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136화 (136/166)

136. 청와대

깊은 밤이었다.

각성자 전현민은 동료 오주석과 어울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휴, 요새 너무 바쁘지 않냐? 진짜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오만상을 쓰며 기지개를 켜는 전현민을 보며 오주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야. 그 놈의 망령들인지 뭔지 때문에 요새 정신이 하나도 없네. 요새는 레벨 올리러 갈 시간도 없다니까? 각성자 총 동원령이 내려져서.”

“예전이 그립다, 진짜! 예전엔 얼마나 폼 났냐? 각성자 하면 딱 고급차 타고 다면서 어깨에 힘 빡 주고 다닐 수 있었는데!”

“뭐 그래도 이렇게 바쁜 덕분에 다른 각성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다행이지. 우리가 안했어 봐. 아마 다들 빙의에 걸려서 자살하지 않았겠어? 으으,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네!”

“그거 그래. 근데 백유현은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이런 걸 구해올 생각을 했지? 지금 각성자들 자살율 우리나라만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다며?”

“그래서 유튜브건 어디건 다 난리잖아. 그 풀 어디서 구할 수 있냐고. 아무튼 대단한 녀석이야. 저번부터 중요한 순간에는 꼭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한다니까?”

“우윽, 암튼 얼른 들어가서 좀 쉬자. 오늘 너무 피곤하다.”

두 사람은 밤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계속 주고받았다.

처억-

그런데 그 앞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음? 당신 뭐야?”

그를 먼저 발견한 전현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눈앞에는 황홀하게 달빛을 반사해내는 금발의 미소년 하나가 서 있었다.

두 눈의 눈동자는 티 하나 없이 새파랬고, 조각 같은 그 얼굴에는 한 줄기 냉소가 떠올라 있었다.

“어? 저 녀석 걔 아냐?”

“응? 누구?”

오주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미소년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는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러자 전현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스차일드의...왕자...리처드 로스차일드 말이야!”

“뭐?”

그 말에 전현민도 두 눈을 크게 떴다.

로스차일드.

앞에 서 있는 존재가 누구든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영국의 자존심이자, 실질적으로 세계적으로도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들.

이들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많이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큼 철저하게 베일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각성자 시대가 도래하며, 로스차일드에서는 강력한 각성자들을 배출해내기 시작했고, 그것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정말 리처드 로스차일드라고?”

그것을 증명하듯, 전현민의 목소리는 어느덧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로스차일드 가문의 리처드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물론 그도 들은 적이 있다.

영국의 올리버 수상이 방한할 때, 그를 수행하는 각성자들 중 로스차일드 가문의 리처드와 시이나가 있었다는 것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중 한 명인 리처드가 왜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관광중인가 보네. 우린 그냥 가자. 뭐 알아서 있다가 가겠지.”

전현민의 말에 오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설마 우리에게 볼 일이 있겠어? 우연히 만난 거겠지 뭐.”

리처드의 두 눈에서 뿜어지는 한기가 워낙 살벌해서 두 사람은 리처드 옆을 스쳐 지나갔다.

게다가 같은 각성자라 해도 리처드는 자신들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존재가 절대 아니었다.

둘이 리처드를 스쳐 걸어가는 사이, 갑자기 리처드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거기 서.”

두 사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한국어도 아니었지만, 영어도 아닌 기괴한 언어였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언어는 귀가 아닌, 그들의 뇌리에 직접 전달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뜻이 이해가 되었다.

‘뭐, 뭐야?’

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 순간 리처드 역시 천천히 몸을 돌리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뭐, 뭐야! 저 놈?”

그런데 이번에는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매우 깔끔하고 고상하게 생긴 리처드다.

그래서 조각 미남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그런데 지금 리처드의 모습은...!

‘아...악마!’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은 채, 두 눈에서 살기를 뿜어내는 놈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였다.

“전투 준비해!”

둘도 그냥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살기를 마주함과 동시에 둘은 무기를 뽑아 들고 응전 태세를 갖추었다.

카앙-

그리고 단 한 순간의 금속성이 울렸다.

척-

리처드는 가볍게 바닥에 내려섰다.

스릉-

그의 검에 묻어 있던 몇 방울의 피가 튕기듯 흘러내렸다.

“너희들의 희생으로 정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야. 기대해.”

리처드의 입가가 비릿하게 비틀렸다.

잠시 후 그의 광기에 물든 두 눈빛이 차츰차츰 제 자리를 찾아갔다.

뚜벅.

그리고 그는 어둠 속으로 걷기 시작했다.

콰당탕!

그가 어둠에 완전히 사라진 순간, 두 사람의 시신이 그대로 쓰러졌다.

전현민은 목에, 오주석은 옆구리에 뚫린 작은 구멍에서 피를 콸콸 쏟아내고 있었다.

아직 그 누구도 다니지 않는 깊은 밤의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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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각성자들이 살해당하다니요!”

노블레스 멤버스 한국지부장, 유태일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의 눈앞에는 국내각성자관리부, 부장 곽진규가 서 있었다.

