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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5화 (5/222)

5화

사냥엔 사냥 도구가 필요한 법이다.

적당히 쓸 만한 단검이 없을까 해 찾아온 임페라 가문의 보고.

이안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임페라 백작가는 잘나가는 가문이었다.

지금은 죄다 빼앗겼지만, 백작령 소속이었던 던전에서 모은 보물도 상당했고.

전대 가주, 그러니까 이안의 할아버지는 보물을 모으는 게 취미였을 수준이었다.

애초에 베네르 가문과 척을 진 것도 전대 가주가 놈들한테 뺏은 아티팩트들 때문이다.

덕분에 과거 임페라 백작가의 보고엔 쓸 만한 아티팩트가 많았다.

[볼라테스의 진주.]

[리테바의 성배.]

이것저것 많이도 뺏었다.

그 탓에 전대 가주가 죽자마자 시작된 여러 영지들에게 영지전을 시작으로, 임페라 백작가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과거의 업보를 에이먼이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쓰이고, 남은 것조차 이안의 술값 때우는 용도가 전부였지만.

“흠.”

보고엔 온갖 잡다한 아티팩트‘였던’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보옥이 담겨 있었을 듯한 상자는 입을 벌린 채 내팽개쳐져 있고. 검은 온데간데없이 검집만 덜렁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남은 것은 팔리지 않은 잡동사니들.

원래부터 이런 쓰레기장은 아니었을 거다.

과거 영지전 배상금을 갚거나 이안 녀석이 값나가 봬는 걸 뒤적거리다 이렇게 됐겠지.

“아주 도움 되는 구석이 없어요. 이 망나니 새끼는.”

팔랑.

쓸 만한 아티팩트를 찾다 발치에 뭔가 걸렸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 한 권이었다.

먼지를 걷어 내니 께름칙한 기운이 풀풀 풀기는 책이었다.

“이건…….”

가죽을 실로 이어 붙인 겉표지. 희고 광택이 나는 게 평범한 가죽 같아 보이진 않았다.

“…사람 가죽이구만.”

아티팩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왼쪽 손바닥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아티팩트 위로 모이더니 아티팩트의 이름과 가진 힘에 대한 설명이 나열됐다.

“신기하네 이거. 빔 프로젝트도 아니고.”

왼손을 쥐었다 폈다 하니 글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길 반복했다.

그 모습이 신기해 몇 번 해 보다가 다시 아티팩트의 설명을 읽었다.

[네크로노미콘 : 고대인의 지식의 정수가 담긴 비밀스런 책. 풍문에 의하면 이 책을 쓴 자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사용 시 대상의 흑마법 랭크를 영구적으로 5로 고정시킨다.

이안 임페라를 미치게 만든 책. 대상의 흑마법 랭크를 무려 5로 올려 주는 사기적인 성능의 아티팩트.

다만 그 이상의 대가를 가져가는 악랄한 아이템이다.

대가는 바로 시전자의 영혼.

‘이건 안 팔렸던 거네.’

옆 영지에다 팔려고 가져갔다가 너무 악랄해서 팔리지 않았던 아티팩트.

‘랭크빨로 세계정복!’의 사후 세계에 관한 묘사를 떠올려 본다면, 영혼을 가져간다는 게 얼마나 큰 대가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이안 녀석은 꿈에도 몰랐겠지만.

“그까짓 랭크 좀 올려 보겠다고 영혼까지 팔어? 하여간 생각 없는 새끼.”

네크로노미콘을 계속 들고 있자니 찝찝한 기운이 자라났다.

이딴 건 가지고 있어 봐야 하등 쓸모없다. 바로 불태워 버려야…….

‘아니지. 불태우면 그 악마란 놈한테 밉보일지도.’

지금 상황도 코가 석 자다.

여기서 악마한테 찍히기라도 했다간 더 골치 아파진다. 그럴 바엔 지금처럼 창고에 고이 모셔 두는 게 나았다.

“…나중에 쓸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문득 궁금해졌다.

마법 랭크 6 이상인 녀석이 이 아이템을 쓰면 어떻게 될까?

랭크가 낮아지려나? 그것도 영구적으로?

일시적으로 랭크를 낮추는 디버프 아이템은 봤다만 영구적인 건 소설 내에서도 못 봤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태워 버리긴 찝찝했다.

혹시 모를 일이니 적당한 상자에 담아 구석에 짱 박아 뒀다.

네크로노미콘은 그렇게 두고 계속해서 보고를 뒤적였다.

“…이거지.”

[알테아의 단검 : 전설의 대도 알테아가 어렸을 적 사용한 단검. 매우 날카로우니 어린아이는 조심하세요.]

-사용자의 검술 랭크를 1 올려 준다. 단, 사용자의 검술 랭크가 3 이상일 경우 이 효력은 사라진다.

