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내 눈 역시 베네르 백작 옆, 대행인을 향해 있었다.
‘저게 프리아나.’
젊은 나이에 레벨 5가 된 괴물.
소설에서 에이먼의 손목을 잘랐던 인물이며, 이야기 진행에도 큰 비중을 가졌던 남자.
‘실제로 보니, 더 날카롭게 생겼네.’
아무래도 소설의 이미지보다 조금 앳돼 보였다.
소설의 본편보다 과거다 보니, 아직 성장을 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프리아나를 관찰하고 있을 때, 드디어 한 남자가 중앙으로 나왔다.
“…하여. 위대하신 결투의 여신 트라이어스 님께 정의를 묻고자 한다. 이의 있는가?”
살집이 두툼하게 오른 법관이 땀을 삐질거리며 물었다.
에이먼도 배가 뽈록 튀어나온 중년의 아저씨 모습이었지만, 법관 앞에 서니 오히려 날씬해 보일 정도다.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두 백작은 법관에게 공손히 답을 올렸다.
일개 법관이라지만 재판을 위해 온 지금은 왕의 대행인이나 다름없었다.
귀족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왕의 예의를 갖춰야 했다.
“그럼. 결투를 시작하겠다. 결투에 나설 용사들은 자리에서 나서도록.”
“흐흠! 그럼…….”
베네르 백작은 함께 온 시종들을 향해 고갤 까딱였다.
그러자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던 짧은 단발의 남자가 결투장으로 나섰다.
프리아나는 재빠른 속검이 장기.
따로 검술을 보진 않았지만 겉으로만 봐도 태가 났다.
다부진 어깨에 총기가 가득한 두 눈.
결투장을 향해 천천히 걷기만 했는데도 걸음걸이에서 박력이 느껴졌다.
‘랭크 5는 저 정도구나.’
랭크 5부턴 그야말로 천재의 영역이다.
범인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닿을 수 없는 아득한 벽.
괴물의 영역.
원래 예정대로라면 에이먼의 왼손을 베어 내 블랭크로 만들려는 자.
‘저 사람이 프리아나.’
멀리서 봤을 때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장차 아이소테르 왕국 기사단장에 오르기도 하는 캐릭터.
프리아나가 결투장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흥.’
고작해야 서른도 안 됐을 듯한 젊은 기사.
그런데도 랭크가 5나 됐다. 이건 어마어마한 메리트다.
장차 랭크 7의 벽까지 깰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이게 음모의 시작이란 거지.’
프리아나를 제외한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앞길 창창한 기사 유망주가 고작 깡촌 결투 재판의 대행인으로 나선다니.
나름 머리 좀 쓴다 자부하는 베네르 백작이지만, 녀석이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저자는 너무 유능했다. 우리 두 가문의 알력에 끼어들기엔 말이다.
베네르 백작의 예정대로라면 임페라 백작가는 결투 재판이 끝나고 얼마 못가 몰락해야 한다.
하지만 이안은 몇 년 뒤 주인공 일행이 저택에 들를 때까지 멀쩡히 살아 있다.
베네르 백작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단 소리다.
제니스 기사 학교 출신의 프리아나.
장래에 아이소테르 왕국 기사단장이 되기도 하는 남자.
그게 바로 대행인의 정체였다.
그리고 그가 이런 깡촌까지 내려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이소테르 왕국의 주인 에런골드 2세.
이 깡촌에서 시작된 정쟁은 두 가문만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묘하게 유지되던 힘의 균형이 깨지고. 베네르와 임페라 가문 말고도 수없이 많은 가문들이 서로 죽어라 싸우게 된다.
그 결과 귀족들은 서로 간의 정쟁에 휘말려 쇄락하고, 반대급부로 아이소테르 왕권은 더욱 강성해진다.
지금 열리는 결투 재판은 이 모든 계략의 시작이었다.
‘지독한 놈 같으니.’
그런 악랄한 수작에 순순히 당해 몰락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프리아나가 져도 괜찮은 건가?
소설대로라면 프리아나는 결투에서 승리한다.
그리고 수고를 무릅쓴 대가로 기사단에 들어가고 나중엔 기사단장의 자리까지 차지한다.
그런 그가 여기서 패배한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에잇 X팔. 까짓거 알 게 뭐야. 내 코가 석 잔데.’
소설 내용과 좀 달라지는 부분이 생기겠지만 어쩌겠나. 이쪽이 지면 죽을 텐데.
“준비는 끝났습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끝낸 프리아나가 법관에게 말했다.
