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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2화 (12/222)

12화

“하지만 공자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럼 더 맛있겠네. 원래 고행길이 쓸수록 열매도 더 달다잖아?”

“그런… 말이 있던가요?”

“없으면 방금 내가 만든 거라 치고. 아무튼 앞장서.”

“우으…….”

“도적놈들이 무섭나? 아님 내가 더 무섭나?”

“아, 아닙니다요! 그럼 바로 모시겠습니다요.”

람은 가기 싫어 죽겠다는 얼굴로 앞장섰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이안의 뒷담 까다 걸린 것만으로도 람은 중형감이다.

잠자코 길 안내만 하고 끝날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게 나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놈들 면상 좀 보고 싶다만.’

감히 내 영지에서 도적질이나 하고 다니는 놈들을 내버려둘 순 없었다.

한 푼이라도 아까운 처지에 감히 그런 짓을 하고 다녀?

“이, 이쪽부터 블루 판이 열립니다요.”

“호오…….”

람이 말한대로 레드핀과 생긴 건 똑같았지만 색이 달랐다.

검은빛에 가까운 푸른 열매는 겉보기엔 오히려 떫은맛이 나지 않을까 싶었다.

“이게 블루핀…….”

레드핀도 충분히 달고 맛있었다. 그런데 레드핀보다 더 달고 향긋하다면…….

꿀꺽!

침이 절로 고였다. 슬쩍 한 알 따 먹으려 손을 가까이 하려는데.

“오. 왔네?”

블루핀을 한 개 먹으려는데 느닷없이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걸걸하면서도 경박스런 거북한 목소리였다.

“히익……!”

람은 목소리의 주인을 보자마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가만 보면 간도 작은 놈 같은데……. 그때 주점에선 뭔 자신감으로 그리 욕을 해 댄 건지 원.

이래서 분위기라는 게 무서운 건가 싶다.

“…뭐야? 이놈은?”

“놈?”

놈이란 말에 눈살을 한 번 찌푸리자 남자가 움찔했다.

그닥 강해 보이는 놈 같진 않았다.

배가 불룩하게 튀어 나와 살집이 좀 있긴 했지만 근육이라기보단 지방 덩어리에 가까웠다.

거기다 입고 있는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반쯤 헤진 가죽 갑옷에 어디서 주워 왔는지도 모를 견장과 흉갑. 모양새를 보아하니 여기저기서 주워 온 듯했다.

내가 봤을 땐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행색.

하지만 람은 그런 놈이 뭐가 그리 무서운지 벌벌 떨고 있었다.

대충 뭐하는 놈인지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이놈이구만. 이곳 블루핀 군락지를 점거했다는 게.”

“그, 그렇습니다요.”

지금 앞에 나온 건 한 놈뿐이었지만 녀석의 뒤를 살펴보니 일행이 있는 듯했다.

대충 대여섯 놈쯤 되는 듯한데.

도적놈은 내 눈칠 살피다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하! 뭔데? 네놈은? 어디서 굴러먹던 용병이라도 되나?”

“용병은 아니고. 뭐 비스무리한 거지.”

“흥! 그래 봤자 한 명뿐인 놈이! 얘들아! 손님 오셨다!”

녀석이 소리치자 군락지 곳곳에 숨어 있던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행색은 처음 나타난 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제일 먼저 나온 놈이 대장쯤 된다는 건데.

총 다섯 명.

이놈들만으로 마을 하날 쥐고 흔들리는 없고, 아마 본거지가 따로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걸 감안해도 생각보다 빈약한 놈들의 규모에 고갤 갸웃했다.

“이게 다야?”

“뭐, 뭐라고? 흥! 다, 당연히 아니지! 우리 뒤에 따르는 놈들까지 다 합하면 서른은 족히 될 거다!”

“서른? 그것도 좀 적지 않나 싶은데…….”

“그, 그럼 쉰 명 정도…….”

“…….”

“…….”

누가 봐도 어리숙해 보이는 놈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허윽… 그새에 수가 쉰으로 불어나다니……. 공자님! 여기선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요!”

“저 말을 믿어?”

“예? 그건…….”

“하이고.”

거지 백작령이라 그런지 도적놈들 스케일도 코딱지만 했다.

아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놈들 다 합하면 열 명이나 될까 싶다.

열 명이라고 적은 수는 아니다.

에러벨 같은 외진 마을에선 힘깨나 쓰는 장정 열 명이 귀할 테니까.

게다가 작은 마을이 도적놈들과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도 없고.

적당히 으름장만 놓으면 지레 겁먹고 절절 매는 게 힘없는 이들의 삶이다.

“에휴…….”

“…공자님?”

방금 람의 말에 놈들이 다시 날 살펴봤다. 그러다 한 놈이 날 알아보곤 소리쳤다.

