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가디언
쏴아아아-
저 멀리 부산항의 환한 불빛들이 보인다.
제독, 츠기오는 함교에서 그 광경을 보면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이제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한일 양국의 명운이 걸린, 그야말로 매우 중요한 전투.
하지만 츠기오는 이 싸움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하다.
대(大)일본의 모든 전력을 다한 한 방이다.
그걸 한국이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편안하게 마치 티브이를 보듯 별 감흥 없이 저 멀리 보이는 부산항의 불빛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제독 각하! 한국군의 함대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역시 뻔하다.
현해탄을 건너온 그들 앞을 가로막는 것은 약해도 너무 약한 한국군의 함대.
오래 전 한국에서는 해상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이지스 함을 건조하고, 경항모까지 들이려 했던 때가 있었지만 그 뒤로 그 목소리는 싹 사라졌다.
권력자가 바뀌면서 그런 이야기는 아예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터미널 쇼크.
그 결정적인 사건 탓에 한국은 해군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카오스 터미널이 간혹 해저에 생성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해저에 찾아가서 터미널을 공략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으니까.
만약 바다가 몬스터로 뒤덮였다면, 한국에서도 해군 전력을 강화하는데 상당히 신경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그들의 결정적인 패착이 되었다.
“격침시키도록. 그리고 부산항을 빠르게 점령하도록 한다. 폭격기 띄우고, 대응포격이나 사격이 가해지면 무참하게 짓밟아라. 모조리 박살내도 좋다.”
제독의 말에 부관이 경례를 올려붙였다.
“하이!”
그의 명령은 빠르게 함대에 전달되었다.
콰콰콰콰-
항모를 위시한 이지스함, 구축함 등이 따라 붙으면서 진로를 틀었다.
동해와 남해 기지에서 출격한 한국 함대를 몰살시키기 위함이었다.
삐익-
레이더에 불이 들어오자 츠기오가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건조한 목소리를 냈다.
“부숴 버려.”
기이이이-
콰콰쾅!
전 함대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한일해전.
그 치열한 공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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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콰콰쾅!
“으아아악!”
“크악!”
화르륵!
사방이 불바다다.
함장 이재일 역시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일본의 첨단 컴퓨터 제어에 의한 정확한 타격은 한국의 함대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함대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순식간에 사상자가 폭증했다.
“하, 함장님! 며, 명령을!”
부관이 피투성이가 된 채 힘겹게 입을 뗐다.
자세히 보니 그의 가슴팍에는 기다란 철판이 박혀 있었고, 그곳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상태였다.
이재일은 이를 악물었다.
바다를 방어해야 본토가 안전해진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일본과의 해상전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본 함대를 막아선 것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보고자 함이었다.
그래야 육군과 공군이 항전할 기회라도 생기니까.
그런데 일본의 해상 전력은 너무 막강했다.
놈들이 제대로 마음을 먹고 공격을 가하자, 아군의 함대는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크으!’
사방을 봐도 불바다다.
일본 함대의 함포를 비롯해 미사일들이 정확하게 아군의 머리 위로 내리 꽂힌 결과다.
명령을 내릴 것도 없다.
이건 끝이었다.
삐- 삐-
그런데 갑자기 레이더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비행체 접근 경고...아니, 이것은...!”
레이더를 담당하는 부사관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커다란 새 같습니다만...그게...!”
일반적으로 새 떼도 레이더에 잡히곤 한다.
그런데 지금 부사관의 표정은 묘했다.
“한 개체가 접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개체라고?”
“예! 그런데 그 속도가!!”
“속도가 뭐가 문제인가!”
“새치고는 너무 빠릅니다! 거기다 너무 정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상 목표는...!”
이어진 보고를 들은 이재일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함교 유리창 저 너머로 보이는 그곳.
관제사는 바로 그곳을 말하고 있었다.
‘2번함 이세!’