베네르 쪽은 벌써 준비가 끝났다.
남은 건 우리 임페라 쪽인데.
“임페라 백작. 용사는 어디 있지?”
“그건…….”
에이먼이 체념하고 나서려는데.
“여기 있다.”
후줄근한 겉옷을 두른 남자가 결투장 위로 올라섰다.
짜식. 그래도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왔네.
약속을 어길 수 없을 것임을 알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바로 전에 나타나는 건 너무했지만.’
두툼한 판금 갑옷을 거적때기로 대충 가린 그때의 그 모습이었다.
“저, 저자는?”
크로드를 난생처음 보는 에이먼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눈치다.
“말씀드렸잖습니까. 대행인을 구해 보겠다고.”
“어, 어디서 그런 사람을…….”
“뭐 적당히 술친구 중에서 골랐습니다.”
방금까지 사지로 내몰렸던 에이먼은 대행인을 보자 혀가 풀린 듯 말까지 더듬었다.
자세한 설명은 넘기기로 했다.
괜히 영겁의 기사단이란 말을 했다간 일이 틀어져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처형당하고도 남을 테니까.
“크흠……!”
법관은 크로드를 보곤 살짝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의 행색을 한 번 훑어보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행색이 워낙 꾀죄죄한데다가 상대가 상대니만큼 크게 개의치 않은 거다.
설마 랭크 5가 지겠어? 이깟 깡촌에서 나온 대행인한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럼. 양측 용사는 앞으로 나오시길.”
마침내 결투 재판의 준비가 모두 끝났다.
남은 건 결투의 여신이 누구에게 미소 지을지 확인하는 것뿐.
“어이.”
결투장에 올라선 크로드가 낮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약속은 기억하고 있겠지?”
“크흐흐! 한 달 만에 만나서 하는 소리가 고작 그거야? 그야 당연하지!”
“흥.”
크로드는 다시 한번 확답을 받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난 건너편 자리에 선 베네르 백작의 반응을 살폈다.
맨 처음 크로드가 등장했을 땐 살짝 쫀 것 같더니만, 후줄근한 그의 행색을 본 뒤론 줄곧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한 번 장난 좀 쳐 볼까?’
랭크을 안정적으로 올리면서 베네르 백작에게 빅엿을 선사할 계책.
난 결투가 시작되기 전 법관에게 물었다.
“여기서 저희 쪽이 이기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법관은 왕을 대신해서 온 자다.
그런 자에게 적잖이 불손한 말투였지만 딱히 핀잔주는 사람은 없었다.
원래 평판이 개차반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듯했다.
“그야……. 이번 재판은 베네르 백작가의 가신. 다브네스 마지앵에게 발생한 사건 때문에 열린 거다. 그러니 임페라 백작가가 이긴다면, 서로 없던 일로 마무리되겠지.”
“그건 너무 싱거운데요?”
“뭐, 뭐라고?”
“그럼 애써 대행인까지 구해 온 보람이 뭐가 있겠냐는겁니다. 적어도 서로 뭐라도 하나씩 걸어야 맞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마지앵 자작이 임페라 백작을 모욕한 것이 원인이지 않습니까.”
“그건…….”
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야길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당당하게 요구하겠습니다. 만약 저희 쪽 대행인이 이긴다면, 지금 이곳 발디그 던전의 소유권을 다시 돌려주시죠.”
“그런 말도 안 되는……!”
법관은 당황스러워 뒷말을 잊을 정도였다.
얘기를 듣고 있던 베네르 백작이 날뛰려고 하던 때, 난 승부수를 던졌다.
“대신 저희 쪽이 지면 제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뭐라?”
“어쩌실래요?”
이번엔 법관이 아닌 베네르 백작을 향해 물었다.
그의 낯빛에서 언뜻 긴장감이 스쳤지만, 이내 득의양양한 표정을 되찾았다.
그도 바라고 있었을 거다.
임페라 백작가가 대행인을 세웠기 때문에, 기존 소설과는 달라졌다.
저들은 에이먼의 왼손을 잘라야 한다.
그래야만 임페라 가문이 몰락하고 말 테니까.
하지만 대행인을 세운 지금, 에이먼이 결투에서 블랭크가 되길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임페라 가문의 후계자가 목숨을 건다?
베네르 백작의 입장에선 군침 도는 제안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내 목숨과 다 쓰러져 가는 던전을 동일 선상에 놓는다면 이득 보는 쪽은 당연했다.
