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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50화 (50/222)

50화

“잘됐군.”

“공자님! 볼턴 가문의 생존자라뇨! 그건……!”

“왜. 별 볼 일 없는 가문이라 맘에 안 드나?”

“그런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숙청 대상에서 벗어난 자라 해도 왕국 연합의 감시망에 있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그런 이를 받아들였다간…….”

프리아나도 귀족 출신이다.

그런 만큼 왕국 연합의 눈 밖에 난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프리아나.”

“…….”

“이미 난 그 새…….”

에런골드 2세. 마음 같아선 육두문자를 쏟아 내도 모자랄 게 없었지만, 일단은 주군과 충성을 맹세한 귀족 사이다.

“…국왕 전하의 눈 밖에 난 몸이다. 지금껏 전하께서 뭘 했는지 모르나?”

“그건…….”

“아무것도 안 했지. 오히려 싸움을 부추겼다면 모를까.”

프리아나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에런골드 2세가 귀족들 간 싸움을 부추기려 보낸 게 프리아나니까.

“왕국 연합? 그런 놈들 눈 밖에 나는 건 얼마든지 상관없다. 내 영지를 살릴 수만 있다면.”

“…죄송합니다. 공자님. 제가 그만 주제넘은 짓을.”

프리아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갤 숙였다.

“난 내 영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거다. 그건 네가 제일 잘 알겠지.”

“공자님께선… 역시 그릇이 남 다르신 분이십니다.”

“알면 됐다.”

카앙! 카앙!

녀석과 흐르던 어색한 기류가 망치질 소리로 깨졌다.

창 밖 공방의 굴뚝에서 뿌연 연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잠잠했던 공방에 불이 들어왔다.

프리아나를 데리고 향한 곳은 새로운 저택에 딸린 공방.

저택 자체가 워낙 넓다보니 부지 내에 공방까지 하나 딸려 있었다.

‘이게 귀족이 운영하는 공방이지.’

저택 부지에 있는 공방이라고 크기가 작은 건 아니었다.

옛 임페라 뒤뜰에 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크기다.

공방 앞마당엔 뜨거운 열기를 식힐 큼직한 우물도 파여 있었다.

공방에 딸린 배수로에선 은은한 김을 내뿜는 열수가 배수로를 타고 흘러 나갔다.

그 외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희한한 기구들이 즐비했다.

대장장이질엔 그닥 아는 게 없어 잘은 모르겠다만, 하나같이 비싸 보이는 것들뿐이다.

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공방이다.

수준급 설비는 물론이고, 드워프 장인까지 있으니.

“크하핫! 역시 비싼 도구들은 제 값을 하는구만!”

드워프 대장장이 하룬.

하룬도 날 따라 새로운 저택으로 자릴 옮겼다.

지금은 브론즈 비어드란 예명으로 영지에 알려져 있다.

하룬은 신이 나서 망치를 두들겨 대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잠시 얼쩡거리자 하룬이 망치질을 멈췄다.

“응?”

“바쁜가?”

“아아! 내 정신 좀 보게! 망치질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만! 크하핫!”

하룬은 날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새로운 공방은 맘에 드나?”

“물론이지! 예전에 거긴 없는 게 너무 많아서 말이야! 용광로라 해 봐야 뜨끈한 손난로 수준이었지! 그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나 다름없다네!”

베네르 백작은 아티팩트 제작으로도 꽤나 쏠쏠한 수입을 만들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답게 베네르 소유의 공방은 수준급 설비를 자랑했다.

아예 옮기는 김에 하룬한테 공방을 내어줘 버렸다.

옛 대장간과는 비교가 민망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기껏 만들어 줬던 대장간을 손난로 수준이라고 하다니…….’

뭐 내가 쓸 것도 아니고.

하룬 맘에 들면 그만이다.

“후후. 네 맘에 들면 됐다. 그런데…….”

공방에 다른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기존에 일하던 인원이 분명 있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갔지?”

“흥! 그 돈만 밝히는 머저리들 말인가? 실력도 쥐뿔 없으면서 돈부터 선지급 해 달라 하더군! 화가 나서 그냥 다 잘라 버렸다네!”

“뭐? 아니 그래도 그렇지…….”

보아하니 기존에 공방 사람들과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다.

돈이야 월말에 일괄 지급할 예정이었는데.

이를 못 믿겠으니 선급으로 달라고 생떼를 부린 듯했다.

“…됐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건 그렇고. 단순히 순찰만 돌러 온 건 아닐 텐데?”

