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방어선
- 우리가 도착했다. 뒤는 맡겨라.
무전을 통해 명확하게 들려온 알파 팀의 음성. 백유현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있다면 부산은 믿고 맡길 수 있다.
“부탁드립니다. 대장.”
- 건투를 빈다.
백유현과 박성진.
둘 사이의 무전은 길지 않았다.
짤막한 두 문장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콰아아앗!
백유현은 폭풍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많다.
수많은 함대가 여전히 백유현을 향해 벌컨포를 쏘아댔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었다.
으득-
백유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아무리 수뇌부가 망자들에게 정신이 지배당해 진격 명령을 내렸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백유현이 파악하기로는 놈들은 마치 악마와도 같은 살심을 품고 바다를 건너왔다.
마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들이 한국의 잘못인 듯, 또 한 번 한반도에 화풀이를 하려는 것이다.
‘더 이상은 두고 보지 않겠어!’
일본과 우리는 정말 멀고도 가까운 관계.
그렇게 길고 긴 세월을 지나며 우리는 일본에게 상당한 핍박을 받아왔고, 억눌렸고, 치욕을 당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한 번이라도 시원하게 설욕해본 적이 없었다.
백제에서 일본에 문화를 전해주고, 그들의 왕이 되었다는 얘기로 위안을 삼으면 뭐하겠는가?
그 뒤에 벌어진 수많은 참사들은 바로 그들로 인해 벌어졌었고, 지금까지도 그것을 절대 반성하지 않는 것을.
백유현은 두 눈을 번뜩였다.
‘그 단죄(斷罪)를 오늘 내려주마!’
그 동안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 그리고 신음...
원한어린 그 단말마를 백유현이 대신 갚아주려는 것이었다.
쿠오오오오!
콰앙-
[사력(死力)이 발동되었습니다. 전신 신체 능력치가 크게 올라갑니다]
콰콰쾅-
사력이 발동되었고, 이어 짐승의 광체까지 그 힘을 드러냈다.
[짐승의 광체가 발동되었습니다. 피부가 단단해지며, 물리 내성에 상당한 저항력을 가집니다. 짐승의 힘으로 순발력과 회피능력이 크게 올라갑니다]
두 가지 힘이 동시에 발동하자, 백유현의 전신을 둘러싸고 미친 듯한 검은 뇌전이 번뜩였다.
- 지금 쟤들 혼내주려는 거야?
그 때, 제피의 음성이 머릿속에 들려왔다.
녀석은 하늘을 날지 못하기 때문에 부산항에 놔두고 왔었다. 그런데 백유현의 눈에 제피가 검은 색의 돌고래 하나를 타고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위험해, 제피!”
제피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재밌기만 한데 뭘! 도와줄까? 형?
“뭐?”
- 보니까 형도 제대로 해보려고 하는 거 같은데...그럼 나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저번에 나 괴롭힌 놈들하고 비슷한 냄새가 나거든! 그럼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제피 역시 인상을 와락 구긴 채 일본 함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백유현은 그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거라면 녀석을 말릴 명분이 없었다.
게다가 제피는 짐승의 왕의 아들이다.
어떻게든 제 한 몸은 지킬 줄 안다는 뜻이다.
“뭐, 좋을 대로. 그런데 방법은 있어?”
- 그건 내게 맡겨. 재미있는 걸 보여줄게!
“좋아! 그럼 가볼까?”
- 응!
제피가 돌고래를 타고 그대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백유현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씩 웃었다.
그 지독한 칼바람이 몰아치는 히말라야에서도 옷을 다 벗고 있었던 녀석이다.
저 정도는 우습게 버틸 것이다.
투타타타타-
그 순간 백유현을 향해 미친 듯 벌컨포의 포탄이 쏟아졌다.
퍼퍼퍼펑!
미처 피하지 못한 백유현의 주변에 자욱한 연기가 일었다.
쿠오오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백유현을 둘러싸고 있는 강력한 돌풍이 그 연기를 순식간에 흩어 버렸다.
사력과 짐승의 광체를 발동시키자, 그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바람의 힘이 강력한 쉴드가 되어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백유현의 두 눈에서는 불똥이 일고 있었다.
