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망유계
- 그곳에 들어가면 온갖 마구니들과 악마들이 너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수려 덤벼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
히말라야 산맥에서 나가르주나와 재회했을 때 그의 말이었다.
백유현은 그 말의 뜻을 이제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과 망자들이 떼거지로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와...이건 도대체!”
“저게 도대체 몇 마리야!”
각성자 연합도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몰려드는 놈들의 숫자를 보고 질린 표정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거대한 아틀란티스 대륙을 가득 뒤덮고 몰려드는 몬스터와 망자들의 숫자는 끔찍할 정도로 많았으니까.
- 그렇다면 왜 아틀란티스 대륙입니까?
그 때, 백유현은 그렇게 물었었다.
그에 대해 나가르주나는 백유현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 과거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었지. 그 때의 구도자들과 수많은 신들, 그리고 인간들은 힘을 합쳐 놈들을 그 땅에 몰아 넣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갈수록 더욱 강해지는 망유계의 힘을 억제하는데는 실패했지. 따라서 대륙을 침몰시켜 봉인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백유현은 마른 침을 삼켰다.
아틀란티스의 비극에 이런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니...
- 그 땅이, 수많은 원한으로 물들어 다시 나타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마 그 때보다 더욱 치열하고 끔찍한 싸움이 벌어질 거야. 단단히 각오를 해두어야 할 것이다.
나가르주나의 말에는 깊은 우려가 섞여 있었다.
스릉-
백유현은 그의 말들을 떠올리며 두 자루의 검을 빼들었다.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물러설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앞장 서겠습니다.”
백유현의 말에 알파 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히 우리가 앞장 서야지.”
“뒤는 걱정 마, 유현아. 이 형아가 제대로 서포트 해줄 테니!”
“우리 꼬맹이, 다치면 누나한테 얼른 와야 돼? 호~ 해줄게. 후후!”
팀원들을 보며 백유현이 피식 웃었다.
언제 봐도 든든한 사람들이었다.
“리퍼, 내기 할까?”
그 때 언제 다가왔는지 김현성이 전투태세를 갖춘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유현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기, 좋죠!”
“누가 먼저 저 곳에 닿느냐다. 대장, 심판 정확히 봐주시고.”
박성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 그럼 시작해볼까?”
- 소드맨, 좌측으로 이동 중
- 리퍼, 우측으로 이동.
눈 깜빡할 사이에 두 사람은 이미 적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김현성이야! 와, 정말 듣던 대로 엄청나게 빠른데?”
“김현성도 김현성이지만, 백유현은 진짜 너무 대단해! 저 몸놀림 좀 봐! 저게 사람이야?”
두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뒤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각성자.
그 두 사람이 지금 모든 것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각성자들도 내로라하는 실력자들도 많았지만, 지금 두 사람의 움직임에 압도되지 않은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카앙-
김현성이 가는 곳에서는 보랏빛 번개가 일었다.
“카아아악!”
“캬아악!”
그 번개는 그에게 덤벼드는 모든 존재들을 불태웠고, 찢어 버렸다.
대한민국 최고의 소드 맨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김현성의 움직임은 경쾌했고 검은 날카로웠다.
예전 같으면 그런 김현성의 움직임에 사람들은 시선을 빼앗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콰앙-
콰지지지짓!
와지직!
그 반대편에서 마물들을 찢어 버리는 또 한 명의 검사!
김현성의 움직임은 분명 화려하고 강력했지만, 이쪽에 비하면 뭔가 부족해 보였다.
백유현이 움직이면 암흑이 펼쳐지고, 그 암흑 속에서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뇌전이 몰아치는 가운데 뜨거운 불길이 일어나 다시 암흑을 집어 삼키는 기이한 장면이 연이어졌고, 그 지옥 가운데서 마물들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이 어마어마한 광경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저...저건 사람이 아냐!”
처음에는 김현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정정해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김현성과 비교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니, 온 세계를 통틀어서도 백유현에게 비교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콰콰콰콰쾅!
그리고 그들을 절묘하게 지원하는 탄환의 비!
백유현과 김현성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탄탄하게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지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서포트의 정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완벽했다.
“알파 팀이 이 정도였다니...!”
“후우, 팀 엑스 대회에서 맞붙었다면 큰일이었겠는데? 와...저런 괴물들하고 어떻게 싸워?”
하나 같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의 귀로 무전이 들어왔다.
- 뒤에서 구경만 하실 겁니까?
알파 팀의 대장이자, 원정대 총사령관 박성진의 목소리였다.
“아차! 우리도 서두르자고!”
“그래, 가자!”
“와아아아아!”
각성자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앞으로 내달렸다.
콰쾅-
그리고 전역에서 거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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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콰쾅!
전투는 계속되었다.
아틀란티스 대륙이 어찌나 넓은지, 전투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고 있었다.
저 멀리, 거대한 차원의 문이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었다.
- 차원의 문 발견! 원정대는 집중하여 진격합니다!
갈수록 망유계의 망자들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즉, 그 차원의 문 너머에 망유계가 펼쳐져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했다.
- 1 원정대, 2 원정대와 함께 좌측을 돌파하겠습니다.
- 3 원정대, 4 원정대와 함께 우측을 돌파하겠음!