“흐흐흐! 눈치 하난 빠르다니깐.”

난 준비해 뒀던 마핵을 꺼내 들었다.

뿌리 거인을 처치하고 획득한 마핵.

녀석은 아직까지도 보랏빛으로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호오……. 이게 그 괴수에게서 얻은 건가?”

“그래. 품질은 어떤 것 같지?”

“흐음……. 솔직히 말하자면 품질은 그저 그렇군. 다만 알이 굵은 게 꽤나 오래 산 녀석인가 보구만.”

“그렇지.”

“한 번 줘 보게.”

하룬은 마핵을 받아 들곤 이리저리 살폈다.

손으로 꾹 눌러 보기도 하고, 마핵의 내부를 뚫어져라 바라보기도 했다.

마핵이라고 모두 마검의 재료가 되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 크기도 있고, 마물의 급도 중요했다.

난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 정도면……. 간단한 마검 정도는 만들 수 있겠군.”

“정말?”

“그래! 내가 어디 허튼말 하는 거 봤나? 원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 주지!”

“지금 당장? 으하핫! 나야 좋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크흐흐! 어디 자네 검 한 번 줘 보게!”

“여기!”

얼른 그의 말에 따라 허리춤의 검을 건넸다.

검을 뽑아 들자 자잘한 물결무늬가 빛에 반짝였다.

용의 비늘 형상을 띄었다고 해 붙인 이름.

용린검.

평범한 철검이었으나 하룬의 손길을 거치고 나서 한층 더 강력한 권능을 갖게 된 검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개화’라는 강력한 스킬을 가지게 됐으니까.

저장된 오러를 일순간에 내뿜는 강력한 스킬.

소설 속에서도 개화는 손에 꼽는 강력한 스킬인 쪽에 속했다.

‘하지만 마검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하지.’

마검은 간단한 스킬로 끝나는 게 아니다.

자체적인 오러의 보유.

검의 스킬이 같은 랭크를 이길 수 있게 한다면, 마검은 상위 랭크를 이길 수 있게 하는 검이다.

랭크가 전부인 이 세상이다 보니 마검의 효용성이 훨씬 높았다.

‘어느 정도 마검이 나올라나?’

드래곤 하트로 제작한 마검은 자아가 달린 ‘에고 소드’가 되기도 하던데.

뿌리 거인한테서 얻은 마핵이니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나한테 마검이면 감지덕지다.

기본적으로 한 자루에 수천 골드는 나가는 게 마검이니까.

“후우…….”

하룬은 마핵을 손에 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마핵을 쥔 손에 붉은 오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강력한 대장장이들만 펼칠 수 있다는 크래프트 오러였다.

‘그러고 보니 하룬 대장장이 랭크가 몇이었지?’

소설 속 설정에 따르면 드워프들에게 대장장이 랭크를 물어보는 건 상당한 실례다.

결과물이 아닌 숫자 놀음으로 자기네들을 판단하는 게 기분 나쁘다나 뭐라나.

그래서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만 랭크도 꽤나 높을 거다.

“크하아압!”

하룬은 얼굴을 구기면서까지 손아귀에 힘을 쥐었다.

붉은 오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소용돌이쳤다.

두꺼운 그의 팔뚝에서 핏줄이 불룩하게 솟아 나왔다.

파삭!

마핵을 쥔 그의 손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본다면 비싼 마핵이 산산조각 나는 걸로 알거다.

하지만 이는 마핵을 하나의 점으로 응축시키는 과정이다.

단단한 바위를 짜내 물을 만들듯, 마핵을 오러로 응축시켜 한 방울의 마수로 만들고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크래프트 오러를 보유한 장인들만이 가능한 기술이다.

‘신기하구만.’

원래라면 마핵과 광석으로 새로 검을 만들어야 한다.

그럼 용린검은 버려지는 입장이 된다.

하룬은 그게 신경 쓰였는지 용린검에 마검을 덧씌우는 방식을 택한 듯했다.

…또옥!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하룬의 손아귀에서 보랏빛 액체가 한 방울 떨어져 나왔다.

이는 그대로 용린검 위로 떨어지며 넓게 펴 발렸다.

츠츠츠츠!

마수를 빨아들인 용린검은 쾌감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부르르 떨렸다.

하룬은 다시 망치를 들고 용린검을 두드렸다.

카앙! 카앙!

그가 망치를 두드릴수록 마수는 넓게 펴지며 용린검 내부로 스며들었다.

