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격전
천외밀경.
나가르주나가 가르쳐준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으며, 아주 가까운 곳에 그 답이 있었다.
“아틀란티스로 가야 한다고?”
한국으로 돌아와 백유현은 바로 팀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나가르주나에게 전수받은 방법을 공유했다.
“예, 아틀란티스는 망유계와 이 세계를 잇는 다리와 비슷해요. 본격적으로 망유계의 존재들이 이쪽 세계를 먹어치우기 위한 발판이랄까.”
“그랬구나...그래서 아틀란티스 대륙이 솟아 오른 후부터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군.”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유현도 마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니 그곳에 가야 합니다.”
“이해했어. 그런데 그곳에 가서 어떻게 하라는 거지?”
“먼저 영체(靈體)가 되어야 합니다. 망유계는 영체의 공간이니까요.”
“그렇겠네? 그럼 우리가 죽어야 된다는 얘기야?”
백유현이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와 비슷한 상태가 되면 됩니다.”
영체가 되는 방법은 백유현처럼 특별한 권능을 얻어 되는 방법이 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 나가르주나가 전수한 방법은 바로 가사(假死) 상태로 빠져드는 영체 전환법이었다.
백유현은 나가르주나에게서 전수 받은 방법을 일행에게 말해주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어? 엄청난데?”
티벳 고유의 특수한 물약과, 밀교에서 비밀리에 전수되는 호흡법이 합쳐지면 인간의 영혼은 육체를 빠져나올 수 있다.
현재까지 내려오는 이 방법은 오랜 세월이 지나며 와전되거나, 중요 구절이 변질되어 그 효과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백유현에게 이 방법을 전수한 존재는 바로 나가르주나 자신.
그러니 최고의 효과를 기대해볼만 했다.
“그런데 영체가 되었다고 해서 아틀란티스 대륙까지 갈 수는 없잖아? 오히려 엄청난 방해에 부딪힐 텐데.”
맞는 얘기였다.
영체가 되면 가장 먼저 망자들이 보인다.
그리고 망자들도 그들을 볼 수 있다.
육체가 있다면 어느 정도 그들을 무시할 수 있지만, 같은 영체 상태라면 죽어라 싸워야 한다.
산혼초를 쓸 수도 없고, 천부인의 방울도 쓸 수가 없으니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 그래서 생각해둔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이 있다고? 그게 뭔데?”
“육체 상태로 아틀란티스 대륙에 최대한 가까이 이동해서 영체화하는 것. 그것이 가장 최선입니다.”
일행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 그거면 되겠어. 아 그런데 문제가...”
육체 상태로 이동한다 해도 문제가 있다.
각 국가의 승인과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점.
그런데 지금 전 세계는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망유계의 망자들에게 현혹당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최악의 상황들이 나날이 발생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어렵다.
그것도 상당히.
“정부의 힘이 필요하겠군. 그리고 노블레스 멤버스 국제 연합 또한. 우리만 가서 되는 게 아닐 테니까.”
맞다.
망유계는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다.
치우의 알파 팀만 간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뭐가 있을 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모른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마. 아마 도와줄 사람들이 있을 거다.”
박성진의 말에 주세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만 믿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
이제 본격적으로 전력을 다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절대 만만하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그 중요한 순간에 이들은 서 있었다.
“처리하고 올게. 다들 기다려.”
박성진이 청와대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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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는 다시 한 번 큰 역할을 맡게 되어서인지, 각 각료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특히 외교부 장관 쪽은 더 그랬다.
“장관.”
“예, 대통령님”
“최선을 다해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김윤창 지부장님.”
“예.”
노블레스 멤버스 한국 지부장인 김윤창을 바라본 대통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세계 연합에도 널리 알려주셔야겠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협조 서한과 사절을 보내겠지만, 아무래도 노블레스 멤버스에서 직접 나서는 것이 영향력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김윤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도 적극 검토해서 지원하겠습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알파 팀에서 자원해서 하는 일인데 빠져 있을 수는 없지요.”
“좋습니다. 그럼 각 부처에서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주길 바랍니다.”
“예, 대통령님.”
국무회의가 끝나고, 대통령은 접견실에 따로 앉아 있던 박성진에게 향했다.
“대통령님.”
박성진은 대통령이 나오자 일어나서 그를 맞이했다.
대통령은 그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각 부처에서 최선을 다해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딱딱했던 박성진의 표정도 그제야 약간 풀렸다.
“고생이 많습니다. 모두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대통령은 박성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박성진도 그 손을 맞잡았다.
서로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체온이 따뜻했다.
“앞으로 더 고생해야 할 텐데...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좋은 소식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박성진 팀장.”
“예. 감사합니다.”
박성진은 등을 돌려 접견실을 나왔다.
그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 정부 부처와 노블레스 멤버스 한국 지부에서 어떻게 해줄 지에 달려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알파 팀만 망유계로 가야할 수도 있었다.
‘후우...’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
박성진은 홀로 청와대의 복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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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오래지 않아 나왔다.
“우리는 지원할 것입니다.”
가장 의외로, 중국에서 먼저 지원해주기로 하고 나섰다.
