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61화 (61/222)

61화

“끄응…….”

그나마 다행인 건 바르카 혼자라는 거다.

소설의 줄거리대로라면 황금 은행을 습격하는 건 셋이다.

쾌검의 크로드와 사역술사 바르카, 마법사 솔루스 이렇게 셋뿐이다.

사역술사와 마법사가 황금 은행에 깽판을 저지르는 사이, 크로드가 홀로 대금고를 박살 낸다.

말 그대로 대금고를 손으로 뜯어내 열곤 안에 감춰져 있던 고대인의 유물을 싹쓸어 간다.

그런데 크로드뿐만 아니라 솔루스도 보이질 않았다.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만 나로선 큰 짐을 두개나 덜은 셈이다.

“히야! 직접 찾아왔네?”

바르카는 날 보자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받은 아이마냥 환하게 웃었다.

일단은 모르는 척 녀석의 의중을 파악하려 애썼다.

왜 크로드와 솔루스 없이 혼자 이 자리에 온 건지.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어째서 5년이란 세월을 앞당기면서까지 황금 은행을 습격했는지.

소설의 줄거릴 아는 나로선 반드시 자초지종을 알아야 했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줄거리가 통째로 쓰레기통에 처박힐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난 용린검을 녀석에게로 겨눈 채 입을 열었다.

“…날 아나?”

“알다마다! 요새 네가 얼마나 인기 많은데!”

“인기가 많다고?”

“그럼! 오죽하면 널 노리고 이 난리까지 피웠겠어?”

전혀 예상치도 못한 녀석의 발언.

날 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인기가 많다니?

게다가 날 노리고 이 난리를 피웠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대체 왜?

“‘그분’께서 말씀하셨거든! 네놈이 우리들에게 쓸모가 있을지, 아니면 위협이 될 놈인지 확인해 보라고 말이야!”

그분이라면 분명 지금 황제파 잔당을 이끄는 녀석을 말하는 걸 테고.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쓸모 있는 놈인지 확인해 보려 했다고?

“…고작 그것 때문에 황금 은행을 털었다는 건가?”

“뭐…. 그렇지! 너가 몬스터들한테 죽었으면 별 볼 일 없었을 텐데, 살아남았으니 그건 아니네!”

“이런 미친…….”

불안한 예감은 어째 틀리는 일이 없을까.

황금 은행 습격이 앞당겨진 건 역시나 내 탓이었다.

내가 함부로 크로드에게 정보를 내뱉은 덕에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됐다.

녀석에게 말한 정보들은 모두 황제파 잔당의 상부로 흘러 들어갔을 거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왔을 테고.

단순히 영양가가 적은 정보라 알려 준 거긴 했지만, 문제는 내 존재 자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들은 모르는 위험한 정보들을 잔뜩 알고 있는 자.

놈들의 입장에선 크나큰 위협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자이기도 했다.

대륙 곳곳에 숨어 암약하고 있는 이들의 정보까지 난 다 알고 있었으니까.

같은 편이라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내가 놈들의 편을 들어 줄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놈이라면 차라리 제거해 버린다.

그게 황제파 잔당을 이끄는 놈의 생각이었다.

‘젠장…….’

그 결과 원래라면 수년 뒤에 있었을 대참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으로 앞당겨진 거다.

대금고에 숨겨진 고대인의 유물이 아닌, 나, 이안 임페라라는 이름의 거슬리는 인물 하나 때문에.

이건 내 실책이다.

황제파 잔당이 위험한 놈들임에도 방심해 버린 결과가 이렇게 된 거다.

침음을 흘리고 있던 내게 바르카가 조소를 띄우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녀석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그럼 다음 문제! 과연 넌 우리한테 위협이 될 만한 놈일까?”

“이 자식이!”

프리아나는 녀석의 말을 듣다 참다못해 검을 뽑아 들었다.

푸른 오러를 사정없이 내뿜으며 프리아나가 외쳤다.

“공자님! 저 녀석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녀석은 고갤 가볍게 끄덕였다.

일단은 계획대로 하자는 제스처였다.

바르카는 사역 랭크 보유자.

