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양공
쿠우우우-
일본 해상 자위대 해장보, 츠키야마는 이지스 본함에 올라 저 멀리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장 각하! 출정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츠키야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수상이 일왕의 이름을 빌어 직접 내린 진공(進攻) 명령이 떨어진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해자대의 모든 전력이 북진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북쪽.
“목표를 향해 출항한다.”
현해탄(玄海灘)을 건너, 오랜 세월 동안 일본과 악연을 맺어온 나라.
“목표는...한국! 진격하라!”
“하이! 각하!”
해장보 츠키야마의 명을 받아 공고급 이지스함이 기항을 빠져나갔다.
그들뿐만 아니었다.
가장 큰 함선인 이지모급 항모와 그를 호위하는 수많은 순양함과 이지스, 구축함들이 이미 출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제 1 호위대군 부터 제 4 호위대군에 이르기까지, 전 해상자위대 병력이 북쪽으로 항로를 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상륙함에는 육군자위대의 병력이 가득 탑승해 있었다.
상대적으로 압도하는 해상 병력으로 한국의 병력을 찍어 누르고, 육자대의 병력이 한국 본토에 상륙하는 전략이었다.
게다가 상륙함에는 육자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진짜는 몇 십만에 달하는 각성자들을 태운 상륙함이었다.
재래 병력으로는 이번 전쟁을 끝낼 수가 없다.
전쟁을 끝내는 것은 결국 각성자들의 몫.
그 전까지 해자대와 공자대, 육자대가 길을 뚫어주려는 것이다.
콰콰콰콰-
거센 파도가 부서졌고, 현해탄의 짙푸른 바다는 수많은 함선으로 가득 뒤덮였다.
새벽 2시.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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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 일어났던 일대 혼란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정신 지배를 당한 경비대나 각성자들이 무수히 죽었고, 대통령과 참모들까지도 정신 이상으로 치명적인 실수를 한 뒤였으니까.
하지만 곧바로 찾아온 박성진 일행과 비서실장의 도움으로 대통령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숨 쉴 여유도 없이 급한 보고가 날아들었다.
“일본 해자대 및 공자대가 대한해협을 건너 부산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제 1 호위대군부터 제 4 호위대군까지 모조리 몰려오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더불어 마검의 농간에 미혹되어 있었던 합참총장도 미간을 와락 구겼다.
마검에 정신을 지배당하고 있는 사이, 일본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정확하게 말해 봐!”
그의 말에 부관이 다시 보고를 시작했다.
“일본 해자대는 물론, 육자대, 공자대 까지 모조리 부산과 울산 등으로 출격을 한 상태이고, 수송함에는 각성자들이 탑승해 있다는 첩보입니다. 놈들은 선전포고 이후 전광석화 같이 움직였습니다.”
“그러니까...1 호위대군도 움직였다고? 남쪽을 경비하는 부대가?”
“예, 그렇습니다. 1 호위대군은 뒤늦게 합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럴 것이다.
일본의 남쪽 해상에 주둔하고 있는 1 호위대군이 북쪽으로 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우리 쪽 대응상황은?”
“전단이 움직이고 있습니다만...일본 쪽의 항모의 전력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연한 얘기다.
일본의 항모나 이지스함에 비해, 우리나라의 해상전력은 크게 뒤떨어지니까.
항모는커녕 이지스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다.
더군다나 터미널 쇼크가 발생하면서 재래식 병기의 필요성이 쇠퇴함에 따라 재래 병력은 더욱 약화된 상태다.
“육군 병력은 어떻게 하고 있나?”
“예, 각 군단은 작계 5892에 따라 일본 침공 시의 시나리오에 대응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변수가 많은데다가 해자대나 공자대의 전력이 강력하여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허...! 이 자식들 언젠가 뒤통수를 칠 줄 예상하고는 있었다만...”
“해군 병력으로는 우리가 상대가 안 되니, 육지로 끌어들여 싸워야 하겠군요. 다만 그 경우 공습에 취약해지니 우리 공군이 얼마나 잘 해주느냐가 변수가 될 것이겠고요.”
대통령이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합참의장 역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대공 미사일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놈들이 육지 근처에 접근하면 답이 없습니다.”
일본의 공자대와 해자대의 병력은 우리나라의 공군과 해군 전력을 압도한다.
다만 육군에서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강력하기 때문에 일본이 점령전을 펼치더라도 쉽게 전쟁의 결과를 점칠 수 없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예상.
그렇다고는 해도, 공중을 빼앗겨 버리면 육군은 의미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송함을 타고 오고 있는 수많은 각성자들.
그들의 힘이라면 육군의 전력 정도는 우습게 뒤집어 버릴 수 있다.
“일단 각성자들이 상륙하게 되면 전쟁은 끝입니다.”
우리나라 청와대가 혼란 속에 빠져든 사이, 일본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진격 준비를 마쳤다.
그에 반해 우리는 부랴부랴 놈들을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다.
갑호 각성자 총동원령이 내려졌지만, 일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갑호 각성자 총동원령이나 전군 전투태세 명령이 내려진 후였기에 어느 정도 대응은 가능한 상태였다는 점.
하지만 시간이 문제다.
일단 부산이 뚫리면 육지로 쏟아져 들어올 일본의 각성자들은 이 땅을 유린하게 될 것이고, 자리를 잡게 되면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그전에 막아야 한다는 얘긴데...”
지금 상황으로는 어림도 없다.
