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71화 (71/222)

71화

“고대인의 보고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게 뭔지는 다들 알고 있겠지.”

“그렇긴 합니다만…….”

소설 속엔 ‘고대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존재했다. 수만 년 전 세상을 지배했던 인류를 칭하는 단어지만 다 똑같은 사람이다.

단 한 가지만 빼고.

“그런 걸 함부로 건드려도 되는 걸까요?”

이슬린이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고대인의 유물은 이미 세상 곳곳에 퍼져 있다.

당장 황금 은행만 하더라도 금고에 잔뜩 쌓아 놓고 있는 게 고대인의 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인의 유물 사용 방법을 모른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황금 은행의 습격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황제파 잔당들은 고대인의 유물로 어마어마하게 세력을 키워 나간다.

하지만 정보란 건 한 단체만이 독점하는 건 어렵기 마련이다.

놈들을 시작으로 고대인의 유물 사용법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십 년 뒤엔 개나 소나 쓰는 게 고대인의 유물이다.

문제는 지금 내가 그걸 써도 되냐는 거다.

만에 하나 유물의 사용법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대륙의 판도가 크게 바뀔지도 모르는 일.

때문에 유물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가능하면 손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황금 은행 습격 사건도 앞당겨진데다가 갈렌 왕자가 난리를 피워 대는 마당에 한가롭게 앞뒤 잴 시간 따윈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힘을 키우는 것만이 답이다.

‘원래라면 엔델로 광산에 숨겨진 고대인의 보고를 차지하는 건 베네르 백작이었지.’

베네르 백작가가 몰락해 없어진 지금, 내가 그 뒤를 잇는 것뿐이다.

딱 십 년 정도만 빨리.

여기 모인 이들의 입만 잘 단속하면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적어도 내겐 믿을 만한 자들이니 입단속 정도는 알아서 잘 할 거다. 광산의 인부들을 돌려보낸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정말 기대됩니다! 백작님! 고대인의 보고라니!”

“후후. 이젠 놀라지도 않는군.”

“하하! 어디 전하께서 알고 계신 게 한두 개도 아니니 말입니다. 고대인의 보고쯤이야 아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프리아나는 잔뜩 신이 났는지 콧바람까지 뿜어 대며 흥분해 있었다.

어쩌면 그가 그토록 꿈꾸고 있는 랭크 업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프리아나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엔델로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한 고대인의 보고. 거기에 랭크 업을 시켜 주는 보물 따윈 없다.

굳이 따지자면 그 반대에 가까운 게 숨겨져 있을 뿐.

“하오나 백작 전하. 엔델로 광산의 최심부까지 도달했지만 고대인의 보고로 보이는 건 없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고대인의 보고까지 도달하려면 한참을 더 파고 들어가야 할 테니까.”

“네? 최심부보다 더 파고 들어간다는 건…….”

이스바르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입을 다물었다.

광산의 최심부는 괜히 최심부가 아니다. 괜히 더 팠다간 지하의 용혈을 건드릴 수도 있으니까.

땅의 힘줄이라고도 불리는 용혈은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된다.

대지 자체에서 품고 있는 마나가 흐르는 일종의 혈맥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내재되어 있다.

함부로 건드렸다간 용암이 터져 나오거나 심한 경우 지진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랬다간 갱도채로 생매장 당해 죽어 버리고 만다.

“다 방법이 있지.”

자신 있어 뵈는 내 말에 이스바르트의 표정이 밝아졌다.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다. 괜히 용혈을 건드렸다 죽을 생각 따윈 없다.

“우선 준비부터 하자고.”

절그럭.

미리 챙겨 온 가벼운 가죽 갑옷으로 복장을 갈아 치웠다.

엔델로 광산 지하에 숨겨진 고대인의 보고.

여길 들어가려면 두터운 철갑보단 움직임이 편한 가죽 갑옷이 더 쓸모 있다.

그렇다고 단순한 가죽 갑옷인 건 아니다. 하룬에게 특별 제작 받은 가죽 갑옷이다.

[드워프 장인의 가죽 갑옷 : 드워프 장인 브론즈 비어드가 특별 제작한 가죽 갑옷. 가죽 갑옷 특유의 가벼운 무게감을 잘 살리면서 경도는 크게 높였다.]

-‘경량화’ 스킬이 새겨져 있습니다.

-‘신속’ 스킬이 새겨져 있습니다.

-‘단단함’ 스킬이 새겨져 있습니다.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라 착용감도 굉장했다.

살짝 두꺼운 옷 한 벌 입은 정도로 가볍고 움직임이 편했다.

