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밖에선 벌써 자이언트 웜을 옮길 준비를 끝마쳐 놓은 뒤였다.
구르륵…….
거대한 몸집의 자이언트 웜은 온몸이 쇠사슬로 꽁꽁 묶인 채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전 사고가 있어서 그런지 입엔 커다란 입마개까지 하나 달아 놨다.
“엄청 크군.”
일반 자이언트 웜의 1.5배는 됨직한 덩치다.
이만한 덩치는 옮기는 것만 해도 비용이 꽤 나간다.
커다란 수레에 실어 마차로 옮겨야 하니까.
마차엔 녀석의 덩치 탓에 말을 네 마리나 더 연결해 놓은 상태였다.
“후후.”
애당초 목표가 자이언트 웜은 아니었지만, 공짜로 얻어서 그런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꽁꽁 묶인 자이언트 웜 옆엔 야르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은 똥 씹은 얼굴로 가볍게 고갤 숙이며 인사했다.
“오늘 있었던 사고에 대해 다시 한 번 사죄드리겠습니다.”
“괜찮다. 난 관대하니까.”
“…그럼. 사역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따로 사역 랭크 보유자가 있으신지요?”
“없다.”
몬스터를 부리는 데 꼭 사역 랭크가 있을 필요는 없다.
지금처럼 사역 랭크 4부터 가능한 ‘소유권 이전’ 스킬이면 따로 사역 랭크 없이도 몬스터를 부릴 수 있다.
대신 스킬의 대상자가 죽으면 몬스터가 통제를 벗어나고, 복잡한 명령은 불가능하단 단점이 있다.
‘워낙 온순한 몬스터니 별 걱정은 필요 없겠지.’
“그럼 소유권 이전만 해 드리겠습니다. 주인은 누구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음…….”
여기 이 덩치 큰 놈의 주인은 벌써 마음속으로 정해 뒀다.
“이 여자로 하지.”
난 이스바르트를 가리켰다. 이스바르트는 내 말에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네? 저 말씀이세요? 하지만 소유권은 공자님이나 에이먼 백작님께서 하시는 게…….”
“아니, 어차피 엔델로 광산을 관리하는 건 너다. 애초에 자이언트 웜을 선물 받고 싶다 한 것도 네놈이고. 혹시 우리 가문을 떠날 생각이라 거절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단지 저에겐 과분한 선물이라 생각해서…….”
“그럼 군말 말고 받아라.”
“감사합니다…….”
이스바르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하기사 나이가 좀 많은 놈이라 해도 100골드는 되는 녀석인데, 이 정도는 고마워해야지.
“소유권 이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야르타 옆에 있던 사역술사가 앞으로 나섰다.
사역술사는 왼손을 활짝 편 채로 자이언트 웜에게 가져다 댔다.
구르륵!
자이언트 웜이 살짝 움찔거리긴 했지만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파앗!
이내 사역술사의 손 위로 하얀빛이 떠올랐다.
“룬 문양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네…….”
이스바르트가 조심스레 왼손을 내밀자 사역술사가 그 위로 손을 겹쳤다.
그러자 빛은 그대로 이스바르트의 왼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끝났습니다. 이제 이 아이의 주인은 당신입니다.”
“히야…….”
이스바르트는 반짝이는 제 손을 보며 신기해했다.
‘생각보다 별 건 없네.’
“간단한 명령 같은 거라도 해 봐라.”
“네!”
이스바르트는 자이언트 웜을 향해 손을 내밀며 외쳤다.
“음… 울어 보렴!”
구륵!
그녀의 명령에 따라 자이언트 웜이 짧게 한 번 울었다.
“와! 됐어요!”
“잘 되는군.”
이스바르트는 새로 애완동물이라도 얻은 것처럼 뛸듯이 기뻐했다.
그런 그녀의 바로 옆에선 야르타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난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내 오늘 있었던 일은 모두 비밀로 해 주지. 그러니 걱정 말라구.”
“감사…합니다…….”
“그럼! 당연히 감사해야지.”
난 녀석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한 번 추켜세우곤 저택으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 * *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난 개운한 마음으로 저택에 도착했다.
잠깐 침실에서 눈이나 좀 붙이려던 차에 프리아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공자님.”
“뭐지?”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페시스 경매소로 향하신 진짜 목적을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흠.”
프리아나는 아직까지 그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난 슬쩍 웃으며 녀석에게 되물었다.