갑작스런 제안에 에이먼 역시 놀란 눈치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을 아꼈다.
이리되든 저리되든 날 믿는 것 같았다.
베네르 백작은 처음엔 좀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표정을 고쳤다.
생쥐 같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싱긋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드디어 망나니 공자 놈이 미쳐 헛소릴 늘어놓는구나! 하고 말이다.
“…전 나쁠 건 없다고 봅니다.”
“흐음…….”
법관도 처음 겪는 일이지만 결정은 빨랐다.
양쪽에서 서로 좋다는데, 법관이 굳이 거절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임페라 가문의 공자여. 정말 그럴 생각인가?”
“그럼요.”
“결투 재판은 신성한 자리다. 나중 가서 농담이니 뭐니 지껄이는 게 통할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겠지요.”
“크흠…….”
법관은 내 태도가 못마땅한 듯했지만 이 이상 뭐라 말하진 않았다.
그렇게 협상은 성공했다.
협상이 끝났을 때, 크로드는 날 보고 있었다.
“재미있는 짓을 했군.”
“그러니까 잘 부탁한다구. 여기서 지면 네가 원하는 건 영원히 못 들을 테니까.”
* * *
결투를 눈앞에 둔 지금. 베네르 백작은 자신의 대행인 프리아나를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반드시 이번 결투에서 이겨야 한다는 거, 알고 있겠지?”
프리아나는 딱히 대답을 하진 않고 고개만 까딱거렸다.
‘X끼. 기사 학교 출신이라더니 건방지기는…….’
백작은 살짝 건방진 기사의 태도에 불만이었지만 뭐라 할 처진 아니었다.
건방지면 뭐 어떠랴.
녀석이 이겨 주기만 한다면 임페라 백작령은 자기 것이 될 텐데.
심지어 미친 망나니 아들 녀석이 제 목숨까지 걸었으니, 이대로 프리아나가 결투에서 이기기만 해 준다면 끝이다.
‘그래 봤자 네놈은 연줄도 뭣도 없는 기사 아니냐? 후원도 못 받고 여기저기 떠돌다 온 주제에!’
이런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괜히 일을 그르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아니지. 이참에 아예 내 가신으로 넣어줘 버려? 좀 싸가지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검술 랭크 5니…….’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린 아니었다.
랭크 5나 되는 젊은 기사가 후원도 없이 나다니는 케이스는 그닥 흔치 않았으니까.
딱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린 게 틀림없을 거라 생각했다.
예를 들면 귀족집 영애를 건드렸다거나…….
그런 작자를 거둬들이는 건 영 께름칙했지만 베네르 백작 입장에선 괜찮았다.
그는 슬하에 어린 남자 아이만 있을 뿐 딸은 없었으니까.
이내 계산을 마친 그는 프리아나에게 가슴을 쭉 핀 채로 말했다.
“내 자네가 결투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특별히 내 가신이 될 자격까지 주겠네! 어떤가?”
나름 괜찮은 제안이라 생각했다. 프리아나가 남몰래 국왕의 후원을 받고 있던것만 빼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럼! 당연히 그래……. 으응?”
“제안은 감사하지만 아직 누굴 섬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아……. 그, 그래……. 그렇다면야…….”
예상외의 답변에 백작은 멋쩍은 듯 입을 이죽거렸다.
‘새끼. 그깟 자존심 언제까지 가나 보자고. 흥!’
반대로 프리아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후…….’
그는 이미 국왕에게 충성을 바친 기사다.
그런 그였기에 백작의 발언은 굉장히 불쾌했다.
마음 같아선 한 대 후려쳐 버리고 싶었지만 이건 국왕 전하의 명령이다.
왕국 귀족들의 불화를 터뜨릴 작은 불씨.
이곳에서 시작된 불꽃은 이내 온 귀족들의 피 튀기는 영지전으로 자라날 것이다.
‘참자. 전하의 큰 그림을 위해서라도.’
* * *
“흐흐…….”
멀찌감치 떨어져 프리아나와 베네르 백작 간의 대화를 유심히 엿들었다.
목소리가 작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만 하면 들렸던 것이다.
겉으로만 봤을 땐 별 이상할 게 없어 뵈는 대화다.
하나는 변경에 틀어박힌 야심찬 귀족, 다른 하나는 중앙 귀족들에게서 밀려나 후원도 못 받는 기사.
어찌보면 꽤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하지만 실상을 다 아는 나로선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베네르 저 멍청한 놈. 프리아나가 누구의 후원을 받는 줄도 모르고.’