“보고서에 적힌 대로, 어젯밤 사이에 무려 열여덟이나 기습을 당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문제는...”

그 뒷말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유태일이 이었다.

“CCTV를 확인해본 결과...리처드와 시이나...그리고 영국 수상과 같이 입국한 각성자들이다...? 그걸 믿으란 얘기입니까!”

쾅-

유태일은 참다 못 해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지부장님.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리처드를 비롯한 영국의 각성자들은 거리낌 없이 한국의 각성자들을 살해하고 다녔습니다. 더 소름 돋는 것은 놈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과시라도 하듯, 살해 후 CCTV에 자신들의 얼굴을 또렷하게 찍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당장 청와대에...”

“그만!”

유태일 중간에 말을 자르고 나섰다.

“좋아요...다 좋은데...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은 아직 이릅니다. 좀 더 자체 조사를 해봅시다. 들개들 푸세요.”

곽진규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저희 팀에서 분석을 다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들개를...”

“지시사항 따르세요. 저는 들개가 물고온 정보만 믿을 겁니다.”

곽진규가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곽진규는 다시 고개를 깊이 숙여 보고이고는 지부장실을 나섰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들개.

정보수집에 있어서는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 수법이 워낙 지저분하기도 하고, 인간미라고는 하나도 없는 조사진행 방식으로 지부 내에서도 그들을 그다지 좋아하는 이들은 없었다.

곽진규가 어디론가 사라진 직후, 그 동안 숨죽이며 있던 들개들이 풀렸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정보를 물어왔다.

그리고 유태일은 그 정보를 접하며 머리를 감싸 쥐어야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청와대로 통하는 핫라인의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유태일입니다.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의 전화를 받은 청와대 역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이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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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가 아프군.”

박성진이 이마를 벅벅 긁었다.

그의 눈앞에는 두툼한 서류 뭉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시신 사진들과 그에 따른 보고서들이 그것이었다.

“후우...그 자식들은 왜 그런 거야? 뭐야, 이거 진짜!”

이미 일행들은 보고서를 다 열람한 상태였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잔뜩 저긴 보고서였지만,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블레스 멤버스의 정보국이 나선 것도 모자라, 들개들도 움직였다.

그리고 청와대의 검증까지 받은 보고서다.

이걸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러니 영국 각성자들이 한국 쪽 각성자들을 기습, 죽인 것이 맞는 것이다.

“왜 자꾸 이렇게 꼬이지? 저번부터 뭔가 계속 틀어지는 느낌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영국 애들은 도대체 왜 이런 거죠? 한 번 싸워보겠다는 건가?”

“그만. 아직 우리가 나설 때가 아니야. 이번 일에 대해서 청와대에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양이야. 잘못했다간 쌍방 간에 전면전으로 갈 수도 있는 중차대한 일이니까.”

맞는 말이었다.

박성진의 말대로, 현대 시대의 각성자는 그 한 명, 한 명이 전술적 무기의 가치를 가진다.

즉 전술적 무기의 가치를 가진 각성자가 살해되었다는 것은, 그것도 자국 땅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살해자들은 보란듯이 CCTV를 통해 자신들을 밝혔다.

이건 명백한 도발로 간주될 수 있는 중대한 행위였다.

그런데 청와대도 그렇고, 노블레스 멤버스 한국지부도 그렇고, 알파 팀 역시도 알 수가 없는 것이 ‘왜?’ 냐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것일까?

그것도 대놓고.

그 때, 백유현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역시...제가 본 게 틀린 게 아니었군요.”

그 말에 일행의 시선이 그에게 홱 돌아갔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백유현은 보고서와 사진들을 번갈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영국의 그 각성자들...녀석들 뒤로 뭔가 검은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듯 보였어요. 저도 너무 찰나 간에 이뤄진 일이라 확신이 들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역시...빙의가 된 것이 확실해 보여요.”

“뭐...?”

백유현의 말에 일행의 얼굴이 와락 굳어졌다.

빙의가 된 것이 확실하다면...영국의 각성자들이 무슨 짓을 벌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들이 노리는 곳은...”

백유현의 말이 떨어진 순간 박성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청와대...!”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그런데 이상한 것이...빙의의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전에는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자살하는 패턴이라면 지금은 사람을 죽이기는 하지만 자신은 죽지 않아요.”

“그래...! 그럼 지금 우리의 방법대로 예방할 수가 없게 되는 거잖아? 네가 말한대로, 생사부에 이름이 뜨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 이유가 뭘까? 왜 그런 패턴까지 바꿔가면서...아!”

주세광이 질문을 던지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탄성을 내질렀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세광 형.”

백유현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놈들은...우리를 이간질 시키려는 겁니다. 서로 싸우다 죽이게.”

“이런...!”

일행의 표정에는 얼음장이 내려앉았고, 백유현의 두 눈은 날카로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우리가 막아낼 거니까.”

“그래. 우리가 막아내자. 일단 청와대를 먼저...”

뚜루루-

그 순간 박성진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보안이 걸린 위성전화였기에 박성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표정을 와락 굳혔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그는 경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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