랭크 1은 그냥 검 몇 번 휘두르기만 해도 얻을 수 있는 것.

이름만 거창한 쓰레기인 것이다.

하지만 당장이 급한 나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없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다른 아티팩트도 찾아볼까 했지만 이것보다 쓸 만해 보이는 건 없었다.

쪼렙 전용 단검만 품 안에 꼭 그러안았다.

“나중에 다시 찾아봐야지.”

* * *

[크리젤 마을 뒷산 거대 뿔돼지 출몰 중. 퇴치 요망.]

들었던 대로 뿔돼지 토벌 탄원서는 올라와 있었다.

기간은 한 달을 훌쩍 넘겼다. 공무원 일처리가 아무리 늦는다 해도 한 달은 좀 아니지.

“욕먹을 만하네.”

“탄원서는 갑자기 왜 필요하신 거예요?”

몰래 에이먼의 집무실에서 탄원서를 빼 온 일레느가 물었다.

이안은 영지 업무랑은 원체 담을 쌓고 살던 놈이다.

그런 녀석이 탄원서를 달라 하니 이상하게만 생각하는 게 당연지사. 토벌에 나서려는 건 상상도 못하는 눈치다.

‘귀족이란 놈이 참…….’

“그냥 궁금해서 알아보려던 참이다. 문제라도 있나?”

“아, 아뇨! 저도 그냥 궁금해서요!”

“그래.”

일레느는 에이먼의 개인 집무실에서 서류를 빼 온 게 영 신경 쓰이는 눈치다.

하기사 지금껏 이안의 비행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본 게 일레느다.

뭐 어떤가. 난 표면상으론 에이먼의 아들이고, 탄원서를 들여다볼 권리쯤은 충분했다.

사냥 도구도 챙겼고 사냥감 위치도 대강 파악했겠다, 이제 사냥만 남았다.

“저어……. 공자님?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탄원서에 나온 뿔돼지를 잡으러 가시는 건 아니죠?”

일레느의 눈망울엔 걱정이 가득했다.

나이로만 따져도 이안보다 한 살 어렸다. 그런 어린 녀석이 걱정하고 있었다. 이 미친 망나니가 혹여나 나대다 죽진 않을까 하고.

이거 고마워해야 하나 기분 나빠해야 하나.

“신경 쓰지 마라. 그런 것까지 일일이 보고해야 하나?”

마음 같아선 “신경 안 써도 된단다.”라 하려던 게 이안 특유의 말투로 번역돼 버렸다.

입에 밴 건 어쩔 수 없어도 성격까지 닮으면 안 될 텐데.

“아앗……. 죄송합니다.”

“…아무 일 없을 거란 뜻이다. 벌써부터 죽고 싶은 생각 따윈 없으니. 그리고 아버지한텐 비밀이다. 탄원서는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네? 으음. 알겠어요. 공자님.”

여전히 영문 모를 얼굴이었지만 주인의 말이니 더 이상 군말은 없었다.

* * *

“여기라고 했지.”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숲. 인적이 거의 드나들지 않았는지 오솔길 하나 내어 있지 않았다.

옆엔 빨간 물감으로 덕지덕지 칠해 놓은 팻말까지 하나 박혀 있었다.

뿔이 달린 돼지와 사람 위에 크게 쳐진 ‘X’표.

함부로 드나들었다간 뿔돼지한테 죽는다는 경고 같았다. 이만하면 까막눈도 이해하지 싶다.

탄원서의 내용대로라면 사냥감이 있을 만한 장소는 여기다.

크리젤 마을.

산에서 버섯이나 과일을 따는 게 주 수입원인 깡촌 중에 깡촌.

어렸을적 가끔씩 귀한 버섯을 바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거 외엔 크게 세금이 걷히질 않는 마을이다.

마을 인구수도 적고, 채집 같은 걸 해 봐야 별 돈도 안 된다.

자연스레 임페라 백작령에서도 소외된 마을이었다.

[크리젤 마을 뒷산 거대 뿔돼지 출몰 중. 퇴치 요망.]

에이먼의 집무실에서 하나 슬쩍한 탄원서. 마을에 나타난 뿔돼지를 퇴치해 달라는 간단한 탄원서다.

하지만 에이먼은 이 탄원서에 대답하지 않고 내버려뒀다.

어쩔 수 없었다.

아마 당장 구멍 난 국세 때문에 다른 일이 우선된 것이리라.

일반 병사조차 없으니, 에이먼이 직접 나서야 할 텐데… 그가 너무 바쁜 것이다.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난 일이니 지금쯤 더 거대하게 자라났을 가능성이 컸다.

“으이구…….”

한 달 전에 잡았으면 금방 처치했을걸.

이게 다 이안 때문이다. 이 망나니 새끼가 세금으로 도박만 안 했어도 진작에 퇴치하고도 남았을 텐데.

이래서 윗물이 썩으면 아랫물이 고생하는 거다.