프리아나는 충직한 기사다.
동시에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기사기도 했다.
국왕의 후원을 받는 몇 안 되는 기사.
그게 프리아나다.
그런 놈한테 깡촌 백작이 제 밑으로 들어오라는데 그게 눈에 들어올까?
오히려 기사단장급 되면 공작의 지위까지 받는 경우도 허다한데?
벌써부터 프리아나는 똥 씹은 표정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에이먼은 긴장한 듯 마른 침을 삼켰다.
그도 그럴게 이쪽 대행인은 몸을 풀긴커녕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 있기만 했으니까.
“그… 아들아. 저 기사분이 대행인으로 나서 준 건 고맙다만. 상대가 만만찮아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아마 저 녀석이라면 무조건 이길 겁니다.”
“무, 무조건?”
“그야…….”
크로드가 직접적으로 보여 주진 않았다만, 녀석의 랭크는 적어도 6 이상.
소설에선 대전쟁 시기에 이미 랭크 6이었으니 지금은 그 이상인 게 당연했다.
난 불안해하는 에이먼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저 사람 랭크 6이에요. 최소.”
“뭐, 뭐라? 랭크 6! 그, 그런 자. 아니 그런 분께서 왜 우릴……?”
“뭐. 서로 필요한 게 있어서 그런 거죠.”
“허어…….”
에이먼은 대체 랭크 6이나 되는 기사가 임페라 가문에서 얻을 게 뭐가 있을지 감도 안 오는 눈치였다.
하지만 한 가진 확실하다.
이건 크로드 입장에서도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제국이 멸망한 지 벌써 14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망국의 옛 영토를 이 잡듯 뒤져 봤지만 ‘기사단의 유물’은 코빼기도 뵈지 않았다.
그걸 알려 주겠다는 거다.
바로 이 몸이.
프리아나도 훌륭한 기사임은 틀림없지만, 애초에 싸움에 임하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국왕의 명령에 의해 깡촌 백작을 돕는 기사와, 십수 년의 숙원이 걸린 방랑기사의 싸움이다.
“어때. 할 만하겠어?”
“말이 많군. 네놈은 유물이 어디 있는지 잘 떠올리고나 있어라.”
“크흐흐! 염려 붙들어 매셔!”
멀찌감치 떨어져 둘의 상황을 살폈다.
베네르 백작가의 대행인 프리아나.
빠른 속검을 쓰는 기사답게 가벼운 갑주만을 착용하고 있었다.
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흉갑과 양팔을 보호하는 브레이서.
그게 프리아나가 착용한 방어구 전부였다.
그에 반해 크로드는 전신을 풀 플레이트 메일로 꽁꽁 싸매고 있었다.
덕분에 움직임이 굉장히 둔해 보였다.
‘저런 차림새로 쾌검의 기사라니.’
지금의 나라면 저걸 입는 건 고사하고 깔려 죽을 텐데.
어쩌면 두터운 갑옷 덕분에 빠르면서도 묵직한 검술을 구사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쓰읍.”
랭크 5 이상의 고수 둘의 대련.
이런 걸 눈앞에서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이 세계에서 검술이란 게 어디까지 발전했을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난 녀석들의 자세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눈을 부릅떴다.
왕국에서 나온 법관이 둘을 번갈아 봤다.
프리아나가 몸을 다 풀었다는 듯 고갤 끄덕이자 법관은 품속에서 마법구 하날 꺼내 들었다.
바앙!
마법구에 대고 작게 웅얼거리자 주위로 반투명한 결계 같은 게 펼쳐졌다.
“영광스런 아이소테르를 위하여.”
법관의 말을 끝으로 결투가 시작됐다.
스릉.
크로드는 조용히 품속에 있던 검 하날 뽑아 들었다.
‘우로보로스 문양이 없군.’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지난번 봤던 검과는 다른 놈이었다.
소설 속에서 크로드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검을 한 자루 더 썼다.
허리까지 오는 장검 한 자루와 팔뚝 길이 정도의 중검 한 자루.
두 검을 사용해 자유자재로 펼치는 검무에 수많은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마 지금 뽑아 든 게 짧은 녀석인 듯했다.
“후.”
프리아나는 그런 그를 앞에 두고 제 검을 뽑아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의 검이다.
제니스 기사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쓰이는 검이기도 했다.
편법 따윈 밟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올곧은 기사.
그게 소설 속 프리아나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될라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가만히 앉아서 팝콘이라도 뜯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