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청와대 잠입
스스스슥-
수많은 쥐떼는 청와대 경내로 은밀하게 숨어 들었다.
평소 같으면 그 부산한 움직임이 눈에 띌 만도 하건만, 제피의 통제를 받는 쥐 떼들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은밀했고, 동시에 영악했기에 단 한 마리의 움직임도 발각되지 않았다.
녀석들은 청와대의 천장 위쪽이나 환풍구, 하수시설 등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상한 기운을 찾아다녔다.
찌지직-
제피의 통제가 얼마나 완벽했던지, 녀석들은 찍찍거리는 소리조차 극도로 조심하며 청와대 경내를 돌아다녔다.
그 동안 제피는 두 눈을 감고 쥐떼와 감응하면서 쥐들의 움직임을 제어했다.
그리고 놈들이 보는 모든 것을 공유했고, 또한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짐승들의 왕의 핏줄을 이어받은 적자의 능력이었다.
“인간들이...이상해! 서로 죽고 죽이고 있어!”
그 때 쥐들의 눈에 뭔가 들어왔는지 제피가 두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백유현은 그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제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총성이 울리고 있어! 그리고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그게 그러니까...음...검을 보호해라? 그래! 검을 보호해라! 라는 외침이야!”
쥐는 인간들의 언어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쥐들의 오감을 공유하는 제피는 바로 언어를 해석해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쥐떼가 청와대에 들어간 지 대략 이십 여 분만에 검에 대한 단서를 찾아낸 것이었다.
‘찾았어!’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일렀다.
검을 보호해라- 라는 얘기로 미루어 검이 분명히 청와대 경내에 있다는 것은 알아냈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제피는 다시 쥐떼들을 움직여 검의 위치를 파악하려 애썼다.
“지금 손에 검을 든 자들을 따라가게 하고 있어. 총을 든 자들을 무참히 베어 죽인 자들이야. 형, 이 자들이 각성자 맞지? 형과 같은.”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뭐라고 하고 있어? 그 사람들.”
“검이 진노하고 있다고. 더 많은 피를 요구한다고. 그래서 다 죽이려 한대. 아직 검에 정신이 먹히지 않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생각인가 봐! 어? 근데 앞쪽에 노란 머리의 사람들이 보여!”
“노란 머리? 내 또래야?”
제피가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하나는 남자고 하나는 여자야! 이름이...응! 남자는 리처드고 여자는 시이나야! 서로를 그렇게 불러!”
백유현은 미간을 좁혔다.
‘놈들이다!’
감히 한국 땅에 와서 각성자들을 이유 없이 죽인 놈들.
생각을 정리해보니, 지금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은 단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절대 단순한 사건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이 곧 붙을 것처럼 불똥이 튀고 있는데, 거기다 더해 영국과 한국도 외교적인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 게다가 방금 전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중국의 함대도 집결 중이라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 함대가 어디로 향할 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너희들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아!’
백유현의 두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일어났다.
망유계의 망자들은 이 세계의 불멸자들을 타락시킨 것도 모자라, 악신들을 부활시켰고, 거기에 더해 각성자들에게까지 빙의해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서로를 이간질시켜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하고 있었다.
“검은 어딨어?”
“잠시만! 지금 보고 있어!”
제피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어! 그런데 여기 경계가 너무 삼엄한데?”
그 말에 백유현이 문제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위치만 설명해줘.”
“응! 그려줄게!”
쥐들의 눈을 통해 위치를 파악한 제피는 두 눈을 뜨고 재빨리 지도를 그려주었다.
이미 청와대 경내의 설계도는 비서실장을 통해 백유현의 손에 들어와 있었기에, 그 두개를 비교하며 검이 있는 곳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백유현은 지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예상 외로 검은 청와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고, 시간을 꽤 잡아먹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후우...’
산 넘어 산이었다.
독사의 탈태를 사용하여 영체가 되어 잠입한다고 해도 1분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 청와대 깊은 곳에 있는 검을 찾아 나와야 한다.
물론 영체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검의 영향을 받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1분...’
그 때 백유현은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 그렇지!’
타임 뱅크.
조셉이 모아 놓은 시간의 창고.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시간들이 이곳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번에 타임 뱅크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셉이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조셉이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영체(靈體)는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는 존재...타임 뱅크는 그 시간을 늘려줄 수 없다는 뜻이죠.”
“뭐?”
“영체가 되어 있는 시간을 늘린다 해도, 영체가 떠나 있는 동안 육체(肉體)는 점점 죽음의 상태로 빠져드니까요. 독사의 탈태가 왜 일 분밖에 유지가 되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죠.”
“이런...!”
백유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보면 조셉의 말이 맞았다.
브리트라라는 거대한 악신의 권능으로도 독사의 탈태를 일 분밖에 지속시키지 못한다.
복잡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영체가 육체를 떠나 있는 동안, 육체는 서서히 죽어간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영체의 시간을 늘리면 늘릴수록 더욱 악화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백유현은 지도를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불쑥 말했다.
“최대 시간이 얼마나 돼? 영체로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이...”
