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런 죽음이 뭘까? 이 망할 세상에서 살다 보니 자주 나왔던 대화 주제다.
‘목이 잘리는 게 아닐까? 잘리고 나서도 몇 초 정도는 의식이 있다던데.’
‘당연히 불에 타 죽는 거지. 통증은 그게 제일 세잖아?’
‘아니지. 주화입마에 빠진 놈들 못 봤어? 소리 꽥꽥 질러 대는 게 얼마나 아파 보이던지.’
이런 주제가 으레 그렇듯 결론은 나지 않았다.
사람마다 겪는 죽음이 저마다 다를뿐더러 죽으면 그냥 끝이다.
한 번 죽어 보고 “야… 이게 제일 아프더라…….”라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난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죽어 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구르륵!
등까지 달라붙은 뱃가죽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시팔…….”
13번의 대격변에도 살아남아 놓곤 최후가 고작 이거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구만.
“프흐흐…….”
2035년.
지구라는 이름의 평화로운 세상엔 불청객이 찾아왔다.
마신 아쉬타르.
인류가 미지의 존재에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찰나, 마신 아쉬타르는 자신이 가진 첫 번째 손을 휘둘렀다.
단 한 번 손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거대한 일격에 대지는 과자 부스러지듯 파괴되며 평생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대지에 남겼다.
그걸로는 모자랐는지, 흉측한 아가리에서 난생처음 보는 괴수들을 끝없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첫 번째 대격변.
지옥 같았던 첫날, 대격변이란 이름 아래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던 인류는 순식간에 먹이사슬의 최하위 계층으로 전락했다.
문명이라 불리던 모든 것들이 괴수들 앞에선 쓸모없는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라도 된 양 인류가 가진 모든 반격은 이들에게 아무런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모두가 인류의 멸망을 예견하고 있던 그때.
짜 맞추기라도 한 듯 ‘발할라 시스템’이 나타났다.
선택받은 소수의 인류, 즉 각성자들만이 접근 가능했던 신의 은총.
이는 불가능 할 것만 같았던 마신에게 저항할 힘을 내려 주었다. 어디서 무슨 방식으로 가능한 건진 아직까지도 아무도 몰랐다.
께름칙한 부분 투성이였지만 인류에게 그런 자잘한 것들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각성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발할라 시스템을 이용했다.
스테이터스, 스킬, 심지어 커뮤니티 창까지 구비한 이 시스템은 수많은 각성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 은총 덕분에 인류는 멸망을 늦출 수 있었다.
대략 십 년 정도.
“부질없는 짓이지.”
발할라 시스템 덕분에 살아남을 순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멸망을 조금 늦춘 것에 불가했다.
열세번이나 계속된 대격변 앞에 발할라 시스템이 있다 할지라도 이 세상은 착실히 멸망의 길을 걸었다.
대지는 썩어 문드러지고, 푸른 강물은 독기를 내뿜는 간헐천이 되어 모든 생명을 앗아 갔다.
이대론 모두 죽을 것이라 확신한 난 최후의 생존자들을 그러모았다.
끔찍한 희생 끝에 겨우 마신 아쉬타르를 처치했건만.
그게 끝.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채로 흉악한 독기만을 내뿜는 저주 받은 땅.
그 위로 작물 같은 게 자랄 리가 없다. 작물이 없으니 가축도 없다.
괴수들을 잡아먹으면 되지 않냐고? 미안하지만 괴수놈들도 마신 아쉬타르가 죽자 함께 사라졌다.
동료들마저 모두 죽어 버리고 남은 건 오직 나 하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멸망한 세상에서 난 외롭게 죽어 가고 있다.
뭐 대단한 상처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서서히, 아주 고통스럽게 아사하는 중이다.
“하아…….”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내 발할라 시스템을 켰다.
[이름 : 이진수(Lv999).]
[보유한 스킬 : 현자의 눈(Max), 샘솟는 마나(Max), 검신지체(Max), 무너지지 않는 신념(Max)…….]
무수히 많은 스킬 항목이 나열됐다.
이 모든 스킬이 모이고 모여 마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마신이 죽은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스킬들은 모두 쓸모없는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었다.
[친구 : 0]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다른 이들을 애타게 찾아봤다. 결과는 보이는 것처럼 매번 헛수고였다.
툭.
뼈만 앙상히 남은 손가락으로 창을 클릭했다.
손끝이 향한 곳은 발할라 시스템 내에 구비된 ‘커뮤니티’ 탭.
[커뮤니티]
[새 글이 없습니다.]
지난 1년간 올라온 글 목록을 주욱 살폈다.
