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부목 말씀이십니까? 그냥……. 산기슭에 적당한 게 있어 가져왔습니다만…….”
우선 서둘러 다리에 힐을 넣었다.
‘힐.’
파앗!
다친 다리 쪽에 회복 마법을 퍼붓자 뒤틀려 있던 다리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머지는 시간만으로 해결될 정도이긴 했다.
지금 확인하고 싶은 건 한스의 다리가 아니다.
부목이지.
“이대로 일주일 정도 조심하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다.”
“흐흑! 감사합니다! 나으리!”
“부목은 필요 없을 테니 나한테 주고.”
“예? 부목이야 뭐……. 여기 있습니다.”
한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지금껏 쓰던 부목을 건넸다.
난 마치 보검이라도 하사 받은 얼굴로 부목을 챙겼다.
그런 날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였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촌장.”
“예! 공자님!”
“이 버섯은 뭐지?”
“버섯 말씀이십니까? 어디…….”
촌장은 침침한 눈을 가늘게 떠 부목을 살펴봤다.
부목의 끄트머리 부근엔 하얀 조약돌처럼 생긴 버섯 한 송이가 자그맣게 자라나 있었다.
“으음……. 설인의 발가락 버섯이군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식용은 가능한 건가?”
“예. 가끔 고기에 곁들여 먹긴 합니다만……. 향이 너무 진해 자주 먹진 않습니다.”
“…와삭!”
먹어도 된다는 말에 버섯을 한입 깨물었다.
설인의 발가락 버섯. 그나저나 네이밍 센스 한 번 고약하네.
하얗고 뭉툭한 거 빼곤 발가락으론 전혀 보이지 않는데 그런 이름을 붙이다니.
“음.”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머릿속으론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디아는 하얗고 뭉툭한 버섯 한 덩이를 잘게 썰어 스프에 쏟아 넣었다.
그러자 방금까지 밍밍했던 스프 맛에 독특한 풍미가 가미됐다.
한술 떠 맛을 보곤 이름만 아니면 괜찮은 버섯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무슨 버섯인지는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지금껏 먹어 본 버섯 중에 비슷한 포지션인 녀석이 있었다.
표고버섯.
가루를 한 술만 넣어도 진한 풍미가 가미되는 사기급 조미료. 맛도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이 근방에서 잘 나는 건가?”
“예. 주로 죽은 핀 나무 옆에 잘 자라지요.”
완전 호기였다.
“딱이네. 내일부터 레드핀, 블루핀 그리고 이 설인의 발가락이란 버섯을 세금 대신 내라. 버섯은 밑동이 달린 채로 가져오면 따로 값을 두 배로 쳐 주지.”
“오오! 두 배씩이나! 예! 공자님! 믿고 맡겨만 주십시요!”
“그래. 수고하라구.”
“크흐흐! 이거만 있으면……!”
국물을 끓이는 데 제일 중요한 게 뭘까.
당연히 육수다.
지금껏 뿔돼지 고기로 대충 맛을 내긴 했지만 제대로 된 국밥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랐다.
후추라도 넣으면 괜찮겠지만, 알아본 바론 이곳에서 후추는 금값과 거의 맞먹었다.
아쉬운 대로 먹을 만한 건 없나 알아보던 참인데. 표고버섯이라니.
비싼 향신료 사이에 새로운 향신료가 생긴다?
오히려 과일보다 훨씬 더 큰 가능성을 지닌 물건이었다.
과일이나 몇 개 얻어 오고 말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수익을 얻었다.
* * *
에러벨에 갔다 온 지 며칠 후.
“후후.”
임페라 저택의 뒤뜰. 꼴에 백작 저택이라고 넓긴 더럽게 넓었다.
“그럼 뭐하냐. 사는 사람이라곤 시녀 하나까지 합해서 겨우 셋인데.”
새삼스레 일레느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체감됐다.
아무튼 저택이 넓은 덕에 여기저기 노는 공간이 많았다.
예를 들면 여기처럼 적당히 선선하면서 그늘까지 진 공간이라든가.
“버섯이 자라기엔 딱이지.”
어제 아침.
에러벨에서 온 람은 수레 한가득 과일과 버섯을 잔뜩 따 가지고 왔다.
저번에 말했던 수레보다 좀 크긴 했지만 첫째 날이라 힘 좀 쓴 거겠지.
“이 정도면 얼마 받지?”
“한… 1골드 정도 받습니다.”
“이게?”
“예. 공자님. 헤헤.”
확실히 산지직송이 싸긴 쌌다.
수레 한가득 채워져 있는데도 고작 1골드밖에 안 된다니.
아마 시장에서 사 오면 5골드는 족히 될 양이었다.
당분간 마음껏 먹어도 부족할 건 없을 듯싶었다.
“이것도 가져왔군.”
하얗고 뭉툭한 버섯이 팔뚝만 한 나무토막 위에 살포시 얹어져 있었다.
고생했다며 등을 토닥여 주자 람은 헤실거리며 다시 제 마을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향한 게 바로 여기다.
