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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24화 (24/222)

24화

카각!

“뭐야? 이 새끼는?”

“이익!”

정체불명의 사내가 날린 단검을 막아 내자 녀석이 침음을 흘렸다. 기습으로 어찌해 보려던 심산이었나 본데.

미안하지만 이 드워프는 보통 드워프가 아니다. 황금알을 미친 듯이 찍어 낼 드워프지.

그런 드워프가 어이 없게 죽게 놔둘 것 같나?

나야 하룬이 정화시켜 준 덕에 제 컨디션을 찾았다지만, 녀석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시귀폭에 맞았다.

그러고도 멀쩡히 움직이는 것도 모자라 암기까지 달리다니.

‘X끼. 꽤 하는 놈인가 보네.’

“방해하지 마라!”

놈은 마나를 끌어모으곤 품 안에 숨겨 둔 단검을 꺼내 들었다. 짧은 단검 주위로 희미하게 오러가 일렁거렸다.

하지만 독에 당해 버린 뒤라 오러의 형태는 형편없었다.

‘저러면 한 방에 훅 갈 텐데.’

시귀폭에 당할 때 마나를 끌어올리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이다.

그럴수록 오히려 독기가 빠르게 돌아 온몸이 잠식당할 뿐이다.

저 녀석도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다.

이제 곧 폭발음을 들은 위병이 들이닥칠 테고, 그럼 상황은 더 암울해질 뿐이다.

하룬은 큼지막한 망치를 쥐고 내게 물었다.

“맡겨도 되겠나?”

순혈 스킬이 있으니 사람보단 구울 상대하는 게 편할 거다.

나야 구울 여럿 제끼는 것보단 빈사 상태의 사람 하나 처치하는 게 편했고.

“그래. 죽지 말라고. 물어볼 게 많으니까.”

“크하핫! 그럼 부탁하겠네!”

하룬은 내게 뒤를 맡기고 구울들에게로 달려갔다.

“편히 잠들거라!”

구울로 변한 이들은 이미 죽은 상태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임을 멈춰 주는 게 고인에 대한 예의였다.

콰직!

두툼한 망치가 구울의 머리통을 단숨에 짓이겼다. 단숨에 대가리가 박살 난 구울은 그대로 움직임이 멎었다.

“이… 자식이……!”

사내는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놈의 낯빛은 실시간으로 시커멓게 물들어 갔다.

“저쪽은 신경 끄고 마저 마무리하자고.”

“죽여 버릴 테다!”

녀석의 단검이 빠르게 쇄도했다. 짧은 단검으로 급소만을 노린 매서운 공격이다.

하지만 놈은 이미 독에 의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

녀석의 랭크가 어디까지였는진 모르겠다만 이만하면 상대할 만했다.

‘랭크빨로 세계정복!’의 절대적인 법칙.

하위 랭크는 상위 랭크를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상위 랭크를 하위 랭크만큼 약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난 녀석의 검 끝에 예의주시하며 공격을 막아 냈다. 예전엔 눈으로만 겨우 좇기 바빴지만 이젠 아니었다.

‘확실히… 이젠 어느 정도 몸이 따라 주는구만.’

옆구리, 팔목, 허벅지.

변칙적으로 파고드는 매서운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절대로 섣불리 반격에 나서지 않았다. 시간은 내 편이니까.

“이 자식! 비겁하게 굴지 말고 싸워라!”

“싫은데? 좀 있으면 뒈질 것 같은 놈이 무슨.”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의 움직임이 눈에 익어 갔다.

내가 강해진 게 아니다. 녀석이 독에 의해 계속해서 약해지는 중이었다.

‘독에 당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아마 같은 상태였다면 내가 졌을 거다.

하지만 그게 뭔 상관이냐.

공평하지 못하다느니 기사도에 어긋난다느니 그런 거엔 관심 없다.

이기는 게 장땡이니까.

“…쿨럭!”

계속해서 공격해 오던 녀석이 기침을 내뱉곤 몸 균형이 비틀어졌다.

이미 독이 버틸 수 없는 지경까지 퍼지고 만 거다.

‘지금이다!’

난 바로 이때를 노렸다.

재빨리 검을 들어 올리며 전투태세를 바꿨다.

‘우선은 가볍게.’

과거 발할라 시스템의 만렙이었던 기억보다, 사냥에 익숙하지 않았던 쪼렙이었을 때의 기억을 꺼내야 할 때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검을 휘두르며 녀석을 옥죄였다.

카앙!

“으윽!”

짤딸막한 단검이 내 검과 부딪혔다. 난 옛 기억을 조심스레 떠올렸다.

발할라 시스템으로 만렙을 달성했던 그때의 검술?

아니다. 아직 이안의 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강하다.

