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흑산의 절
흑산의 절은 매우 음산했다.
당장이라도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고, 사방에서는 기이한 울음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상당히 신경 쓰이는 곳이네...후우!”
주세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이런 곳에 절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에 짐승 소리...
거기다 더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기보다는 음침함을 더하는 것이어서 일행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위험해.’
백유현은 절이 가까워질수록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귀(鬼)를 대하면 일어나는 현상...
그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앞쪽으로 가면, 분명 놈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증명하듯 어두운 숲속에서 뭔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요사스러운 혼들...하지만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저 절에 분명 뭔가 있어!’
여기는 인세(人世)가 아니다.
온갖 요사스럽고 원독이 가득한 원혼들이 엄청나게 존재하는 망유계.
그런 곳에 절이 있다는 것은 어딘가 맞지 않는다.
지장보살이 등장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이상한 것이다.
지장보살은 지옥과 같은 인세와는 동떨어진 마귀의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쿵-
그 때 어디선가 울림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각성자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쿵-
그런데 그 소리는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소리에 화답하듯,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도 괴성이 들려왔다.
쿵- 쿵-
박성진은 주변을 살피더니 명을 내렸다.
“전투 대응 준비! 분위기가 이상하니 절대 방심하지 말 것!”
“오케이...알겠습니다!”
각성자들은 무기를 꼬나 쥔 채 주변을 살폈다.
그들은 지구에서도 내로라하던 자들.
그리고 여기까지 오면서 엄청난 경험을 쌓아온 최강의 각성자들이었다.
박성진의 말이 아니어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이미 간파할 정도는 되었다.
쿵-
그리고 또 한 번 울림이 전해졌다.
그 순간 백유현이 외쳤다.
“조심하세요!”
콰쾅!
그와 동시에 뭔가 각성자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으아악!”
콰드드드-
어디서 날아들었는지도 모르게 날아든 하나의 거대한 돌기둥.
그것은 박성진이 펼친 쉴드에 막혀 박살이 나긴 했지만, 박성진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음...”
“대장! 괜찮아요? 어, 엇! 피, 피가!”
박성진은 쉴드를 펼쳐 돌기둥을 막아내긴 했지만, 그의 팔뚝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쉴드가 견뎌내지 못하고 박살이 났고, 그 바람에 박성진은 대미지를 입은 것이다.
“이런! 대장 어깨가...!”
김수향이 재빨리 달려와서 힐링 구체를 만들어냈다.
“상처가 꽤 깊어! 어떤 자식이 이런 거야?”
김수향 역시 인상을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때였다.
슈아아아앗!
또 한 번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더니, 뭔가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콰앙!
“크윽!”
“세광이 형!”
이번에는 주세광이 빠르게 달려들며 그것을 막아냈지만, 그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세, 세광이 형!”
아무리 보조 탱커라고는 하지만, 주세광이 펼치는 쉴드도 상당한 것이었는데, 그 쉴드가 박살이 난 것이었다.
“커헉!”
그리고 더 문제는 주세광의 상태였다.
그는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이런!”
김수향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힐링 구체를 가득 띄워 올렸다.
팀의 탱커 둘이 순식간에 무력화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못 컸다.
그 때, 한쪽을 노려보던 백유현이 움직였다.
천무현이 그런 그의 모습에 당황한 기색으로 외쳤다.
“유현아!”
파각-
그 순간, 갑자기 김현성도 검을 빼들고 백유현과 같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서 방어 태세를! 우린 지금 포위당했어!”
박성진이 어깨가 부서진 고통으로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어서 원형진을! 각 탱커는 바깥으로, 힐러는 그 뒤를 받칩니다! 어서 서두르세요!”
촤아앗-
각성자들은 빠르게 움직여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둥글게 모인 그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쿵-
그 때 또 한 번 커다란 울림이 전해졌다.
그 울림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매우 지근거리에서 전해지는 것이었다.
“적이다!”
그와 동시에 각성자 중 누군가 크게 외쳤다.
“우와아앗!”
콰앙-
그리고 갑자기 뭔가 각성자들을 덮쳤다.
“크윽!”
탱커들이 앞으로 나서 그 공격을 막아냈지만, 워낙 공격이 강력해서 그들은 뒤로 크게 밀려났다.
“크아악!”
탱커 중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그 자리에 쓰러지는 자들이 숙출했다.
피를 토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팔이 부러져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뒤트는 자들도 있었다.
“힐러들 어서!”
박성진의 외침에 힐러들은 재빨리 달라붙어 탱커들을 치유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콰앙-
“이쪽이다!”
“으윽!”
“으아악!”
진형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날아드는 공격에 각성자들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그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하지만 공격이 어찌나 강했던지, 이번에도 순식간에 사상자가 늘어났다.
“뭐, 뭐야!”
그제야 각성자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던 것이 뭔가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괴형체였다.
하나, 둘도 아닌 몇이 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수많은, 그리고 괴이한 형태의 괴물...
“저것은...!”
“도깨비!”
도깨비.
손에 쇠몽둥이를 들고 인간에게 해를 입힌다는 귀신.
