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137화 (137/166)

137. 갑호 각성자 총동원령

한참 동안 급히 걸려온 전화를 받은 박성진은 멍한 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일이 터졌다.”

“무슨 일입니까, 대장?”

주세광 역시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박성진을 바라보았다.

“대통령께서 구금되셨다. 그 외 합참의장, 노블레스 멤버스 한국지부장 등...수뇌부는 모조리 감금되었다는 연락이야.”

“그거, 확실한 소식입니까?”

김현성의 말에 박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비서실장이 겨우 빠져 나와서 내게 연락을 해준 거다. 보안 채널에다 위성 전화로 연결된 것이니 당연히 확실한 얘기겠지.”

“그럼 그 범인은 영국의...”

그런데 박성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범인은 우리 쪽 각성자들이다.”

그 말에 일행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영국의 각성자들도 아니고, 이쪽의 각성자들이 그런 짓을 벌이다니 믿기지가 않는 일이었다.

“아니...그거 확실한 겁니까?”

주세광이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박성진을 쳐다보자, 박성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청와대 경호를 위해 파견되었던 각성자들 백여 명. 그들이 모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어.그런데 이상한 점이...그들의 눈빛이 모두 뭐에라도 홀린 듯 풀려 있었다는 것. 뭔가 딱 떠오르지?”

그 때 뒤에서 말없이 있던 백유현이 나직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빙의...”

박성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맞아. 비서실장의 전화 내용도 그거였다. 그 역시 강력하게 빙의를 의심하고 있었어. 그리고 더 이상한 건...구금된 대통령이 이상한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점...”

“무슨 지시를...?”

백유현의 말에 박성진이 답을 이었다.

“갑(甲)호 각성자 총동원령. 즉...전쟁을 준비하라는.”

일행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그건...말도 안 되는! 대통령이 왜...?”

“지금은 갑호 각성자 총동원령을 내릴 때가 아니잖아요? 몬스터들이 죄다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은 것도 아니고...”

천무현의 말에 박성진이 날카롭게 그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갑호 각성자 총동원령이 내려지는 경우가 또 하나 있지.”

천무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설마...!”

박성진은 그의 두 눈동자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천무현의 입술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침략전쟁...!”

갑호 각성자 총동원령은 국가 위기의 순간에 내려지는 최후의 명령이었다.

터미널들이 모조리 폭주하여 몬스터들이 준동을 하거나,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았을 때,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전쟁을 벌이는 침략전쟁 시에 내려지는 명령.

“더해서 전군 전투태세 명령까지 내려졌다. 이건 합참의장의 입을 통해 전달되었고, 따라서 삼군(三軍)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상황이 워낙 급박하여 뒷 이야기는 나중에 전해준다 하니 그건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그게 빙의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요? 그럼 지금 대통령이나 합참의장이 내리고 있는 명령도 강제로 협박을 받거나 해서 내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 그럼 빙의된 각성자들만 제압하면 되는 일이잖아?”

그 때 백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니 문제죠. 청와대에 들어가 있는 각성자들에게도 산혼초가 전달되었으니까요. 그들 모두가 산혼초를 빼놓고 다니지 않은 이상, 단체 빙의가 일어났을 리가 없어요.”

“뭐? 아...하긴! 그 산혼초라는 풀을 가지고 있으면 빙의가 안 된다고 했었지? 그럼 일이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야?”

천무현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박성진이 다시 나섰다.

“그래...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더욱 어려운 문제지. 우리라고 그 꼴이 안 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산혼초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잖아.”

이어진 박성진의 말에, 백유현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그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산혼초가 있는데도 단체 빙의가 되었을 리가 없어...! 이건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강효를 불렀다.

“강효. 물어볼 것이 있어.”

“예, 소주.”

“상황은 들어서 알고 있겠지? 넌 어떻게 생각해?”

강효 역시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있다가 곧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기 저어되오나, 한 가지 짚이는 바가 있사옵니다.”

“그게 뭐야?”

“예로부터 천년 여우가 인간의 간을 빼먹기 위해 인간들을 미혹(迷惑)하는 경우가 있었사옵니다. 그것은 빙의(憑依)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보이는 형태는 비슷하옵니다.”

