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감사합니다! 공자님! 공자님께서 나서 주신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이스바르트의 눈가에 감동의 눈물이 글썽거렸다.
하지만 감사해야 할 건 오히려 나다.
고작 사흘 만에 엔델로 광산의 채굴량이 늘었으니까.
아직은 야간조가 돈을 더 준다기에 더 열심히 일한 덕이 클 거다.
하지만 몬스터 구제비용이 줄었으니 수입이 늘어나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아직 빚 갚기엔 한참이나 부족하지만.
“이스바르트.”
“네! 공자님!”
“엔델로 광산을 잘 관리했으니. 상을 줘야겠지.”
“…네?”
“싫은가? 상이 아니라 벌을 원한다면 그리 해 줄 수도 있다만.”
“아, 아닙니다!”
그녀는 명백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럼. 혹시 원하는 거라도 있나?”
“으응…….”
갑작스런 상에 이스바르트는 입을 오물거렸다.
하기야 대뜸 상이라고 하면 뭔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지겠지.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주제넘은 발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가지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한 번 말해 봐라.”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말을 시작했다.
“그… 광산을 관리하는 데 있어 자이언트 웜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엔델로 광산에서 쓰던 아이가 죽은 뒤로 없는 채로 운영해 왔다고 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요구였다.
“자이언트 웜?”
“네. 땅을 파먹는 몬스터입니다. 덩치가 엄청 큰…….”
“자이언트 웜이 뭔지는 나도 안다.”
“아앗… 죄송합니다…….”
상을 준다 했는데 자이언트 웜이 갖고 싶다니.
자기한테 필요해서가 아니라 광산 관리를 위해 필요한 걸 원하고 있었다.
가신이 그런 말을 하는데 흡족하지 않을 주인이 어디 있겠나.
“크크크! 상을 준다 했더니 자이언트 웜을 원한다고?”
“…네.”
하지만 흡족한 것과는 별개로, 자이언트 웜은 비싸다.
제일 싸게 산다 해도 100골드는 족히 되는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놈이다.
“…잠깐.”
자이언트 웜이라.
며칠 전 오베론을 떠올린 탓일까.
불현듯 머릿속에서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어쩌면 황금 은행에 진 빚을 한 방에 해결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계획.
“…공자님?”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던 이스바르트가 날 보곤 걱정스런 표정을 띠었다.
“아. 신경 쓰지 마라.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러니.”
“아…….”
난 심각한 얼굴로 계획을 세워 나갔다.
오베론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대한 이용해 먹을 건 이용해야 하지 않나?
지금처럼 들이닥칠지 아닐지도 모르는 위협에 두려워할 게 아니라?
“후후.”
“…….”
이스바르트는 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도 못 잡는 눈치다.
방금까지 똥 씹은 얼굴로 있다 이젠 또 혼자 낄낄대니 미친놈처럼 보일 거다.
이슬린은 이제 익숙해졌는지 그러려니 했다.
“그래. 하나 사 주도록 하지. 자이언트 웜.”
“저,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공자 전하!”
이스바르트가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데 반해, 이슬린은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재정 상태라면 조금 빠듯할 거라 예상됩니다만…….”
“흐흐.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마라.”
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그럼. 바로 가 보도록 할까.”
“예? 지금 바로 말씀이십니까?”
“그래. 괜찮은 놈이 있는지 한 번 보러 가 봐야지.”
* * *
소설 속 세계관에선 다양한 랭크가 등장한다.
가장 수가 많은 검술과 마법을 비롯해서, 대장장이, 흑마법, 사역 등등 별 게 다 있다.
개중에 평가가 좀 특이한 랭크로는 아마 사역을 꼽을 수 있다.
몬스터를 부리는 사역 랭크는 쓰기에 따라서 흑마법에 버금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일상생활에 있어 사역 랭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랭크기도 했다.
자이언트 웜처럼 인간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몬스터도 있긴 하니까.
“우웁…….”
안 그래도 새하얀 이스바르트의 낯빛이 더 창백해졌다.
마차에 익숙하지도 않은 녀석이 반나절이나 마차에 갇혀 있었으니 그럴 만했다.
일행을 실은 마차가 향하는 곳은 페시스 초원.
아이소테르 왕국 내에서 사역 랭크 보유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페시스 몬스터 경매소.
몬스터를 사역하고 판매하는 경매장이 자리 잡은 곳이다.
“…….”
맞은편에 앉은 프리아나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로 명상에 빠져 있었다.
제니스 기사학교에서 승마술도 기본 교양으로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멀쩡했다.
“공자님… 살려 주세요…….”
이스바르트는 콧잔등이 발갛게 상기된 채로 울먹거렸다.
