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회군
지하는 음습했다.
음침함과 더불어, 짙은 살기까지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적어도 서른.’
서른 명 정도의 살기가 지하 복도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놈들은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백유현이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것을.
저벅.
백유현은 그 안으로 들어섰다.
살기가 한층 강해졌다.
그것은 경고가 아니었다.
오히려 묘한 설렘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살육을 즐길 수 있다는 설렘.
그 흥분과 희열이 살기를 통해 전해졌다.
백유현은 피식 웃었다.
‘그런 거라면 나도 지지 않거든.’
쿠오오오-
그의 전신에서도 강력한 힘이 발출되고 있었다. 살육은 하면 할수록 인간의 정신을 갉아 먹는다.
악마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악마를 잡는 악마사냥꾼이 결국 스스로 악마가 되는 것처럼, 살육자들도 마찬가지다.
저벅.
퉁-
그리고 백유현이 한 자리에 이르렀을 때 기괴한 소리가 울렸다.
스스스스-
백유현을 서른 명의 그림자가 어느새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음산하고, 은밀했다.
이 자들은 아마 중국 정부에서도 가리고 또 가려서 뽑은 최고의 각성자들일 것이다.
거기다 내가중수권까지 극한에 이를 정도로 익힌 고수.
하지만 위에 있던 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놈들 봐라?’
그런데 백유현은 문득 한 가지 묘한 점을 느끼고 차갑게 웃었다.
그의 귀안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눈에 뭔가 들어왔다.
귀(鬼).
사내들의 등에 붙어 있는 망자들의 선명한 흔적이 느껴졌던 것이었다.
‘재미있네? 위층에는 부적을 붙여 놓고, 정작 자신들은 빙의되었다? 취향도 독특하네.’
“그어어어-”
역시 망자들에게 빙의당한 것이 확실했다.
사내들의 입에서는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놈들은 인간으로 보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여 백유현에게 쇄도해 들었던 것이다.
카앙-
순간적으로 어두운 복도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그들이 내지른 검을 백유현이 막아낸 것이다.
카앙-
그런데 불꽃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순간적으로 번뜩이고, 또 한 순간에 사라졌다. 놈들의 연환 공격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력했고 정교해서 보통 각성자였다면 벌써 죽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대는 백유현.
“장난은 그만하자고.”
번쩍-
콰콰콰콰쾃!
사방으로 칼날이 뻗어나갔다.
두 자루의 검이 살육의 빛을 만들어내는 금환식.
가공할 검에 사내들이 온 몸이 꿰뚫려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본래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힘과, 망자들에게 빙의되어 가지게 된 더욱 강력한 힘이었음에도 백유현에게 단숨에 당해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서른에 달하는 사내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애초에 그들은 백유현의 상대가 아니었다.
철컹-
그리고 백유현은 복도 끝에 있는 철문을 열었다.
‘으음!’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 안에 누군가 있었다.
슈쉰(?昕).
중국의 주석이며, 그 자체가 강력한 각성자.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이제까지 알려졌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먹혀 버린 거야?”
백유현이 나직하게 내뱉었다.
“그러지 말지. 그러면...”
백유현이 씩 웃었다.
“더 죽이고 싶어지잖아.”
슈쉰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인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여섯 개의 팔이 아무렇게나 돋아나 있었고, 두 개의 머리가 어깨 위에 솟아올라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이런 모습의 슈쉰의 명으로 중국은 전력을 다해 동진을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끝내자.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거야.”
백유현의 두 눈이 다시금 싸늘함을 내뿜었다.
빨리 끝내야 한다.
그래야 무의미한 희생을 막을 수 있다.
파각-
백유현은 바닥을 박차고 바로 슈쉰에게 짓쳐 들었다.
카앙-
퍼엉-
그 순간, 슈쉰의 손이 기이하게 움직이며 두 개의 팔로는 백유현의 검을 막아내고, 또 다른 두 개의 손은 백유현에게 장력(掌力)을 날렸다.
백유현은 뒤로 밀려나더니 표정을 와락 구겼다.
장력은 가까스로 피해냈지만, 그 공격이 스친 자리에는 옷자락이 완전히 찢겨져 나가 있었던 것이었다.
‘센데?’
백유현은 차갑게 웃었다.
바깥 쪽에 있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욱 강력하고, 더욱 무섭다.
놈을 차지한 망자가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힘을 가진 놈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거기까지야.’
백유현은 웃음을 거두었다.
놈을 처리하지 못하면 수백만, 아니 수천만의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다.
그러니, 승부를 봐야 한다.
쿠오오오!
“긴장 해. 단 한 순간이야. 네가 눈을 깜빡일 수 있는 시간은.”
철컹-
백유현은 손에 들고 있는 두 자루의 검을 꽉 쥐었다.
단 한 번의 공격!
그는 그것으로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이었다.
사력(死力).
놈은 사력을 발동시켜 상대해야 할 정도의 강자. 하지만 백유현이 사력을 발동시키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크아아아!”
슈쉰의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 백유현의 몸이 그림처럼 움직였다.
파가각-
그리고 펼쳐지는 수많은 검의 그림자!
간장의 뇌분검과 막야의 쇄아가 동시에 펼쳐지며 슈쉰의 육체를 난도질 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콰콰쾃!
“크아아악!”
두 자루의 검은 인정사정없이 슈쉰의 몸을 조각냈고, 베어냈다.
여섯 개의 팔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겨 나가 있었고, 몸통에도 수많은 상처가 생겨나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커윽...!”