[생존자를 찾습니다. 2045/07/14]
[생존자를 찾습니다. 2045/07/13]
[생존자를 찾습니다. 2045/07/12]
…….
수많은 글이 떠올랐지만 작성자는 똑같았다.
[작성자. 이진수.]
떨리는 손으로 새로운 글을 하나 더 작성했다.
제발 누구라도.
지구상 어디에 숨어 있더라도 제발 대답해 줘라.
[생존자를 찾ㅅ]
툭.
텍스트를 적어 내리던 손을 멈췄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이쯤 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다.
비각성자라면 오염된 이 대지에서 숨만 쉬어도 죽었을 거고, 각성자라면 이 글을 못 봤을 리가 없다.
이제 더 이상 지구상에 생존자는 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젠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때다. 적어도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선 말이다.
“후…….”
퀭한 눈으로 커뮤니티 글 목록을 넘겼다.
한 달… 두 달……
지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대륙의 생존자들을 모아 공격대를 모으려는 글도 있었고. 시덥잖은 어그로 글을 올리는 놈도 있었다.
최근 글은 나뿐만이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꽤나 활발했다.
[랭크빨로 세계정복! 2245화]
“하하…….”
그래. 이런 녀석도 있었지. 각성자들만 접근이 가능한 커뮤니티에 소설을 올리는 미친 놈.
네이X라면 유료화라도 가능하겠지만 커뮤니티에 그런 건 없었다.
그저 자기만족만을 위해 꾸준히 소설을 연재하는 녀석이다.
처음엔 악플이 주를 이뤘지만 끈기에 감복했는지 후반부에 들어선 악플은 거의 없었다. 된장찌개 레시피 같은 댓글은 달렸지만.
나도 꽤나 재미있게 봤다.
세상이 이리된 마당에 취미 생활이랄 것도 없고, 대격변 이전엔 웹소설이니 뭐니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양판소 냄새 풀풀 풍기는 제목 주제에 묘하게 깊은 세계관이나 끔찍하게 연혁표에 집착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동료 녀석들은 설정충이라며 기겁하긴 했지만.
[다음 편으로 ‘랭크빨로 세계정복!’은 완결됩니다.]
[└이 양반 꾸준하시네.]
[└된장찌개 레시피. 1. 먼저 멸치와 다시마를 넣은 물을 끓이고…….]
[└얘가 더 꾸준한 듯ㅇㅇ]
[└ㄹㅇㅋㅋ]
“크흐흐!”
이 된장찌개 양반은 매화마다 레시피 댓글만 남긴 놈이다. 어찌 보면 팬이라고 해야 되나.
안타깝지만 이 소설이 완결 되는 일은 없었다.
2,245화를 마지막으로 연재는 중지됐으니까.
[└이거 작가 어디 감?]
[└몰라. 죽었나 보지.]
[└이제 레시피 누가 적어 주냐.]
그리 서글프거나 하진 않았다.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이었으니까.
아마 작가 양반도 죽었을 거다. 여기 댓글 남긴 양반들도 다 죽었다.
다 죽었다. 나도 곧 죽을 거고.
온몸에 기력이 차츰 빠져나갔다. 사위가 점차 어두컴컴해져갔다.
‘이렇게 죽는구나.’
아쉽다. 메마른 입 안이 바싹바싹 타올랐다.
‘흐흐… 그러고 보니 뒤풀이도 못했네.’
그래. 그랬지.
매번 레이드를 마칠 때마다 동료들과 나눈 한 끼 식사. 기름진 음식은 아니었더라도 왁자지껄 떠들며 즐기던 마지막 뒤풀이.
죽은 동료들을 기리고 살아남은 이들과 한줌의 기쁨을 나누며 먹고 마시던 술잔. 그걸 못하고 이렇게 가는구나.
‘저승에서 한잔이라도 하자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띠링!
“…응?”
마지막 한줄기 의식의 끈을 놓으려던 찰나. 익숙한 알림음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 알림음은 분명……?
[새 글이 작성되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새, 새 글이 나왔다고?”
그럴 리가 없다. 분명 다 죽었을 텐데? 대체 누가 새 글을?
바들거리는 손으로 커뮤니티 창을 새로고침 했다.
[랭크빨로 세계정복! 2246화(완결)]
“어…어어?”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새로 나타난 글은 다름 아닌 랭크빨로 세계정복의 마지막화였다.
이 작가 녀석 살아 있었나? 세상이 멸망했는데 소설이나 쓰고 있었다고? 대체 왜 그런 짓을?
어느새 내 손은 새로이 떠오른 글을 클릭했다.
[■■■ ■■…■■■ ■■■■.]
“이게… 무슨……?”
이상하다.
소설의 최신화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의 연속이었다.
