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죽음이 강림하다
그 시각 청와대 지하 벙커.
이곳에는 국내의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 이하 모든 참모진이 온 정신을 다해 보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부산 쪽의 상황.
방금까지만 해도 패색이 짙었던 전선에 한 줄기 희망이 분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일본 제 2 호위대군 소속 이세함 격침! 호위함 이지스, 아시가라 격침! 그 외 호위함들과 구축함들이 줄줄이 격침되었습니다!”
“좋아, 됐어!”
합참의장이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어 보였다. 뭔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해 지방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 레이더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붉은 점들이 상당 수 사라져 있었다.
그 순간에도 브리핑이 계속 되고 있었다.
“부산항에서 격전 중입니다! 노블레스 멤버스 부산 지부 소속 각성자들과 경남, 경북 지부 각성자들이 최대한 힘을 다해 막아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 중에서 알파 팀이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는 중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니터에 아군이 수성(守成)하고 있는 방어선이 죽 그어졌다.
방어선은 부산항에서 얼마 밀리지 않은 곳에 그려져 있었다.
이 정도는 엄청나게 선방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본이 싹싹 긁어 모든 병력이 한꺼번에 부산에 집중되었는데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군이 적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반복합니다! 아군 병력이 적들의 공세를 뒤로 물리고 있습니다! 부산항에 지금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와아아아!”
부산 지역에 그려져 있던 방어선이 아래로 이동하자, 상황실에서는 터져 나갈 듯 함성이 울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들도 환호하는 모양새였다.
대통령도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박수를 쳤다.
합참의장 역시 들뜬 표정으로 부산하게 다니더니 급히 와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님! 알파 팀의 화력 지원으로 일본 각성자들의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이건 정말...!”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흥분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대한민국이 밀려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전개.
그런데 그것을 버텨내는 것도 모자라 밀어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알파 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
삑- 삑- 삑-
그런데 갑자기 붉은 불빛이 상황실 가득 퍼져 나갔다.
“엇! 일본 각성자 대표, 아마테라스의 참전이 보고되었습니다! 알파 팀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파악, 이번 전쟁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마테라스.
한국의 치우와 비슷한 조직이었다.
팀-엑스 대회를 준비하는, 국가를 대표하는 각성자 조직이기도 했지만 일본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상시에도 언제나 전투에 투입할 수 있도록 아마테라스를 적극 지원해 왔다.
애초에 원래부터 그들은 침략의 야욕을 꺾지 않고 오히려 더욱 크게 키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대통령의 말에 상황실 안에 부산해졌다.
“아마테라스의 열 명의 각성자가 전장에 난입, 곧 알파 팀과의 격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략 2분 후로 추정, 이 싸움에서의 승자가 부산의 운명을 가를 것으로 판단되는 바입니다!”
합참의장이 상황을 종합해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
대통령은 잠시 굳은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표정을 풀었다.
“그들은 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체 모를 침묵과 혼란이 잠식해 들어가고 있던 상황실 안이 한 순간에 진정되었다.
대통령의 표정에서는 그가 거짓으로 말하고 있지 않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그러니 믿어 봅시다. 부산은 반드시 지켜질 것입니다.”
상황실의 모든 인원들의 표정에 결연함이 떠올랐다.
“자, 빨리 적들의 동태를 파악해! 지원이 필요한 곳에 바로 지원할 수 있도록 빠른 정보 습득이 필요하다!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라!”
지휘관들이 재빠르게 지시를 내렸고, 이윽고 상황실 안에는 활력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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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금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집중되어 있는 곳이라면 단연 이곳이었다.
부산항을 막느냐, 막지 못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될 테니까.
“제발! 제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커플이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전광판에서 떠오르는 뉴스 특보를 보고 있었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지은이 죽는 거야? 엄마, 무서워!”
다섯 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울먹거리며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
지은이의 엄마는 지은이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아니야, 지은아! 죽긴 누가 죽어! 절대 그럴 일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군인 아저씨들이 다 물리쳐 주실 거야! 응?”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 걸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시펄,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냐? 일본 새끼들이 얼마나 잔인한데! 그 새끼들 여기까지 쳐 들어오면 우린 끝장이라고!”
사십 대 사내가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자, 옆에 있던 지은이 엄마가 그를 보며 말했다.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래요! 그런 이상한 소리 하지도 마세요!”
“아니, 아줌마가 어떻게 알아? 일본 놈들이 얼마나 강한데! 아까 못 봤어? 우리나라 해군이 전멸 직전까지 갔다는 거! 그거 SNS에서 싹 돌았다고!”
“아저씨!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요! 시팔, 누군 입이 없어서 그런 말 못하는 줄 아나!”
고등학생 커플 중 남자애가 앞으로 나서며 얼굴을 붉혔다.
“뭐 이 자식아? 지금 욕했냐? 엉?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아 좀 입 좀 닥치고 가만히 있어 보쇼! 자기만 겁나는 줄 아나!”
