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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29화 (29/222)

29화

새로 무기도 얻었겠다 용린검을 가지고 연습을 좀 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다가왔다.

[이름 : 이안 임페라]

랭크 : 3(검술). 3(마법).

“…랭크가 오르지는 않는군.”

용린검이 좋은 검이긴 하지만 랭크까지 올려 주진 못했다.

첫 번째 벽을 아티팩트로만 넘으려면 꽤나 비싼 아티팩트가 필요했다.

장인의 솜씨도 필요하긴 하지만 뭐가 됐건 재료가 많이 들어가니까.

아무리 하룬이어도 망치질 몇 번 했다고 랭크를 올려 줄 순 없었다.

그나저나 신기한 검이다.

무게도 훨씬 가벼워진 것 같고 절삭력도 전이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흐흐……!”

이거면 로물루 정도는 이기지 않을까?

아무리 랭크가 달려도?

“…아니지. 괜한 도박수라도 던졌다가 죽으면 끝이야.”

난 용린검을 물끄러미 살펴봤다.

그러자 랭크가 나타나 있던 손바닥 글자가 바뀌기 시작했다.

[용린검 : 드워프 장인 브론즈 비어드가 만든 검.]

-아직 보유한 능력치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호오.”

그러고 보니 이런 설정이 있었지.

‘랭킹 빨로 세계정복!’의 세계관에선 아티팩트를 물끄러미 보면 해당 내력이 나온다.

하지만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거나, 마검 같은 경우엔 이처럼 능력치가 숨겨진 상태로 나온다.

이럴 경우엔 본인이 직접 발로 뛰어가며 능력치를 개방시키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감정사한테 맡기면 되는데, 그거야 어중띤 검에서나 가능하지 하룬이 만든 검이면 불가능했다.

직접 발로 뛰면서 확인해야 한다는 건데.

“도련님.”

“…이슬린인가?”

“네.”

“들어와라.”

그러자 메이드복을 입은 이슬린이 방으로 들어왔다.

옷이 불편한 듯 꾸물거리긴 했지만 겉으로 보기엔 꽤나 어울렸다.

“지시한 내용은 어찌 됐나.”

“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말씀드리려 왔습니다.”

이슬린을 통해 이안 클랜에 명령 하날 내려 뒀다.

로물루는 분명 베네르 백작이 숨겨 두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제 영지에 날뛰던 흑마법사를 고이 모셔 두진 않았을 게 분명했다.

놈이라면 저택 지하에 감옥이라도 만들어 놔 놈을 가둬 뒀겠지.

그렇다면 로물루도 베네르에게 그리 좋은 감정은 없을 거다.

얌전히 베네르 백작령을 떠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마을 하난 흑마법으로 깽판 치고 떠날 놈이다.

때문에 이안 클랜에게 베네르 백작령의 작은 마을을 둘러보라 명령했다.

흑마법사 혼자 큰 마을을 털진 못할 테고.

상대적으로 방비가 적은 중소 마을을 털어먹을 테니까.

“말씀하셨던데로 베네르 백작령의 작은 마을들에 부하들을 보내 놨습니다.”

“벌써 연락이 됐나?”

“네. 마법구에 통신 마법을 달아 놔 적당한 거리면 대화가 가능하니까요.”

“호오.”

통신 마법이 달린 아티팩트까지 가지고 있다니, 생각보다 제대로 된 체계가 있나 보다.

재수 없게 주인공한테 걸리는 바람에 박살 나 버린 케이스였나?

“그래서, 어떻게 됐지?”

“메이렌이란 작은 마을 근처에서 구울 하나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메이렌이라.”

소설에서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 적 있었다.

대리석이 나오는 걸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땅이 척박해 크기는 작지만, 귀족들의 사치품이 나오는 터라 수입은 꽤나 쏠쏠한 땅이다.

로물루 녀석이 노리기엔 최적의 타겟이다.

인구는 적으면서 베네르에게 타격을 입히기엔 최적인 마을.

“어쩌시겠습니까?”

타영지의 사람인 내가 들었을 정도면 베네르의 수하들에게도 곧 전해질 거다.

그럼 두 가지 상황이 오게 된다.

로물루가 또 도망을 치거나. 베네르의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둘 다 내겐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쩌긴. 잡으러 가야지.”

“부하들을 모을까요?”

이슬린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이내 고갤 가로저었다.

“아니. 가는 건 너랑 나만 간다.”

클랜을 흡수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합이 맞지도 않을뿐더러 괜히 로물루에게 당해 구울로 변해 버리면 오히려 더 골치 아파질 뿐이다.