“자이언트 웜을 공짜로 얻어 온 것만 해도 꽤나 이득 본 거라 생각했는데. 그걸론 부족한가?”
“물론 그것도 대단한 수완을 발휘하셨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나절이나 마차 타고 가서 겨우 한 게 삥 뜯기라니.
겨우 늙은 자이언트 웜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다만 상대가 섬기고 있는 주인이니 녀석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후후. 물론 자이언트 웜 하나 얻으려고 그 고생을 한 게 아니지.”
“…역시 그러셨군요!”
프리아나는 묵힌 체증이 가시기라도 한 듯 표정이 밝아졌다.
난 품속에서 자이언트 웜의 배 속에서 집어 온 물건을 꺼내 들었다.
물건은 새하얀 손수건에 꽁꽁 싸인 채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이거다.”
“이게… 뭡니까?”
손수건을 풀어헤치자 감춰져 있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에 감춰져 있던 건 회색빛의 투박한 돌멩이 하나였다.
마핵처럼 반짝이지도 않고, 오히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똑 닮은 평범한 짱돌이었다.
프리아나는 그게 뭔지 감도 안 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난 자신만만한 투로 녀석에게 말했다.
“이건 평범한 돌멩이가 아니다.”
“그럼… 뭔가요?”
“‘완벽’한 돌멩이지.”
“…예?”
나도 말하면서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완벽한 보석도 아니고 완벽한 돌멩이?
하지만 이 돌멩이를 표현하기에 그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었다.
“…….”
프리아나는 완벽하다는 돌멩이를 뚫어져라 살펴봤다.
하지만 다른 특장점을 발견하지 못하곤 고갤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인지 제 머리론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후후. 그렇겠지. 겉으로 봤을 땐 다른 돌멩이랑 똑같이 생겼으니 말이야.”
잠깐 눈 좀 붙이려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쉬는 건 뒤로 미뤄야겠다.
“따라와라. 완벽한 돌멩이라는 게 뭔지 알려 줄 테니까.”
난 프리아나를 데리고 저택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하룬한테 잠깐 들려 모루 집게도 하나 빌려왔다.
집게 사이에 철판을 끼워 놓고 구부리는 용도로 쓰이는 도구다.
지금은 철판이 아니라 돌멩이만 하나 단단히 고정시켰다.
돌멩이가 집게 사이에 단단히 고정 된걸 확인하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프리아나.”
“네. 공자님.”
“저걸 한 번 베어 봐라.”
“돌멩이를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정돈 할 수 있겠지?”
프리아나는 살짝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두터운 철갑마저 뚫는 게 검술 랭크 5의 오러 소드다.
제 아무리 완벽하다는 돌멩이라 할지라도 그의 검격을 버틸 순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럼. 한 번 해 보겠습니다.”
프리아나는 허리춤의 검을 뽑아 오러를 끌어올렸다.
이내 푸른빛의 깔끔한 오러가 그의 검 주위로 피어올랐다.
…퍼석!
깔끔하고 간결한 검격이 돌멩이 위로 호를 그었다.
검선은 군더더기 없이 표적을 훑고 베어 넘겼다.
“…된 것 같습니다?”
애써 자이언트 웜한테 잡아먹히면서까지 가져온 돌멩이다.
그런 것치곤 너무 허무하게 잘려 버렸다.
프리아나는 아직까지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고 있었다.
“크흐흐! 베어 보라 하지 않았나? 내 눈엔 멀쩡해 보인다만?”
“예?”
“한 번 봐 봐라. 돌멩이가 잘렸는지.”
프리아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곤 돌멩이를 살펴봤다.
표적의 상태를 확인한 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검격이 깔끔하게 지나갔는데도 돌멩이는 마치 그런 적 없다는 듯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실수로 검이 빗나가기라도 했나? 한 번 다시 해 봐!”
…퍼석!
다시 한번 오러 소드가 표적을 훑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난 집게 사이에서 돌멩이를 뽑아냈다.
프리아나는 멍한 표정으로 돌멩이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허…….”
“허깨비를 보는 건 아니야. 이게 바로 ‘완벽’한 돌멩이의 힘. 아무리 베어도 다시 제 형태로 돌아오는 신기한 녀석이지.”
난 프리아나에게 보여 주기 위해 용린검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오러가 돌멩이 표면에 닿자 무 썰리듯 숭덩숭덩 썰려 나갔지만, 검이 떼지자마자 돌 표면에 난 틈새가 저절로 메워졌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겁니까?”
