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먹을 걸 구해야 한다.
이안의 몸뚱이에 갇혀 버린 지금. 제일 시급한 문제는 이거였다.
단순히 대한민국의 이진수가 굶어 죽어서 그런 게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져야 하고, 강해지기 위해선 영양 보충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이야 작황이 좋지 못해 그렇다지만, 상황이 좋아진다 해도 임페라 가문의 재정 상태는 끔찍했다.
아마 곡물죽에 고기 몇 덩이 섞는 것도 감지덕지.
그마저도 결투 재판에서 패배하면 꿈도 못 꾼다.
“에휴…….”
이제 좀 편히 사나 했더니만. 먹을 것 하나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니.
일단 향한 곳은 백작령에 위치한 주점.
따지고보면 술뿐만 아니라 숙박을 비롯해 별에 별걸 다 하는 여관에 가까웠다.
그래도 일단 술을 파니 주점은 주점이다. 워낙에 가난한 영지다 보니 제대로 된 주점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이만한 거지 백작령에서 뭘 바라겠어.’
이안의 기억 속에서 늘상 가던 곳이라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기억하고 있달까? 술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묘하게 가벼웠다.
‘술은 절대 안 마신다.’
애초에 돈도 없다.
술집에 가면서 술을 안 마신다니.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내 목적은 따로 있다.
정보 수집.
이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곤 있다 하나 건질 만한 정보란 게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맨날 술만 처먹고 도박이나 놀기 바쁜 놈이라 더욱 그랬다.
“이거면 되겠지.”
적당한 망토를 덮어쓰곤 술집으로 들어섰다.
“어서 옵쇼!”
주인장은 활기찬 목소리로 손님을 반겼다.
초라한 망토 탓에 내가 누군지 금세 알아차리진 못했다.
줄곧 이안은 귀족이란 걸 티내려는지 온갖 화려한 옷을 입고 주점에 들렀다. 다른 귀족들한테 무시 받는 열등감을 이런 데서 채우려는 거다.
“주문은 뭘로…….”
평소완 달리 허름한 옷차림이다 보니 매번 보는 얼굴임에도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헉! 공자님?”
“쉿.”
이내 내 얼굴을 알아차린 주인장이 흠칫했다.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자 영문 모르겠단 눈빛을 보냈다.
“오늘은 조용히 있다 가려고 왔다.”
“조용히 있다 가신다고요?”
이 망나니 공자 놈이 조용하다니, 말이 되는 소릴 하라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게 이안이 여길 들릴 때마다 꼭 사고가 한 번씩 났다.
괜한 손님을 후두려 패질 않나, 비싼 술을 들이라고 행패를 부리질 않나.
당장 며칠 전만 하더라도 사람 하날 쥐어 패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 그게 베네르 백작가의 가신이었고.
께름칙한 냄새가 솔솔 풍겨 왔지만 주인장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주인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조용히 입을 오므렸다.
“그래.”
“으음……. 그럼 혹시 필요하신 거라도…….”
“없다. 그냥 조용히 앉아만 있을 테니.”
“네……. 그럼… 물이라도 한 잔 내어드리겠습니다요.”
안주라도 하나 시킬까 했지만 다른 자리에 내어 온 음식을 보곤 마음 접었다.
여긴 백작이란 작자가 곡물죽이나 먹는 상거지 백작령이다.
그런 영지니, 음식이란 것들도 형편은 비슷했다.
채소 볶음이나 채소 볶음에 이상한 곡물 알갱이를 추가한 것들뿐이었다.
저딴 걸 먹느니 일레느가 끓여 준 죽이나 먹지.
구석탱이에 앉은 한 남자는 채소 볶음이 뭐가 맛있는지 오물오물 집어먹고 있었다.
펑퍼짐한 겉옷에 고갤 푹 숙이고 있는 게 이곳 사람 같지는 않았다.
‘저게 맛있나?’
일단은 적당히 술집 구석에 자릴 잡고 앉았다.
구석에 앉아 주윌 살피니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눈이 갔다.
맥주에 물이라도 탔는지 희멀건한 뭔갈 술이랍시고 마셔 대는 이들뿐.
하나같이 손이 거칠고 옷은 다 헤져 여유로워 보이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백작가보단 나은데?
“…푸하! 내 이 맛에 산다니깐!”
“요새 형편 좀 되나 봐? 술집에서 자주 보네?”
“형편이 좋긴 무슨! 이틀 벌어 하루 겨우 먹는 수준인데!”