“어! 그래! 이안 임페라! 그 개망나니 귀족놈!”

“뭐라고? 얘가 걔야?”

“그래! 지난번에 똑똑히 봤다구! 술병으로 다른 놈 대가리 깨던 거!”

“호오…….”

대장 녀석은 내 정체를 알아채자 눈빛이 돌변했다.

지금껏 내 정체를 알고 내보이는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당황하긴커녕 오히려 금은보화라도 발견한 것마냥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크흐흐! 이거 보물을 주운 격이구만!”

“보물……?”

보통 이 대목에선 놀라거나 쪼는 게 보통 아닌가? 대체 얼마나 무시를 당하고 있는 건지.

“얘들아! 오늘은 날이구나! 귀족 놈들 몸값이 얼만지는 알고 있겠지?”

“흐흐! 그럼요! 백 골드는 족히 받을…….”

“백 골드는 무슨! 임페라 백작가에 후계자가 어디 여럿 있는 줄 아나?”

“그럼요?”

“이놈은 잘나신 백작가의 유일한 아드님이시다! 수백 골드는 받아먹을 수있을 껄?”

“수백 골드!”

“…그런데 쟤네 거지라던데? 받을 수 있겠어?”

“백작이야! 아무리 거지라고 해도 돈은 있겠지!”

괜히 내가 미안해질 정도다. 그런데 정말 없단다, 얘들아.

“그 돈이면 고기가 몇 근이야!”

“고기는 무슨! 우리도 이런 시시껄렁한 깡패짓이 아니라 제대로 된 클랜까지 만들 수 있다고!”

“흐흐! 이게 웬 횡재냐……!”

눈앞의 도적놈들은 벌써부터 날 납치해다 팔 생각부터 늘어놨다.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방금 슬쩍 놈들을 훑어본 결과 각이 나왔다.

오러는커녕 무기를 쥐는 것도 어색한 놈들이 전부다.

이른바 개밥들이란 소리다.

하지만 개밥이 괜히 개밥인가. 지들이 개밥인지 모르니 개밥이지.

놈들은 주제도 파악 못 한 채로 신나게 떠들어 대기 바빴다.

“날 납치라도 할 생각인가?”

“흐흐! 그럼 뭐. 따분하게 농담이라도 따먹을 줄 알았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으으…….”

날 따라온 람은 제대로 걸렸다 생각했는지 오돌오돌 떨고만 있었다.

“흠……. 수백 골드가 우리 가문 금고에 있기나 할지 모르겠네.”

“하! 너희 귀족 놈들이 그만한 돈도 없겠나? 당연히 있겠지!”

“…그런데 이 자식 아까부터 묘하게 말투가 거슬리네?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라도 나가 버리셨나?”

스릉!

도적놈들 중 대장으로 뵈던 놈이 칼을 뽑아 들었다.

손잡이 군데군데엔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검이다.

칼날 하나만큼은 매일 갈았는지 시퍼런 예기를 반짝였다.

“순순히 따라오기만 하면 다치진 않을 거라 약속해 주지!”

“싫다면?”

“…뭐라고?”

“따라가기 싫음 어쩔 건데.”

“하! 그럼 뭐 네놈 혼자 우리들을 상대하기라도 하겠단 거냐?”

“그래야겠지.”

“이놈이!”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단 걸 깨달을 법도 한데. 대장 놈은 화만 낼 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보다 못한 부하 한 놈이 귀엣말로 뭐라 속삭였다.

“대장! 혹시 저놈 보기보다 센 거 아닐까요? 어깨도 떡 벌어진 거 보니 힘 좀 쓰는 것 같은데…….”

“세기는 무슨! 너 이안 임페라가 어떤 놈인지 모르는 거냐? 맨날 술만 퍼마시고 싸움도 못하는 주제에 가문 타이틀만 믿고 뻗대는 개망나니라고!”

“그래도 너무 자신 있어 보이는 게…….”

“그럼 뭐. 저놈이 오러 유저라도 된다 이 소리야? 미쳤냐?!”

“그건 아니긴 한데…….”

다 들린다, 이놈들아. 좀 조용히 얘기하든가.

“거 참 말이 험하네.”

이 이상 말장난 할 것도 없겠다. 귀찮게 말로 떠들기 보단 몸으로 나섰다.

차박.

천천히 놈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어어?”

“뭐. 한판 해 보자며?”

“이, 이 자식이!”

“조심해라! 괜히 블랭크라도 돼 버리면 끝이다!”

고맙게도 놈들은 귀한 인질 몸값이 똥값 되지 않게 걱정까지 해 주고 있었다.

무기도 없이 맨 몸으로 내딛은 발걸음.

범인들이 볼 땐 미친 게 아닌가 싶을 거다.

