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연심
군소가 있는 방향은 알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진격.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원정대를 가로막는 엄청난 수의 망자들은 또 한 번 덮쳐왔던 것이었다.
망유계의 망자들은 그 세월이 오래 흐른 만큼 그 수도 셀 수 없었다.
- 1 원정대, 망자 발견! 그 수는 대략 오백에서 칠백! 대응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선두에 서서 내달리던 1 원정대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박성진은 보고를 받고 바로 대답했다.
- 출격 승인합니다. 계속 해서 보고 바랍니다.
- 알겠습니다!
- 2 원정대는 방향을 바꾸어 1 원정대를 지원해주십시오. 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날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2 원정대, 접수!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 최대한 전력 손실을 줄여야 합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적을 상대하길 바랍니다.
- 알겠습니다!
박성진과 수뇌부가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전력의 손실을 최소화 하는 것.
망유계의 망자들은 얼마든지 지원이 가능하지만, 원정대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후우, 이미 전력의 십분의 일 정도가 사망했거나 전투 불능 상태야. 아직 목표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망자향이 군소를 뒤쫓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문제지."
백유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흑색의 망자향은 아직도 끝도 없이 뻗어나가 있었다.
그 끝이 어디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군소의 위치가 어디일지 정도 추측할 뿐.
"멈추지 않고 나가다 보면 반드시 놈을 만날 겁니다."
박성진 또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그들은 저 먼 곳의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흑색의 망자향이 뻗어 있는 곳, 그곳에 군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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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대통령이 조바심이 나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합참의장이 이리 저리 알아보더니 와서 보고했다.
"아틀란티스 대륙으로 건너간 병력 중 십분의 일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들의 시신은 따로 거두어 장사를 치렀습니다."
"후우...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
합참의장 역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잘 되고 있어야 할 텐데..."
"유럽 쪽의 소요가 많이 줄어들었다고요."
"예, 그나마 다행입니다. 각 국가의 수뇌부가 빙의되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가운데 새롭게 지휘부를 구축한 각성자들이 상황을 정상화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일반 시민들과 군부, 각성자들이 많이 돌아서서 상황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어와 있습니다."
"그건 정말 듣던 중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소식이 들어와야 할 텐데요."
합참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되겠지요. 그렇게 될 거라 믿습니다."
"원정대가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도록 우리도 노력해야겠습니다. 우리 군과 각성자들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삐- 삐-
오늘도 상황실 내부에서는 긴밀한 보고와 정보 수집이 계속되고 있었다.
세계 전체가 위기에 몰린 지금,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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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펼쳐진 망유계.
원정대는 오늘도 수도 없는 망자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성진에게 기이한 보고가 날아들었다.
- 여기를 좀 와 보셔야겠습니다!
그것은 제 3 원정대 쪽에서 날아온 보고였다.
- 무슨 일입니까?
- 기괴한 일이...아니, 기괴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걸 사람으로 봐야 하는지...
감응을 들은 박성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망유계는 망자들의 세계.
그곳에 사람이 나타났다?
“어떻게 생각해?”
“보고에 따르면, 이쪽을 공격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가서 보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같이 갈게요.”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좋겠다. 알파 팀, 같이 이동하자.”
“그러죠.”
알파 팀이 바로 채비를 마쳤고, 보고가 들어온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한 그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보셨습니까? 저기...!”
박성진이 눈살을 와락 구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도대체...저 자는!”
그곳에는 황금빛 광채에 둘러싸인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망자들이 그에게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기등등했던 망자들의 표정이 그를 만나자 그렇게 온순하게 변할 수가 없었다는 것.
마치 갓난아기가 된 것처럼, 악귀와 다름없었던 망자들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려 있었던 것이다.
‘뭐야, 저건...?’
백유현도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무렵, 황금빛 광채에 휩싸인 존재가 그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음?’
백유현은 더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길은 망자들에게도 향해 있었는데, 백유현은 마치 자신 쪽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 구제받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내가 있을 것이다. 아이야, 너의 마음 또한 나와 다르지 않구나.
백유현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굳은 표정이 되었다.
그 때, 옆에 차사 강효가 와서 서더니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지장...보살이옵니다. 소주!”
백유현은 크게 놀랐다.
“뭐라고?”
“저 자는 지장보살이옵니다. 명부에 와서도 대왕과 각을 세웠던 존재지요. 그런데 그가 한 참 전부터 명부에서 사라졌다 싶더니, 이곳에 와 있었을 줄은...!”
지장보살.
스스로 지옥에 내려가 중생을 구원하겠다던 존재.
덕분에 명부의 주인인 염라대왕과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때론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차사인 강효도 그를 보자 표정을 굳힌 것이다.