버섯을 재배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
“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음지 바른 곳에 버섯이 박힌 나무토막들을 늘어뜨려 놨다.
이대로 경과를 잘 지켜보며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볼 계획이다.
맛은 표고버섯 비스무리하다 해도 쓰임새도 비슷한지, 혹시 많이 먹으면 탈나거나 그런 건 아닌지.
“일단 일레느한테 한 토막만 국밥에 넣어 달라 하고…….”
“으응……? 여기 있었구나 아들아.”
손에 흙 묻혀 가며 버섯을 심고 있는데 에이먼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아들 녀석이 새벽 댓바람부터 복닥이던 게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아버지.”
“으음… 그래. 그나저나 저택 앞에 놓인 수레는 무엇이더냐? 과일을 그렇게나 한가득 쌓아서 뭘 하려고…….”
“에러벨 마을에서 가져온 겁니다.”
“에러벨?”
“네. 세금 대신으로요.”
“뭐, 뭐라? 세금 대신으로? 왜 그런 짓을……?”
“애초에 나오는 돈도 얼마 안 되고, 뭣보다 저희 먹을 게 없으니까요. 안 그런가요?”
“으음……. 그렇긴 하다만…….”
에이먼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도 결국엔 사람이다.
맛있는 게 먹고 싶은 건 당연지사. 한 푼이라도 아낀다고 곡물죽이나 퍼먹고 있었지만 그도 질린 건 매한가지였다.
‘솔직히 빚이 십만 골드나 십만 일 골드나 그게 그거지.’
“지난번에 선물 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이참에 에러벨 마을의 징수 권한을 선물로 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에이먼은 놀란 듯 보였다.
이전이었다면 헛소리하지 말라 했겠지만, 개과천선한 이후로는 믿을 만해진 거 같았다.
에이먼은 자신의 의견을 더했다.
“으음. 어차피 언젠간 너도 내 뒤를 이어야 하니. 별문제는 없다만… 에러벨 마을은 수확이 그리 좋은 지역도 아닐 텐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 할 텐데, 아직까진 제가 많이 미숙할 거 같아서요. 자그마한 마을부터 시작해 감을 익혀야겠죠.”
“하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게냐?”
에이먼은 아들이 기특하기라도 한 듯 크게 웃었다.
그리곤 혼자 고갤 주억거리더니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줬다.
“그래. 그럼 오늘부터 에러벨의 관리는 네게 맡기겠다. 세금을 돈으로 받건 뭘로 받건 네 마음대로 하거라. 내 서재에 그간 사용했던 장부가 모여 있으니 필요하면 가져다 쓰려므나.”
“네. 아버지.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이것도 한 입 드셔 보십쇼.”
“으음? 으음!”
긴가민가해하던 에이먼도 블루핀을 한입 물려주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람이 알려 주길 블루핀은 타지에선 흔히 보기 힘든 과일.
당도가 너무 높아 툭 하면 상하기 때문이었다.
처음 계획에는 문제였지만, 어떤 해결방안이 생길 수 있으니, 좌절할 필욘 없어 보였다.
냉장 보관이라도 하면 괜찮겠지만, 고작 과일 얼리는데 얼음 마법을 쓸 사치까지 부릴 여유는 없었다.
“으음. 맛있구나.”
“맛있죠? 그럼 된 거죠 뭐.”
“하하……. 그래. 그럼 수고해라.”
블루핀의 달달함 덕분인지 에이먼은 옅은 미소를 띠고 돌아갔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던데.’
왠지 모를 씁쓸함이 에이먼의 미소에서 느껴졌다.
뭐 필요한 일이면 나중엔 말할 테니 신경 끄자.
“잘 자라려무나. 내 아기들아.”
버섯 종자에 촉촉하게 수분을 붙여 주며 사랑스런 눈빛을 보냈다.
표고버섯은 여기저기 쓸데가 많다.
찌개에 넣어 먹는다든가 고기랑 같이 구워 먹는다든가.
“흐흐…….”
벌써부터 입가에 침이 고였다.
“고, 공자님! 큰일 났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국밥으로 아침을 시작하려는데, 일레느가 편지 한 통을 들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국밥에 넣을 버섯을 건네려다 말고 일레느의 말을 기다렸다.
“뭔데?”
“그, 그게…….”
일레느가 들고 있던 편지엔 익숙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을 내세운 늑대의 앞발.
아이소테르 왕국 법관들에게서 온 편지였다.
“됐다.”
일레느가 얘길 꺼내려 했지만 에이먼이 이를 막아섰다.
먼저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에이먼은 예상했다는 듯 표정에 별 변화가 없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읽어 보거라.”
에이먼 백작의 손에 쥐어진 한 장의 편지.
그걸 건네받은 난 찬찬히 편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편지는 결투의 여신이니 뭐니 허울 좋은 개소리로 가득했다. 위대하신 결투의 여신이 판가름 해 준다나 뭐라나.
