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묘비
쿠웅!
“크아아악!”
“으아악!”
제 2협곡에서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1협곡과는 달리, 정신없는 전장에서 각성자들은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크윽, 이걸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3차 저지선으로 퇴각해!”
여기서 저기서 지휘관들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각성자들도 우왕좌왕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으윽! 이러다가 전멸할 지도 모릅니다!”
2협곡의 최고 지휘관에게 부관들이 와서 보고 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소식 중 희망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빌어먹을!”
1협곡은 어떻게 제대로 방어가 된 것 같은데, 2협곡은 도대체 왜 이런단 말인가!
초기 대응도 나쁘지 않았고, 방어 체계 자체도 나쁘지 않았건만...
하지만 문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협곡인데도 불구하고 적의 공세에 그대로 공간을 내주고 있는 지금, 협곡을 포기하고 넓은 전장으로 가게 되면 더욱 더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제 3차 저지선이 이들로서 허용할 수 있는 최후의 저지선이었다.
“일단 3차 저지선으로 병력을 물린다! 거기선 무조건 막아내야 해!”
2협곡의 최고 지휘관, 미국의 각성자 빌리의 명이 떨어졌고, 각성자들에게 즉시 전파되었다.
“3차 저지선으로 퇴각하라!”
“2차 저지선은 포기한다! 3차 저지선으로 퇴각하라!”
지휘관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병력들을 통제했고, 각성자들은 빠르게 뒤로 빠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어찌나 망자들의 공세가 사나운지 퇴각을 하면서도 죽어 나가는 각성자들이 부지기수였던 것이었다.
최고 지휘관 빌리는 그 광경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속이 터져 나갈 정도로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3차 저지선까지 뚫리면 끝이다!’
3차 저지선이 뚫리면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빌리가 이를 아득 문 순간, 갑자기 앞쪽에서 요란한 소란이 일었다.
“키에에엑!”
“캬아악!”
갑자기 망자들 사이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더니, 주변의 수많은 망자들이 그 폭발에 휩쓸려 버린 것이었다.
그 한 방에 기세 좋게 밀어대던 망자들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이건 뭐야!”
빌리는 놀란 눈이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백유현입니다! 백유현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 각성자 하나가 달려와서 보고했다.
빌리는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왜 백유현이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백유현이?”
“예, 지금 중간에서 망자들을 밀어내고 있는 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생각할 거 뭐 있어? 어서 호응해!”
“예, 알겠습니다!”
부관은 재빨리 달려가 빌리의 명을 본대에 전달했다.
“진격한다! 모두, 반격하라!”
“반격을 시작한다!”
빌리의 명에 따라, 형편없이 쫓기던 각성자들은 다시 뒤로 돌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망자들의 압박이 확실히 줄어든 지금, 반격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시기였다.
콰앙-
빠직-
“죽어 버려!”
“꺼져!”
각성자들은 이제까지의 울분을 풀기라도 하듯, 미친 듯 몰아쳤다 .
“밀어 붙여!”
백유현의 참전으로 인해 전황이 확 바뀌었다.
“와아아아!”
빠르게 뒤집힌 전황 속, 각성자들은 거칠게 적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
콰앙-
불꽃이 일었다.
수많은 망자들이 그 불꽃에 휩싸여 녹아들어갔다.
하지만 불꽃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갈증이 난다는 듯, 사방으로 미친 듯 뻗어나갔다.
콰드득!
번쩍-
백유현은 허공으로 솟구쳐 금환식을 펼쳤다.
달이 태양을 잡아 먹으며 남기는 금색의 원이 그려졌고, 그 아래 서 있던 망자들이 소멸되었다.
콰지지짓!
백유현은 그에 그치지 않고 망자들 사이를 내달리며 두 자루의 검을 휘둘렀다.
그야마로 추풍낙엽!
그를 막아서는 망자들은 모조리 쓰러졌고,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되었다.
- 리퍼, 고맙다!
그런 그의 귀에 누군가의 음성이 전해졌다.
제 2협곡의 총사령관 빌리의 것이었다.
- 힘내십시오.
백유현은 웃으며 그리 전했다.
그의 등장 덕분에 제 2협곡의 전투도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이 일어났다.
이것이면 만족이다.
‘후우...다른 지역의 상황은 어떻지?’
“와아아아!”
그는 자신의 주변을 치고 나가는 각성자들을 보며 한숨을 돌렸다.
이제 이만큼 상황을 반전시켰으니,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 수 있을 것이다.
- 리퍼입니다. 다른 지역 상황은 어떻습니까?
물론 적들의 의도를 먼저 파악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곳이 지금처럼 잘 풀리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 제 3협곡! 이상 없이 방어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리 대비한 덕분인지,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제 3협곡에서는 제대로 방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제 4협곡 역시 순조롭습니다!
4협곡 역시 괜찮은 상황.
그런데 문제는 5협곡에서 터졌다.
- 5협곡 사령관 유진입니다! 지원 요청합니다! 지원을...!
백유현은 다급히 들려온 무전에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 상황 전달 바랍니다.
5협곡은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방어 거점이었다.
- 갑자기 날개가 달린 수많은 적들이 등장, 방어 병력의 후미를 교란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방어선 붕괴 위기! 누구든 와서 좀...!
백유현은 날카롭게 두 눈을 빛냈다.
맞다.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협곡 전투가 수비 쪽에 유리하다는 것은 어디 까지나 ‘육상전’일 때의 이야기다.
현대에서 벌어지는 전투처럼 폭격기나 포병의 지원이 있다면?
‘이런!’
백유현은 급히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 모든 방어 병력에 전달합니다! 공습(空襲)을 주의하십시오! 적은 공습의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육상전에서는 협곡을 끼고 있는 이쪽이 유리할지 모르나, 일단 공습이 벌어지면 협곡 안에 갇혀 죽는 경우가 생긴다.