- 회심(回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회. 이들 역시 생전에는 인간이었느니라. 아이야, 원컨대 무차별적인 살육보다는 교화(敎化)의 마음으로 이들을 대하여 주겠느냐?
지장보살의 말에 백유현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얼굴이 되었다.
- 보살께서는 왜 이곳에 계신 것입니까?
혹시나 해서 그에게 감응을 시도한 백유현이었다.
지장보살은 백유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 죽은 이가 있는 곳에 내가 있음이다.
- 이들을 죽이지 않고서는 우리가 살 수가 없습니다.
지장보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안다. 하지만 그것이 업보의 그물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 허나 내 청을 하나만 들어주겠느냐?
백유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말했다.
- 예, 보살님.
지장보살은 한쪽 손을 들어보였다.
파앗-
그러자 그 손 위에 기이한 분홍빛 기운이 맺혔다.
- 연심(憐心)이다. 이것을 받아 주겠느냐?
연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뜻함이었다.
[지장보살이 연심을 주려 합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상태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아래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다.
[연심(憐心) : 죽은 자를 가엾게 여기는 지장보살의 마음. 이를 가지고 있으면 망자들이 교화되어 회심할 수 있게 된다. 연심을 가진 자에게 죽으면 귀천(歸天)하게 되며, 그 중 일부는 회심하여 야차(夜叉)가 되어 연심의 소유자를 돕는다]
‘아...!’
설명을 본 백유현은 가벼운 탄성을 내질렀다.
지장보살의 연심.
그것에 이런 힘이 깃들어 있다니.
이런 것이라면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백유현은 연심을 받아들였다.
파앗-
그러자 그의 가슴 쪽에 기이한 광채가 서리더니 그대로 심장 근처로 빨려 들어갔다.
[연심을 획득하였습니다.]
[지장보살의 법력(法力)이 흡수되어 망자에게 가하는 공격력이 15 퍼센트 증가합니다]
[망자에게 공격 받는 피해가 10 퍼센트 감소합니다]
[망자를 귀천시킬 수 있습니다]
[망자 중 일부를 야차로 만들어 부릴 수 있습니다]
연심을 받아들이자, 몇 가지 권능이 백유현에게 주어졌다.
다른 것도 매우 훌륭했지만, 특히 병력이 부족한 원정대에게 망자를 ‘야차’로 만들어 부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효과였다.
- 감사합니다. 보살님.
고개를 숙여 보이는 백유현에게 지장보살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그는 말없이 앞을 향해 걸어갔다.
수많은 망자들이 마치 홀리기라도 한듯, 그를 따라 움직였다.
몇몇은 황홀한 표정이 되어 귀천했고, 몇몇은 갑작스레 표독한 표정이 되어 지장보살을 공격하려 했지만, 황금빛 광채에 닿자 그대로 재가 되어 소멸했다.
지장보살은 그렇게 사라졌다.
“뭐, 뭐야? 갑자기 사라졌어!”
“엇, 망자들도 갑자기 줄어들었는데? 무슨 일이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눈에는 지장보살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알파 팀은 이미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너, 또 기연을 얻었구나?”
김수향이 다가와 백유현의 어깨를 툭 쳤다.
백유현은 아무런 대답 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누구였어? 아무리 봐도 범상한 인물은 아닌 것 같던데.”
주세광의 말에 백유현은 지장보살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장보살이셨습니다.”
그 말에 일행이 깜짝 놀랐다.
“뭐라고? 지장보살?”
“예. 중생들을 구제하러 여기까지 오셨던 것 같습니다.”
일행은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엄청난 존재였잖아? 와, 여기서 지장보살을 다 보네...!”
“어쩐지, 망자들이 이상하게 행동한다고 했어. 대단한데?”
일행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셨어?”
“망자들을 잘 부탁하신다고...그들도 한 때는 인간이었다고...”
“으음...그렇긴 하지.”
이곳 망유계의 망자들도 한 때는 인간이었다.
그들은 그저 이곳에 떨어져, 군소의 영향력에 타락하고 변형되어 악귀가 되었을 뿐.
지장보살은 그런 그들까지 구제하러 이곳에 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사정을 봐줄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 그 마음은 알겠지만, 우리는 저들을 베어야 한다.”
박성진의 말에 백유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서 보살께서는 능력 하나를 주시고 가셨어요. 제가 망자들을 죽이면, 그 중 일부가 야차가 되어 우리 편이 되어 줄 거에요.”
박성진이 놀란 표정으로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뭐? 그런 능력이 얻었다고?”
“예.”
백유현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박성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것 잘 됐다! 안 그래도 병력들이 줄어들어 고민이었는데! 후우, 그거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어!”
“보살께 감사인사 드려야겠군!”
일행은 지장보살이 사라진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남기고 간 유산, 연심.
그것이 어떤 힘을 발휘할 지는 이제 지켜봐야 알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