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저택의 뒤편에 위치한 공방을 찾아갔다.
열심히 아티팩트를 찍어 내던 공방은 당분간 내가 부탁한 물건 제작에 집중하기로 했다.
희뿌연 연기를 뿜어대는 굴뚝 아래에서 덥수룩한 수염의 드워프가 연신 망치를 두들겨 대고 있었다.
“쇠를 더 쓸 생각 말고 늘리는 데 집중해라! 이 이상 무게를 늘려선 안 된다는 걸 명심하라고!”
“네, 네엣!”
하룬은 공방의 일꾼들을 드잡으면서도 제 손의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젊은 일꾼들은 행여나 하룬의 눈에 날까 비지땀을 흘려 가면서도 철판을 두드렸다.
아직 애 티가 덜 빠진 새파랗게 어린 녀석들인 걸 보니 새로 하룬의 밑에서 일하게 된 아이들 같았다.
카앙! 카앙!
‘제법 쓸 만하군.’
하룬이 직접 고른 이들이라 그런지 솜씨가 괜찮았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어깨에서 나오는 힘이 눈으로도 느껴졌다. 하룬 마음엔 아직 못 미쳤지만.
아무리 드워프 대장장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공방을 돌릴 순 없다. 그에 걸맞는 일꾼들이 있어야 뭐든 가능했다.
“그래! 하면 되는구만!”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앞으로 이 정도 얇기까지 못 뽑아내면 혼날 줄 알아라!”
“아앗…….”
‘저러다 애 잡겠네.’
버티기만 하면 왕국에서도 손에 꼽는 장인이 될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버티고 나서 이야기다.
이러다 질려서 떠나 버리는 건 아닌가 몰라.
‘그러려면 떠나지 않도록 동기부여를 해 줘야겠지.’
새로 들어온 일꾼들한테 절반 정도 웃돈을 얹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힘든 만큼 돈이라도 많이 주면 뭣 같아도 참아지는 게 사람 맘이다.
“어이.”
“…아! 이안! 왔는가!”
“부탁한 건 다 됐나?”
“거의 다 됐다네! 외부 강판만 달면 끝나는 수준까지 왔으니!”
“빠르군.”
“하하! 어려울 게 뭐가 있나? 마차(魔車) 하나 빨리 못 만들어서야 드워프란 이름을 쓸 수 있겠나!
“후후.”
마차(馬車)가 아니라 마차(魔車)다. 마법으로 움직이는 마차.
이 마차는 말이 아닌 마핵을 원동력으로 삼는다.
말로 끄는 마차를 준비하려면 귀찮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단순한 마차가 아니라 귀족들 사교 모임에 갈 마차다.
차체가 아무리 번쩍거려도 말이 볼품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털에 윤기가 흐르는 말이 어디 굴러다니는 것도 아니고. 새로 제대로 된 말까지 준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마법으로 움직이는 마차.
값이 좀 나가긴 하지만 값비싼 말을 구해올 비용까지 감안하면 이게 딱이다. 사 오는 게 아니라 하룬이 대신 만들어 주니 가격 걱정도 거의 없고.
“어디 한번 타 보겠나? 아직 강판을 달지 않아 좀 심심하겠지만!”
“벌써 탈 수 있나?”
“그럼! 내부 구조는 완성됐다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것만 빼면 제대로 된 마차랑 똑같을 걸세!”
“그럼 한 번 타 봐야지.”
“하하! 그래! 이리로 오게나!”
자신 있는 목소리로 공방을 나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아티팩트만 만들다 귀찮은 일을 시킨건 아닐까 내심 미안했는데, 말하는 걸 보니 오히려 신났던 모양이다.
“이걸세!”
“호오.”
마차는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미니카마냥 내부 골격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내부에 길게 난 축을 중심으로 마차의 뼈대가 자라난 구조였다.
하룬은 마차의 앞부분에 달린 좌석 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곤 차체 바닥을 뒤적거리더니 채찍 같은걸 집어 들어 건넸다.
“자! 이걸 붙잡아 보게나!”
“이게 뭐지?”
“뭐긴! 방향 조절용 채찍이지! 오른쪽으로 당기면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가지! 어때! 갓난아기도 할 만큼 쉽지 않나?”
채찍의 용도는 운전대였다.
나야 둥그런 운전대가 익숙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마차의 한 종류다.
그래서 그런지 생김새가 마편과 비슷했다. 내겐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왠지 재밌어 보여 자리에 앉았다.