조셉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저조차도 그건 장담할 수가 없어요. 만약 영체에 타임 뱅크의 시간이 적용되었다가 부작용이라도 일어나면...”
백유현을 바라보는 조셉의 두 눈이 안타까움과 착잡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백유현은 그가 하려던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육체가 사망할 수도 있다...라는 거네?”
조셉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 확률이 매우 높죠.”
단순하게 생각해서 일분의 시간을 적용시키는 게 뭐가 문젠가 싶지만,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는 그 행위 때문에 영체와 육체가 분리된 두 공간이 완전히 뒤틀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영체화를 한 순간, 영체와 육체는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니까.
백유현도 천천히, 하지만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고, 더 이상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조셉, 고마워.”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네요.”
백유현이 피식 웃었다.
“뭘. 늘 도움 받아서 내가 고맙지. 이번엔 내 힘으로 해결해볼게. 걱정 마.”
“일분...으로 가능하겠어요?”
“그렇게 만들 거야.”
백유현은 조셉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니까.”
조셉도 지그시 백유현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겠어요. 저도 최대한 도울 방법을 찾아보죠.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래, 그래주면 고맙겠어.”
백유현은 다시금 조셉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분...영체 상태에서 제가 버틸 수 있는 최대의 시간입니다. 확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는 청와대에 될 수 있는 한 가까이 접근해야 할 거 같아요.”
“그래...그게 필요하겠지.”
말하자면,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주변에는 무수한 맹수들이 득시글거리는 상황.
그것을 뚫고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뚫고 영체화에 성공했다 쳐도 문제는 그 다음.
어떻게든 적들의 눈을 피해 백유현의 육체를 지켜야 한다. 육체를 잃어버리면 백유현은 다시는 절대 되돌아올 수가 없으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박성진이 일행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싸움은 아마 가장 힘든 싸움이 될 거 같다. 다들 같이 갈 거지?”
알파 팀.
그 이름 하나로 뭉쳐 숱한 난관을 헤쳐 나온 여섯 명이다.
하지만 박성진이 이렇게 묻는 이유가 있었다.
주세광은 그 의도를 눈치 채고는 피식 웃었다.
“대장, 그리 말하면 섭섭하죠. 그럼 우리 떼고 혼자 가려고 했어요?”
“그러게 말이야. 가끔 보면 우리 대장 소녀 같은 구석이 있다니까? 그냥 가자! 하면 어련히 잘 알아서 따라갈 것을. 후후.”
김수향이 미소 어린 얼굴로 말했고, 천무현과 김현성도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이나 길 잃어버리지 말고 잘 따라 오세요. 어휴, 걱정은.”
“백유현.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다녀와라. 그 누구도 널 건들 수 없게 할 테니까.”
김현성의 말에 백유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감사합니다.”
이런 팀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정말 행운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효, 그리고 니그로르. 너희들이 할 일은 잘 알지?”
강효가 고개를 숙이며 부복했고, 니그로르도 깊숙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혼백을 다하여 소주를 호위할 것이옵니다. 염려치 마시옵소서!”
“사령(死靈), 니그로르. 로드의 명을 받습니다.”
강효와 더불어 문광, 그리고 수많은 차사들이 부복했고, 니그로르와 더불어 수많은 사령들이 고개를 숙였다.
든든하다.
이 정도면 뒤를 맡겨도 괜찮을 듯했다.
“그럼...가죠.”
시간이 없다.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공멸의 시간만 앞당겨질 뿐.
일초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일행은 빠르게 청와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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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스-
청와대 경내.
몇 개의 인영이 재빠르게 그 안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누구도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은밀했다.
척-
순간적으로 청와대 지하 벙커 근처까지 접근한 인영은 한 자리에 머물러 주의 깊게 사방을 주시했다.
“주변에 병력이 쫙 깔려 있어. 더 이상 들키지 않고 접근하는 건 불가능할 듯하다.”
박성진은 두 눈을 예리하게 빛내며 말했다.
일행 역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후, 조금만 더 가는 게 좋아 보이는데...여기는 유현이가 잠입해서 되돌아오는 데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말이죠.”
박성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방 삼백 미터 앞쪽으로만 접근해도 좋겠는데...하필 각성자들을 비롯해 경비단 병력이 집중배치가 되어 있어서 그것도 불가능하니...”
청와대에는 이미 수백 명의 각성자들과 일반 군 병력이 보충되어 있었다.
이들을 아무런 피해 없이 뚫고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알파 팀이 강하다 해도 적의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데 뚫고 지나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어쩔 수 없죠.”
백유현이 두 눈을 빛내며 나직하게 내뱉었다.
“여기서 영체(靈體) 분리를 시도하는 수밖에.”
막무가내로 밀어 붙여 각성자들이나 일반 군인들을 다 죽여 버릴 수도 없다.
마검만 처리하면 다시 제 정신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백유현은 다른 방법을 찾아낸 상태였다.
“괜찮겠어?”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합니다.”
그의 말에 일행들도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독사의 탈태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탈태가 시작되었다.
파앗-
[탈태 지속 시간이 60초 남았습니다]
탈태가 성공했다.
그리고...
[권능, 짐승의 광체가 발현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강화됩니다]
백유현은 모험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