백유현이 동의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구미호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홀리곤 하지. 그럼 지금 경우도 그렇다는 얘기야?”

“소인이 보기에는 그것이 아니라면 작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사옵니다. 허나...”

“허나?”

“천년미호(千年尾狐)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수많은 이들을 홀릴 수는 없사옵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뭔가 저주 받았거나, 주술이 걸린 매개체가 필요하온데...”

백유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까...주술이 걸린 뭔가 청와대에 있다?”

“예, 맞사옵니다. 소주. 빙의가 아니기에 산혼초가 효과가 없었을 것이고, 그러기에 더욱 위험한 상황이옵니다. 소주께서도 가시게 되면 매우 위험하옵니다.”

백유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결국...누군가 주술에 걸린 매개체를 청와대에 반입했다는 거고...그로 인해서 지금 사태가 벌어졌다는 거지? 그 매개체를 없애지 않으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다...뭐 이런 얘기일 거고.”

“맞사옵니다.”

백유현이 두 눈을 매섭게 번뜩였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그런 식으로 서로 싸우게 하고 공멸시키려는 계획이라는 거네. 그 말뜻은...저 쪽에 상당히 머리를 쓰는 놈이 있다는 거고.”

백유현의 말대로였다.

지금까지는 그저 빙의해서 각성자들을 죽게 만들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스케일이 완전히 달라졌다.

뭔가에 홀린 대통령이 갑호 각성자 총동원령을 내렸고, 그것은 곧 다른 국가와의 총력전을 의미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술적 무기를 인정받는 각성자들이다.

그런 각성자들에게 총동원 명령을 내렸다는 것은 총력전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응? 이건 또 뭐야!”

그런데 스마트 폰을 보고 있던 주세광이 깜짝 놀란 외침을 내질렀다.

“뭔데 그래?”

박성진이 그에게 다가가 가만히 살펴보더니 완전히 굳은 표정이 되었다.

“이건...!”

두 사람의 반응에 다른 일행들도 스마트 폰을 켰다.

그러자 검색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그 두 사람이 왜 그러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 일본 야마모토 수상, 한국에 전면전 선포. 일본 전역에 각성자들에게 즉각 전투 배치 명령 하달. 자위대 병력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최종 명령 대기 중.

- 일본, 한국에 선전포고 하다. 위기 상황에 빠진 대한민국, 대통령의 판단은!

“뭐야 이거...?”

천무현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대통령도 이걸 미리 알고 총동원령을 내린 건가?”

그 때 박성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비서실장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이 그러는 이유를 모른다 했어. 게다가 지금 청와대의 상황을 보면, 일본의 선전포고와는 전혀 무관하게 흘러가는 중이지. 즉...”

“착란(錯亂)의 상태에 빠진 거네요. 둘 다.”

박성진의 말을 백유현이 받았다.

박성진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두 나라의 수장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상대 국가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이다.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법적 절차가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의회의 역할은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권한은 역대 최강이었고,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속보가 떴어요!”

- 청와대, 일본의 도발에 극적으로 맞서다! 갑호 각성자 총동원령 발령, 전군 전투태세 발령. 일본의 선전포고에 극적으로 대항하는 모양새!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져든 대한민국, 그 앞날은!

주요 신문사나, 유튜브, 인터넷 매체...

모든 곳에서 경악할만한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간 정말 걷잡을 수 없겠어!”

“그렇다고 청와대로 섣불리 들어갈 수도 없잖아. 우리까지 잘못 되면 모든 게...끝이니까.”

맞는 말이었다.

알파 팀이 잘못되면 망자들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었다.

그걸 알기에 비서실장도 그 급박한 상황에서 박성진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백유현도 바로 그 점 때문에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

일본에도 동일한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양국 정상이 이런 정신 나간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일 테니.

그 때 그의 옆에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흐물거리며 나타났다.

“로드를 뵙습니다.”

그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검은 사령, 니그로르였다.

하데스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얻게 된 사령, 니그로르. 그러고 보니 페르세포네를 심면에서 깨우는 임무 완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니그로르는 그 동안 다른 곳에 가 있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으악! 이 녀석은 뭐야?”