잠시 구석에 앉아 다른 이들의 이야길 엿들었다.
대충 어떤 얘기가 오갈진 예상했다. 아무리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가난함. 원망의 화살은 당연하게도 백작령의 주인에게 향했다.
“이게 다 그 망할 백작놈 때문이라니까?”
“백작보단 그 아들놈 새끼 때문이지! 며칠 전에도 뒤지게 술 퍼마시고 나자빠져 있었다면서?”
“아들놈 단속 못한 아비 잘못이지!”
“그래도 세율 안 올리는 게 어딘가. 이번에 국세가 밀려 백작가는 더 힘들다는데.”
이안의 기행은 평범한 영지민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고작해야 열일곱 살밖에 안 된 놈이 뭔 망나니 짓거릴 그리 해 댔는지 원.
식사가 곡물죽이었던 건 전적으로 이안 탓이었던 거 같다.
“이, 이 사람아! 말조심해!”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X팔!”
내가 뒤에서 엿듣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욕설이 난무했다.
주인장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려 봤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먹은 욕만 몇 바가지다.
자기들은 한 푼이 아쉬운 처지인데도 맨날 놀고먹기 바쁜 개망나니 공자 이안.
이거 원 욕만 먹고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대체 세금을 얼마나 내야 되는 건데? 귀족 나으리한테 갖다 바치는 것도 모자라 이젠 도적놈들한테까지 바쳐야 된다니!”
“귀족은 무슨! 둘 다 똑 같은 도적놈들이지!”
“하이고……! 이 사람아! 조용히 좀 하라니깐!”
“뭐 어때? 여기 그 망할 귀족 나으리가 계신 것도 아닌데!”
“으으…….”
주인장이 곁눈질로 이쪽을 흘긋했다. 난 대답 대신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주인장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했지만 상관없다.
“흠…….”
예상했던 대로 영지 상황은 개판 오 분 전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영지에서 제대로 된 치안을 기대하긴 어려운 게 당연지사.
이젠 대놓고 도적놈들이 보호비랍시고 돈까지 뜯어내는 상황이었다.
“너네 마을은 그나마 나은 거지! 우리 마을 뒷산에 뿔돼지는 어떤 줄 알아? 그놈은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얼마 전 장정 다섯이 죽이러 갔다 도망쳐 왔다니까.”
“토벌 탄원서는 내봤나?”
“당연하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고! X발!”
‘좋아.’
술집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도 꽤나 쏠쏠한 정보들이 줄지어 나왔다.
난 조용히 고갤 숙인 채로 리스트를 정리해 나갔다.
뭔갈 차분히 적어 내려가는 걸 보고 주인장은 낯빛이 시커메졌다.
아마 살생부라도 적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듯싶다.
솔직히 말하면 살생부보단 포상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저 녀석 덕분에 방구석에선 알 수 없었던 이야길 많이 주워들을 수 있었으니까.
‘뿔돼지라…….’
실제로 본 적은 없으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돼지에 가까운 마물이다.
물은 내장만 조심하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소설에서도 주인공 녀석이 조난당했을 때 뿔돼지를 먹고 버틴 에피소드도 있었다.
맛은 그냥 돼지고기 비슷한 맛이라던데.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 하지 않았나? 먹을 게 없으면 사냥해서 구하면 그만이다.
‘그런 간단한 속담조차 허용되지 않던 세상이었지.’
독으로 가득 찬 강과 썩어 문드러진 대지. 그 위엔 사냥감은커녕 풀 한 포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다. 먹을 게 지천에 널린 수준이니까.
“쓰읍…….”
어느새 입가에 침이 줄줄 흘렀다.
끼익……!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는데 낡은 문이 요란한 소릴 내며 열렸다.
시끌시끌한 술집의 소란에 묻혀 그닥 이목을 끌진 못했다.
“…….”
손님 같아 보이진 않았다. 걸레짝이나 다름없는 거적때기를 뒤집어쓴 걸 보니 동냥이나 하러 온 거지 같았다.
하지만 그를 본 주인장의 눈빛이 휘둥그레졌다. 당황한 걸 넘어서 와선 안 될 마물이라도 마주한 눈빛이다.
거지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지만, 그냥 거지라기엔 주인장의 태도가 좀 달랐다.
“하, 한 푼만 줍쇼……. 벌써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으응? 뭐야? 이거 거지X낀……. 허억!”