파삭.

경고하는 팻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수풀로 들어섰다. 길게 자란 수풀이 옷자락에 스쳐 부스럭댔다.

한 손엔 알테아의 단검을 꼭 쥔 채로 주윌 살폈다. 그나저나 꽤나 쓸 만한 단검이다.

우웅…….

옅은 바람이 단검 주위를 맴돌자 작은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어야 나올 수 있는 소리다.

“쓸 만하네.”

검을 처음 쥔 자에게 검술 랭크를 1 부여하는 단검.

지금처럼 무능력한 나에겐 한줄기 희망이다.

이거라면 내 낮은 랭크로도 뿔돼지에게 데미지를 주기엔 충분할 거다.

“돼지고기…….”

돼지고기! 삼겹살! 등심! 족발! 뭐 하나 버릴 구석이 없는 고마운 놈이다.

“딱 기다려라. 아주 뼈 채로 먹어 줄 테니까.”

군침을 다시며 놈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뿔돼지는 보통 지능이 낮다. 어찌나 멍청한지 제 뿔이 나무에 걸려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일 정도다.

덕분에 산짐승들에게 고마운 먹이 자원이지만 가끔씩 나오는 똘똘한 놈들이 문제다.

똘똘한 놈일수록 죽을 일도 적어 수명이 길어진다. 그럴수록 덩치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또 불어난다.

이때부터가 문제다. 비대해진 몸뚱이로 다른 산짐승까지 잡아먹고 다니는 골치 아픈 놈이 돼 버린다.

이런 산골 마을에선 주기적으로 뿔돼지들을 사냥해 주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일단 사냥을 하려면 미끼부터지.”

뿔돼지를 꾀어내기 위해 주변 나무들을 살폈다.

크리젤 마을 사람들은 뿔돼지 때문에 요 근래 산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 나무엔 잘 익은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쓰읍.”

워낙 토실토실하게 익어 나도 모르게 한입 베어 물 뻔했다.

‘아니야.’

이따 배불리 먹으려면 지금은 잠시 참아야 한다. 게다가 맛있게 생기긴 했지만 처음 보는 과일들뿐이다.

겉은 사과처럼 새빨간데 속은 물컹거리는 게 함부로 먹기는 좀 께름칙했다.

난 소설 속 글귀를 떠올리며 뿔돼지 사냥에 필요한 과일들을 그러모았다.

[이런 무인도에선 뿔돼지야말로 귀중한 식량 자원이다. 칼도 뭣도 없다는 게 흠이지만 아주 못 잡을 거야 없다. 뿔돼지의 습성을 이해하면 잡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뿔돼지는 눈이 극도로 나쁘다. 대신 눈이 나쁜 만큼 후각이 굉장히 예민하다. 이를 이용해 으깬 과일 같은 걸 준비하면 뿔돼지를 잡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식은 죽 먹기가 얼마나 힘든데.’

혼자 영양가 없는 농담을 던지곤 낄낄댔다.

식은 죽 하나 먹기가 어렵긴 했다. 대한민국에서도, 임페라 백작령에서도.

과일은 나무에 매달린 게 아닌 땅바닥에 떨어진 것들만 주워 담았다.

너무 익어 과실이 터져 달콤한 향이 진동하는 녀석들이다.

그걸 한데 모아 놓곤 주먹만 한 돌멩이로 짓이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잼 비스무리한 과일 으깬 게 한 바구니 모였다.

그걸 뿔돼지 녀석이 다니기 좋을 만한 길목에 뿌려 놓았다.

이제부터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덫이라도 준비해 놓을까 싶었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상대는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버틴 영악한 놈. 어줍잖은 덫은 오히려 녀석의 경계를 살지도 모른다.

대신 과일 잼을 뿌려 놓고는 근처 높다란 나무 위에 올라탔다. 팔이 욱씬거리긴 했지만 잔가지가 많아 올라갈 순 있었다.

이제 놈이 오기만 하면 된다.

검술 랭크가 낮아 제대로 된 공격은 통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만한 높이에서 체중을 실은 채 내려찍는다면?

뿔돼지 가죽 하나 뚫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꼬르륵!

“어우.”

시간이 꽤나 지난 탓인지 배 속이 요동쳤다.

“이 돼지 새끼. 언제 올 생각인 거야?”

“구르륵.”

어디선가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흐! 짜식. 양반은 못 될 놈이네.’

저 멀리서 뿔이 길게 솟은 뿔돼지 한 마리가 콧구멍을 벌름 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확실히 상당히 오래된 놈이라 덩치가 상당했다.

놈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녀석의 몸뚱이는 계속해서 커져 갔다.

쿵……! 쿵……!

“…어?”

이내 코앞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녀석의 덩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단검이 아니라 창을 가져왔어야 했나 싶은데.

‘…뭐야? 왜 이렇게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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