그럴 바엔 이슬린 하나만 데리고 가는 편이 나았다.

“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이슬린은 곧장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겠다며 떠났다.

“성능 테스트 할 때가 왔구만.”

난 용린검을 허리춤에 차곤 떠날 채비를 갖췄다.

* * *

3년이다.

이 망할 백작놈의 지하 감옥에 자그마치 3년이란 세월이나 감금되어 있었다.

로물루는 지난 3년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베네르 그 망할 작자를 갈아 마셔 버리겠다고.

그런데 웬걸? 오히려 녀석이 나서서 그를 풀어주겠다는 게 아닌가?

조건은 간단했다.

백작의 공자한테 시귀폭을 터뜨리라는 것.

그걸로 이안 임페라라는 놈만 죽인다면 그간의 죄까지 말끔히 씻어 준다는 제안이었다.

놈이 약속을 지킬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로물루로선 베네르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제가 나서서 시귀폭의 재료까지 공급해 주겠다는데.

도망칠 것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로물루는 착실히 준비했다.

베네르에게 시귀폭을 공급하면서도, 몰래 자그마한 시귀폭을 따로 준비했다.

동물의 시체를 이용한 시귀폭.

크기는 작지만 베네르 백작저택의 지하 감옥을 부수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베네르 백작의 감시가 느슨해진 그때.

로물루는 숨겨 뒀던 소형 시귀폭을 터뜨렸다.

로물루는 자유의 몸이 됐다.

베네르 백작령엔 얼씬도 하지 말랬지만, 베네르가 그러했듯 로물루도 약속을 지킬 이유는 없었다.

풀려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자길 가둬 놓고 쓸 만한 카드인양 매만지고 있던 베네르 백작놈을 향한 복수.

베네르 백작령에 속한 작은 마을 메이렌.

인근 산에서 대리석이 나와 위병이니 자경단이니 뭐가 많았다.

아무리 로물루라 할지라도 저만한 수의 병사들을 상대하긴 힘들었다.

“흠.”

고민하던 그의 눈에 위병소 옆에 놓인 우물이 보였다.

우물 옆엔 위병 하나가 자릴 지키고 있었다.

로물루는 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에잇!”

그리곤 별안간 자기 머릴 강하게 내려쳤다.

연약한 흑마법사의 피부는 금세 찢겨 붉은 피가 줄줄 흘렀다.

로물루는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며 우물을 지키고 있던 병사에게 다가갔다.

이내 로물루를 발견한 병사는 그에게 소리쳤다.

“웬 놈이냐!”

“나, 나으리……! 살려 주십쇼!”

“으응?”

뼈만 앙상히 남은 채로 피를 흘리는 로물루의 모습에 우물을 지키던 병사는 금세 경계를 풀었다.

“무슨 일이지? 주변에 몬스터라도 나타났나?”

“그게…….”

로물루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작게 웅얼거렸다.

병사는 잘 안 들리는 듯 귓가를 로물루의 입에 가까이 했다.

“뭐라고?”

“…….”

“뭐라는 거야? 잘 안 들린다! 크게 말…….”

…피슉!

병사는 갑작스레 뿜어져 나온 마탄에 가슴팍을 꿰뚫리며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다.

“흐흐흐…….”

죽은 병사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자 죽었던 병사는 다시 일어나 인근 숲으로 떠났다.

혹시나 추격대가 온다면 로물루 대신 녀석이 이를 알아차릴 거다.

이제 우물을 지키는 병사는 없었다.

방금 감옥에서 도망쳐 나와 가진 건 두 손뿐이었지만, 우물에 독을 푸는 흑마법쯤은 손쉽게 시전 가능했다.

옹알이처럼 주문을 외자 로물루의 손끝에서 시커먼 액체가 한 방울 떨어졌다.

맑은 물 아래로 검은 꽃이 피어나듯 아지랑이가 퍼져 나갔다.

전보다 조금은 탁해지긴 했으나 주의 깊게 보지 않는 이상 구분하긴 어려웠다.

병사 하나가 물은 마신 이후, 위병소는 금세 끔찍한 지옥으로 전락했다.

“크라아악!”

“이, 이게 무슨……! 아아악!”

“크르르……!”

마을을 지키던 위병들은 어느새 로물루의 충직한 심복으로 전락했다.

위병들이 한순간에 구울로 변해 버리자 마을은 너무나도 쉽게 로물루의 손아귀로 들어왔다.

저항하던 영지민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남은 건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는 나약한 영지민뿐.

“대, 대체 왜 위병들이 우릴……!”

“나으리! 살려 주십쇼!”