일본의 휴우가급 항모 중 2번함에 해당하는 이세함.
그곳에서는 18기 가량의 헬기가 뜨고 착륙할 수 있다.
지금 이쪽에 극심한 타격을 입힌 전력도 바로 이세함과 그 호위전단에서 가한 포격이다.
그런데 레이더에 잡힌 새는 바로 그 이세함을 정확하게 노리고 날아가고 있었다.
쐐애애애앳-
와장창창!
“크윽!”
그 때 갑작스런 파공음이 들리며 함선의 모든 유리창이 깨져 나갔다.
함선의 유리창이 상당히 두꺼운 것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 충격파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던 이재일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얼굴에는 불신과 경악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아, 아니 어떻게 저...저런!”
쿠쿠쿵!
그의 눈앞에서는 이세함이 치솟는 불꽃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불길을 헤치며 허공으로 솟구치는 하나의 그림자...
‘말도...안 돼!’
그는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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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쾅!
브라만을 타고 바로 부산항으로 내달린 백유현은 폭풍 날개를 펼치고 바다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일본 함대를 발견하고는 모든 힘을 다해 그쪽으로 돌진한 것이다.
쿠웅-
백유현은 재래식 병기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일단 적을 제압하려면 수장(首將)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지금 일본 함대에서의 수장은 바로 항공모함.
수많은 군함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항공모함을 발견한 그는 바로 그곳으로 쇄도했다.
콰아앙-
백유현은 각성자다.
강철보다 단단한 몬스터들의 갑각을 찢고, 바위보다 억센 놈들의 뼈를 부순다.
게다가 백유현은 몬스터뿐만 아니라, 불멸자들의 강력한 방어막도 뚫어내는 괴물이었다.
그런 백유현의 공격력을 항공모함이 버텨낼 리가 없었다.
아무리 강력한 철갑으로 둘렀어도, 백유현의 극에 달한 파괴력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콰드득-
백유현이 내리꽂힌 갑판은 형편없이 우그러졌고, 항모 전체에 강력한 충격파에 밀어닥쳤다.
촤앗-
그리고 백유현은 지체 없이 간장과 막야 두 자루의 검을 빼들고 드넓은 갑판을 내달렸다.
“칙쇼! 쏴 죽여 버려라!”
투타타타타-
병사들이 뛰어나와 백유현에게 미친 듯 총을 쏴댔지만, 그들의 상대는 백유현.
그런 어설픈 공격이 먹힐 리가 없었다.
콰콰콰쾃!
폭풍 날개는 하늘에서만 그 위력을 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상에서도 엄청난 추진력을 백유현에게 선사하며, 가공할 위력을 불러 일으켰다.
촤앗! 촷-
번쩍-
“크아악!”
“아악!”
사방으로 죽음의 빛, 사휘(死輝)가 뻗어 나갔고 그 빛에 휘말린 자들은 몸뚱이가 두 동강이 나서 즉사했다.
파지지직!
화르륵!
검은 태양, 일몰이 갑판 위로 마구 쏟아져 사방에 뇌전과 화염이 미친 듯 너울댔다.
강력한 방어력을 가진 항모가 단 한 사람에 의해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콰쾅!
백유현은 병사들을 죽이는데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을 죄다 쓸어버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항모를 침몰시키는 것!
그러니 항모의 약한 부분을 건드려 폭발시키면 될 일이다.
과거에는 절대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진 것은 백유현이 강력한 존재들과 계약을 맺은 각성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두 손에 쥐어진 검들...
세상 어느 곳을 뒤져 보아도 둘보다 강한 검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간장과 막야는 엄청난 능력이 깃든 마검이었다.
각각 뇌전과 화염의 힘을 뿜어내는 강력한 검들.
진노한 번개의 신과, 폭주하는 불꽃의 용이 이세함 갑판에 현신했고, 둘은 이세함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며 내부를 파괴해 나갔다.