녀석이 사역하는 몬스터의 발만 잘 묶는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저도 돕겠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프리아나와 이슬린이 맘 편히 바르카를 상대 할 수 있도록 녀석이 사역하는 몬스터의 발을 붙잡아 두는 것.

난 서둘러 바르카가 사역하고 있는 몬스터를 찾았다.

하지만 중앙 홀엔 호위병들의 시체만 가득할 뿐, 몬스터로 보이는 건 없었다.

설마 흑마법?

시체를 되살려 몬스터로 만든 다음 상위종으로 진화시키려는 건가?

하지만 호위병들의 시체는 시체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흐흐흐! 뭐해? 날 상대해 보겠다며?”

바르카는 프리아나를 향해 도발적인 미소를 던졌다.

“이 자식이!”

“하압!”

이슬린의 손아귀에서 푸른 얼음 칼날이 뿜어져 나왔다.

얼음 칼날로 이루어진 거센 비가 바르카를 덮쳤다.

동시에 프리아나의 속검이 매섭게 쏟아졌다.

전신의 근력을 단 한 번의 검격에 집중시킨 어마 무시한 속도의 검격.

푸른빛의 잔영을 남긴 채로 프리아나의 신형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카앙!

하지만 바르카의 몸 주위로 생겨난 옅은 방어막이 이를 가볍게 막아 냈다.

이슬린의 아이스 블레이드도 하얀 눈꽃만 사방에 흩뿌렸을 뿐, 유효타로 이어지진 못했다.

“…흥!”

“계속 갑니다!”

둘은 이 정도는 예상했는지 물러서지 않고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프리아나의 몸을 따라 푸른 빛줄기가 반짝였고, 이슬린도 가진 마나를 모두 퍼부어 얼음 칼날비를 선사했다.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적은 사역술사 바르카 하나뿐이다.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다.

난 용린검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검에 오러를 띄우려던 그때.

손이 우뚝 멈춰 섰다.

계획대로라면 우리 셋 중 하나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와중에 바르카를 쓰러뜨려야 했다.

사역 랭크가 강한 건 어디까지나 몬스터를 부리고 있을 때니까.

하지만 녀석은 몬스터 하나 없이 혼자서도 둘을 가지고 놀다시피 했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난 불쾌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사역 랭크 보유자가 몬스터 하나 없이 둘을 상대한다고?

그 말은 바르카가 다른 랭크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린데.

그것도 프리아나를 가볍게 상대하는 걸 보면 최소 5 이상으로.

‘하.’

소설의 줄거리를 생각해 본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내 예상이 맞다면 지금 바르카의 사역 랭크는 6.

크로드에 버금가는 수준이지만 다른 랭크를 보유하고 있다는 묘사는 없었다.

난 이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깨달았다.

‘망할 년.’

사람을 능욕해도 정도가 있지.

이딴 장난을 쳐?

뿌드득!

이가 갈릴 정도로 화가 난 나는 싸움에 열중인 둘에게 명령했다.

“프리아나, 이슬린, 공격을 멈춰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맞아요! 공격을 멈추라니…….”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우린 이미 졌다.”

* * *

“꺄하핫! 이 녀석 벌써 내 트릭을 간파했어!”

바르카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안의 머릴 발로 잘근잘근 밟으며 말했다.

이안의 일행이 들이닥치는 순간, 솔루스의 최면 스킬이 작렬했다.

마법 랭크 6의 스킬 앞에 셋은 별다른 저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상태에서 바르카는 사역해 놓은 서큐버스를 사용했다.

외형은 눈알 3개 달린 징그러운 문어처럼 생긴 놈이지만, 대상의 꿈에 나타날 땐 가장 이상적인 이성의 모습으로 상대를 유혹하는 몬스터다.

하지만 바르카한테 사역 당한 지금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꿈을 만들어 이안 일행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옆에 선 체형이 다부진 남자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 갔다.

체형만 놓고 보면 검사라 볼 법한 남자지만, 이래 봬도 마법 랭크를 6까지 올린 괴물이다.

그의 이름은 솔루스.

카잔 황제의 복원을 꿈꾸는 반역자 무리의 주 전력 중 하나였다.

솔루스는 이안의 얼굴을 살펴보며 지팡일 고쳐 잡았다.

독특하게 생긴 지팡이다.