발할라 시스템은 세계 어디에서 문자를 쓰던 알아서 번역이 된다.
하지만 지금 뜬 텍스트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얼른 스크롤바를 주욱 내렸다. 작가가 어디 도망가기 전에 댓글을 남겨야 했다.
대체 어디 있는 거냐고. 이 글을 어떻게 썼고. 다른 생존자는 없냐고.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대체 어디ㅅ]
의문에 의문이 꼬릴 물었지만 댓글은 남길 수 없었다.
파아앗!
이내 발할라 시스템 창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며 정신을 잃었다.
* * *
온몸이 물에 젖은 솜마냥 무겁다.
‘…여긴 어디지?’
컴컴한 어둠만이 자리 잡은 주변 풍경. 어딘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결국 죽은 건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몸이었다.
식음을 전폐한 게 벌써 십수 개월째니, 발할라 시스템으로 각성한 몸이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죽었을 거다.
그렇다는 건 여긴 사후세계… 뭐 그런 건가?
“끄으응…….”
하지만 사후세계라기엔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사지도 멀쩡하게 달려 있고 미약하게나마 목소리도 나왔다.
“…….”
조심스레 눈을 떠 주변을 살폈다.
이제 보니 난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은 고풍스런 가구들로 가득했다. 천장엔 샹들리에까지 달려 있고.
“…뭐지?”
내가 아는 사후세계라기보단 영화에서나 볼법한 중세시대 귀족의 침실에 가까웠다.
벌컥!
정신줄을 놓을락 말락 하던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갈색빛 머릿결과 흰 피부를 가진 여성이었다.
난 그녀의 복장에 다시 한 번 정신이 멍해졌다. 검은 바탕에 흰 천을 덧댄 메이드 복이라니.
저 여잔 또 뭐지?
“…도련님!”
‘도련님?’
여성은 날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와락! 달려들었다.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정말이지… 놀랐다구요!”
‘도련님? 깨어나? 이건 또 뭔 소리야?’
하늘에서 괴수들이 튀어나오는 세상에 있었다지만 ‘도련님’이란 소릴 들을 입장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메이드 복까지 차려 입은 여자한테는 더더욱.
그러다 문득 여자의 어깨 너머 벽 쪽으로 시선이 갔다. 벽엔 먼지가 뽀얗게 쌓인 거울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 거울 너머엔. 금발의 남자가 날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
“네? 무슨 문제라도…….”
“자, 잠깐…….”
“아! 죄송해요! 방금 깨어나셔서 몸도 성치 않으실 텐데…….”
죄송이건 뭐건 간에. 지금 그딴 거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다시 한번 거울 속을 확인했다.
여전히 거울 속에 있는 건 대한민국의 이진수라는 사내가 아니었다.
퀭한 얼굴을 이국적인 외모의 남자였다.
“…으윽!”
그때, 갑작스레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들이닥쳤다. 뒤이어 머릿속에서 잡다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정확히는 떠오른게 아니라 남의 기억을 읽는 기분이다. 마치 파노라마가 펼쳐지듯 타인의 기억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맨날 술에 쩔어 인생을 낭비하던 망나니 한량의 삶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삶은 대한민국의 이진수란 남자에게도 크게 낯설지 않은 인생이었다.
“이건……?”
반짝.
그때 시야의 왼편 부근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응?”
빛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내 왼쪽 손이었다.
누군가 장난이라도 쳤는지 복잡한 룬 문양이 왼쪽 손바닥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잠깐…….”
그런데 뭔가 낯이 익다.
왼쪽 손에 적힌 룬 문양.
분명히 처음 보는 거지만 난 이게 뭔지 알고 있었다.
“아…….”
어디선가 본 듯한 사내의 일생. 그리고 왼쪽 손에 새겨진 룬 문양.
“그럴 리가…….”
절대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야 이것들은 ‘랭크빨로 세계정복!’에 나오는 설정들이니까.
“…….”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눈앞의 손바닥에 적힌 룬 문양은 소설 속 묘사와 너무나도 흡사했다.
‘랭크빨로 세계정복!’이 시작을 여는 글귀. 어째선지 지금 내 머릿속엔 그 부분이 떠올랐다.
[이 세상엔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 ‘랭크’.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왼손을 펼쳐 룬 문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랭크를 확인할 수 있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왼손을 펼쳐 룬 문양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바앙!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왼손 위로 반투명한 영상이 투영됐다. 손 가득 새겨져 있던 룬 문양이 자잘한 점으로 나뉘었다.
어지럽게 나돌던 자그마한 점들은 이내 하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주한 건.
이진수란 이름이 아닌 전혀 다른 이름이었다.
[이름 : 이안 임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