놈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도깨비의 모습은 전해지는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이마의 외뿔과 외눈 형태는 비슷했지만, 팔이 여러 개 달린 놈들도 있었고 가장 큰 차이점은 놈들의 체구였다.
마치 오 층 짜리 건물이 통째로 움직이는 듯, 거대한 키에 온 몸이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인 듯한 외형...
그런 외형에서 뿜어지는 힘은 결단코 각성자들이 쉽게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쿵쿵 거리던 그 울림도 놈들이 내는 것이었다.
“이런! 딜러들! 어서 놈들을!”
박성진을 비롯한 각성자들이 이를 악물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지금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 때였다.
쿠웅-
뭔가 거대한 울림이 또 한 번 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거대한 존재가 움직였다는 느낌이 아닌, 뭔가 커다란 나무 같은 것이 쓰러지며 내는 소리 같은...
“어엇! 도깨비들이 쓰러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방에 가득한 도깨비들이 갑자기 쓰러지고 있었다.
“크웨에엑!”
어떤 놈은 비명을 내지르기도 했고, 어떤 놈은 갑자기 자리에서 미친 듯 사방으로 몽둥이를 내리치다가 그대로 쓰러지기도 했다.
“백유현! 백유현이다!”
“저기 김현성도 있어!”
알고 보니 그들 사이에 두 사람이 부지런히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백유현과 김현성이었다.
그들은 이미 도깨비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들을 잡아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촤앗!
“크에에엑!”
거대한 쇠몽둥이를 든 도깨비들이 마치 두부처럼 잘려 나가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장관이었다.
특히 백유현의 두 손에 들린 간장과 막야에 서린 불꽃과 뇌전의 힘은 도깨비들의 단단한 가죽을 그대로 베어낼 정도로 강력했다.
콰당탕!
도깨비들이 사방에서 쓰러지고, 엄청난 압박을 받던 각성자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으윽!”
“어서 치료해요!”
숨을 돌릴 여유가 생기자, 힐러들은 빠르게 탱커들에게 붙어서 그들을 치료했다.
‘후...!’
거침없이 도깨비들을 베어나가던 백유현은 그 광경을 보고는 짧은 숨을 토해냈다.
도깨비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었지만, 놈들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문제는 그 뒤...
‘저 쪽...’
절에 아주 가까운 쪽에서 도깨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존재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강해!’
지금까지 만났던 망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야차들이 또 다시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놈들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이끌어내는 존재가 분명 그곳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위험해.’
백유현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채 천천히 절로 다가갔다.
도깨비는 아마 이 절을 지키는 개 정도겠지. 중요한 건 저 절 안에 도사리고 있는 놈들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리 오싹거리게 만드는 존재들...
- 알파 팀이 와 주셔야겠어요.
백유현은 생각을 전달했다.
- 알파 팀만? 무슨 일이야?
주세광의 말이 들려왔다.
- 예, 알파 팀만요. 다른 각성자들이 왔다간 몰살당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 그건 나도 마찬가지 생각.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저기 있어. 으음...이거 여기서도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느낌이니...
김현성조차 뭔가 거대한 위압감을 받는 듯했다.
- 알겠다. 거의 다 회복되었으니 우리가 가도록 하지.
박성진도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대답했다.
“아무래도 여기가 종착지인 모양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김현성이 백유현 옆에 와서 나직하게 말했다.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그리고 아마도 그게 확실해 보이네요. 이렇게 강한 힘이라니...군소가 여기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우리 왔어. 으윽! 그런데 그건 도대체 무슨 느낌이지?”
힐러들의 집중 치유를 받아 회복된 주세광과 박성진이 힘겨운 모습으로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 뒤에는 천무현과 김수향이 눈살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
“이거야 원...엄청나군요.”
“으, 기분 나빠지려고 하네. 도대체 여긴 뭐야?”
둘은 마치 오지 말았어야 할 곳에 온 것처럼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조심해야겠군.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이 느껴져.”
박성진은 바로 위험을 감지했는지 나직하게 내뱉었다.
주세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유언장이라도 써놔야 할 것 같네. 제길...인생 멋지게 살고 싶었는데 말이야. 폼나게 지구로 돌아가서 자랑도 좀 하고...”
그 때 백유현이 입을 열었다.
“네. 그렇게 될 거에요. 세광 형.”
“음? 뭐라고?”
“그렇게 될 거라고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서...유명해지고, 신나게 휴양지에서 휴가도 즐기고, 소중한 사람들하고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요.”
“유현아...”
백유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거, 제가 만들어 드릴 테니 꼭 살아남아서 돌아가요, 우리. 형 닮은 아들도 보고 싶고, 수향 누나 닮은 딸도 보고 싶고...무현이 형이 어떤 여자분과 결혼할 지도 궁금하고...”
“큭, 성진 대장이 홀로 늙어가는 모습 보는 것도 재밌겠네.”
“뭐 이 자식아?”
주세광의 말에 박성진이 발끈했다.
백유현은 미소 지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무사히 돌아갑시다. 우리.”
그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다들 꼭 살아남자고. 알겠어?”
일행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어쩌면 마지막 싸움이 될지 모르는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뭐가 있을 지 모를 절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