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9화 (19/222)

19화

[죽어도 상관없음. 이안 임페라 본인이 적음.]

“이거면 됐나?”

“어엇…….”

“이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하진 않았음 하는데. 혹시 궁금한 건가? 내가 화나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죄, 죄송합니다! 그럼…….”

경비병들은 쪽지를 고이 받아 들곤 던전의 문을 열었다.

구구구……!

육중한 두 개의 철문이 열렸다.

그 너머로 어두컴컴한 던전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난 그대로 경비병을 지나쳐 들어가려다 멈칫했다.

“부탁 하나만 하지.”

“네! 뭐든 말씀하십쇼!”

“앞으로 일주일간 이 안에 아무도 들이지 말아라. 매일 아침 내가 올 테니.”

“이, 일주일이나요?”

“…….”

“…네! 알겠습니다요!”

“그래. 그럼 그리된 걸로 알겠다.”

…쿵!

두터운 철문은 던전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어두컴컴했던 던전은 철문이 닫히자마자 환한 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주한 던전의 모습은 바깥에서 보던 외형으론 상상 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호오.”

분명 밥그릇 엎어 놓은 것마냥 생겼던 바깥 모습과는 달리 던전 안쪽엔 좁은 협곡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양옆의 흙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솟아 있었다.

저기 너머엔 뭐가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 아무것도 없을 거다.

협곡의 한쪽 끝엔 내가 들어온 철문이 자리 잡고 있었고, 저 멀리 반대편엔 들어온 것과 동일한 철문이 하나 더 있었다.

“이런 식이구만.”

던전 내부는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가 알고 있는 던전과 유사했다. 멸망한 옛 세상의 ‘탑’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탑은 계속해서 올라가야 하고 던전은 내려가야 한다는 것 정도?

저쪽에 난 문을 열고 내려가는 게 발디그 던전의 클리어 조건이다.

“보면 볼수록 이상하단 말이지.”

어째서 이 세상은 내가 살던 세상과 이토록 흡사한 걸까?

발할라 시스템뿐만 아니라 탑까지 유사할 줄이야.

“…이런 데 신경 쓸 때가 아니지!”

고갤 홰홰 저어 잡념을 떨쳐 냈다. 그런 건 나중 문제다. 일단 지금은 랭크업부터가 시급했다.

“그러니까…….”

읽었던 소설 속 내용을 떠올려가며 이곳 던전이 가진 특이점들을 정리했다.

발디그 던전.

지금은 보물이 씨가 말라 잡다한 몬스터들만 나다니는 잡던전.

그리고 ‘그 아티팩트’가 숨겨져 있는 던전.

협곡을 뚫고 반대편 문에 손만 가져다 대면 끝나는 간단한 던전이다.

그 사이엔 몬스터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고.

“케르륵…….”

던전에 진입했지만 거리가 좀 있어서 그런지 마물들의 이목을 끌진 못했다.

주로 코볼트나 고블린 같은 약한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크로드쯤 되는 괴물이면 일합에 던전을 청소하고도 남겠지만, 평균 랭크 2.5의 청정수인 나에겐 세 놈 이상 상대하긴 버거웠다.

“그래서 이걸 가져왔지.”

크기만 무식하게 큰 방패.

대장장이 랭크를 보유한 건 아니라 제대로 된 아티팩트는 못 만든다.

‘어디서 솜씨 좋은 장인이라도 하나 있음 좋았겠다만…….’

그래서 만든 게 이거다.

크기만 무지막지하게 큰 방패.

두툼한 나무판자에 손잡이랑 마감을 덧댄 조악한 몰골이다.

아마 이걸 방패로 쓴다는 얘길 들으면 고갤 갸웃할 정도다.

이걸 방패로 어떻게 써? 벽으로 쓰는 거면 몰라도.

“이렇게 말이지.”

…쿵!

큼지막한 나무 방패를 협곡 한켠에 내던졌다. 육중한 무게 탓에 큰 진동이 던전 내부로 울려 퍼졌다.

“케륵?”

덕분에 내겐 이목조차 갖지 않았던 마물들의 시선이 한데로 쏠렸다.

“키이이익!”

놈들은 제 영역에 침범한 불청객을 향해 포효성을 내뿜었다.

그리곤 날 찢어 죽이려는 듯 좁은 협곡길을 따라 달려들었다.

“크흐흐! 그래! 와라!”

놈들의 이목은 도미노마냥 날 향해 쏠리기 시작했다. 저만치 협곡 반대편 끝자락에 있는 놈들도 어느새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수가 대충 어림잡아도 백 마리가 조금 안 되어 보였다.

“히야……. 더럽게 많네.”

여긴 개체수 때문에 적어도 다섯의 파티를 짜 공략하는 게 보통이다.

