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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3화 (13/222)

13화

“이 중에서 살고 싶은 사람. 거수.”

“죄, 죄송하지만 지금 손이……!”

“아차. 내 정신 좀 보게.”

놈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 람을 시켜 땅 바닥 깊숙이 구멍을 파게 시켰다.

대충 성인 남성 다섯이 들어가고 목이 잠길 만한 높이 정도로.

‘구멍 말씀이십니까요?’

‘그래. 쓰레기는 땅에 묻어야 하니까.’

‘…아!’

람은 금세 내 의중을 파악하곤 열심히 땅을 팠다.

비실비실해 보여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구덩일 파냈다. 산에 사는 사람이라 그런가?

“으윽…….”

한참이 지나서야 기절해 있던 놈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방금까지 기절한데다가 땅속에 파묻혀서 그런지 눈앞이 핑핑 돌았다.

“자. 다시 한번. 살고 싶은 사람?”

“제, 제발 목숨만은 살려 줍쇼!”

“앞으로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고 살겠습니다요! 그러니……!”

“아이 참. 말이 많네.”

제일 시끄러운 놈 정수리에 꿀밤을 한 대 더 먹여 줬다.

“악!”

한 대 얻어 맞은 녀석은 흰자윌 뒤집어 까고 다시 눈을 감았다.

“허읍……!”

“뭐, 너희들 마음은 잘 알겠어. 죽고 싶은 놈은 없다는 거잖아?”

“네, 네엣…….”

“제 목숨 귀한 줄은 아는구만. 남들 목숨 귀한 줄은 모르면서.”

“그, 그치만! 저흰 사람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요!”

“그래?”

확인차 람을 흘긋 쳐다봤다. 그러자 땅속에 묻힌 녀석 하나가 람을 매섭게 째려봤다.

“뭘 잘 했다고 째려봐?”

“악!”

꿀밤 하날 선사해 주자 녀석은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람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한스라는 친구가 이놈들한테 맞서 싸우다 흠씬 두들겨 맞고 왔습죠. 목숨은 부지했지만……. 한쪽 다리는 평생 불구로 살 수밖에 없을 거라더군요.”

“으으…….”

“이 자식이 그런 짓을 해 놓고 깨끗한 척 한 거야?”

“…악!”

자랑스레 살인은 안 했다고 떠벌리던 놈에게도 꿀밤을 내려 줬다.

이제 남은 건 단둘.

대장 녀석과 어깨가 부러진 녀석이었다.

“게륵…….”

어깨 부러진 놈은 아직 정신이 덜 돌아왔는지 고갤 이리저리 흔들다 다시 기절했다.

결국 남은 건 맨 먼저 시비를 걸었던 우두머리 놈 하나.

난 녀석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나마 대화가 통할 것 같은 건 너 말곤 없네.”

“아하하…….”

웃는 얼굴에 침 뱉진 않겠다 싶었는지 헤실거렸다.

“지금 웃음이 나오나?”

“흡…….”

“지금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아나?”

“…공자님을 몰라 뵙고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그보다 더 전에.”

“…공자님을 납치하겠다는 허무맹랑한 소릴 지껄였습니다!”

“그보다 더 전.”

“…공자님의 영지를 함부로 겁박하려 했습니다!”

“그래. 난 그게 마음에 안 든다고.”

“…….”

옆에서 땀을 식히던 람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아. 내가 사람을 잘못 알고 있었구나.

이안 임페라 공자님은 영지민을 위해 이토록 애쓰시는 분이었구나. 그런 분을 내가 몰라 뵙고 욕이나 하고 다녔다니.

그런 생각에 가슴이 벅차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사실 그것도 없진 않지만. 제일 화나는 건.’

이 망할 놈들 때문에 하마터면 블루핀을 못 먹을 뻔했다는 거다.

가뜩이나 거지 백작가 망나니가 된 것도 서러운데.

“난 너희들을 죽이진 않을 거다.”

“저,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나으리!”

“뭐 어쨌건 한스라는 총각이 다치긴 했다지만 아까 저놈 말대로 죽은 건 아니니까. 대신.”

“…대신?”

“시험을 하나 통과해야 해.”

“뭐든 말씀하십쇼! 다 해내겠습니다!”

“그래?”

놈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곤 살았단 안도감에 마냥 싱글벙글했다.

“람. 지금부터 블루핀을 가능한 많이 따와라.”

“네? 아, 알겠습니다!”

람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시키는 일이니 잠자코 따랐다.

금세 양팔 가득 검푸른 빛깔의 블루핀을 한 아름 따왔다.

언뜻 봐도 5키로는 됨직한 양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맛도 못 봤지.’

한입 먹어 보려는데 이놈들이 끼어드는 바람에 못 먹어 봤다.

레드핀보다 달다면…….

꽈즙!

“으음…….”