“이제 밑에 위치한 버튼을 누르면……!”
우우웅!
마차는 패달을 밟자마자 빠르게 앞으로 달렸다.
적당히 핸들을 돌리자 마차의 바퀴가 움직이며 공방 주윌 뱅글뱅글 돌았다. 차가운 바람이 그대로 들이닥쳤지만 그만큼 운전하는 맛이 더 강했다.
“으, 으아악!”
옆에 앉은 하룬은 차체를 붙잡은 채로 침을 질질 흘렸다.
그리 빠른 속도도 아닌 것치곤 반응이 좀 과하지 싶다.
…끼익!
공방 주윌 세 번쯤 돌고 나서야 마차를 멈췄다. 간만에 드라이브라도 한 듯 기분이 상쾌했다.
“크흐흐! 재밌네 이거.”
“으으… 뭐, 뭔가 자네! 마차를 몰아보는 건 처음 아니었나?”
“마차가 처음이긴 하지.”
‘운전은 많이 해 봤어도.’
“우욱…….”
하룬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지곤 금방이라도 속을 게워 낼 것만 같았다.
잠시 마차에서 내려 숨을 헐떡이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하룬은 축축하게 젖은 입가를 손으로 슥 훑었다.
“으음… 아무래도 자네가 마차를 몰면 안 되겠어. 그랬다간 죄다 속을 버릴 테니.”
“그래야겠지. 내가 마차를 몰았다간 다른 귀족들한테 손가락질 당할 것도 있고.”
“후… 그건 그렇고. 어떤가? 마차를 직접 타… 아니, 몰아 본 소감은?”
“최고야. 방향 조절도 좋고. 힘도 나쁘지 않군.”
“하하! 당연하지! 자그마치 말 스무 마리가 끄는 힘과 맞먹을 거라고?”
‘경차가 한 70마력 됐지.’
“…대단하군.”
“그렇지? 후후! 이거라면 어딜 가더라도 목에 힘깨나 주고 다닐 수 있을 거라 장담하네!”
하룬을 추켜세워 주는 한편 마음속으론 지구의 엔진을 보여 주면 뭐라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그건 힘들겠지. 연료도 있어야 하고 복잡한 내부 구조는 나도 모르니까.’
* * *
아이소테르의 수도 소테라. 소테라로 향하는 길은 평탄함 그 자체였다.
지금은 평화로운 시기다.
거짓뿐인 평화라도 평화는 평화. 전쟁이 없다 보니 대부분의 영지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우웅…….
조용히 떨리는 마차는 우리 일행을 모두 태우고도 문제없이 달려 나갔다.
속도가 그리 빠른 건 아니었다. 마차 경주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속도면 딱 적당했다.
하룬이 만들어 준 마차(魔車)엔 나와 이슬린, 프리아나, 이렇게 셋과 마부 한 명이 타고 있었다.
확실히 말이 아니라 마핵으로 움직이는 거라 그런지 승차감이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제일 좋은 건 일단 엉덩이가 덜 아팠다. 속도도 거의 일정하니 멀미도 거의 없다시피 했고.
‘이거라면 이스바르트도 탈 수 있겠군.’
이스바르트가 속이 좀 약한 것도 있지만, 일반적인 마차들은 흔들림이 장난이 아닌 이유가 컸다.
조용히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이 마차라면 어린아이들도 편히 잘 수 있을 정도였다.
우웅…….
“공자님, 이 마차에서 나는 소리. 뭔가 기분 좋지 않습니까?”
프리아나는 마차가 맘에 드는 듯 천진난만한 얼굴로 마차를 둘러봤다.
“난 별 감흥 없다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까? 흐음…….”
이슬린은 심드렁한 얼굴로 프리아나를 살짝 흘겨봤다. 이런 게 뭐가 좋다는지 이해 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다.
“…….”
이슬린은 그러곤 다시 아무 말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왠지 모를 떨림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수도로 가는 길이 익숙치 않아 그러는 거라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속마음이 조금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수도로 간다 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어.’
“이슬린.”
“…네. 공자님.”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없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
“말하기 싫으면 됐다.”
난 관심 없는 척 창 밖으로 고갤 돌렸다.
그러는 사이 이슬린의 입술이 움찔거렸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다 이유가 있어서 저러는 걸 거다. 괜히 억지로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적당히 때 되면 말하겠지.’