“그런다고 안 죽습니다. 자꾸 흔들림을 의식하니까 그러는 겁니다.”
“으으…….”
보다 못한 프리아나가 핀잔을 놓자 이스바르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슬슬 도착했나.”
창을 열어 보자 푸른 들판이 드넓게 펼쳐졌다.
높다랗게 자란 잔디 벌판 가운데로 줄 지어 세워진 천막들이 보였다.
모두 하나로 정돈되지 않고 크기가 들쭉날쭉했다.
개중엔 커다란 몬스터의 몸집을 감당 못하고 삐죽 튀어나온 천막도 있었다.
멀리서 본 페시스 경매소의 모습은 서커스장 같은 느낌이 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페시스 초원 초입에서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요.”
“어윽…….”
“고생하셨습니다. 공자님.”
프리아나는 얼른 먼저 짐을 챙겨 내렸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내렸고, 이스바르트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바들바들 떨며 초원에 발을 내딛었다.
“그래. 다들 수고했다.”
드넓은 초원에 발을 딛자 상쾌하면서도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끔 머릿속이 복잡할 때 바람 쐬러 와도 좋을 것 같은 분위기다.
“여길 다 와 보는군.”
“페시스 초원엔 처음이십니까?”
“음… 그렇다고 봐야지.”
소설에서 언급되는 부분으로만 알았지, 직접 와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감상을 말해 보자면… 애매한 땅이다.
페시스 초원은 일단 표면상으론 왕국령이다.
얼마나 대단한 땅이길래 왕국에서 직접 관리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실상은 아무도 가지려 들지 않아 왕국령에 속해 버린 땅이다.
곡물을 기르기엔 땅이 너무 척박했고, 말을 풀어 놓자니 날씨가 쌀쌀했다.
지금처럼 드넓은 초원 그대로 놓는 것 말곤 딱히 쓸데가 없었다.
귀족들이 페시스 초원을 관리하기 꺼려 했던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그러다 여기에 눈독을 들인 게 용병 클랜.
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돈을 모아 왕국에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경매소를 차렸다.
왕국 입장에서야 버려둔 땅에서 세금을 바치겠다니 좋고.
용병 클랜에선 다른 사람들 눈치 볼 것도 없이 몬스터를 파니 좋았다.
사람도 살지 않으니 몬스터를 끌고 다닌다 해도 눈초리를 사진 않았다.
그렇게 페시스 경매소가 생긴 지 10년.
아이소테르 왕국에선 제일 잘나가는 경매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럼 구경 좀 해 볼까.”
“예. 공자님.”
프리아나는 검집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내 뒤를 따라섰다.
이스바르트는 우리 둘 뒤를 따라오며 신기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히야…….”
페시스 경매소엔 야시장을 방불케 하는 천막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경매소 초입엔 소형 몬스터들이 주를 이뤘다.
크르르륵!
경매소에 들어서자마자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모두 단단한 철창에 갇혀 있거나 쇠사슬로 온몸이 칭칭 감겨 있었다.
그런 녀석들의 앞엔 단출한 복장을 한 용병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조용히 해 이눔아.”
용병 하나가 종이를 둘둘 말아 철창을 때렸다.
탁!
낑…….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을 노려보던 몬스터들도 분을 삭히며 철창 깊숙이 들어갔다.
저들 모두 사역 랭크 보유자들이다.
몬스터들을 사역한 뒤 이곳에서 놈들을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벌이는 괜찮은 편이다.
몬스터라고 다 징그럽게 생긴 건 아니다.
슬라임, 혼래빗 같은 건 귀엽게 생겨서 어린아이들한테 인기도 많았다.
이웃 왕국 사교계에선 귀여운 몬스터 하나씩 사역하는 게 기본 소양일 정도였다.
게다가 귀족들 중엔 괴랄한 성벽을 가진 놈들도 많다.
자기네들의 욕정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라면 얼마가 들던 개의치 않는 놈들이다.
운 좋게 그런 놈들 만나면 땡 잡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한테 욕정을 품는 건 좀…….’
내 기준에선 절대 이해가 안 가지만 세상엔 별의별 미친놈들이 많으니까.
“생각보다 호객 행위 같은 건 없군.”
“저들도 눈이 있으니까요. 애완용 몬스터를 사러 온 건지, 아님 사업장에 들일 몬스터를 사러 온 건지 구분하고 있는 겁니다.”
“뭐… 나야 편하고 좋지.”
온갖 몬스터들이 다 있지만 내가 찾으러 온 건 자이언트 웜이다.
그것도 아주 늙고 오래된 자이언트 웜.