게다가 스킬까지 덕지덕지 덧씌워져 있어 웬만한 날붙이론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경도까지 자랑했다.

‘이걸로 충분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거다.

“자이언트 웜은 지금 어디 있지?”

“최심부 근처에 휴식처를 마련해 뒀습니다. 내려가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다행이군.”

난 일행들과 함께 엔델로 광산의 최심부를 향해 내려갔다.

갱도를 타고 내려갈수록 햇볕이 닿기 힘들었지만 곳곳에 밝혀 둔 불빛 덕에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한참을 내려가자 후끈후끈한 열기가 살갗을 타고 느껴졌다.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자 광산의 최심부가 나타났다.

커다란 빈 공간을 중심으로 자이언트 웜이 파먹은 듯한 큼직한 구멍이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 있었다.

“여깁니다, 백작님.”

“후우! 조금 덥군요!”

“조심해라. 여기서부턴 용혈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여기서 한 삽만 잘못 퍼도 용암이 터져 나온다.”

“용암이라면…….”

“닿는 순간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녹아내리겠지. 그러니 괜히 잘못 건드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 그렇군요.”

프리아나는 허리춤에 매고 있던 검을 품 안에 꼭 끌어안은 채로 걸었다. 실수로 검이 용혈을 건드릴까 봐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광석은 용혈 근처로 갈수록 순도가 높아진다.

여기서 용혈을 건드리기만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반대로 건들지만 않으면 순도 높은 광석을 채굴할 수 있다.

“여기서부턴 자이언트 웜이 파 놓은 구멍 근처 말곤 건드리지 않도록 지시해 뒀습니다.”

“그럼 안전하겠군.”

자이언트 웜은 특유의 감각으로 용혈을 알아서 피해 지나간다.

그런 녀석의 특성을 이용하면 용혈 근처에서도 안전하게 채굴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턴 함부로 땅을 파선 안 된다. 그렇다고 자이언트 웜으로 땅을 파자니 섬세함이 부족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바로 랭크 보유자다.

“프리아나.”

“네!”

“바닥을 한 번 잘 살펴봐라.”

“으음… 단단해 보이는군요.”

“아니. 맨 눈으로 말고 마나를 써서.”

“아.”

프리아나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곤 눈을 부릅떴다.

땡그란 녀석의 눈가에 힘줄이 불룩 튀어나오며 푸른빛이 반짝였다.

“오…….”

마나가 주입된 두 눈으로 바닥을 살펴본 녀석은 한참이고 신기하게 쳐다봤다.

“마치… 바다 같군요. 그것도 매섭게 소용돌이치는 바다.”

일반인들이 볼 땐 거무튀튀한 바닥이겠지만 상위 랭크 보유자들에겐 다르게 보인다.

거센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용혈은 단단한 암반 너머에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걸 건드리는 순간 암반을 뚫고 용암이 폭발하고 만다.

“계속 살펴봐라. 그러다보면 이상한 게 느껴질 테니.”

“이상한 거라면… 어엇!”

계속해서 용혈을 살펴보던 프리아나가 뭔갈 발견한 듯 소리쳤다.

나도 궁금했던 터라 눈에 힘을 주고 쳐다봤지만 눈만 아플 뿐 별다른 걸 찾을 순 없었다.

‘쯧.’

아직 첫 번째 벽밖에 못 뚫은 터라 용혈까지 살펴보는 건 무리였다. 프리아나가 보는 걸로 만족해야지.

“이쪽에… 뭔가 이상한 게 느껴집니다.”

프리아나는 한쪽 방향을 향해 홀린 듯이 걸어갔다. 이내 최심부의 한켠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넘어로는… 용혈이 막혀 있습니다.”

“용혈이 막혀 있다구요?”

이스바르트는 그게 무슨 의민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용혈이란 대지가 가진 힘의 흐름. 이를 막으려면 보통 기술력으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자이언트 웜으로 이쪽을 더 파게 시켜라.”

“네!”

이내 거대한 몸집을 가진 애벌레 한 마리가 꾸물꾸물 기어왔다.

“꼬물아. 여길 파 보렴.”

부우웅…….

처음엔 살짝 꺼려 하는가 싶더니 이내 프리아나가 가리킨 곳을 향해 입을 움직였다.

갈그락. 갈그락.

자이언트 웜은 빠른 속도로 단단한 암반을 파먹으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략 10미터 정도 더 파고 들어가자 자이언트 웜은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뒷걸음쳤다.

부우우! 부우우!

“응? 얘가 왜 이러지…….”