“크륵!”

“아악!”

로물루는 구울이 된 위병들을 시켜 마을 사람들은 한곳에 모았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이는 가차 없이 목을 베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벌벌 떨기만 할 뿐이었다.

“크르르…….”

“뭐, 뭘 어쩔 셈이지?”

로물루는 그제야 제 본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 금발에 초록 눈을 가진 중년의 남자.

마을 사람들 중엔 그의 정체를 알아보는 이도 있었다.

“로, 로물루?!”

“로물루라고? 그자는 죽었다 했는데……!”

“흐흐. 아쉽겠지만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다만.”

로물루는 제일 먼저 자신을 알아본 녀석에게 다가갔다.

“아빠!”

“짐! 가, 가만히 있거라!”

“흐흐! 눈물 겹구만 아주…….”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물론 살려 줄 거야! 한 번 죽기는 하겠지만.”

* * *

“젠장.”

클랜의 정보망에 로물루가 걸린 건 어젯밤.

베네르 백작령에 속한 작은 마을 근처에서 구울을 발견했다는 정보였다.

밤을 지새워 가며 달려왔건만, 아무래도 조금은 늦은 듯했다.

평화로웠던 마을 주변엔 갑옷을 입은 구울들이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입고 있는 갑옷들이 멀쩡한 걸 보아 저항할 틈도 없이 당한 듯싶었다.

“이미 늦었나?”

안타까움에 혀를 차니 이슬린이 대꾸했다.

“아직 모릅니다. 구울 놈들로 경계를 서고 있는걸 보면 아직 마을에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요.”

“흐음.”

“아악…….”

“이건……!”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저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난 허리춤에 있던 용린검을 뽑아 들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무작정 나갈 수는…….”

“으음…….”

상황이 곤란하긴 곤란했다.

난 임페라 백작가의 후계자.

그리고 베네르 백작가와는 척을 져도 단단히 진 상태다.

그런 내가 베네르 백작령에 나타난다? 그것도 검을 들고?

그것만으로도 문제가 되긴 충분했다.

차라리 합리적으로 볼 땐, 영지민들이 모두 죽고 방심한 틈에 로물루를 노려야 했다.

그게 맞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저들은 내 영지민이 아니고 베네르 백작령의 영지민이니까.

하지만.

“아악… 제발 그만…….”

“쯧.”

이 비명 소릴 듣고도 그냥 넘어갈 만큼 냉혈한은 아니다.

놈은 분명 저들을 고문하고 있다.

원한에 사무친 시신으로 시귀폭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여기서 시간을 끌었다간 베네르의 사병까지 들이닥칠 거다. 그럴 바엔 지금 녀석을 막는 게 낫겠지.”

“…그렇죠.”

다행히 이슬린은 내 말에 수긍하는 듯 고갤 끄덕였다.

‘시험해 볼 것도 있고 말이지.’

자이겔론드 왕국의 정당한 후계자 하룬.

그가 두드린 검의 성능도 시험해 봐야 했다.

이슬린은 품속에서 마법구를 꺼내 들었다.

두꺼운 로브라 품 안에 뭘 잔뜩 숨기고 다녀도 티가 안 났다.

“구울들을 부탁한다. 난 바로 놈한테 갈 테니.”

“네.”

용린검에 마나를 불어넣자 검 주위가 푸르게 빛났다.

이에 응하듯 이슬린의 마법구에서도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갑작스레 뿜어져 나온 빛에 구울 한 마리가 고갤 돌렸다.

“크륵?”

서걱!

놈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용린검이 호를 그렸다.

그대로 깔끔하게 목이 달아난 녀석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난 얼른 잘려져 나간 놈의 머리통에 검을 꽂아 넣었다.

구울은 목이 달아나도 한동안 숨이 붙어 있다.

괜히 어설프게 처리했다간 위험할 수 있으니, 확실하게 박살 내야 했다.

콰드득!

옆에선 이슬린이 구울 한 마릴 통째로 얼음 기둥에 가둬 버렸다.

“알지? 구울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당연하죠.”

위병 구울들은 이슬린에게 맡기기로 하고, 난 곧장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차라리……! 죽여……! 제발 그만해……!”

로물루는 마을 사람 하날 묶어 놓곤 한창 고문에 빠져 있었다.

“흐흐흐! 내가 미치도록 밉지? 그래! 계속해서 원망해라! 숨이 끊어질 때까지!”

“끄아아악!”

‘저런 미친놈은 어디에나 있구나.’

제 기쁨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미친 놈.

그런 놈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

죽어서 시체가 되는 것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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