이스바르트는 본래의 목적을 잠시 잊었는지 귀엽게 생긴 슬라임에 한눈이 팔려 있었다.
저런 천진난만한 여자가 뱀의 머리라 불리는 지독한 여자가 된다니.
‘아마 이제는 그럴 일 없겠지.’
날 따르게 됐으니 소설 속 전철을 밟진 않을 거다.
“이스바르트.”
“…네?”
“자꾸 뒤처지면 버리고 갈 거다.”
“아앗……! 죄, 죄송합니다!”
이스바르트는 황급히 내 뒤를 바짝 좇아왔다.
그렇게 페시스 경매소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서자, 슬슬 몬스터들의 생김새가 바뀌었다.
크라아아악!
거대한 악어의 모습을 한 몬스터가 요란한 괴성을 내질렀다.
“가만히 있어라!”
파지지직!
크라락!
주인으로 뵈는 남정네 셋이 달려들어 스킬을 퍼붓는데도 녀석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 외에도 몬스터 대부분이 덩치가 크고 사나운 놈들이었다.
아마 투기장 같은데 팔려 나가게 될 거다.
난 뒷짐을 진 채로 사람들을 부리고 있는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자이언트 웜은 비싸다.
그런 걸 팔려면 적당히 높은 자리에 있는 녀석에게 물어보는 편이 나았다.
“어이.”
“…아! 어르신! 페시스 경매소엔 어떤 일로 오셨는지요?”
녀석은 날 보자마자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녀석의 등 뒤론 거대한 오우거 한 마리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저만한 덩치의 오우거라면 사역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겉보기엔 능글맞은 장사치 같았지만, 꽤나 높은 랭크의 보유자임이 틀림없었다.
“이름이 뭐지?”
“후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은 야르타. 야르타 클랜을 운영하고 있기도 한 사람입니다.”
야르타라는 이름의 남자는 내 비위를 맞추려는 듯 밝은 얼굴로 고갤 숙였다.
“그렇군. 야르타. 사업차 자이언트 웜을 찾고 있다만.”
“자이언트 웜! 흐음… 마침 좋은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태어난 지 딱 2년 된 한창 팔팔한 아이입지요. 한 번 보시겠습니까?”
야르타는 자연스레 자기네 천막 쪽으로 손짓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건 찾는 녀석이 따로 있어서다.
“아니. 내가 찾고 있는 건 나이가 좀 있는 녀석이다.”
“나이가 있는 아이라시면……?”
“적어도 15년. 대전쟁 이전에 태어난 녀석으로 찾고 있다.”
내 말에 일순간 야르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녀석은 재빠르게 날 위아래로 슬쩍 훑었다.
그러다 녀석의 눈길이 허리춤에 검집에 잠시 머물렀다.
용린검의 손잡이 부근엔 붉은 사자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그걸 본 녀석은 금방 내가 누군지 알아챘다.
“…임페라 가문에서 오셨군요.”
“그래.”
내 가문을 알아차리자마자 녀석의 태도가 돌변했다.
“흐음… 대전쟁 전에 태어난 놈이라면 퇴역 시기가 되었을 텐데요. 아무리 값이 싸도 그런 놈들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이놈 봐라?’
프리아나는 숨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값이 싸도 쓰는 사람은 없다.
그 말은 돈 없으면 그냥 꺼지라는 뜻이기도 했다.
클랜을 운영하는 놈이기도 했으니 이래저래 들은 게 많을 거다.
그러니 임페라 가문에 대한 소문은 잘 알고 있을 테고.
베네르 백작을 몰락시키긴 했어도 임페라 가문이라면 둘째가 서러운 거지 중에 거지 백작가.
녀석은 내가 거지 백작가란 사실을 알고 날 얕잡아 보고 있었다.
손님을 앞에 두고도 저딴 말을 하다니.
“그건 내가 보고 판단할 일이다. 내가 언제 네놈의 의견을 묻기라도 했나?”
“…아하하.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야르타는 고갤 살짝 숙이는척하며 예의를 갖췄다.
하지만 날 향하는 눈빛은 그대로였다.
“흠… 마침 대전쟁 전에 태어난 놈이라면 하나 있습니다. 조만간 퇴역하기로 예정되었던 놈이었습니다만. 운이 좋은 아이로군요.”
녀석은 손에 들고 있던 명부를 뒤적거렸다.
“14구역에 위치해 있군요. 따라오시지요.”
놈의 행동 때문에 상당히 불쾌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건 이 녀석을 곤란에 빠뜨리게 될 테니까.
‘어디 네놈이 언제까지 그딴 식으로 나올지 보자고.’
난 녀석의 등 뒤에서 조소를 흘린 채 조용히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