한참을 먹고 마시던 이들은 거지를 보자마자 헛바람을 삼켰다. 이들의 시선은 거지가 내민 손에 머물렀다.
그의 왼쪽 팔 끝엔 손이라 할 게 붙어 있지 않았다. 뭉툭하게 잘린 외팔에 보는 내가 가슴이 짠했지만 다른 이들에겐 아니었다.
“블랭크!”
“이… 이 재수 없는 새끼가 여길 어디라고!”
술기운이 올라온 거 같은 남자가 사정없이 발길질을 해 댔다.
사람한테 하는 발길질이라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거셌다.
퍼억!
“어억!”
곧장 복부를 걷어차인 남자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며칠 굶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걸 보면.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듯 보였던 주인장도 오히려 거지가 아닌 발길질한 남자를 두둔했다.
“더럽게 손을 쓰나? 빨리 나가쇼! 어딜 들어와!”
“으윽…….”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경우인가 싶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이진수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 이안의 상식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신에게서 버림받은 자. 블랭크.
함께 있는 것만으로 불운을 내뿜는다 여겨지는 존재.
심지어 몇몇 특별한 블랭크들이 가져오는 불운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의 반응은 이상할 게 없었다.
주위 사람들은 걷어차인 건 거지였는데도 되려 발길질한 남자를 걱정까지 해 주고 있었다.
“자네 괜찮은가!”
“에잇! 재수가 없으려니까 블랭크까지 만나네!”
“저리 안 꺼져? 제 발로 걸어 나갈 수 있을 때 나가시지?”
“으으……. 부디 자비를…….”
‘좀 심하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사람이다. 어쩌다 블랭크가 돼 버렸는진 몰라도 왼손을 잃기 전까진 평범한 주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평민들 사이에서도 블랭크에 대한 대우는 이랬다.
가축 이하의 쓰레기. 저 블랭크가 에이먼이라 해도 대우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쯧.”
보다 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와주진 못할망정 때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일어나라.”
“응?”
한마디 하려는데 한 남자가 먼저 끼어들었다. 방금까지 구석에서 채소 볶음을 집어먹던 남자다.
녀석은 먹다 만 빵 한 조각을 거지에게 던져 줬다.
텅!
어찌나 딱딱한 빵인지 돌덩이 던지는 소리가 났다.
“가라. 괜한 소란 일으키지 말고.”
“가, 감사합니다! 나으리!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
형편없는 빵이었지만 거지는 잘린 외팔로 넙죽 엎드려 절까지 올려 바쳤다. 그리곤 혹여나 남자의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빵을 집어 들고 도망쳤다.
“블랭크한테 빵을…….”
“불만 있나?”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방금까지 잔뜩 화가 났던 남자는 시비를 걸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남자의 매서운 눈빛 한번 마주하자 금세 꼬랑질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녀석은 별 말 없이 술집을 빠져나갔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게 유독 검은 흑발이 인상적이었다.
뭐가 됐건 간에 저 녀석 덕에 괜한 수고를 덜었다.
얻을 만한 정보는 다 얻었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인장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나도 이만 나가지.”
“예, 예! 나으리! 살펴 가십쇼!”
“나으리?”
“…허억!”
신나게 날 물어뜯던 놈들이 용케 내 얼굴을 알아보곤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고, 공자님!”
“어, 언제부터 여기…….”
나가려던 발걸음을 잠시 멈칫하고 신나게 떠들던 주정뱅이한테 다가갔다.
방금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새하얘졌다.
“어이.”
“예, 예엣!”
“이름이 뭐지? 어디 살고.”
“그, 그……! 에, 에러벨에 사는 람입니다요!”
“그래. 람. 에러벨이 뭐하는 곳이지?”
“그… 주로 과, 과일을 채집하는 마을입니다요!”
“과일이라.”
“그…렇습니다요…….”
“에러벨 마을의 람. 기억하도록 하지.”
람이란 사내의 어깰 가볍게 토닥였다.
“허윽…….”
“수고하라구.”
뒤돌아서자마자 람은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방금까지 실컷 욕하던 귀족 나으리가 자길 기억하겠다니 그럴 만했다.
“대, 대체 언제부터 여기…….”
“아까부터 쭉 계셨네! 그러게 내 조용히 좀 하라니까…….”
“으윽…….”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시지?”
“그, 그게 중요한가! 살았으니 다행이지. 아니, 어쩌면 나중에 경을 치실 생각이실지도…….”
“하이고… 난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