마신 아쉬타르의 첫 공세에 무너져 내려가던 그때.

살아남기 위해 발할라 시스템을 따라 검을 휘두르던 약하디 약하던 시절의 나.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싸움 방식이다.

약하지만, 적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며 발버둥 치던 그 시절의 검법.

이름 따위도 없는 보잘것없는 검술이지만, 한 방 한 방에 적을 죽이겠다는 살의.

‘확실하게. 적을 죽인다.’

온몸의 힘을 그러모아 검을 휘둘렀다.

마음 같아선 오러 소드를 뽑아 마나를 풀풀 풍기며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싸움.

거지 백작가 이안 임페라의 몸뚱이로 할 수 있는 싸움을 해야 했다.

‘…그래.’

마나를 검에 계속 두르고만 있으면 두세 번 휘두르는 걸로 마나가 바닥나 버린다.

그렇다면 검이 부딪히는 찰나의 순간, 그때만 마나를 발산시키면 그만이다.

모래알로 탑을 쌓는 듯 세심한 컨트롤이 필요했지만, 이보다 더한 컨트롤도 해 본 나다.

마나를 스위치 켜듯 깜빡거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카앙!

“크악!”

단검이 부딪힐 때마다 녀석은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그럴수록 놈이 내뿜는 오러는 점차 희미해져 갔다.

어느새 입가는 피로 흥건해졌고, 제 솜씨를 내는 건 더 이상 불가능했다.

저게 독 때문인지, 내공이 후달려서인지는 모르겠다만, 어느새 더 이상 뒷걸음질 할 자리조차 남지 않아 있었다.

그때, 검이 녀석의 팔목을 훑었다.

서걱!

“아악!”

단검을 쥔 놈의 손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요란한 혈흔을 주변에 흩뿌리며 주인 잃은 손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녀석이 떨어뜨린 건 오른손.

아직 왼손이 남아 있었다.

놈은 허겁지겁 남은 손으로 검을 쥐려 버둥댔다. 하지만 그걸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그만하지?”

“크으윽……!”

분한 듯 울분을 토했지만 저항할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놈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이제 움직일 힘도 없을 거다.

싸움은 끝났다. 내 승리로.

때마침 위병들이 주점 안으로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냐!”

…콰직!

때마침 하룬도 마지막 구울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참이었다.

주점엔 나와 하룬, 잘린 팔을 부여잡은 채로 무릎 꿇은 정체불명의 사내.

이렇게 셋만이 남아 있었다.

‘조금은 쇼맨쉽도 필요하겠지.’

비릿한 미소가 입가에 드리웠지만 얼른 근엄한 표정으로 고쳤다.

“이 녀석! 감히 이런 흉악한 짓거릴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그것도 금술까지 써 가면서!”

난 검을 두 손으로 고쳐 잡았다.

무릎을 꿇은 놈은 억울하다는 듯 다급히 말했다.

“자, 잠깐! 금술이라니!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다!”

난 녀석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소리쳤다. 위병들에겐 들리지 않고 놈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나도 알아.”

“무, 무슨!”

서걱!

검이 깔끔한 호를 그었고.

궤적을 따라 녀석의 목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이내 바닥을 나뒹굴었다.

* * *

“공자님!”

뒤늦게 달려온 위병들이 다행히 날 알아보곤 경례를 올렸다.

사고를 많이 쳤더니, 옆 영지 위병들까지 알아본다.

“어째서 공자님이 이런 곳에… 그리고 지금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술 한잔 기울이며 회포를 풀던 주점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곳곳엔 피와 살점이 낭자했고, 구울로 변했던 이들은 하룬의 망치 세례에 머리가 짓이겨졌다.

신원을 알아채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지럽혀진 시체가 주점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우웨엑!”

이를 본 위병 몇이 속을 게워 내기까지 했다.

하룬의 순혈 스킬 덕분에 시귀폭으로 인한 독기는 말끔히 사라진 뒤였다.

그냥 토한 것뿐이니 구울로 변하거나 하진 않을 거다.

방금 목이 떨어진 녀석의 머리통을 들어 올렸다. 녀석은 억울한 표정이 아직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구지? 이놈은?’

정황상 하룬을 노리고 온 녀석들이 분명했다.

시귀폭에 당하고도 그만한 솜씨를 보여 준 걸 보면 어중띤 놈은 아닌 듯했다.

녀석의 시신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의 소속을 나타낼 만한 걸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때 귀에서 하나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까마귀 문양이 그려진 귀고리라…….’

이런 문양을 쓰던 놈을 어렵사리 떠올렸다.

아이소테르 왕국과 카라든 왕국을 주영역으로 삼는 도적 클랜.

지오 클랜에 속한 놈들이 이런 문양을 쓰던 걸로 기억한다.