성인식이라 해도 혼자 보내는 게 아니다. 귀한 귀족 나리가 죽었다간 큰일이니 똘똘한 가신 넷에 귀족 하날 껴 놓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떨어지는 경험치는 줄어든다. 반대로 말하면 혼자 할 땐 경험치가 다섯 배!

공략법만 알면 충분히 깨고도 남는다. 그게 어려워서 그렇지.

쿠구구구…….

수십 마리에 달하는 마물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방패로 단단하게 막아 둔 터라 가뜩이나 좁았던 협곡길이 더 좁아졌다.

자그마한 코볼트와 고블린의 대가리만 겨우 비집고 나올 정도의 틈. 그게 놈들과 나 사이에 허용된 길이었다.

“키에에엑!”

어느새 재빠른 코볼트 한 마리가 지척까지 달려왔다. 하지만 방벽에 가로막혀 발버둥 치는 게 고작이었다.

아무리 무거운 방패여도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면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런 일은 막아야 하니 방패 밑 부분과 손잡이 부근에 철심을 박아 뒀다.

든든한 지지대까지 생긴 방패는 마물 놈들이 아무리 대가릴 들이박아도 꿈쩍도 않았다.

“키익!”

연신 대가릴 처박던 마물 한 놈이 틈을 발견했다.

놈의 대가리가 겨우 통과할 법한 작은 틈. 이상함을 느낄 만도 했지만 코볼트나 고블린의 머리론 부족했다.

새빨갛게 충혈된 고블린의 눈동자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푸각!

이내 차가운 검 한 자루가 놈의 미간을 꿰뚫자 분노로 가득 차 있던 눈동자가 흰자윌 드러냈다.

“크르르!”

방금 동료 한 놈이 죽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놈이 다시 고갤 들이밀었다.

그럴 때마다 사이좋게 먼저 간 녀석을 뒤따라 죽어 나갔다.

두두두두…….

“으음…….”

손쉽게 처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수가 너무 많다.

방패에 박아 둔 철심이 버티질 못하고 움찔댔다. 이대로 놔뒀다간 아무리 두꺼운 방패라도 거덜 날 듯싶다.

“그럼…….”

준비해 뒀던 ‘이거’.

준비한 병 안에는 내가 며칠간 모아 둔 독 연기가 있었다.

이 던전에 들어오기 위해, 독 마법을 배운 뒤 병에 그 마법을 모았던 것이다.

아직 랭크 2의 마법이라 병을 채우는데도 몇 번을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현장에서 마법을 쓰기엔 내 마력이 너무 미천하기 때문에,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선 이렇게 준비를 해야 했다.

호흡기 쪽을 천으로 막고 멀찍이 병을 던져 넣었다.

병이 깨지며 보라색 연기가 피워 올랐다.

“케륵?”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연기를 들이마신 놈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가쁘게 숨을 헐떡거렸다.

“키에엑!”

카가가각!

빨리 자리에서 도망 쳐 보려 방패를 긁어 댔지만 독기를 들이마신 터라 힘은 더욱 약해져 있었다.

“케르르륵……!”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일 먼저 독기를 들이마신 녀석들이 비틀거렸다.

…펑!

“됐다!”

그제야 처음 들이닥친 무리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다음부턴 식은 죽 먹기였다.

독기가 가실 때까지 버티고 이따금 틈 사이로 고갤 들이민 놈들은 처치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독기가 가시면? 하나 더 던지면 그만이다.

지리한 반복 끝에 어느새 협곡 가득했던 마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후!”

주위 몬스터가 싸그리 씨가 마르고 나서야 호흡을 가다듬었다.

공략법을 알고 있던 터라 깨는데 상처 하나 없이 끝났다. 시간으로 따지면 열 시간 정도 지났나?

“흐아……. 그래도 셀렌 녀석 영향이 나타나기 전에 끝났네.”

해가 지고 나서부턴 달의 악신 셀렌의 시간이다. 그때부턴 몬스터들도 한층 더 강해진다.

마법 랭크 2의 청정수가 내뿜는 독기 따윈 하루 웬 종일 들이마셔도 멀쩡했을 거다.

아그작!

미리 준비해 둔 간식을 우적거리며 허기를 달랬다. 입이 바싹 마른 터라 육포를 먹을 순 없었다.

오이 비스무리하게 생긴 과일은 꽤나 맛이 좋았다.

달착지근한 맛에 과즙이 가득해 지금처럼 몸 한 번 쓰고 먹기엔 딱이다.

그렇게 가져온 과일이 모두 동나자 다시금 체력이 되돌아왔다.

“흠.”

단단히 땅에 박혀 있던 방패엔 죽은 마물들에게서 얻은 상흔이 가득했다.