블루핀을 한입 베어 물자 람의 말이 허풍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상큼한 걸 넘어 찐득한 과즙이 입 안을 가득 채워 한동안 단맛이 입 안에 남을 정도였으니까.

주먹만 한 블루핀을 순식간에 와삭와삭 베어 먹었다.

가끔 간식이나 운동 후 지칠 때 원기 회복용으로 한두 개 먹기엔 딱이었다.

“꿀맛이네 이거.”

꿀맛이긴 한데 너무 달아서 그런지 두 개 이상은 손이 안 갔다.

너무 달면 계속 먹기도 힘든 법이다.

그럼 지금부터 할 계획에 딱이기도 했다.

“이거 맛있네. 너도 한 번 먹어 봐.”

“네! 맛있게 먹겠습니다요!”

땅 위로 내밀고 있는 머리통에 블루핀을 물려 주자 오물오물 맛있게 먹었다.

“하나 더.”

“우물우물……. 네! 하나 더 먹겠습니다!”

“하나 더.”

“우물우물…….”

“하나 더.”

“우웁……. 잠시만…….”

블루핀을 다섯 개쯤 입에 넣어주자 녀석은 속이 거북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 더.”

“그, 그만……. 더는 못 먹…….”

“먹을래? 아님 죽을래?”

“우웁…….”

계속해서 블루핀을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당도도 문제지만 이미 놈의 뱃가죽은 땅 속에 묻혀 있는 상태. 과일이 계속 들어가도 뱃가죽이 늘어날 공간이 없었다.

“하나 더.”

“우웩!”

결국 녀석은 먹지 못하고 블루핀을 토해 버렸다. 하지만 내 손은 멈추지 않았다.

“하나 더.”

“으윽……! 그, 그만……!”

“너 오늘 여기 있는 거 다 못 먹으면 못 나오는 거야. 알겠지?”

“으으…….”

람은 옆에서 킥킥대며 상황을 즐겼다. 놈은 감히 나한테 화는 못 내겠으니 람한테 눈깔을 부라렸다.

“눈빛이 살아 있네. 다섯 개 추가.”

“어으윽……!”

“여기 새로 따왔습니다!”

“빨리 안 씹어? 한 개 더 추가할까?”

“아, 아닙니다요! 빨리 먹겠습니다요!”

그렇게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그 많던 블루핀이 모두 동났다.

“끝났군.”

“허억……! 허억……!”

“또 내 영지에서 까불었다간 이 정도론 끝나지 않을 거다. 그땐 블루핀이 아니라 쇳물을 먹여 버릴 테니까.”

“…커헉!”

내 말이 끝나자마자 녀석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 정도면 도적놈들한테 보내는 경고 메시지론 충분할 거다.

‘도적떼를 죽여 봤자 다른 도적놈들이 나올 뿐이지.’

그럴 바엔 확실한 경고를 보내는 편이 나았다.

오늘 상대한 다섯 놈이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 한두 놈쯤은 살아가겠지.

그럼 지들끼리 소문이 돌 거다.

이안 임페라 그 미친 망나니 새끼는 건들면 안 된다고.

먹는 걸로 고문을 하는 미친놈이라고.

“아차.”

깜빡할 뻔했다.

덜컥! 덜컥!

땅속에 파묻힌 채 기절한 놈들의 어깨에 꿀밤을 먹여 줬다. 모두 기절해 버린 터라 둔탁한 소리만 날 뿐이었다.

한동안, 어쩌면 평생 맛탱이 간 팔로 살겠지만……. 뭐 어떤가. 이 세상 기준에서 볼 땐 블랭크도 아닌데.

“이건 한스라는 친구 몫이다.”

* * *

“정말 감사합니다! 나으리!”

람은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던 건 덤.

굳이 이런 감사인사나 받으려고 한 건 아니다만, 영지민한테 인기 있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공자님!”

마을에선 아까 봤던 촌장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손자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거 같았다.

“할아버지!”

“와하하핫! 무사했구나! 람!”

“잠깐 볼일만 본다 했는데 걱정이 많군.”

“앗… 죄, 죄송합니다, 공자님……. 이 어린 손자 녀석의 잘못을 눈감아 주시다니……. 이 늙은이 공자님의 은혜에 보답 드릴 길이 없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그럼 마침 잘 됐네. 촌장한테 시킬 게 있었는데.”

“시킬 일이라시면……?”

촌장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뭐든 말씀만 하십쇼! 도적놈들까지 처치해 주셨는데, 뭐든 따르겠습니다요!”

“도적놈들?”

람은 신이 나서 촌장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야길 다 들은 촌장은 람과 비슷한 반응을 내보였다.

넙죽 엎드리고 감사하거나 뭐 그런 거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지시만 해 주시면 이놈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요.”

아무래도 일이 쉬워질 거 같다.

“그럼 앞으로 바꿔야 할 게 있다.”