“다...”
그의 두 눈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더욱 더 강렬해졌다.
그리고 나직한 음성이 이어 흘러나왔다.
“죽어 버려.”
콰쾅-
순간 그의 몸이 갑자기 사라졌다.
쿠아아앗-
콰앙-
“크아아악!”
그리고 다시 나타난 순간, 호위함 한 대가 그대로 박살이 나며 불길에 휩싸였다.
백유현의 공격은 마치 천신(天神)의 공격처럼 날카로웠고, 강력한 것이었다.
부아아앗!
간장과 막야, 두 마검에서는 거대한 기운이 길게 뻗어 나와 마치 레이저처럼 모든 것을 갈라내고 베어 버렸다.
콰앗-
그 순간 막야에서는 이글거리는 초승달 모양의 화염이 뿜어졌고, 그 화염에 스친 모든 것이 찢겨 나가고 타올랐다.
검강(劍?).
막야가 마검으로 강화되면서 생긴 능력.
순수한 불꽃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만들어낸 검강은 초고열의 힘으로 배의 장갑을 녹이고, 그 안의 생명체를 모조리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타르가!”
“끼기기긱!”
그 순간 백유현은 환수, 타르가를 불러냈고 타르가가 공중에서 툭 튀어나오며 머리를 긁적였다.
“끼이이익!”
그러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밑으로 추락했다.
원숭이인지라 날 수가 없었기에 녀석은 그대로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캬캬캭!”
녀석은 허공에서 몸을 뒤집더니 바로 균형을 잡으며 근처의 배 위로 껑충 뛰어 내렸다.
쿠웅-
작은 몸집의 타르가가 떨어진 자리에는 강철판이 움푹 들어갔고, 타르가의 두 눈에서는 시퍼런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캬아아악!”
파지지직!
녀석의 두 손에는 뇌전이 번뜩이며 눈부신 빛을 발했다.
쾅- 쾅- 콰콰쾅-
그러더니 놈은 미친 듯 사방을 누비고 다니며 뇌전을 주변에 휘둘렀다.
뇌전 줄기는 강력하게 모든 것을 집어 삼켰고, 태워버렸다.
백유현의 뇌전과는 또 다른 힘을 가진 뇌전이 함대를 박살내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분 되지도 않았다.
타르가가 발광하는 사이, 갑자기 일본함대 저 뒤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괴 생명체 접근 발견! 이, 이것은!”
소나(음파 탐지기)에 걸린 괴 생명체를 발견한 탐지병이 크게 그것을 알렸지만, 그 결과에 모두가 경악했다.
“핵 잠수함...아니, 이것은 그것보다 훨씬 크다! 이건 도대체!”
처음에는 흰긴수염고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크기가 비교가 되질 않았다.
흰긴수염고래의 크기가 일반적으로 20미터에서 25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소나에 탐지된 물체의 크기는 최소 100미터.
그리고 이곳 바다는 흰긴수염고래가 나타날 곳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다가드는 저 거대한 물체는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들에게는 길게 생각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고오오오오-
“해, 해일입니다!”
“뭐라고!”
때 아닌 바다에 거대한 해일이 일어 작은 함정들이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리고 뭔가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거대하고도 매우 굵은 촉수.
콰아앙-
그것을 발견한 순간, 피할 틈도 없이 촉수는 함대를 덮쳤다.
와장창창-
콰콰쾅!
“크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울리고 함정이 쪼개졌다.
“아...아니! 저건 뭐란 말이냐!”
촉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여덟 개에 달하는 거대한 촉수들이 미친 듯 허공을 누비며 함대의 뒤를 완벽하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크, 크라켄! 저건 혹시 전설에 나오는 크라켄이 아닙니까!”
“뭐? 미친 소리 하지 마라!”
콰콰쾅!
“크악!”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부하에게 윽박지르던 함장이 바로 날아든 촉수의 공격에 피떡이 되어 한쪽에 처박혔다.
하지만 온 몸이 으스러져 죽어 버린 함장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해자대의 병사들이나 장교들은 미친 듯 사방으로 뛰어야 했다.
이건 뭐 사방이 죽음으로 가득 찬 바다가 아닐 수 없었다.