갑호 각성자 총동원령이 내려져 각성자들이 부산항으로 결집하는 시간에, 이미 일본은 내륙을 치고 올라와 거침없이 북진하고 있을 테니까.
방어선이 차례차례 무너진 상태에서의 전투는 아군에 극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군력에서도 밀려 버리니 각성자들의 고충은 더욱 커지게 된다.
“대통령님! 급보입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급보가 날아들었다.
“뭡니까?”
대통령이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비서관을 바라보았다.
비서관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로 보고를 시작했다.
“중국 제남군구 해군, 남경군구 해군의 함대들이 동진(東進)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육군 심양군구와 베이징군구의 집단군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첩보가 들어와 있습니다!”
“이런! 목적지는 어디요?”
합참의장이나 대통령은 마검의 미혹에 빠져 회복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그 동안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본의 북진에 이어 중국의 동진까지 이어진다면 이건 뭐 완전히 사면초가였다.
비서관이 입술을 깨물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것이...우리나라로 추정 됩니다. 인민해방군에서 북한에 길을 열라는 통보를 해왔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북한에 길을 열라는 통보를 해왔다는 것은 단 한 가지의 사실을 의미한다.
그들의 목적지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박성진과 함께 청와대에 같이 들어와 있던 백유현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사실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일본도 그렇고, 중국도 뭔가에 홀린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수장을 홀린 존재는 아예 모든 것을 밀어 넣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도록 판을 짠 것이 확실했다.
자신들은 앞에 나서지 않고 인간들의 욕망을 부추겨 세계의 멸망을 가져온다.
상당히 머리가 비상한 존재의 큰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빌어먹을!’
백유현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해도 문제는 그것을 파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중국과 일본이 동시에 치고 들어온다.
그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다행히 북한은 길을 열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임진년의 왜란 때,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외친 조선과 상황이 흡사합니다. 그들은 중국군의 침입을 절대 허용치 않겠다며 우리에게 핫라인으로 상황을 전해왔습니다.”
북한과 남한의 관계는 예전과는 달리, 그리 나쁘지 않다.
사실 터미널 쇼크를 겪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를 드러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국이 북한에 대한 갑질이 도를 넘어서자, 북한은 이미 중국과 외교를 단절한 지 꽤 되었다.
필요한 것은 터미널에 가서 구해오면 되니 굳이 그들과의 관계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북한에서는 그것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청와대에 모인 모두에게 안도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후우! 불행 중 다행이군요.”
“하지만 북한 전력으로는 인민해방군의 기세를 막아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속히 지원을 해야 합니다.”
각 나라의 군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합참의장의 말에 대통령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북한이 재래식 병력도 꽤 되고, 본진에서의 싸움인데다가 각성자들의 수도 꽤 되었지만 중국에 비하면 밀리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시간은 벌었으되...크게 의미가 없다라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함참의장이 딱딱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사방이 벽으로 막힌 듯한 이 답답한 상황 속에서 도대체.
“제가 부산으로 가겠습니다.”
그 때 누군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일행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백유현이 서 있었다.
“일본의 병력을 제가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이곳은 서울이다.
지금 당장 출발한다고 해도 부산까지 가는 데는 한 시간 이상 걸린다.
이미 대한해협을 절반 이상 건넌 일본 함대를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백유현이 뛰어난 건 알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부산항이 점령당했을 확률이 큰데.
그 때 박성진이 입을 열었다.
“믿어 보십시오. 대통령님. 유현이는 해낼 겁니다.”
“그게 무슨...”
박성진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녀석은 절대 자기가 꺼낸 말을 어긴 적이 없으니까요. 저희도 뒤 따라서 부산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으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알파 팀이 움직여준다면야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어디 알파 팀만으로 해결될 일인가?
하지만 알파 팀의 표정은 평온했다.
백유현을 그만큼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기에 저들이 저토록 백유현을 믿고 있단 말인가?
잠시 침묵을 지키던 대통령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몸 조심하셔야 합니다. 일본과의 전쟁이 끝나면 중국이 몰려 올 테니...”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일본과의 전쟁을 이기는 것도 말이 안 되었지만, 그 뒤의 중국과의 싸움에서도 이길 생각을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 물어도 이미 대한민국은 끝났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 알파 팀이 움직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대통령은 그들에게 기대를 걸고 싶어졌다.
늘 불가능에서 가능을 만들어낸 자들.
그들이 만들어낼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하고 싶어진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백유현이 대통령을 바로 바라보았다.
그 두 눈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알파 팀의 눈빛 또한.
“곧 돌아오겠습니다.”
백유현은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상황실을 나섰다.
뒤로 느껴지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주 미약하게 느껴지는 일말의 기대감...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절망어린 시선.
이 순간, 대한민국의 마지막을 앞에 두고 길을 나서는 백유현에게 쏟아지는 시선이었다.
“브라만.”
“음머어어어!”
청와대 밖으로 나선 백유현이 나직하게 브라만을 불렀다.
브라만은 우렁찬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달려왔다.
백유현은 놈의 등에 올라타고는 널찍한 등을 쓰다듬었다.
“먼 길을 가야 해. 부탁한다, 브라만.”
“음머어어어!”
그 말에 자신만을 믿으라는 듯 브라만이 발을 힘차게 굴렀다.
콰콰쾅!
그리고 놈은 땅을 박차고 남쪽으로 치달렸다.
주변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부산.
브라만이 향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