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잠입
“뭐라고요? 유현 군이 혼자 북경으로?”
상황실은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역시 유현이에게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의 이마에는 깊은 골이 패여 있었다.
아무리 백유현이 강하다 하더라도, 중국은 강력한 각성자들이 천지다.
워낙 인구가 많다보니, 그 중에 강력한 각성자들만 따져도 한국보다 훨씬 많다.
그런 곳에 백유현을 혼자 보내다니...
아무리 방법이 없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것 말고는 마땅히...방법이 없습니다. 대통령님.
대통령은 질끈 미간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다.
그걸 핑계 삼아 백유현을 혼자 사지로 보내야 하는 기로에 선 것이다.
아니, 백유현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그는 중국의 주석궁으로 갈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대통령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내뱉었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일.
그 앞에서 한 없이 비겁해질 수밖에 없는 자신을 책망하며 대통령은 결정을 내렸다.
“코드명 리퍼의 단독 작전을 허가합니다. 그리고...잠시만 기다리세요. 박성진 대장.”
- 예, 대통령님.
“합참의장.”
박성진이 통화 대기를 하고 있는 사이 대통령이 합참의장을 불렀다.
“예, 대통령님.”
“방법 없겠습니까? 어떻게든 유현 군을 지원해줄 수 있는 방법이.”
합참의장이 표정을 굳혔다.
알파 팀도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북경의 주석궁에 잠입하려 하면 병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경비 시스템도 무력화해야 할 것이고요. 사이버 지원단에게 지시를 내려 두겠습니다. 그리고 국정원과 연계하여 북경에 잠입해 있는 요원들에게 백유현 군을 백업하라 일러 놓겠습니다. 그들은 군에서도 상당한 베테랑으로 인정받은 인재들이니 잘해 낼 것입니다. 그리고 후발대로 특전사 정예요원을 투입해보겠습니다.”
대통령이 그제야 한숨을 돌린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거운 안색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곳에 잠입하게 되는 국정원 요원들이나 특전사 요원들은 거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들은 목숨을 걸고 잠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대통령은 무거운 판단을 내려야 했다.
“좋습니다. 그렇게라도 적극 지원해주세요.”
“예, 대통령님. 즉각 시행하겠습니다.”
합참의장이 빠르게 움직이자, 대통령은 다시 박성진과의 통화를 재개했다.
“박성진 대장.”
- 예, 대통령님.
“국정원 요원들과 특전사 요원들이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 후우...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유현 군.”
백유현이 같은 채널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대통령이 백유현을 나직하게 불렀다.
- 예, 대통령님.
수화기 저 너머로 백유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통령은 결연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하더니 말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말합니다. 백유현 대원, 무운을 빕니다.”
-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침묵 대기 시작합니다.
“통신이 끊어졌습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니터에는 하나의 보랏빛 점이 부산을 떠나 빠른 속도로 북서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백유현이었다.
그에게만 붙여진 특별한 GPS.
사방이 혼란한 상황에서도 그의 표식은 명확하게 두 눈에 들어왔다.
북경.
그가 향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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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콰콰콰쾃!
빠르다.
“음머어어어어!”
브라만.
스피드에 미쳐 죽는 이 흰 소는 마치 제대로 임자 만났다는 듯 무섭도록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육지가 순식간에 멀어지고, 놈은 바다 위를 마치 평지처럼 내달리는 중이었다.
콰콰콰콰쾃!
백유현이 비행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브라만의 속도였다.
주변에 짙은 어둠이 내려 앉은 지금, 그는 그 어떤 배보다 빠르게 북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콰쾃-
“푸르르륵!”
그리고 순식간에 중국 내륙 쪽의 땅에 도착한 브라만은 다시 한 번 콧김을 내뿜더니 발을 굴렀다.
“음머머머!”
콰쾅-
다음 순간, 브라만의 모습은 다시 한 번 사라졌다.
놈의 기척을 알아차린 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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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으로부터 지령이 떨어졌다.”
국정원 해외특수공작 제 1 팀과 제 2 팀의 요원들이 안가에 모여 은밀하게 뭔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의 각성자들의 심상치 않은 동태를 감시 및 보고를 하기 위해 일찌감치 북경에 잠입해 있었던 상황이었다.
여차하면 통신 교란과 시스템 무력화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까지 참여한 조직.
이번에 중국의 이상한 군사 행동을 눈치채고 본국에 보고한 것도 이들의 작품이었다.
“코드명, 리퍼가 북경에 잠입한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지금 북경은 정벌 전쟁으로 인해 비어 있긴 하지만, 남아 있는 호위대나 각성자 예비대는 아직 건재하다. 게다가 주석궁으로 침입하려면 상당한 시스템 방어막을 뚫어야 한다.”
요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팀장의 말을 들었다.
“북경 부근에는 기계화사단이 지키고 있고, 북경 주석궁 주위를 지키는 보병만 해도 몇 천에 헤아린다. 각성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 자, 이제 리퍼를 인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게 최고 아닙니까? 흐흐.”
아까부터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청년 하나가 씩 웃으며 말했다.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해킹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김중현이었다.
김중현은 미국의 CIA, 펜타곤 등의 시스템도 해킹한 것으로 유명한데 얼마 전부터 그 자취를 감춰서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차였다.