- 제 5협곡은 제가 커버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공습에 대비...
- 으아악!
- 크윽! 제 1협곡, 적 공중병력 출현! 전세가 바뀌었다! 반복한다! 적 공중병력 출몰...!
사방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여기서도 지원 요청, 저기서도 지원 요청...
모든 곳이 지옥이었고 불바다였다.
‘이런...!’
어쩐지 순조롭게 흘러간다 했다.
군소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저, 저기 뭐야!
- 어엇! 저 놈들은?
그런데 그 때 다시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보니, 거대한 그림자가 몇 개 보였다.
‘뭐야, 저거?’
백유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보아하니, 허공 가득 떠올라 있는 날것들은 놈들에게서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애벌레들을 쏟아내는 고치처럼.
‘저 놈들에게서 공중 병력들이 나오는구나!’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저 거대한 그림자들에게서 날것들이 수도 없이 쏟아지는 것은 맞는 듯했다.
- 코드 원, 들리십니까?
백유현은 오랜만에 알파 팀의 박성진을 호출했다.
- 여기는 코드 원. 리퍼, 무슨 일인가?
아마 박성진도 몰려드는 적들을 막아내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알파 팀 모두의.
- 좋아...곧 가도록 하지. 어디지?
- 맨 우측, 날것들을 쏟아내고 있는 저 그림자입니다. 놈들에게서 날것들이 태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래, 나도 그렇게 판단했다. 최대한 빨리 가마.
박성진과 그렇게 교감을 하고 있을 때였다.
- 나는 이미 왔지! 후후!
누군가 중간에 불쑥 껴들었다.
- 네 뒤는 내게 맡기라고, 리퍼!
천무현이었다.
백유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든든하네요. 일단 저 놈부터 잡으러 가볼까요?
- 오케이! 조준 완료.
천무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무현도 백유현과 마찬가지로 허공을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바로 지원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누나, 준비됐어요?”
백유현은 옆에 있던 김수향을 보며 물었다.
김수향이 미소를 지었다.
“난 언제든지.”
“그럼.”
스릉-
백유현은 두 개의 칼을 꺼내들었다.
간장과 막야.
그 동안 백유현을 도와 수많은 싸움을 겪었던 두 자루의 칼.
“자, 시작합니다!”
콰콰콰쾃!
백유현이 미친 듯 내달렸다.
파각!
“케에에엑!”
“키에엑!”
그런 백유현을 수많은 망자들이 막아섰지만, 놈들은 모조리 백유현의 칼에 의해 소멸되었다.
콰콰쾅!
“키에에엑!”
망자들이 분쇄되고 있을 무렵, 그의 눈앞에서 화끈거리는 폭발이 일어나더니 수많은 망자들이 그 안에 빨려들어 소멸되었다.
- 헤이, 리퍼! 시간 없잖아? 달려!
천무현의 지원사격이었다.
역시 그는 지금 백유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백유현은 그대로 앞을 향해 달려나갔다.
두 개의 칼날이 수많은 망자들을 베고, 또 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자들은 그에게 덤벼들었다.
망자라고 해도 두려움이 없지는 않을 텐데, 이렇듯 미친 듯 달려드는 것을 보면 군소의 영향력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놈은 말 그대로, 이곳을 지배하는 절대자이며 폭군.
그러니 망자들이 완전한 소멸을 각오하고서도 뛰어드는 것이다.
- 리퍼, 우리도 왔다!
얼마나 지났을 까, 알파 팀이 제대로 잡았다는 감응을 보내왔다.
파가각!
그리고 백유현의 오른쪽에서 보랏빛 뇌전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보였다.
- 이쪽은 내게 맡겨.
김현성이었다.
백유현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내달렸다그의 두 검이 번뜩였고, 거대한 그림자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콰콰콰!
그림자에서는 수많은 날 것들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놈들은 김현성과 백유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부아아아앗-
엄청난 숫자들의 거대한 벌레들이 달려들었지만, 김현성과 백유현은 눈 하나도 깜빡하지 않았다.
“자, 너희들이 진짜로 놀아볼 상대 같아 보이는데?”
백유현은 씩 웃으며 말했다.
“모조리 휩쓸어 버려!”
지옥철갑충들이 그의 주변에 엄청나게 떠올랐다.
그리고 날것들의 엄청난 싸움이 벌어졌다.
콰콰콰쾃!
지옥철갑충들의 숫자는 비록 적었지만, 놈들은 성질이 사나웠고 지독했다.
자신들에게 날아드는 적들을 족족 물어 죽이고, 찢어 버렸던 것이었다.
덕분에 백유현과 김현성은 그림자에게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쐐애애앳!
콰악!
그 때, 그들 앞을 막아서는 뭔가가 있었다.
“멈....춰...라.”
키가 4미터는 되어 보이는 비쩍 마른 미라였다.
마치 옛 이집트의 왕의 미라를 떠올리게 하는 모양새였다.
‘그러고 보니...’
백유현은 그제야 거대한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거대하고도 높이 쌓여 있는 그것은...
‘묘비!’
무덤 위에 세워진 묘비였다.
그리고 아까부터 날아다니던 날것들은...
백유현은 그제야 놈들의 정체를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다.
부우우웅-
썩어가는 사람의 눈알, 코, 손가락...
마치 일부러 찢어 놓은 듯, 시신을 수도 없이 조각낸 조각들에 날개가 달린 것들이었다.
‘취미 한 번 고약하군...’
백유현은 눈살을 찌푸린 채 앞으로 나섰다.
어떻든 간에, 여길 부숴야 했다.
“시작할까요?”
스릉-
“소드 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