쿵-
불의의 일격을 받은 슈쉰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백유현이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죽이지 않은 이유는 알고 있을 거야. 아직 당신이 할 일이 남아 있거든”
그리고 백유현은 품 속에서 하나의 방울을 꺼내들었다.
팔주령.
고대 천부인의 하나로서, 모든 사특한 힘을 물리친다는 방울.
본래 망자가 살아 있는 인간에게 완전 빙의하게 되면, 그 육체를 죽이거나, 거의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야 망자를 쫓아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슈쉰을 죽여서는 안 되는 상황.
그래서 백유현은 손끝에 사정을 둬서 목숨만 살려둔 것이다.
슈쉰이 있는 이 지하 벙커에는 중국 전역으로, 그리고 동진 중인 인민해방군의 총사령부에도 전달될 수 있는 통신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으니까.
딸랑-
백유현에게 다른 것은 필요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슈쉰의 단 한 마디 뿐.
그것만 해결되면 슈쉰은 죽어도 된다.
“흐윽!”
딸랑-
팔주령의 방울 소리에 슈쉰이 괴롭다는 듯 몸을 뒤틀었다.
사악한 영체에 직접 작용하는 방울소리인지라,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딸랑, 딸랑!
“크아아악!”
방울 소리가 커질수록 슈쉰은 더욱 괴롭게 머리를 잡아 뜯기 시작했다. 피투성이가 된 팔로 귀를 막으려 애를 쓰는 그의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딸랑-
콰직!
그런데 어느 순간, 방울 소리가 울리면서 슈쉰이 앞으로 쓰러지듯 넘어졌다.
“컥, 커컥!”
백유현은 그런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정신이 들었나 보네.”
“너...너는 누구...냐?”
슈쉰은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이미 차사가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백유현은 차사에게 눈짓을 해서 기다리게 했다. 슈쉰은 아직 죽어선 안 됐다.
차사 역시 백유현의 지시에 가만히 서 있을 뿐, 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백유현은 송신기를 끌어와서 슈쉰의 입 앞에 갖다댔다.
“말해. 모든 병력은 회군하라고.”
“무...뭐? 지금 뭐라고 하는 거냐?”
슈쉰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그는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았다. 청와대나 일본의 경우처럼, 망자에 씌워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일이라는 뜻이었다.
“설명할 시간 없어. 얼른 말해. 당신 이름으로, 당신이 직접.”
“도대체...!”
슈쉰은 주변을 힘겹게 둘러보다 벙커 한 쪽에 설치된 모니터를 보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곳에는 인민해방군의 진격로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었다.
이미 시스템 교란은 복구가 되어 있어서, 아주 순조롭게 상황이 진행되는 것이 보였다.
“저...저건!”
“이제 알겠으면 어서 명령해. 회군하라고. 지금 아니면 수천만의 사람들이 죽는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난 반드시 복수할 거고.”
백유현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슈쉰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소...송신기를...”
그 역시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인민해방군이 한반도를 점령해봐야 얻을 것도 없는데다가, 그 과정에서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이었다. 녀석에게서 뿜어지는 살기는 그가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증명해주고 있었으니까.
녀석으로 인해 죽어갈 중국 인민은 과연 그 수가 얼마나 될까?
천? 만?
아니...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지도 몰랐다.
“주석이다. 전 병력은 들어라. 이 시간부로 동진(東進)은 포기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회군하라. 동진은 포기하고 전 병력 즉각 회군하라.”
터미널 쇼크 이후,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갖춘 중국이다.
그런 배경 위에 슈쉰은 전례 없는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고, 이렇듯 지하 벙커 내에서 한 마디로 중국을 움직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 벙커에서 송신되는 모든 명령에는 특수한 암호 체계가 덧입혀져 역시 특수하게 제작된 해독기가 아니면 해독이 불가능하다.
즉, 지금 슈쉰의 명령은 절대적으로 인민해방군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뜻이다.
- 주석 각하! 갑자기 왜 그런 명령을 내리시는 것입니까? 지금 저희는 압록강을 돌파...
슈쉰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제 얼마 안 있어 죽는다.
그 전에, 자신이 빙의되어 저지른 이 끔찍한 일을 복구해야했다.
“명령이다. 군법에 회부되고 싶은 건가?”
- 아, 아닙니다! 즉각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으윽!”
총참모장이 황급히 대답했고, 무전을 끊은 슈쉰은 힘을 다한 듯 고개를 바닥에 처박으며 밭은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쿨럭!”
모니터를 보니 인민해방군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목적지가 일제히 서(西)쪽으로 변경되는 것이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는 명령을 거부한 채 동진을 계속하는 부대도 있었지만,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정도라면 대한민국과 북한에서 알아서 방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명복은 빌어줄게. 그럼.”
백유현은 옆에 대기하고 있던 차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차사가 슈쉰에게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슈쉰은 숨을 거칠게 내쉬더니 곧 움직이지 않았다.
“리퍼, 복귀합니다. 반복합니다. 리퍼, 복귀합니다.”
북경.
모든 것을 끝내고 백유현은 다시 주석궁 밖으로 나섰다.
바깥에는 이미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사방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전쟁이라도 터진 듯 건물이 무너져 내린 광경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뛰었다.
‘용서 못해...!’
상황을 이렇게 만든 망유계의 망자들...
백유현은 놈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지켜 봐...이제부터는...’
백유현의 두 눈이 하늘 높은 곳을 향했다.
‘너희들 차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