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흑산
“어? 이상합니다. 언겐가부터 사망자 수가 확 줄었습니다!”
대한민국 청와대, 그 안에 마련된 비상상황실에서는 급박한 보고가 오고가고 있었다.
청와대는 물론 다른 나라들도 요새는 공조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이미 유럽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는 거의 마무리 되어 가는 중이었다.
모든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아틀란티스 대륙으로 원정대가 떠난 이후, 상당한 기간이 교착 상태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각성자 연합이 상황을 통제하기 이른 것이다.
그런데 요새 공조되는 정보 중에,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은 바로 원정대의 사망 소식이었다.
언젠가부터 상당히 줄어든 사망자의 수는 모든 국가에 매우 고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어느 정도이기에 그래?”
합참의장이 묻자, 정보통제관이 바로 확인해주었다.
“최근 삼일 전 대비, 40 퍼센트나 줄었습니다. 시간 별로 분석한 데이터로 볼 때 얼마 전부터 급감하고 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합참의장은 보고서를 받아들고 잠시 바라보더니. 대통령에게 향했다.
“대통령님, 이것을 좀 보셔야겠습니다.”
대통령도 그 보고서를 받아들고는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 지표가 뭔지 확인한 그의 표정에도 약간은 긴장이 풀린 기색이 역력했다.
합참의장의 말 그대로였다.
어느 순간부터 사망자 수는 급감했고, 이 시점은 대략 이틀 전 쯤 부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합참의장이 말을 받았다.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거나...혹은 이쪽이 매우 유리하다...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뭐든 희망적인 소식이고.”
합참의장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예, 대통령님. 뭐든 일단 우리에게는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후우, 다들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요.”
“예...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에 전사한 각성자들에 대해서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어 보상 및 장례 절차를 진행하고 있겠지요?”
“예. 총리께서 총 책임을 지시고 진행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에 집중합시다. 그들이 무사히 생환했을 때, 더 이상 그들에게 짐을 지워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합참의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동갑입니다. 저희는 저희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요.”
“다른 국가와의 협조 체계도 확실히 해두세요. 일이 생기면 바로 공조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후우...”
대통령은 의자 깊이 몸을 파묻었다.
피로함이 그의 얼굴 가득 떠올라 있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표정이 훨씬 좋아 보였다.
‘부디, 무사하들 돌아오시오...’
지금 그의 가장 간절한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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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흑색의 산.
흑색의 망자향이 닿아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어어어어!”
지장보살의 권능으로 회심한 야차들이 갑자기 우왕좌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까지 그런 모습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백유현은 의아한 얼굴을 놈들을 바라보았다.
“뭐하는 거야?”
백유현이 놈들을 살폈지만, 놈들에게서는 왠지 모를 공포감과 두려움만 느껴지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군소의 존재감을 느끼고 이러는 건가?’
그럴 수도 있었다.
이들은 지금 야차로 변모했지만, 그 이전에는 분명히 군소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갇혀 있던 망자들...
그러니 예전의 기억이 돌아왔을 수도 있다.
‘그래? 그럼 제대로 한 번 붙어볼까?’
백유현은 우왕좌왕하는 야차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파아앗-
그 때, 그의 전신에서 거대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어어어!”
그 기운은 정신없이 방황하던 야차들에 가서 닿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크어어?”
“크악!”
눈까지 뒤집혀 정신없어 하던 놈들의 눈빛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
‘예상이 맞았군...’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군소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흑색산 앞에서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던 것이 틀림 없었다.
하지만 백유현의 기운이 군소의 힘을 밀어내자, 그들은 바로 정신을 차렸다야차의 두 눈에서 맹렬한 빛이 뿜어지고, 다시 놈들은 호전적인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백유현은 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 이상...놈에게 짓눌리지 마. 너희는 이제 나의 것. 오직 내 명만 따르도록 해.”
“크어어!”
“크어!”
그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야차들이 다시 한번 흉흉한 눈빛을 뿜어냈다.
이제까지의 공포는 어디 갔느냐는 듯, 놈들의 눈빛에는 진한 살기마저 어려 있었다.
야차들이 진정되자, 각성자들은 놀란 표정으로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후우, 역시 백유현이야.”
“저 야차들이 백유현의 말에 바로 순종하는 것 봤어? 대단하잖아...?”
백유현은 그런 그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입니다. 다들 준비 되셨습니까?”
야차들까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군소가 이곳에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다는 얘기는 이제 전투가 끝나간다는 뜻.
각성자들의 얼굴에 결연함이 떠올랐다.
“대장.”
그리고 백유현은 박성진을 불렀다.
“음...”
그에게 공을 넘긴 것이다.
이제부터 그가 총괄 지휘할 수 있도록.
“마지막 전장을 앞두고 다들 각오는 되셨습니까?”
각성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장.”
“이제, 우리 돌아갑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는 그곳으로 말입니다.”
각성자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서로를 안아주기도 했다.
“힘냅시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럽시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끝입니다. 자, 다들 조금만 힘들 내보자고요!”