* * *
마차는 어느새 아이소테르 왕국의 수도. 소테라에 도착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왕성이 창 밖으로 나타났다.
왕성은 길게 둘러싸고 있는 외성보다 더 크고 높게 솟아 있었다.
아이소테르의 시작이자 끝.
테라리움이란 이름의 왕성은 여타 귀족들의 영지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애초에 왕국 연합법상 귀족령의 성은 왕국령의 성보다 높이 지을 수 없다.
낭비를 막자느니 뭐니 했지만 실상은 귀족 주제에 왕의 권한을 함부로 넘지 말라는 의미다.
새하얀 성벽을 따라 산처럼 쌓아 올린 성은 그 어떤 외적의 침입에서도 굳건히 버틸 수 있도록 견고했다.
벽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산을 마주한다면 제정신으로 싸우진 못할 것 같았다.
“튼튼하게 지었구만.”
“그럼요! 아이소테르의 왕성 테라리움은 왕국 연합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웅장하다니까요.”
“그래?”
“그럼요!”
“그럼 왕가 밑에서 일하면 좋겠네. 그렇게나 좋아하는 왕성 테라리움에서 일할 수 있으니.”
“그, 그거랑 이거랑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싫음 말고.”
슬쩍 던진 농담에 프리아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직까지도 국왕의 명령에 따라 일했던 걸 마음에 걸려 하고 있었다.
국왕을 위해 일하는 것과 아이소테르를 위해 일하는 것. 겉으론 같은걸 의미한다곤 했지만, 둘 사이엔 미묘한 간극이 있다.
만약 왕이 미쳐 날뛴다면? 그 여파로 왕국이 망할 위기에 처한다면? 그때도 국왕을 위해 일하는 것만이 아이소테르를 위한 일일까?
프리아나는 거기서 선택을 했다.
에런골드 2세의 야심을 위해 귀족들 간에 분란을 야기하는 국왕의 검이 될지, 아니면 스스로 강해져 나라 전체를 위해 일하는 검이 될지.
아직 본인은 스스로 자각도 못하는 듯하지만.
“확실히 크긴 크군요.”
“그러게 말이다.”
“이만한 성이라면 공성전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겠죠.”
“그랬지. 대전쟁 당시에도 제국도 소테라로 진격하긴 꺼려 했을 정도니.”
“호오…….”
이슬린은 그런 것까지 알고 있었냐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책에서 봤어.”
난 대충 얼버무리곤 테라리움의 전경을 향해 고갤 돌렸다.
하얀 거인처럼 웅크린 테라리움. 거대한 왕성의 규모에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우습기도 했다.
제아무리 튼튼한 성벽을 가지고 있다 한들 내부의 적을 막을 순 없으니까.
“임페라 가문에서 오셨습니까?”
외성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마차를 세우곤 물었다. 이를 본 프리아나가 창밖으로 고갤 살짝 뺐다.
“그렇습니다.”
“아, 확인되었습니다.”
“다른 귀족들도 도착했습니까?”
“네. 초청 받으신 분들 대부분이 도착하셨으니, 아마 저녁쯤이면 다 들어오실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수고하십시오.”
왕가에서 보낸 초청장이라 그런지 제아무리 목에 힘 들어간 귀족들이라도 고분고분히 참석하는 모양이다.
저만치 떨어진 길가에 다른 귀족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들이 보였다.
커다란 금 호박을 마차 위에 올려놓거나 마차를 끄는 말에게까지 보석 박힌 마갑을 씌워 놓고 있었다. 모두 나처럼 파티에 참석하는 귀족들이었다.
다들 화려한 장식을 주렁주렁 매달아 놔서 애써 무시하려 해도 시선이 갈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런 반면 임페라에서 온 마차는 거추장스런 장식 없이 매끈한 차체뿐. 덕분에 장식 없이도 오히려 눈에 더 띄었다.
‘평범한 마차(馬車)도 아니고 마차(魔車)니까.’
“히야!”
“저, 저건 뭔데 말없이도 움직이는 거지?”
길가를 나다니던 행인들이 마차를 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보야. 마핵으로 움직이는 마차도 몰라? 촌에서 올라온 티내긴.”
“오… 이게 그거야? 엄청 비싸겠지?”
“당연하지. 아마 우린 평생 일해도 한 번 못 타 보고 죽을걸.”
겉모습보단 내면을 가꾸자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외형도 꽤나 중요하단 걸 느꼈다.
그렇게 우리 일행을 태운 마차는 테라리움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