놈의 실력을 감안한다면……. 일개 클랜원은 아닐 것이다.

이 정도 실력으로 일반 클랜원이라면 지오 클랜은 더욱 악명이 높았겠지.

머릿속으로 소설 내용을 갖고 유추해 봤을 때 이 정도 실력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거기다 귀고리 자체가 고급진 거 보니, 이놈이 지오 클랜의 수장 지오 크리시니가 아닐까 싶었다.

‘흐흐. 대어를 잡았구만.’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가 작중에서 등장하는 건 소설의 초반부.

랭크 4의 애매하게 강한 놈으로 주인공 디아의 경험치 몹 같은 놈이었다.

‘랭크빨로 세계정복!’에서 랭크를 올리는 법은 다양했다.

개중에 제일 빠른 길은 자기보다 상위 랭크를 가진 자를 처치하는 거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이처럼 독에 당하거나 하는 일로 약화 될 경우엔 왕왕 있는 일이다.

그런 놈을 처치한 덕분에 랭크가 오르진 않았지만 꽤나 눈에 띄는 성장이 있었을 거다.

‘…지금 이런 거 가지고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지.’

난 얼른 표정을 바꾸곤 크리시니의 머리통을 들어 올렸다.

“이 녀석이 악독한 흉계를 꾸미고 있더군! 시귀폭이라고 들어 봤나?”

“시귀폭!”

이를 듣곤 위병 하나가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다른 위병들과는 달리 투구에 뿔 같은 게 하나 달린 녀석이었다. 위병대장쯤 되는 녀석 같았다.

“시귀폭이 뭐죠? 대장?”

“이 녀석! 위병이란 자가 그런 것도 모르느냐! 흑마법 중에서도 금술이라 여겨진 시체 폭탄 말이다!”

“허억! 그, 그거였어요? 이게?”

위병대장의 말을 듣곤 다른 위병들도 놀라 입이 벌어졌다.

저들 사이에선 시체 폭탄이란 말로 익히 알려져 있는 듯했다.

“너, 너 방금 토하지 않았어?”

“으응? 그러는 너도 토했잖아!”

“아니야! 난 그냥… 저녁에 상한 걸 먹어서…….”

시귀폭은 토혈을 하는 순간 끝난다.

다들 시체 폭탄의 무서움은 익히 알고들 있는 눈치였다.

“괜찮을 거다. 시귀폭으로 인한 독기는 불로 다 정화하고 난 후니.”

“그, 그렇죠? 아하하…….”

“너 이 새끼……. 방금 칼 뽑으려 한 거 기억할 거다.”

“으음…….”

상위 랭커가 사용하면 한 영지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을 악랄한 금술.

만약 시귀폭이 사람이 잔뜩 모인 왕도에서 터졌다면, 객잔 하나가 아니라 수천 명이 죽어도 모자랐을 거다.

“천하의 쓰레기 같은 놈!”

위병대장은 죽은 녀석의 몸뚱일 발로 걷어찼다.

시체에 대한 예우랄 게 뭐 있겠나. 날 죽이고 하룬까지 죽이려던 놈인데.

“정말 다행입니다! 공자님! 공자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니다. 임페라 백작가의 일원으로서 시민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의무. 오히려 다른 이들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아! 공자님!”

내 말에 위병대장이 감동의 눈물을 글썽였다.

난 겉으론 티내지 않고 속으로만 우쭐거렸다.

‘후후. 이거지.’

이안이 술만 처먹고 노다니기 바쁜 개망나니로 알려져 있지만, 이만한 활약이면 꽤나 좋은 소문이 돌 거다.

언젠가는 한 지역을 다스려야 하는 입장이니 평판을 쌓아 둔다고 나쁠 건 없었다.

“으음…….”

하지만 하룬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공자님? 실례지만 이분은…….”

위병대장은 드워프를 처음 보는지 짤딸막한 그의 키에 고갤 갸웃했다.

“신경 쓰지 마라. 내 친구니까.”

“아! 그러셨군요! 그럼…….”

위병대장은 주점에 널브러진 시체를 향해 눈짓했다.

슬슬 주변 상황 정리에 나서도 되겠냐는 의미였다.

대충 고갤 주억거리자 위병들은 주점의 뒷수습에 나섰다.

“…….”

“왜 그러지? 친구?”

“미안하네……. 나 때문에 이런… 읍!”

뭐라 말하려는 그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그 얘긴 나중에 하지. 보는 눈이 많아서 말이야.”

그리곤 손을 떼자 멋쩍은 듯 고갤 끄덕였다.

“아……. 그래야지.”

이로써 이 녀석한테 큰 빚을 하나 지우게 된 셈이다. 드워프 영입 계획에 한걸음 다가가는 일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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