슈쉰 주석의 사망 이후 자체적인 내부 조사에 들어간 중국은 경악할 만한 사실을 발견하고는 충격에 빠져 있었던 참이었다.
그로 인해 인민해방군이 한반도를 덮칠 뻔한 식은 땀 흐르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적극 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저희도 지원 해드리죠.”
한국 정부의 끈질긴 설득과 각성자 세계 연합의 움직임 덕분에 인도 쪽도 움직였다.
그리고 베트남, 라오스 등의 국가와 태국, 싱가폴 등의 나라들도 움직임을 보였다.
거의 대부분이 지원을 약속해 주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가장 문제는 유럽.
이미 아틀란티스 대륙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유럽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입국을 거부하오.”
동유럽의 체코, 폴란드 등의 나라는 입국 거부를 공식화 했고, 유럽 서부나 남부는 아예 공격적인 태세를 취했다.
오면 전투를 불사하겠다는 태도까지 보인 나라들도 있었다.
“골치가 아프군...”
중요한 것은 아틀란티스 대륙이 바로 지중해 쪽에 있다는 것.
그들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상당히 험난해진다.
“미국이나 남미 쪽의 상황도 매우 좋아. 각성자 편대가 제대로 조직이 되어 지원오기로 되어 있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쪽도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지원을 약속했어. 하지만 유럽은 답이 없네...”
박성진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런 상황이면 또 다시 벽에 부딪힌다.
그 때 가만히 듣고 있던 백유현이 말했다.
“뚫고 가죠.”
“음?”
“지금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까요. 뚫고 가죠.”
“뚫고 가자라...이해는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주세광의 말에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할수록 피해는 더 늘어나요. 아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나도 찬성!”
김수향이 손을 들었다.
“우리 꼬맹이 말이 맞아. 여기서 손가락만 빨고 기다리다간 모든 게 엉망이 될 거라고. 차라리 정면돌파가 맞는 것 같아.”
“흐음...역시 그 수밖에 없어 보이네요. 저도 찬성.”
천무현 또한 손을 들어 찬성을 표시했다.
“저도. 이것은 도덕이니 뭐니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무현에 이어 김현성까지 찬성하고 나서자, 주세광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까지 유현이 말 들어서 잘 안 된 적 있어? 대장, 강행하시죠.”
박성진이 일행을 둘러보았다.
“맞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건 결단이지, 고민이 아닌 것 같다. 정부에 통보하고, 바로 움직이자.”
“좋습니다!”
“이번 작전은 매우 위험할 거다. 각오는 되어 있지?”
“예, 대장!”
박성진이 굵은 미소를 지었다.
“좋다. 늘 그랬듯, 끝까지 함께 하자.”
팀 알파.
그들은 다시 한 번 뭉쳤다.
망유계로 떠날, 마지막 사냥을 위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전 세계의 각성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보는 파격적이었고,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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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막아라!”
마찰은 생각보다 더욱 더 치열했고, 잔악했다. 망유계의 망자들에 의해 조종당하는 유럽 쪽의 각성자들과 군대는 아틀란티스 대륙으로 향하는 연합 세력을 끈질기게 막아섰고, 그로 인해 진격이 늦춰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세뇌를 했는지 몰라도, 그들은 아틀란티스 대륙을 건들면 세계가 멸망할 것처럼 반응했다.
그러니 이 싸움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손에 사정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보다 못한 백유현은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앞에 나섰다.
아무래도 서로의 명분이 크게 충돌하고는 있지만, 빙의된 것을 알고 있는 이상 강력하게 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가죠. 우리가 먼저 길을 뚫어야 합니다.”
백유현의 말에 알파 팀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표정에는 결연함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자들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세계의 미래는 없다.
“가자. 저들은 지금...몬스터일 뿐. 마음 단단히 먹어라.”
“예, 대장.”
“출격!”
알파 팀이 앞으로 나섰다.
- 리퍼, 길을 뚫겠습니다.
무전이 날아들었다.
길을 뚫겠다는 리퍼의 무전.
그리고 그 뒤를 알파 팀이 따랐다.
콰콰콰쾃!
리퍼, 백유현이 빠르게 앞으로 내달렸다.
“놈을 막아!”
촤앗!
지지부진하던 싸움, 백유현이 들고 있는 두 자루의 검이 허공을 베어내며 그 치열함의 심지에 불을 붙여냈다.
“다들 비켜! 죽고 싶지 않으면!”
“크으윽! 저, 저 놈이!”
콰콰쾃!
하지만 백유현은 틈을 주지 않았다.
세계의 미래를 아는 그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
그러니 그는 앞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두 자루의 검을 들고, 막아서는 적들을 베어내며.
“길을 뚫어야 합니다! 지금 뚫지 못하면 세상은 끝입니다!”
알파 팀이 그 뒤를 따르며 연합 병력을 움직였다.
“어서 뚫읍시다!”
각성자들의 표정에 결연함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들을 움직이는 것이다.
“가자!”
“와아아아!”
지지부진했던 싸움이 다시 한 번 크게 불타올랐다.
카앙-
사방에서 죽고 죽이는 살육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