[결투 재판으로 옳고 그름을 판결하라.]
이게 핵심 내용이었다.
요약하자면 대충 둘이 치고 박고 싸워 알아서 해결하란 소리다.
결국 내가 예상했던, 소설 속 줄거리 그대로의 편지였다.
‘올 게 왔구나.’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편지까지 받고 나니 감회가 남달랐다.
“어, 어쩌죠?”
일레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이대로라면 나나 아버지가 결투 재판에 나와야 한다.
나야 마법 랭크 1에 개망나니 새끼로 평판이 자자하니. 그나마 마법 랭크 4인 에이먼 백작이 결투에 나서게 될 거다.
그리한다면 승부는 정해진 운명대로 갈 테고.
‘그건 안 되지.’
오늘 아침에도 봤지만 다시 한 번 왼손에 눈길이 갔다. 활짝 핀 왼손에 시선이 가자, 그 위로 내가 가진 랭크가 떠올랐다.
[이름 : 이안 임페라.]
랭크 : 2(마법), 2(검술)
‘이걸론 부족해.’
단 며칠 만에 랭크하곤 담 쌓고 살던 녀석이 마법과 검술을 랭크 2까지 올렸다.
이 사실만 놓고 본다면 눈이 휘둥그레지겠지만 그게 끝이다.
베네르 백작가에 대행인으로 나올 녀석을 이길 순 없다.
“결투엔 내가 나설 것이다.”
에이먼은 결심을 굳힌 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가요?”
“그래. 이래 봬도 젊었을 적 마법 랭크 4까지 도달한 나다. 실력이 조금은 녹슬었을지 몰라도……. 충분히 해 볼 법한 싸움이다. 베네르 백작도 검술 랭크 4 정도로 알려져 있으니. 마냥 당하고만 있진 않을 거다.”
자신 있다는 투로 얘기했지만 그의 목소리에선 옅은 떨림이 느껴졌다.
미안하지만 그가 이길 가능성은 제로다.
마법 랭크 4에 도달했던 것도 수십 년 전 일이다.
랭크는 떨어지지 않았다 해도 매일 업무에 시달려 책상에만 앉아 있던 그가 제 실력을 낼 리가 없다.
게다가 상대는 베네르 백작이 아니다. 타지에서 초빙해 온 검술 랭크 5의 괴물.
이대로 에이먼이 나갔다간 그대로 왼팔이 잘려 블랭크가 돼 버리고 만다.
이런 못난 아들놈을 생각하는 마음은 좋다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괜찮습니다. 아버지.”
“그래. 그러니 너는……. 뭐라고?”
“결투 재판이라면 문제없습니다. 제가 나가든 대행인을 구하든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에이먼은 아들의 당돌한 발언에 불 같이 화냈다.
“고작해야 마법 랭크 1도 겨우 찍은 녀석이! 무슨 결투 재판을 하겠다는 게냐!”
“일단 지금은 마법 랭크은 2입니다. 얼마 전에 하나 올렸어요.”
“그, 그게 무슨……. 이젠 아비를 상대로 농까지 치는 게냐? 맨날 술이나 퍼먹던 네놈이 무슨 수로 랭크를 올려!”
“여기요.”
난 자잘한 말 대신 스킬 하날 시전했다.
화륵!
붉은빛을 내뿜는 화염구를 소환하는 스킬.
파이어 볼.
뿔돼지를 잡았을 때 썼던 스킬은 파이어 볼트다. 자그마한 점에 불과한 불을 소환하는 스킬이다.
그에 반해 파이어 볼은 주먹만 한 크기의 불덩이다.
“허억!”
일레느는 내 손 위에 형성된 화염구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리 맨날 연무장에 틀어박혀 있었다곤 하나 단시간에 이만한 성과를 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이는 에이먼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떻게 네가…….”
당황하는 에이먼의 모습에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다.
쪽팔려서다.
메테오를 내던지는 것도 아니고 고작 파이어 볼 하나 가지고 저렇게까지 놀라다니.
이안을 향한 기대치가 워낙 낮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 하지만 그래 봤자 랭크 2 아니더냐! 그걸론 택도 없다!”
“결투 재판까지 며칠 남았죠?”
“그건… 앞으로 한 달이다.”
“그럼 그때까지 올리면 되죠. 낭낭하게 랭크 5 정도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해 보고 안 되면 대행인을 구하구요.”
“…….”
워낙 당당하게 말해서 그런지 에이먼도 말문이 막혔다.
대행인을 어디서 구한다는 거지?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대행인한테 줄 돈은 어디서 구하고?
게다가 한 달 만에 랭크 5를 찍는다고? 그딴 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이런저런 의문이 샘솟을 거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당당한 내 모습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을 냈다.
“네가 기어이 미쳤구나.”
“그럴 수도 있죠. 아닐 수도 있고.”
“…하!”
“일단 그렇게 아시고 계세요.”
그렇게 말하곤 자릴 떴다.
뒤에서 에이먼은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날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