두 자루의 검을 번뜩이며 함대 사이를 누비며 다니는 각성자, 그리고 그 아래에서 푸른 뇌전을 쥐고 미친 듯 날뛰는 흰 원숭이, 거기다 전설의 동물이라는 크라켄까지!
“시...신이 노했다! 신이 노했어!”
“크으으, 이걸 어쩌면 좋지! 이걸 도대체!”
이곳은 옛 몽골과 고려가 일본을 점령하려다 카미카제(神風)에 휩쓸려 대패를 당한 바로 그 바다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신이 노하여 일본의 함대를 집어 삼키려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해자대의 군인들은 아예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항모건 이지스건...
이런 엄청난 힘 앞에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뛰어 내려!”
불길에 휩싸인 병사들이 물로 뛰어내렸지만, 불행히도 그들에게는 살 길은 열리지 않았다.
와드득!
콰직!
“끄아아악!”
주변에는 언제 들이닥쳤는지 수백, 수천 마리의 상어들이 돌아다니며 일본군이 바다에 뛰어드는 족족 뼈를 부수고, 살점을 물어 뜯어 버렸던 것이었다.
내장이 끊겨 나가고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그 광경에 살아남은 일본군들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이건 살아 있다고 해도 살아 있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죽는 것이 행복할 정도였으니...
“놈들을 막아라!”
이미 부산항으로 진격하는 병력 외에, 이곳에는 각성자를 태운 수송함이 더 있었다.
그들도 미친 듯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인간계 최강의 각성자, 백유현과 환수, 타르가, 그리고 전설의 거대 괴물 크라켄이었으니까.
파지지직!
“크아아악!”
자신만만하게 바다를 건너던 함대는 그렇게 순식간에 바다 아래로 침몰하고 있었다.
평화롭던 대한해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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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부산항에서도 일대 소란이 일고 있었다.
백유현의 저지선을 우회해 부산항으로 짓쳐 드는 일본 수송선을 향해 지대함 미사일이 날아가고, 포가 발사되었지만 큰 피해는 주지 못하는 상태.
당연한 얘기였다.
일본은 그저 그런 일개 함대를 보낸 것이 아니라, 내로라하는 항모전단과 이지스함을 모조리 때려 부은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대한민국의 전력으로서는 그것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쐐애애앳-
콰콰쾅!
게다가 어느새 떴는지 폭격기와 전투기가 동시에 날아올라 방공포대와 지상 미사일 발사대를 두들기기 시작하니 금세 방어선이 무력화되었다.
“놈들이 상륙한다! 저지해!”
부산항을 둘러싸고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는 육군 병력이 속속들이 모여 들어 반격을 가했지만, 이미 제공권이 제압당한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콰콰쾅!
“으아악!”
옆에서 전우의 몸이 포탄에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병사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고, 그런 그들을 향해 육자대의 병력들이 달려들었다.
“모조리 베어버려!”
거기다 일본 각성자들이 수송선에서 내리기 시작하면서 전세는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대한민국 육군이 일본보다 훨씬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병력이 제대로 모였을 때의 얘기다.
지금은 제공권까지 넘겨준 상태에서 육군은 그야말로 손 쉬운 먹잇감이나 다름 없었다.
촤앗- 촷-
그 속에서 날 뛰는 일본 각성자들의 칼춤은 육군의 방어선을 크게 뒤흔들었다.
“죽어 버려!”
한 각성자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한 병사에게 달려들었고, 병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움츠렸다.
카앙-
그 순간이었다.
촤앗!
“끄르르륵!”
갑자기 요란한 충돌음이 들리더니, 병사를 향해 달려들던 각성자가 목을 부여잡고 뒤로 휘청거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여기까지야.”
그의 눈앞에는 한 사내가 검을 빼들고 있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각성자라 알려져 있는 김현성. 바로 그였다.
“모조리 죽여주마.”
그의 두 눈에서 살기가 뿜어졌다.
파가가각-
김현성이 내달렸다.
그리고...
타앙-
한 번의 총성이 울렸다.
- 라이플, 참전합니다.
천무현이 입 꼬리를 올린 채 조준경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