콰콰쾅!
격벽(隔璧)이 박살이 나고, 화염이 내부에 휘몰아쳤다.
뇌전이 배를 타고 흘러 전자기기를 파괴했고 사람들은 태워 죽였다.
이런 가공할 힘에 일본 함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단 일격(一擊).
그것도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그 일격에 이세함이 불길에 휩싸인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각 함선의 함장들도 멍하니 그 꼴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정신을 깨운 것은 총제독의 호통이었다.
- 뭐 하고 있나! 이세함을 구하라!
그 질타에 함장들은 정신을 차렸고, 이세함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이세함을 구해야 하는 지였다.
‘이세함에 포격을 가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이세함에 잠입한 건 오로지 한 명.
그렇다고 그 한명에 포격을 쏟아 부을 수도 없다.
그거야말로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니까.
그렇다고 특수 부대를 투입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상대는 각성자.
그것도 항모를 혼자 부숴버리고 있는 각성자다. 그런 놈을 상대로 특수 부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이세함에 각성자 육전단 이함 대기 중.
- 각성자 이 개 소대 이함 시작한다!
이 개 소대면 삼십 명 가량이다.
아무리 항모를 부술 정도로 강력하다 해도 놈은 하나.
삼십 명이면 오히려 차고 넘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지배적이었다.
“한 놈 상대로 삼십이면 과한 것 아니요? 우리 군의 입장이 있지, 겨우 한 놈을 상대하는데...”
이 개 소대 투입을 결정한 지휘관에게 되려 그런 질문이 돌아올 정도였다.
하지만 각성자를 총괄 지휘하는 이토 육장(육군 중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시오! 항모를 상대로 싸우는 놈이요.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이외다! 헛소리 그만하고 지켜보시오. 지금 저 놈을 잡으면 한국군은 크게 사기가 떨어질 것이니!”
그나마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는 자였다.
이토 육장은 평소에도 각 나라의 각성자들의 동향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는데 상당한 재능을 보여 왔다.
그런 그가 일갈을 하자, 다른 이들도 입을 꾹 다물 수밖에.
하지만 이토 역시 보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대가 백유현이었다는 점.
그것이 그의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 일 소대 진입 완료! 놈이 보입니다!
- 이 소대 진입 완료! 역시 목표 포착! 저희는 혹시 있을 지도 모를 지원을 끊기 위해 대기하겠습니다!
- 일 소대, 목표물로 이동 중. 잠시 후 교전 시작합니다. 적 포착!
각성자 일 소대가 실질적인 교전을 담당하고, 이 소대는 지원 병력을 끊겠다는 계획이었다.
이것은 이토 육장의 의도와 달랐다.
“지금 뭐하는 겐가! 방심하지 마라! 두 개 소대 모두 놈과 교전하라!”
- 하지만 적은 한 놈입니다. 거기에 삼십 명이나 덤벼드는 것은 꼴 사납습...
“칙쇼! 명령불복종으로 총살을 당하고 싶은 겐가! 명령이다! 모두 놈과...”
- 크아아악!
이토 육장이 다시 명령을 내리는 사이, 갑자기 엄청난 비명소리와 혼란스러운 잡음이 들려왔다.
“뭐, 뭐야!”
이토 육장은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대답은 한참 후에야 들려왔다.
- 이...일 소대 전멸! 이 소대...전멸 직전입니...아, 안 돼! 크아아악!
이 무전은 전 함대에 공유하는 채널에 전파되고 있었기에, 모두가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한 순간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각성자 삼십.
그것도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자들이 갔는데 모조리 몰살한 것이다.
- 잘 들어.
그 때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꿀꺽-
이토 육장은 마른 침을 삼키며 무전에 집중했다.
- 다음엔 너희들 차례야.
통역의 말을 들으며 그는 이마에서 한 줄기 땀을 흘렸다.
놈.
놈은 절대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