“놈!”

제일 먼저 공격에 나선 건 팔뚝만 한 길이의 곤봉을 든 녀석이었다.

끝엔 철사를 칭칭 감아 제대로 맞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비쥬얼이다.

불과 보름 전만 하더라도 눈으로 좇는 게 고작이었겠지만, 이젠 아니다.

마나도 뭣도 없이 그저 휘두르기만 하는 곤봉은 버퍼링이 걸린 것마냥 느릿느릿하게 느껴졌다.

머리를 정면으로 내려찍는 단순 무식한 공격.

천천히 걷던 발걸음을 옆으로 살짝 내딛는 것만으로 공격은 허공을 내질렀다.

“어?”

“야 인마! 지금 뭐하는 거야!”

이를 본 대장 녀석이 목에 핏대를 올렸다.

옆에서 봤을 땐 자기 혼자 허공에 곤봉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보일 테니까.

“이 자식이……!”

놈은 얼굴이 벌게져 다시금 곤봉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런 걸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다.

주먹을 가볍게 만 다음 가운데 손가락을 뾰족하게 세웠다.

일명 꿀밤.

장난칠 때도 많이 쓰이지만, 제대로 때리면 상당히 위험한 공격이다.

‘이쯤이지.’

곤봉을 휘두르려는 녀석에게 반보 다가갔다. 그리곤 녀석의 어깨 위로 가볍게 만 주먹을 내려찍었다.

덜컥.

무언가 빠지는 듯한 소리가 녀석의 살갗을 뚫고 울려 퍼졌다.

어깨의 골격을 이어 주는 뾰족하게 튀어나온 뼈 하나. 조약돌만 하게 튀어나온 작은 뼈지만 부러지는 순간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 더.

맞으면 더럽게 아프다.

“…끼야아아아악!”

어깨를 살짝 토닥인 것만으로 녀석은 갓난아기마냥 울부짖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대는 게 칼침이라도 한 대 맞은 반응이었다.

“뭐, 뭐야?!”

주변에 도적놈들은 제 눈을 믿지 못했다.

그저 가볍게 걸어오다 어깨를 툭 건드린 게 전부.

그런데 그것만으로 저렇게 아파한다고?

“포랄!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

“끄아아악…….”

장난이었음 좋겠지만 아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끝난 다른 녀석들 눈빛이 변했다. 더 이상 만만하게 볼 녀석이 아니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익…….”

“꿀밤 먹을 사람?”

“꿀…밤?”

“여기선 꿀밤이라 안 하는 모양이네.”

“…만만하게 볼 놈이 아니다! 인정사정 봐주지 마라!”

“엣!”

놈들은 무기를 올리며 긴장했다.

모두 후줄근하기 짝이 없는 날붙이뿐.

제 무기를 저딴 식으로 관리할 리는 없다. 어디서 주웠거나, 지금처럼 에워싸서 빼앗았겠지.

“죽어랏!”

방금까지 몸값이니 뭐니 하던 놈들이 이젠 날 죽이려는 듯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아무리 근력을 키웠다 하더라도 잠자코 맞기엔 위험했다.

아직 오러를 써서 막을 수 없으니까.

그럼 뭐다? 안 맞으면 그만이다.

쐐액!

연이어 들어온 검격은 처음 쓰러진 사내가 했던 것처럼 허공만 휘둘렀다.

“어엇……!”

그 바람에 휘청이는 몸뚱이는 그대로 공격에 훤히 노출됐다.

가볍게 주먹을 턱 끝에 스치듯 내질렀다.

덜컥.

또다시 들려오는 독특한 사운드. 죽통을 날려 버릴 수도 있지만 지금 해야 할 건 감각을 되살리는 거다.

예리하게 급소만 노리는 공격을 계속해 보며 과거의 감각을 되살리려 애썼다.

“으어엇…….”

가볍게 턱 끝을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놈은 그대로 거품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그의 두 눈이 한 곳을 보지 못하고 제각기 핑그르르 돌았다.

…쿵!

이내 한쪽 뺨을 사정없이 땅바닥에 처박았다.

머릿속을 헤집어 놨으니 놈한테는 땅바닥이 제 머릴 후두려 팬 것처럼 느껴졌을 거다.

“허억!”

날 죽이니 뭐니 했던 놈이 어느새 꼬랑질 말고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이미 도망가기는 늦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자, 잠깐! 우리 말로……!”

덜컥!

말은 무슨. 말은 사람이랑 하는 거다. 쓰레기랑 하는 게 아니라.

이어서 다른 놈들도 도망치려 했지만 순순히 내보내 줄 생각은 없었다.

차례로 두어 번 정도 주먹을 휘두르자 남은 도적놈들도 대가릴 땅에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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