“이쯤하면 됐다. 여기서부턴 직접 하지.”

몬스터의 감으로 알고 있는 거다. 이 암반 너머에 뭔가 심상찮은 게 숨겨져 있다는 걸.

난 지체 없이 허리춤의 용린검을 뽑아 들었다.

츠츠츠……!

그리곤 오러를 불어넣은 채로 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단단한 암반이 두부 썰리듯 부드럽게 썰려 나갔다.

“으악!”

난데없이 휘두른 검에 프리아나가 놀라 자빠졌다.

이슬린과 이스바르트도 눈이 휘둥그레진 건 매한가지였다.

“후후! 놀랐나?”

“시, 십 년 감수했습니다. 용혈이 흐르는 곳에서 검을 휘두르시다니…….”

“다음부턴 미리 말해 주지.”

“네…….”

다행히 바닥을 썰어 넘겼다고 용암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썰어 넘긴 바닥이 무너지고 그 뒤로 숨겨져 있던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

바닥 뒤엔 거대한 대문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 세월 단단한 암반 속에 갇혀 있던 탓인지 철문은 잔뜩 부식된 상태였다.

다른 데도 아니고 용혈 틈 속에 있었으니 용케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대단했다.

“제대로 찾았군.”

“이게 그거입니까? 고대인의 보고가 있다는?”

“아마 그렇겠지.”

용혈로 가득한 땅속 깊은 곳에 묻히고도 멀쩡할 기술력은 자이겔론드의 드워프들로도 불가능하다.

“으음…….”

프리아나는 대문을 신기하면서도 긴장한 얼굴로 요리조리 살펴봤다.

살짝 두드리자 부식된 철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겉은 녹슬었어도 내부는 멀쩡할 거다. 그러니 용혈 틈 속에서도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거겠지.

“구경은 다 끝났나?”

“네… 저로선 어떻게 열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는군요.”

“다 방법이 있지.”

난 대문의 정가운데에다 손을 올려 놨다. 그리곤 전신의 마나를 손끝에 집중시켰다.

츠츠츠츠……!

그러자 마치 검이 마나를 빨아들여 오러를 내뿜듯 손끝에 맴돌던 마나가 대문을 향해 스며 들어갔다.

우우웅……!

동시에 낮은 울림을 내며 문이 미세하게 떨렸다. 부식된 겉껍질이 벗겨지고 반질반질한 철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암호… 입력…….]

“으음?”

잡음이 잔뜩 섞여 기괴한 기계음이 들려오자 프리아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이게 무슨 소리죠?”

“별거 아니다. 암호를 입력하라는군.”

“아아… 역시 백작님이십니다. 이런 처음 보는 물건도 자유자재로 다루시다니.”

“그럼 암호는 뭐죠?”

이스바르트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지만 난 딱 잘라 말했다.

“나도 모른다.”

“…네?”

내 말에 녀석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파앗!

잠시 후 대문 앞에 자그마한 점들이 떠올랐다.

총 27개로 정육면체 형상을 한 점들은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스마트폰 잠금 화면을 3차원으로 늘려 놨다고 해야 하나?

작동 방식도 비슷했다. 여기서 순서대로 패턴만 입력하면 된다.

‘그래서 나도 모른다는 거지.’

내가 아는 건 어디까지나 소설. 즉, 텍스트로 이루어진 글뿐이다.

패턴을 뭘로 해야 맞는지는 나도 모른다. 무슨 별처럼 생긴 패턴이라곤 했는데, 별처럼 생긴 게 어디 한두 개도 아니고.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고대인도 아닌 이상 결국엔 보안 시스템에 걸리게 되어 있으니까.

“싸울 준비해라.”

“…네!”

억지스러운 모습에도 녀석들은 군말 없이 내 말에 따라 줬다. 그만큼 날 믿고 있다는 소리였다.

스릉!

용린검으로 대문의 정가운데를 훑었다. 검이 지나간 궤적 뒤로 부식된 철가루가 흩날렸다.

‘확실히 무르군.’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였다면 흠집도 안 갔겠지만, 이 녀석은 이미 수만 년간 부식되고 썩어 문드러진 녀석이다.

덕분에 검술 랭크 4의 얕은 오러에도 쉽게 입을 벌렸다.

고대인의 보고치고는 허접한 보안 시스템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아직 보고에 잠든 수호자들을 못 봤으니까.

[비정상적인 출입… 감지…습니다.]

[보안 절차… 진행…니다.]

잔뜩 일그러진 기계음을 시작으로 고대인의 보고가 크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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