그런데 백유현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일행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피가 깜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니그로르는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백유현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로드, 왕께서는 이번 사안에 대해 상당히 우려를 하고 계십니다.”

“하데스가?”

니그로르가 깊은 어둠으로 짙게 물든 오러를 발산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은 얼마 전, 저승에서 몇 자루의 검과 함께 상당한 양의 물건들이 사라진 적이 있습니다. 그 모두가 저주에 걸린 물건들로, 이승에서는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어 저승에 봉인하고 있었던 물건들이었습니다. 만약 그 물건들이 이승에 풀린다면 끝없는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왕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뭐? 그럼 그 물건들이 언제 탈취당했다는 거야?”

“얼마 전, 저승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었던 적이 있습니다. 강력한 외부의 힘이 저승의 경계막을 뚫고 들어와 모든 질서를 일거에 무너뜨린 사건이 있었지요. 그 때의 혼란을 바로 잡고 보니 물건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그럼 설마 그 물건들이?”

니그로르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과 상당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령들이 추적한 결과, 한 자루의 검이 이곳까지 흘러 들어온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그 검은 ‘검은 기사 가르든의 마검’으로 주변의 인간들의 정신을 모조리 집어 삼키고 혼돈 속에 빠뜨려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만드는 마검입니다. 살육과 전쟁에 미친 검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로 광기에 물든 검이지요.”

그 말에 백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말대로라면 모든 것이 들어 맞는다.

갑작스런 대통령의 명령이나, 각성자들의 이상행동이나...

니그로르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가르든의 마검과 비슷한 저주나 주술에 걸린 물건들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것을 사령들이 확인했습니다. 아마 곧 대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 왕께서는 이 혼란을 수습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네 얘기는 마검이 청와대에 들어가 있다? 라는 거지?”

“예. 푸른 지붕의 왕궁에 그 검의 흔적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단, 사령들이 가서 직접 회수할 수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영이거나, 죽은 망령이거나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건 내게도 통하는 말일 거고...”

니그로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로드라고 하더라도...마검의 힘을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 상태에서는...”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

“마검의 눈을 속일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입니다. 육체가 죽지 않았으되, 혼령이 육체를 빠져 나온 상태라면 마검의 저주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백유현은 인상을 굳혔다.

‘그런 상태라면...!’

하나가 있었다.

독사의 탈태.

육체를 벗어나 영체가 될 수 있는 권능.

하지만 단 1분만 지속 가능하다.

그 상태에서 마검이 어디 있는지 뒤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잠깐!”

그런데 갑자기 백유현이 고개를 돌려 제피를 바라보았다.

“응? 난 왜...?”

“니그로르...아까 그 검의 저주는 인간에게만 통한다 했지?”

“맞습니다. 로드.”

“그 말은 짐승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해도 되는 거잖아?”

“그건...예...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백유현이 씩 웃었다.

“제피, 할 일이 생겼다.”

“응? 내가?”

제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녀석은 모든 짐승을 다룰 수 있는 힘이 있다.

“작고 재빠른...그리고 영특한 놈들을 잔뜩 모아줘야겠어.”

“작고 재빠른? 그리고 영특한...? 그럼 쥐를 말하는 거잖아.”

“그래. 쥐를 모아서 청와대에 풀어라. 녀석들이 우리의 눈과 귀가 될 수 있게. 녀석들을 이용해서 마검을 찾는 거다.”

제피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하! 그럼 되겠네! 알았어! 바로 준비할게!”

제피는 바로 백유현의 말을 알아들었다.

“응?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유현아.”

제피와 백유현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일행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백유현의 말을 듣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네! 요 귀여운 녀석이 대단한 일을 하겠는데?”

“그 뒤 마검을 회수하는 것은 저와 타르가가 맡아서 할 거고요.”

환수 타르가.

흰색 잔나비인 타르가는 손기술도 좋았고, 민첩했다.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다 치고 일본은 어떻게 하지? 거긴 이미 막을 수가 없는 것 같은데...”

백유현이 말을 꺼낸 천무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면.”

그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이 땅을 밟게 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줘야죠.”

그의 두 눈에서 뿜어지는 시퍼런 광망에 일행조차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와대를 향해 수많은 쥐 떼들이 몰려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