마핵 중에도 비슷한 게 있긴 있다.
자가 수복 스킬이 달린 마핵은 저장된 마나를 소모해 원 상태로 복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가능한 마핵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그게 거무튀튀한 돌멩이라면 더더욱 없고.
그렇다면 이런 정신 나간 돌멩이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대체 이 돌은 뭐죠?”
“누군가 실험 삼아 만든 돌멩이지.”
답은 간단했다.
이건 만들어진 돌멩이다.
아무리 베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돌멩이.
“만들었다뇨? 대체 누가 이런 걸…….”
“누구겠어? 마핵도 아니고 평범한 돌멩이를 이렇게 만들 만한 사람이.”
“…서, 설마?”
이런 걸 만들 놈은 온 대륙에 단 한 명밖에 없다.
프리아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오베론 스테이라. 이건 그가 남기고 간 유산이다.”
유산이라기보단 가지고 놀다 질려서 버리고 간 쓰레기에 가깝지만.
“이제 왜 완벽한 돌멩이라 하는지 알겠어?”
“그, 그렇군요……. 오베론 님께서 만드신 돌이라면 완벽이란 단어보다 어울릴 수식어는 없을 것 같습니다.”
프리아나는 신기한 듯 돌멩이를 요리조리 살펴봤다.
그러다 뭔가 이상했는지 고갤 갸웃했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물건이 왜 자이언트 웜 배 속에 있던 거죠?”
“흠… 말하자면 긴데.”
조금 귀찮았지만 프리아나의 궁금해 미칠 것 같아하는 표정에 어쩔 수 없이 설명을 시작했다.
“오베론이 대전쟁을 끝내고 자취를 감춘 거. 그건 알고 있지?”
“네. 무려 십오 년째 그림자조차 보이시질 않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럼 그가 남기고 간 연구 자료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나?”
“대전쟁의 화마로 모두 불타 없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상의 이야기지.”
“아…….”
여기까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있다.
“이해하기 쉽게 먼저 예를 들어 주마. 상위 검술 랭크들의 심득이나 초식은 나라에서 관리할 정도로 기밀로 유지된다는 거. 그건 잘 알고 있을 거다.”
“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베론이 남기고 간 마도학 연구 자료는 어떻겠나?”
“그건…….”
프리아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오베론은 마법 랭크 9다.
그가 끄적인 낙서 한 장이 랭크 상승의 계기가 될 정도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수천 년간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마지막 벽을 뚫은 자였으니까.
오베론이 사라지고 난 후, 왕국 연합의 수뇌부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두려워했다.
압도적인 전력의 제국이 한순간에 날아간 것처럼, 자기네들을 한순간에 날려 버릴 또 다른 괴물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래서 왕국 연합은 온 대륙의 자이언트 웜을 불러모았다. 그리곤 오베론의 흔적이 있는 곳은 죄다 자이언트 웜으로 초기화시켜 버렸지.”
“…….”
“개중엔 별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만 먹은 놈도 있었고, 오베론의 실험체를 삼킨 녀석도 있었겠지. 오베론의 실험체를 먹은 영향으로 쉽게 늙어 죽지 않는 놈을 가진 거고.”
“오…….”
그래서 페시스 몬스터 경매소에서 15살이 넘은 자이언트 웜을 찾은 거다.
운 좋게 딱 한 마리가 남았었고, 녀석에게서 이 돌멩이를 얻었다.
뭐가 나올지는 나도 알 수 없었으니, 하나의 도박이었다.
다행인 건 배 속에서 나온 게 내가 아는 물건이었고.
사실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 오베론이 싸지르고 간 쓰레기들은 꽤나 많이 나온다.
나야 그걸 살짝 앞당긴 수준에 불과했다.
여러 쓰레기 중에 가장 덜 위험한 녀석으로 말이다.
만약 위험한 물건이 나왔다면, 어떻게 해서든 숨겼을 터였다.
“역시 공자님은… 모르시는 게 없습니다!”
프리아나는 조금은 감격한 듯한 얼굴로 날 우러러봤다.
다행히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는 따로 물어보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까지 그런 이상했던 점이 한두 개도 아니고.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는 눈치다.
“그럼 이걸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혹시 이걸로 두 번째 벽을 넘을 생각이신 겁니까?”
“아니.”
난 녀석의 짐작에 짧게 선을 그었다.
그리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팔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