“네! 말씀하십쇼!”

“에러벨 마을의 세금에 관한 거다.”

“아아…….”

촌장은 순간 말을 멈칫했다.

이런 깡촌에 형편은 나도 잘 안다.

촌장인 그는 오죽할까. 당장 하루 벌어먹기도 힘든 게 에러벨 마을의 상황이었다.

여기서 세금을 더 올렸다간 입에 풀칠도 하기 힘들다는 건 촌장이 제일 잘 알았다. 하지만 내 말에 토를 달진 않았다.

“생활을 해칠 정도의 일은 아니야.”

내 말에 그제야 촌장 표정이 밝아졌다.

“어떤 말씀이시던 내려만 주십쇼!”

“앞으로 세금은 골드가 아닌 작물로 받았으면 하는군.”

“…작물로 말씀이십니까?”

촌장뿐만 아니라 람도 예상치 못한 내 말에 고갤 갸웃했다.

“그래. 아까 보니 레드핀이 맛있더군. 매일 아침에 하나씩 먹으면 제격이겠더라고. 블루핀도 가끔 먹으면 좋고.”

“저, 정말로 그래도 되겠습니까?”

“뭐 심심하면 다른 작물로도 괜찮고. 대신 매주 첫째 날 아침. 저택으로 싣고 왔으면 하는데. 가능한가?”

“물론입니다요! 이틀마다 도시에 과일을 팔러 나가니까요! 얼마든지 시켜만 주십쇼!”

“그래. 그럼……. 일단 양은 자그마한 수레 하나 정도면 되겠군. 일주일에 한 번씩만 말이야.”

“하오나 공자 전하! 이런 하잘것없는 과일들로 공자님께서 만족하실지…….”

촌장은 믿기지 않는 듯 계속해서 되물었다.

에러벨 마을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안이었다. 애써 시장에 가 과일을 팔지 않아도 되니까.

게다가 과일이 잘 팔리지 않는 날엔 어떻게서든 세금을 내기 위해 떨이로 팔아 치우는 일도 허다했다.

그런 손해도 없이 과일 한 수레로 퉁치자니. 촌장의 상식에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백작씩이나 되는 가문이 먹을 게 없어서 곡물죽이나 퍼먹고 있다니.’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이걸 이용해 상단과 거래를 틀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 특산물을 준비해 둘 필요가 있었다.

‘언제까지고 가난하게 살 수는 없지.’

당분간은 취식만 하되, 이걸 안정적으로 수확할 방법도 찾아야 할 듯싶었다.

소설 속에서 나왔던 상단이 뭐가 있더라.

그런 기구한 설명을 촌장에겐 할 수도, 할 이유도 없다.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별로 맘에 안 드나?”

“아, 아닙니다요. 명령 따르겠습니다요.”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촌장과 람이 대답을 했다.

촌장과 람은 얼떨결에 따르겠다곤 했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봐도 자기네들한테 이득인 걸 잘 알게 될 거다.

‘세수가 좀 줄긴 하겠지만……. 어차피 별 돈도 안 되는 마을이고.’

당장 세금 몇 푼보다 훨씬 이득을 볼 자신이 있었다.

적당히 돌아가려다 문득 람이 말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스란 녀석이 떠올랐던 것이다.

사실 영지의 치안은 영주의 책임.

아마 에이먼에게 여유가 있었으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가 이안이기도 했으니.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똥 싸고 안 닦은 것마냥 찝찝했다.

‘…쯧. 찝찝하네.’

“…한스라고 했나? 다리를 다쳤다던.”

“설마……! 공자님!”

람은 말뜻을 알아채고는 감동 때문인지 눈물이 그렁그렁 거렸다.

“고쳐 주겠다는 건 아니고. 잠깐 확인만 하려는 거다. 지금 마을에 있나?”

“네! 지금 당장 데려오겠습니다요!”

람은 얼른 마을로 돌아가 다리 다친 남자 하날 부축해 데리고 왔다.

방금까지 누워 있다 느닷없이 끌려온 한스는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도 몰랐다.

“이분은……?”

“임페라 공자님이셔! 다릴 봐 주신다셨어!”

“저, 정말?”

‘괜히 말했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괜히 말했나 싶었다. 이러다 못 고치는 거면 엄청 쪽팔릴 텐데.

“힐.”

힐을 쓴 다음 다리를 관찰해 봤다.

“…음?”

“호,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다.

한스의 다리에 문제는 없었다.

회복 마법으로 찢어진 근육을 재생시키는 걸 수십 번도 반복해 본 터라 한스의 다리쯤은 쉽게 고칠 수 있었다.

이런 깡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영지에 살았더라면 가볍게 고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한스의 다리가 아니라 그가 대고 있던 부목이었다.

부목에 보이는 하얀 것.

“…이 나무. 어디서 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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