그나저나 이 방패, 다시 가져가는 것도 일인데.

그냥 버릴까?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던전을 클리어 했으면 보상부터 챙겨야지.

촤르륵!

죽은 마물 놈들이 남긴 잡동사니들을 그러모았다. 그닥 강한 놈들은 아니라 마핵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마핵은 어느 정도 급이 있는 마물에게서만 나오는 마나의 결정체.

그보다 한참이나 급 낮은 놈들한테 나오는 건 마정석 정도다.

마정석은 대충 두 주먹 정도 나왔다. 마핵만큼 값나가는 놈들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용돈 벌이 정도는 될 거다.

“하긴. 이깟 놈들한테도 마핵이 나오면 마핵이 비쌀 리가 없지.”

아쉬운 대로 마정석을 싹싹 긁어모아 배낭에 담았다.

“마정석은 이만하면 됐고.”

이른 아침부터 마정석이나 주우러 발디그 던전에 온 게 아니다.

주인공 디아가 갖게 되는 기연 중 하나.

그러면서도 이안에겐 지독한 악연이 돼 버리는 아티팩트.

헤카테의 안면갑.

그걸 가지러 왔다.

“독 저항을 늘려 주는 아티팩트였지. 그리고 그건…….”

날 죽이게 될 아티팩트이기도 했다.

* * *

“아악……!”

“배, 백작님!”

베네르 백작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망할 임페라 백작가!

드디어 가문의 숙원을 끝내는가 했는데!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를 기사 놈한테!

“크으윽……!”

“고, 고정하시옵소서! 지난번처럼 또다시 정신을 잃으시면 큰일 나십니다!”

“이… 머저리 같은 기사 놈 때문에……!”

베네르는 마음 같아선 프리아나를 갈아 마셔 버리고 싶었다.

그가 결투 재판에서 이기기만 했어도 됐을 일인데.

멍청하게 자신하더니만!

하지만 프리아나는 몸을 회복하자마자 베네르 백작령을 떠났다.

‘흥! 머저리 같은 놈! 보나마나 어디서 굴러다니다가 굶어 죽겠지! 암! 그렇고말고! 그 망할 개자식은 반드시 그렇게 죽어야 해!’

베네르는 그가 떠올릴 수 있는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병상에서 간신히 일어난 것도 비난의 화살을 그에게 돌려 마음이 조금은 풀린 덕분이었다.

“끄응…….”

그의 집사 아르베르토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주인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베네르의 나이 대엔 화병으로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가뜩이나 가문의 앞날에 제동이 걸린 지금.

베네르가 죽어 버리면 가문이 휘청거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른 귀족들이 호시탐탐 때를 노리는 이 시국에 그럴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지?”

“이, 일주일이 조금 넘었습니다.”

“하아…….”

일주일이나 가주가 자릴 비웠다.

평시라면 모를까 지금 같은 시기엔 적잖이 긴 시간이다.

그가 어서 정신을 다잡어야만 했다.

그게 가주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하게.”

베네르는 평온을 되찾으려 애썼다.

그런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집사가 올린 보고는 다분히 충격적이었다.

“뭐, 뭐라?”

임페라 백작의 외동아들, 이안 임페라.

녀석이 빼앗아 간 발디그 던전에 들어가는 걸 봤단다. 그것도 제대로 공략할 심산인지 괴상한 아티팩트까지 주렁주렁 매고서.

베네르는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현기증을 느꼈다.

“으윽……!”

아르베르토는 아차 싶었다.

이럴까 봐 가급적 보고를 늦추려고 한 건데.

“임페라 가문에서 쓴 그 기사……. 누군지 알아봤나?”

“으으……. 알아보려 노력했습니다만… 아무리 수소문해도 누군지 나오질 않습니다. 아마 방랑기사인 듯한데.”

“…에잇!”

“악!”

“이 멍청아! 당연히 방랑기사겠지! 그까짓 가문을 돕는 놈이 제대로 된 기사겠어!?”

“죄, 죄송합니다!”

“…….”

“배, 백작님?”

“…후.”

다행히 그가 또다시 정신을 잃는 사태까지 가진 않았다.

되려 뭔가 결심을 굳힌 듯 냉정한 눈빛을 되찾았다.

그의 입술을 비집고 한마디 단어가 튀어나왔다.

“로물루.”

“…예?”

아르베르토는 제 귀를 의심했다.

로물루라고? 그 미친 흑마법사 놈? 대체 녀석은 왜 찾는 거지?

…설마?

“로물루를 만나야겠다.”

베네르의 말을 들은 집사는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하지만 거절할 순 없었다.

주인의 뜻이라면 반드시 따른다. 설령 그게 악인의 길이라 할지라도.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