그런데 그가 국정원 특수공작팀에 소속되어 북경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중현이게 메인을 맡고 제가 서브를 맡으면 뭐 게임 끝이죠.”
옆에 앉아 있던 여성이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김중현을 바라보았다.
김중현 역시 그녀를 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수진 누나만 있으면 내 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도 콜!”
윤수진.
그녀 역시 해커로서의 능력이 발군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김중현과의 합작 능력이 최고라는 사실.
둘이 합쳐지면 못 뚫는 시스템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중국을 우습게 보지 마. 저번에도 꼬리 잡혔었잖아?”
1 팀장 강길현이 주의를 주자, 둘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뭐 그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거고...그런 거죠. 하하!”
“정확하게 말해 봐. 얼마나 버틸 수 있어?”
그 말에 김중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리고 그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길면 한 시간. 제가 만든 툴, 러블리 스파이더를 쓰면 삼십 분은 더 버틸 수 있어요.”
“그럼 안전하게 한 시간 가량...그 안에 리퍼가 북경을 초토화시켜야 한다는 얘기군.”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제 2 팀장 김문식이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길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불가능하지. 그건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 때였다.
“그걸 하기 위해서 제가 온 겁니다.”
철컹-
“누구냐!”
갑작스런 목소리에 요원들이 순간적으로 권총을 빼들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역시나 대단한 훈련을 받은 요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각성자들도 있어서, 상당한 투기가 주변에 감돌았다.
그들 앞에는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코드명, 리퍼입니다.”
그 말에 강길현이 두 눈을 와락 찌푸렸다.
“아니, 코드명 리퍼라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했는데?”
“GPS 확인해 보시죠.”
강길현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면서 모니터를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얼마 걸리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부산에서 북경까지 비행기로 대략 1시간 50분가량 걸리는데, 백유현은 20분 만에 온 것이다.
강길현의 반응에 다른 요원들도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일단 인사하지. 나는 국정원 해외특수공작 1팀장, 강길현이다.”
“리퍼입니다.”
“좋다. 우린 이제부터 너를 백업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매우 위험한데 괜찮겠나?”
“지원 작전부터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입에 발린 소리는 하지 않는 백유현을 보며 강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우리 쪽에서 북경 쪽의 방어 시스템을 해킹할 것이다. 이 해킹의 범위에는 전자제어 방어 시스템 및, 적의 전파망 교란, 최신 기기가 장착된 전차 등의 교란도 들어간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우리가 해킹에 들어가면, 놈들은 있지도 않은 적들을 공격하게 될 거고 자기들끼리도 치고받으며 싸우게 될 거라는 얘기야. 볼만한 불꽃놀이가 북경에서 벌어진다는 뜻이지. 단!”
김중현이 백유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최대한 길어야 한 시간. 그 전에 끝내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야. 삼십 분 가량 시간을 더 끌어볼 수는 있겠지만...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중국 놈들도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서.”
‘한 시간...’
북경.
중국의 수도이자, 상당한 실력자들이 포진되어 있는 곳.
일본의 아마테라스 소속의 각성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자들도 즐비하다고 전해진 곳이다.
그들은 팀-엑스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한 전력이 있는 강력한 존재들이다.
우리나라의 치우조차 거의 묵사발이 되어 박살날 정도로 강력한 팀.
김현성의 공격을 한 손으로 막아낼 정도의 탱커가 있고, 박성진의 온 힘을 다한 쉴드를 가볍게 부수는 역사(力士)도 있다.
그곳을 한 시간 안에 돌파하여 주석을 무릎 꿇리고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
“그 때까진 우린 최선을 다해 너를 도울 생각이다. 리퍼.”
강길현은 작전을 계속해서 설명했다.
가스저장탱크를 폭파시키고, 전기망을 끊는다.
상수원을 폭파시켜 혼란을 일으키고, 스모그를 피워 올려 대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그들이 완전히 목숨을 걸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작전이 실패하면 뒤는 없다는 뜻.
그들 역시 죽음을 각오한 상황.
백유현도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이 벌어주신 한 시간...소중하게 쓰겠습니다. 뒤를 잘 부탁드립니다.”
강길현의 입가에 마른 미소가 스쳤다.
사실 백유현이 자신들보다 더욱 힘든 상황이다. 그는 홀로 적진에 들어가야 하고, 또 싸워야 한다.
“뒤는 걱정 마라. 한 시간 동안은...무조건 지켜낼 테니까.”
다른 요원들도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백유현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윽고 말했다.
“그럼 시작하시죠.”
“오케이. 시스템 해킹 준비해! 카운트다운 들어간다!”
“옛썰! 준비 완료입니다. 해킹 시도 합니다. 자, 수진 누나! 백업 부탁해!”
“걱정 마! 꼬리는 내가 잘라낼 테니, 넌 메인 시스템 해킹에 집중해.”
삐비비비빅-
삐비빅-
둘은 미친 듯 타자를 쳤고, 모니터에는 어지러운 글자들이 올라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삐릭-
그리고 해킹이 성공했다는 알림이 떴다.
“주 시스템 해킹 성공! 서둘러! 한 시간이다!”
김중현의 말에 백유현은 바로 밖으로 달려나갔다.
북경의 밤하늘.
전기 시스템이 해킹되어 거의 모든 건물과 거리의 불빛이 사라져 있었다.
콰콰콰콰쾃!
그 하늘을 백유현이 빠르게 타고 날아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