이제는 원정대끼리 호흡도 제법 잘되고 있었다. 다들 전투를 겪으면서 제대로 손발을 맞춰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 자, 마지막 돌파입니다! 다들 정렬!
원정대의 피해도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조직된 치유계 각성자들의 지원으로 피해는 최소화되고 있었다.
강력한 각성자들로 이뤄진 선봉대가 길을 뚫고, 나머지 본대가 그 뒤를 받치며 마무리 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자들은 치유계 각성자들이 회복시키면서 전진한다.
이런 단순한 패턴이었지만, 그만큼 상당히 효율적이었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 차원의 문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악마들이 보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놈들인 것 같습...아아악!
그 때 앞선 척후대의 무전에서 비명소리가 울렸다.
- 무슨 일입니까?
박성진의 목소리에 척후대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 악마들이...쏟아져 나옵니다! 우리 팀은 이미 전...크아악!
척후대의 생존자들도 모조리 연락이 끊겼다.
박성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 더 원, 리퍼입니다.
- 그래, 리퍼. 무슨 일이야?
- 저희가 가보죠. 악마라면 힘들 수도 있어요.
박성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대신 조심해라.
- 알겠습니다.
무전을 공유한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도 보였다.
저 앞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러니 그가 갈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앗-
백유현이 한 번 바닥을 가볍게 차더니 순간적으로 앞으로 쑥 밀려 나갔다.
그리고 그는 그의 앞을 가로막는 수도 없이 많은 악마들을 발견했다.
역시 놈들은 강력했고, 수도 많았다.
“죄다 죽어 버려.”
하지만 상대는 백유현.
놈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촤아아앗!
번쩍-
금환식.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는 척준경의 비기가 펼쳐졌다.
그냥 금환식이 아니었다.
강화된 간장과 막야로 펼치는 금환식은 그야말로 재앙(災殃)!
그것도 모든 것이 쓸려 나가버릴 정도의 재앙이었다.
콰앙-
엄청난 폭음이 울리고, 수많은 악마들이 그 빛에 휩싸여 사라져갔다.
이것이 백유현의 힘!
그 뒤를 따라 선발대가 강력하게 압박하며 전진했다.
그러자 그 강력했던 악마들의 벽이 순식간에 뚫렸다.
- 선발대, 길을 뚫었습니다. 차원의 문으로 이동합니다.
날아드는 무전에 본대는 그저 감탄 어린 표정으로 뒤를 따를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원정대가 차원의 문 앞에 도달했다.
‘후우...’
그 문 앞에 선 모든 원정대원들의 표정에는 긴장이 역력하게 서렸다.
“자, 이 앞에서부터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다들 두렵습니까?”
“아닙니다!”
박성진의 말에 원정대원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가 이곳을 이기지 못하면, 우리의 가족들이 다치고 죽게 될 겁니다. 마지막까지 힘을 합쳐 봅시다!”
“와아아아!”
“원정대, 진격!”
원정대는 차원의 문으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차원의 문 너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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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그곳은 암흑뿐이었다.
‘이곳이 망유계!’
백유현 또한 온통 암흑으로 뒤덮인 이런 세계는 처음 봤기에 신기함 반, 긴장감 반인 느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냥 암흑이 아니었다.
기분 나쁘게 끈끈하게 달라붙는 그런 암흑.
마치 늪 속을 걷는 듯한 불쾌함이 절로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 닿았느냐?
그 때,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가르주나였다.
불멸자인 나가르주나의 신통력은 여기까지 닿고 있었던 것이었다.
- 예, 도착했습니다.
백유현도 마음으로 전했다.
- 보아라. 암흑은 빛의 또 다른 이름일 뿐. 일러준 진언을 읊는다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
- 그리고 찾아라, 아이야. 망유계를 다스리는 자는 식혼마귀, 궁소. 놈의 존재를 없앤다면 망유계 또한 힘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나가르주나의 적절한 조언에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 네 마음을 믿어라. 이 세계를 구하려는 네 마음을. 그 마음이 빛이 되어 줄 것이니.
- 알겠습니다.
백유현은 다시금 힘 있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박성진에게 말했다.
이미 나가르주나에게 전수받은 진언은 원정대 모두에게 전파된 상태였다.
“대장님, 진언을 외우면 암흑이 사라질 겁니다.”
“그래? 알겠다. 전달하마.”
박성진은 서둘러 백유현의 말을 전달했다.
그리고 원정대는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망유계 가득 덮여 있던 진득한 암흑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망유계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윽! 저건 뭐야!”
“크윽, 이런 끔찍한!”
예상은 했지만, 망유계의 진짜 모습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너무도 끔찍하고 음산한 광경...
도처에 썩어가는 시체가 널려 있고, 백골들이 사방에 퍼져 있었다.
거기다 구더기가 수도 없이 돌아다니고, 음산한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은 기괴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곳이 망유계.
즉, 망자들의 무덤이었다.
‘궁소...’
이 거대한 세상 어딘가에 식혼마귀, 궁소가 있을 것이다.
놈을 잡아야 모든 것이 끝난다.
“일단 척후를 보내 정보를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박성진은 노련하게 척후대를 조직해 사방으로 보냈다.
열 개 조로 조직된 척후대는 빠르게 자신이 맡은 구역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