“이런 시펄! 뒤지고 싶나!”
사방에서 타박이 쏟아지자 사십 대 사내가 울컥 하며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그 때였다.
- 속보입니다! 방금 전 일본의 아르테미스 소속 각성자들과 우리나라 치우 소속 알파 팀의 교전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위성으로 전해지는 현장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사방이 아수라장인지라 위성으로밖에 중계가 되지 않는 여건 상, 모든 채널이 위성이 보내주는 영상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알파 팀이다! 김현성이다!”
“알파 팀, 힘내십시오!”
위성에 알파 팀의 모습이 잡히자, 사람들은 흥분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들은 어느덧 대한민국의 수호신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나타나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된다는 강력한 신뢰감이 심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 소속 각성자들과 격돌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침묵을 지켰다.
너무 치열하게 싸우는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박성진의 도발, 거기다 송곳처럼 적의 빈틈을 후벼 파듯 탄환을 날리는 천무현의 사격, 그 뒤를 든든하게 받치는 에피오네 김수향의 백업...
주세광과 김현성의 미친 듯한 움직임까지.
그 모든 것이 마치 영화처럼 전국에 중계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테미스 소속 각성자들은 총 열 명. 알파 팀은 숫자에서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의 강력함은 한 순간 일본의 아르테미스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결국 숫자에서 밀리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르테미스는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으으! 힘 좀 내요!”
“제발! 제발...!”
“백유현만 있었어도!”
“맞다! 백유현이 있었다면 저까짓 놈들 아무것도 아닐 텐데!”
백유현이 일본 함대를 더 이상 부산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들은 백유현을 찾았다.
알파 팀이 대한민국의 수호신이라면, 백유현은 그 알파 팀을 지키는 강력한 전신(戰神)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부재를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는 가운데, 누군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저, 저기! 백유현이다!”
“어디? 어디!”
“저기! 백유현이 나타났어! 저기!”
“백유현이다! 와아아아아!”
백유현의 존재는 이미 세상에 잘 알려져 있었다.
홀연히 나타나 대한민국 최고의 각성자라는 김현성과도 호각을 다툴 정도로 강력하다는 소년.
아니, 일설로는 김현성조차 애초에 추월해 버린 천재 중의 천재.
바로 그 백유현을 애타게 기다렸던 사람들은 화면 상에 나타난 백유현의 모습에 미친 듯 열광했다.
콰앙-
그리고 그가 바로 아르테미스의 각성자들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쩌엉-
촤라랏!
“커헉!”
“끄악!”
화면상의 백유현은 바로 아르테미스의 각성자들 사이를 파고들며 베고, 또 베었다.
놀라운 것은 백유현의 움직임을 아르테미스의 각성자들이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와아아아!”
김현성도 대단했지만, 백유현은 아예 그와 차원을 달리 하고 있었다.
백중지세에서 어느 순간부터 밀리던 전세가 백유현의 등장 이후, 확 뒤집어져 버린 것이다.
쩌엉-
그리고 그가 사정없이 내리 꽂는 칼날에 아르테미스의 각성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보였다.
단 한 명.
백유현 한 명의 등장으로 전투의 양상이 뒤바뀌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전광판을 통해 보며 한 가지 공통된 감정을 느꼈다.
희망.
모든 것이 무너지고, 박살이 날 것 같아 보여도 누군가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희망.
바로 그가 백유현이었다.
그는 지금도 전장을 누비고 다니며 모든 것을 뒤바뀌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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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거대한 뇌전이 떨어져 내린다.
“크아아악!”
“으아악!”
검붉은 뇌전에 휩싸인 적들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져갔다.
뇌전에 휩싸이고 화염에 불타오르는 적들에게 자비는 없었다.
함대를 부수고 부랴부랴 전선에 복귀한 백유현은 무차별적으로 일본의 각성자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것은 전투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사냥’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냥꾼과 먹잇감이 목숨을 걸고 추격하는 치열한 현장!
하지만 그것과 조금 다른 점은, 일본의 각성자들은 도저히 백유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슈아아앗-
콰쾅!
금환식.
두 자루의 검이 스치며 일으키는 대살상의 전조.
무신 척준경이 백유현에게 전수한 전설의 검술이 펼쳐지며 수많은 일본의 각성자들을 집어 삼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운데, 백유현은 지치지도 않고 각성자들을 따라붙으며 베고, 또 베었다.
마치 공포의 대왕이 직접 강림이라도 한 듯, 일본 각성자들 사이에서는 실체 없는 공포가 순식간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치, 칙쇼! 놈을 막아라!”
지휘관들이 각성자들이나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미친 귀신처럼 날 뛰는 백유현을 막아낼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불멸자를 단신으로 잡는 존재.
아무리 각성자들이 강해졌다 해도 그런 존재와 싸워 이길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부산항에는 죽음이 강림하고 있었다.
그 무엇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