긴 나무 지팡이에 자그마한 용이 배배 꼬여 있는 장식이 눈에 띄었다.

용은 지팡이 중단부에서부터 몸을 꼬아 끝부분까지 칭칭 감겨 있었다.

그런 용의 입은 다시 용의 꼬리 부분을 문 독특한 형태를 띠었다.

황제파 잔당이라면 누구나 알아보는 무시무시한 장식이다.

우로보로스.

영겁의 기사단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장식이었다.

영겁의 기사단이라고 검술 랭크 보유자만 있는 건 아니다.

솔루스처럼 마법 랭크 보유자도 있고, 바르카도 사역 랭크 보유자지만 영겁의 기사단 소속이다.

저마다 보유한 랭크는 다양했지만, 한 가지는 같았다.

모두 어마 무시한 괴물들이라는 거다.

“정말 이놈이 벌써 눈치를 챘다는 건가?”

“그렇다니깐! 흐히힛!”

“허어…….”

솔루스는 그녀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놈들의 뒤통수에 서큐버스가 달라붙은 지 고작 수분조차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그 사실을 눈치챘다고?

범인으로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이놈은 위험하다.’

솔루스는 주군의 말을 떠올렸다.

‘황제 폐하의 재림에 위협이 될 놈이라면 제거해라.’

솔루스는 가지고 있던 지팡이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지팡이에 매달린 우로보로스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지. 놈이 위협이 될 만한 놈이라면 가차 없이 제거하라고.”

“흐응……. 하지만 좀 아까운걸? 이 자식 아는 게 한두 개가 아니라 했잖아?”

“…그랬지. 어디서 주워 들은 건지는 몰라도 기사단의 유물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하니까.”

바르카는 입을 앙다물곤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이내 다시 밝아졌다.

“아!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내 서큐버스로 이놈이 머릿속에 있는 걸 죄다 빼 오는 거야! 그럼 ‘그분’의 명령도 성공하고! 놈이 가진 정보도 얻을 수 있잖아?”

“그렇긴 하지만…….”

바르카의 말이 맞았다.

서큐버스로 녀석의 머릿속을 휘저어 놓아 폐인으로 만든다면, 가진 정보들을 술술 늘어놓을 거다.

죽이는 건 그다음에 해도 문제없다.

하지만 마법 랭크 6의 직감인지,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의 뒷목을 훑었다.

“흐흐흐! 조금만 기다려 보라구! 이놈이 아는 건 죄다 술술 불게 할 테니까…….”

“자, 잠깐!”

솔루스의 제지에도 바르카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서큐버스와 정신을 연결했다.

* * *

사역 랭크 6은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경지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프리아나와 이슬린의 협공을 홀로 상대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사역 랭크는 어디까지나 몬스터를 사역시키는 데 특화된 랭크.

개인의 전투 능력은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 말인즉, 지금 눈앞에 펼쳐진 모든 건 환상.

놈은 꿈을 조종하는 마물로 허상을 보여 주고 있다는 소리다.

“젠장.”

“키히힛!”

욕지거릴 내뱉자 눈앞의 바르카는 비열한 웃음소릴 터뜨렸다.

면상에 주먹이라도 한 방 박아 버리고 싶지만 그래 봤자 환영이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상황을 정리해 보자.

지금은 나뿐만 아니라 프리아나와 이슬린도 환영에 잡아먹혀 버렸다.

우리 셋의 본체는 환영 밖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을 테고.

잠들어 있는 우리 일행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터.

그런데도 녀석은 그러지 않고 굳이 환영을 보여 주고 있다.

‘왜?’

소설 속 묘사에 따르면 바르카는 극심한 사디스트 정신병자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그저 재미로 이런 능욕을 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르카 혼자 황금 은행을 털어먹을 순 없었을 거다.

필시 누군가 동참했을 텐데.

황금 은행의 결계를 모두 해제하고 눈치챌 틈도 없이 최면 마법을 적중시킬 강자라면?

‘솔루스겠지.’

영겁의 기사단 마법사 솔루스.

그가 함께 있다.

그의 성격이라면 바르카의 장난을 그저 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도 이런 귀찮은 방법을 썼다는 건, 아직 날 살려 둘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 목표겠지.’

아직 절망하기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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