‘저렇게 막 두드려도 괜찮나?’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힘으로 망치를 두들기는데도 검은 멀쩡했다.

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룬의 망치질이 끝나길 기다렸다.

“…후!”

몇 번 더 두들기고 나서야 하룬은 망치를 내려놓았다.

“자! 한 번 들어 보게나!”

“오오…….”

난 떨리는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용린검을 받아 들었다.

겉으로만 봐선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예전 그대로 물결무늬가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건 마검이다.

오러를 머금어야 그때부터 진가가 발휘된다.

용린검을 들곤 조심스레 오러를 불어넣었다.

“으응?”

오러를 주입하자 말로 표현하기 힘든 탈력감이 전신을 강타했다.

“크흐흐! 멈추지 말게! 마검이 그릇을 채워 가는 과정이니!”

“아. 이게 그거군.”

지금 마검은 죽은 상태다.

그러니 내 오러로 녀석을 깨워 줘야 했다.

그래야 채워져 있던 봉인이 풀리고 비로소 오러를 내뿜는 마검으로 변모한다.

일종의 마검 주인을 향한 테스트.

그런 거라면 질 수 없다.

…파아아앗!

마나를 최대한 끌어모아 용린검에 퍼부었다.

그제야 용린검은 마검이 가진 진짜 모습을 보여 줬다.

검술 랭크 4에 불과한 난, 어디까지나 검 주위로 옅게 오러를 띄우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마검으로 오러를 띄우자 이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츠츠츠츠!

용린검 주위로 공기가 베어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얕은 울음소릴 내는 용린검 주위론 선명한 오러가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용린검 표면의 물결무늬가 빛에 반사돼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이게 바로 마검!

랭크가 전부인 세상을 씹어 먹을 아티팩트!

내가 가진 오러뿐만 아니라 마검 자체에 달린 힘이 확성기마냥 오러를 증폭시켜 주고 있었다.

“히야!”

“오…….”

프리아나도 신기한 듯 용린검을 쳐다봤다.

“프리아나, 검을 뽑아라.”

“네!”

프리아나는 내 명령에 따라 검을 뽑았다.

곧고 길게 뻗은 새하얀 장검.

마검까진 아니지만 녀석의 검도 훌륭했다.

프리아나가 검에 정신을 집중하자 주위로 푸른 오러가 형태를 갖췄다.

“크…….”

두 검을 나란히 대고 비교해 봤다.

프리아나의 검이 더 또렷하긴 했지만, 외형만 놓고 보면 거진 비슷했다.

“신기하군요! 이렇게 단박에 오러를 향상시키다니!”

“후후! 하나 갖고 싶나?”

“으음……. 솔직히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입니다만……. 제가 추구하는 건 제 자신의 강함입니다. 아직 마검은 제겐 좀 이른 것 같습니다.”

프리아나는 눈을 부릅뜬 채로 대답했다.

하여간 뚝심 있는 놈이다.

이런 놈이니까 나중에 기사단장까지 오르는 건가?

뭐 프리아나는 프리아나고.

나는 나다.

예전부터 갖고 싶었지만 여러 여건상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게 마검이다.

“후후.”

난 용린검을 든 채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당장이라도 뭔가 베어 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이런 걸 받고도 검집에 재워 두기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이거 바로 실전 투입해도 되는 건가?”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놈이니 살살 다뤄야 한다네! 녀석이 크게 자랄 때쯤이면, 아마 랭크 차이도 극복할 만큼 강해져 있겠지!”

“으하핫! 고마워! 완전 대박인데 이거!”

“대단하십니다! 어쩜 마검을 이리도 간단히…….”

“간단히는 무슨! 덕분에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못하고 쉬게 생겼구만!”

“그, 그렇습니까?”

“크하핫! 그래도 내 친우를 위해 한 것인데 뭐가 불만이겠나?”

“고마워! 나중에 술 한잔 사지! 비싼 걸로다가!”

“술? 그것 참 듣기 좋은 소리로군!”

“일단 그건 나중에 사고. 프리아나! 당장 연무장으로 따라와라! 성능 테스트 한 번 해 봐야지!”

“네!”

난 얼른 프리아나를 데리고 저택에 딸린 연무장으로 달려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이스바르트도 내 밑에서 일하기로 했고, 영지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랭크빨로 세계정복!’에서 가장 중요한 아티팩트, 마검도 손에 넣었다.

빚이 문제긴 했지만, 갚을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콰아아앙!

하지만 연무장의 문이 박살 나는 그 순간.

그간의 평화는 먼지처럼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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