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부산항
백유현은 불길로 뒤덮인 이세함을 바라보았다. 사방에는 불길에 휩싸여 발악하는 군인들과, 바닥에 질펀하게 누워 있는 각성자들이 보였다.
삼십.
일본에서도 고르고 고른 삼십 명의 각성자가 한 순간에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지금 백유현의 힘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
그런 백유현에게 별 생각 없이 달려든 것 자체가 그들이 죽을 이유가 충분히 되었다.
“항모 점령. 마무리를 부탁합니다.”
백유현은 이미 함교까지 완벽하게 정리한 상태였다.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미 이세함은 기동 불능의 상태에 빠졌고, 더 이상 항모로서의 기능은 불가능했으니까.
- 접수. 리퍼, 탈출을 명한다.
전해지는 명령을 들으며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콰아아앗!
그리고 그는 바로 허공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쐐애애애애앳!
콰콰콰쾅!
그가 높이 날아오른 순간, 저 멀리서 미사일 몇 기가 그대로 날아들어 이세함 곳곳에 내리꽂혔다.
쿠우웅-
거대한 이세함이 크게 뒤흔들렸을 정도로 미사일의 타격은 치명적이었다.
미사일을 잡아낼 요격 시스템이 모조리 박살이 난 상태라, 이세함이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주변에 이지스함이 있긴 했지만, 방금 전 벌어진 참사에 대응이 늦어 이세함이 그대로 격침당하는 꼴을 두고 봐야 했다.
“치...칙쇼!”
이세함은 그냥 항모가 아니다.
그것도 한국과의 해전(海戰)에서라면 더욱 더. 이세함은 일본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항모는 곧 일본의 영토나 마찬가지.
사실 일본 해상자위대의 군인들은 이세함이 결코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 이세함이 공격받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이세함과 그 주변에 이지스함들이 따라다니는 이상, 이세함은 무적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이세함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여 격침당하고 있었다.
번쩍-
콰콰콰콰쾅!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함대의 공격에 의해 전력의 상당 부분이 날아간 한국 함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와장창창-
“크아아악!”
“아아악!”
각 함정의 함교를 덮치는 불의의 일격!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 장교들과 병사들은 미친 듯 발광하며 몸부림쳤다.
파편이 날아와 폐를 찢고, 심장을 터뜨렸고 육체를 순간적으로 태워버리는 불길에 휩싸여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는 자들이 속출했다.
이지스 함에서 자동 방어 시스템이 가동되었지만, 한국 함대의 공격은 교묘하게 사각을 파고 들었다.
콰콰콰쾃!
그리고 한국 해군의 비대칭 전력의 핵심이라 불리는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들이 곧장 일본 함대를 향해 쇄도했다.
소리 없이 다가들어 목을 베어 버리는 암살자와 같은 그 날카로운 공격은, 정말이지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치가 떨릴 정도였다.
콰콰쾅!
“크아아악!”
“어뢰 접근 중! 요격 합니다!”
순식간에 치명적일 정도로 얻어맞고서야 일본 해자대는 정신을 차렸다.
그들이 무너지면 끝장이다.
쿠쿵-
어뢰의 요격이 성공하면서 거센 물보라가 곳곳에서 일었다.
하지만 이미 일본 함대의 전진은 봉쇄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한 사람에 의해.
콰앙-
구축함 한 정의 갑판에 거칠게 내려선 백유현은 두 자루의 검을 빼들고 주저없이 내달렸다.
꽈르릉-
우레를 불러내는 검, 간장과
화르르륵!
겁화를 일으키는 검, 막야가 미친 듯 울었고 그 잔혹한 살기는 구축함을 가득 덮었다.
“마, 막아!”
투타타타타-
각성자가 아예 배치되어 있지 않은 구축함에서 대응할 방법이라고는 소총과 기관포로 백유현을 향해 사격하는 것뿐.
하지만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이미 이세함에서의 일로 증명이 되어 있었다.
스스스-
백유현이 아니더라도 일정 레벨 이상의 각성자라면 총알 정도는 쉽게 피한다.
총알 궤적을 꿰뚫어 볼 정도로 안력이 강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알 궤적을 꿰뚫어 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움직인다’.
총알의 궤적을 피해 움직이며 적의 목을 베어내는 자들.
그런 일을 아주 우습게 해내는 자들이 바로 각성자들이다.
촤앗-
서걱-
콰당탕!
백유현은 그런 각성자들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
그러니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봐도 되었다.
“크으!”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지스 함의 함장, 사토가 이를 악물더니 돌연 크게 외쳤다.
“저 망할 놈을 배와 함께 부숴 버려!”
“하, 함장님!”
“못 들었나! 목표는 구축함! 저렇게 농락당하며 침몰하느니 아군의 손에 명예롭게 죽는 것을 택할 것이다! 어서 사격 준비해!”
사토의 말에 다들 잔뜩 굳은 표정이 되어 기기를 조작했다.
그의 말도 맞았다.
대 일본의 위대한 함대가 단 한 명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상황.
저 구축함에 타고 있는 자들도 그런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군의 칼로 목을 쳐주는 것이 옳다.
“미사일관 개방! 목표 조준, 발사합니다!”
17식 함대함 미사일의 발사가 준비되었고, 사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콰콰쾃!
쐐애애애앳!
아군이 아군을 공격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졌고 미사일은 그대로 공격당하고 있는 구축함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콰콰콰쾅!
17식 함대함 미사일의 강력한 폭발은 그대로 구축함을 집어 삼켰고, 엄청난 불길이 일며 구축함이 한쪽으로 크게 기울였다.
“잡았나!”
사토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사이, 누군가 외쳤다.
“하, 함장님! 하늘을!”
사토는 그 말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가 이를 바득 갈았다.
