로 악마가 된 자.

그가 가진 연대기의 마지막 구절.

[그는 스스로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콰아아앙!

밤하늘의 붉은 달이 산산조각 나며 그 안에서 검은 형체를 띤 무언가가 나타났다.

나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덩치.

그 무게를 지탱하려는 박쥐의 날개가 양 어깨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이마엔 크게 휘어진 두 개의 뿔까지 뾰족하게 자라나 있었다.

이는 영락없는 악마의 모습이었다.

다른 악마들과 다른 건 하나.

녀석이 갖고 있던 얼굴이었다.

[하아…….]

기괴하게 변조된 목소리가 하늘을 떠다니는 녀석에게서 들려왔다.

쇳덩이 긁는 듯한 소리였지만 본바탕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미친 왕 갈렌.

쿵!

갈렌은 악마의 모습을 띤 채로 모랫바닥에 내려왔다.

전보다 더 거대하고 육중해진 체격에 모래가 자욱이 솟아났다.

“그새 키가 자랐네? 따로 챙겨 먹는 거라도 있나?”

[프흐흐…….]

갈렌은 내 말이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흘렸다.

마치 네크로노미콘 속 악마.

엘 아지프라도 된 것마냥 녀석은 자신의 변화를 즐겼다.

하지만 난 안다.

지금의 녀석으론 진짜 악마 녀석들한테 털끝도 못 미친다는 걸.

“만족스럽나? 지금 그 흉측해진 모습이?”

[흉측하다고?]

갈렌은 바위처럼 단단해진 자신의 몸을 살폈다.

그리곤 힘을 확인해 보려는 듯 손아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다시 펼쳤다.

녀석은 만족스러운 듯 흉측하게 자라난 이빨을 내보일 정도로 큰 미소를 지었다.

[아름답군……. 태어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악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갈렌.

그런 녀석의 두 뿔 사이로 거대한 화염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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