그 광경을 바라보던 박성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마지막.
맞다.
저 검은 산만 넘으면 진짜 마지막이다.
군소라는 최악의 악마만 잡아낼 수 있다면.
“그럼 이제 가볼까요?”
“예! 저희는 준비 끝났습니다!”
“가봅시다! 이제 마지막인데, 최선을 다해 싸워야지요!”
각성자들이 대오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앞에는 야차들 또한 정연하게 대오를 갖추며 전투 준비를 마쳤다.
“유현아.”
“예, 대장.”
박성진은 그런 각성자들을 보며 백유현을 나직하게 불렀다.
백유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할까요?”
“그러자. 이제 다들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스릉-
백유현은 간장과 막야, 두 자루의 검을 빼들고 앞장 섰다.
“갑시다!”
흑산.
백유현은 거침없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를 따라 수많은 각성자들 또한 내달렸다.
그들은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있었고, 흑산에는 여전히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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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볼 때는 몰랐지만, 막상 흑산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훨씬 음산하고 심각했다.
나무 하나, 풀 하나도 모두 다 각성자들을 적대시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여기 분위기 왜 이래? 와, 진짜 살벌하다.”
“비 오는 날 무덤가에 서 있어도 이렇지는 않겠네! 무슨 산이 이렇게 무섭지?”
“후우, 진짜 공포물 대박이네!”
각성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흑산 전체에 깔린 음산함은 그들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으니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배경이 이어졌고, 분위기 자체도 무시무시했다.
역시 수많은 망자들을 통제하는 군소의 본거지다운 곳이었다.
“다들 조심해서 움직이세요. 심상치 않습니다.”
백유현이 주의를 주었다.
“안 그래도 무서워 죽겠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각성자들조차 그렇게 말할 정도로, 산은 음산했다.
하지만 백유현은 단순히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있다!’
그는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앞, 아니...
원정대를 둘러싼 사방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산을 올라갈수록 다시 풀리는 야차들에 대한 통제력이 그랬고, 영안이 흐릿해지는 현상이 그랬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슈아아앗!
그 때였다.
콰짓!
저 앞서 가던 야차 셋의 목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뭐가 뭔지도 모르게, 놈들은 그대로 소멸되어 사라졌다.
“적이다!”
각성자들이 무기를 빼들었다.
안 그래도 팽팽한 긴장감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한 방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쐐애애앳!
그 순간 또 한 번의 파공음이 들렸다.
“크아아악!”
그리고 몇 명의 각성자가 뭔가에 휩쓸려 쓰러졌다.
“세상에!”
그 광경을 바라보는 각성자들은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격을 당한 각성자들의 허리 아래쪽으로 그 무엇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하체는 저 멀리 날아가 떨어져 있었고, 상체만 남아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나마도 그들이 초인(超人)의 경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즉사했을 테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들에게는 더욱 불운이었다.
살아날 가망성이 없는데, 숨이 붙어 있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울 테니까.
“사, 살려줘!”
“끄으으윽!”
몸뚱이 절반이 날아간 각성자들이 바닥을 기고, 남은 각성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쐐애애앳-
“크아아악!”
이번에는 사방에서 기이한 파공음이 들리며 각성자들을 몰아쳤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커억!”
바닥에 쓰러진 자들을 구하러 가던 각성자들도 공격을 받아 쓰러졌다.
“다들 조심하세요!”
그 가운데서 백유현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맞서 싸워야 합니다! 아니면...”
쐐애애애앳-
그 때, 그에게도 뭔가가 맹렬하게 날아들었다.
그 순간 백유현은 마치 그림처럼 움직였다.
파각-
그의 손에 들린 간장검이 그에게 날아들던 뭔가를 쳐냈고, 막야도 마찬가지였다.
쩌엉-
백유현의 반격에 그를 덮쳐오던 뭔가가 튕겨 날아갔다.
“...!”
그리고 백유현은 그제야 자신을 공격한 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나무...!’
나무들이었다.
사방에 서 있는 나무들이 가지를 뻗어 각성자들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크아아악!”
“아아악!”
사방이 나무로 막힌 숲, 그 안에서 각성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숲 가운데서 깊숙하게 들어와 버린 바람에 어떻게 대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유현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 라이플! 백린탄 가능한가요?
- 숲을 태우자고?
- 예! 급합니다!
- 오케이! 맡겨!
타앙-
그 순간, 천무현의 총에서 거친 불꽃이 뿜어졌다.
그리고 나무에 날아드는 하나의 탄환...
화르르륵!
맹렬한 불꽃을 일으키며 폭발하듯 날아든 그 탄환은 순식간에 주변에 불길을 일으켰다.
타앙!
그리고 각성자들 중, 불의 힘을 쓸 수 있는 자들과 백린탄을 쓸 수 있는 자들이 사방의 나무에 마구 불길을 뿌려댔다.
“끄아아아아-”
그러자 기괴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불이다! 불로 모조리 태워 버립시다!”
박성진이 그것을 보고 각성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와아아아!”
그리고 각성자들은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숲이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