“비...빌어먹을! 저 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된 새끼야! 대공 벌컨포 갈겨! 뭐든지 다 쏟아 부으란 말이다!”
허공에는 거대한 폭풍 날개를 활짝 편 백유현이 여유 있게 떠 있었고, 그 발 아래 구축함이 요란한 폭음을 내며 침몰하고 있었다.
아군의 공격에 처참한 몰골이 되어 수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일본군은 약이 바짝 올랐다.
자신들이 엉뚱하게 아군의 목을 베어 버린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콰쾃!
그래서 전 함대에서 허공을 향해 미친 듯 벌컨포의 포격이 가해졌고, 미사일이 쏘아졌다.
함대의 싸움도 아닌, 함대 대 한 사람의 싸움에서 이토록 처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하지만 촘촘히 짜인 십자화망에, 정확하게 목표물을 때리는 미사일들의 총공세에 이번에는 절대 피할 수 없을 거라 여겼다.
아니, 이번에는 반드시 잡아야 했다.
놈 때문에 본 손해가 얼마던가!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는 지금 바로 잡아야 했다.
쐐애애앳-
미사일 수십 기가 백유현 하나에 좌표를 찍고 날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죽어라!’
더 이상 피할 곳도 없다.
놈이 아무리 빨라봐야 미사일보다 빠를까?
이미 미사일들은 정밀한 슈퍼컴퓨터 제어에 의해 놈의 동선과 퇴로를 다 분석하고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에 미사일은 정확하게 세팅된 좌표에서 미친 듯 폭발했다.
아예 백유현이 도망칠 수 없도록 주변 전체에 모조리 폭발로 뒤덮어 버린 것이다.
콰콰콰쾅!
“크윽!”
“으악!”
폭발의 후폭풍으로 전 함대가 거친 파도와 충격파에 휩쓸려 사람들이 날아가 처박히고 물건들이 박살이 났다.
휘오오오-
그리고 평정을 되찾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경악.
그리고 불신.
“이게...무슨!”
미사일 한 기도 아니고 수십 기다.
그것도 함대에 쏟아 부은 것도 아니고, 단 한 사람에게 쏟아 부었다.
그런데...
쿠오오오오-
그 폭발 가운데서도 유유자적하게 허공에 떠 있는 저 놈은 도대체!
백유현은 이세함을 호위하던 모든 함대들의 공격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사실 미사일 수십 기가 날아올 때는 아찔했었다. 반응할 속도도 아니었고, 견뎌낼 파괴력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염라의 선물이 있었다.
황천걸음(黃泉步).
단 두 걸음 동안이지만, 귀문을 열어 명부로 몸을 숨길 수 있는 가공할 회피기.
그 두 걸음 사이, 미사일들은 폭발을 일으켰고 백유현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쐐애애애앳-
그리고 그는 뒤쪽에서 날아드는 수많은 물체들의 움직임을 느꼈다.
그것은 대한민국 해군의 대함 미사일인 해성(海星)이었다.
아음속으로 날아들어 함정을 박살내는 가공할 최신 병기.
이제까지 당한 수모를 갚아주겠다는 듯, 해성 미사일은 곧장 날아가 집요하게 일본 함대를 노렸다.
콰콰콰쾃!
격추를 위해 일본 해자대의 이지스 함에서 대응 미사일이 쏘아졌지만, 워낙 불시에 덮친 공격인지라 다는 막지 못했다.
번쩍-
콰콰콰쾅!
워낙 뛰어난 이지스함의 미사일 방어 능력 탓에 대부분의 해성 미사일이 요격되었지만, 용케 살아남은 몇 기의 해성 미사일은 몇 척의 일본 함정에 그야말로 불지옥을 선사했다.
곳곳에서 불길이 오르고, 일본 함정이 침몰했다. 이것은 일본 해자대의 치욕이었다.
이제까지 자신들의 발밑으로 보고 있던 대한민국 해군에 일격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바다에서 이렇게 막히기 시작하니, 일본 함대의 수뇌부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빠르게 바다를 제압해서 본토로 들어가야 본격적인 싸움을 벌일 수 있을 텐데, 엉뚱하게 바다에서조차 막히고 있으니...
하지만 그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각 함대! 공격당하는 함대는 내버려 두고 수송선을 호위하여 진격하라!”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들의 목적은 일단 부산항을 점령한 후, 육자대 병력과 각성자들을 내려 놓는 것.
그러면 육지의 싸움에서도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일본에 손해였기에 수뇌부는 빠르게 반응을 한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백유현 때문에 치명적인 일격을 당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백유현은 자신을 무시하고 돌아가는 함대들을 보고 움직이려 했지만, 이번에는 일본 함대에서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쐐쇄쇄쇄쇗!
이번엔 공격 헬기까지 떠서 그를 집요하게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퍼퍼퍼펑!
하지만 백유현은 긴급 회피를 하며 공격을 피해냈다.
그런 그를 향해 아래에 있는 함대에서 벌컨이 쏟아졌다.
투타타타타!
그야말로 하늘 전부를 빼곡하게 채우는 십자화망!
그 아슬아슬한 간극에서 백유현은 도저히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그그그극!
하지만 백유현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간장과 막야를 내리 치며 일몰(日沒)을 적에게 선사했다.
수많은 칼날의 비가 함선 위로 떨어지자 그 단단한 함선의 철갑이 온통 만신창이가 되었고, 사람들이 베어져 나가 즉사했다.
하지만 이미 수송선을 위시한 대함대가 부산항으로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해군은 그들에 의해 완파되거나, 퇴각을 한 상태.
그 순간 들려온 무전이 있었다.
- 리퍼. 고생했다. 여기는 우리가 맡으마.
그 목소리에 백유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알파 팀.
그들이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