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초로의 노인
소월량에게 철피복을 얻은 백유현은 바로 사자육전을 열었다.
천부인의 청동방울은 매우 요긴하게 쓰일 물건이기에, 미리 얻어두려는 것이었다.
“오호! 도령, 못 돌아올 줄 알았더니 어찌 용케 돌아오셨소이다?”
도척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백유현은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꼭, 내가 죽었으면 하는 사람 말투 같네요?”
도척이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크흠! 어찌 그런 생각을 했겠소. 아니오, 절대 아니오.”
“여기 철피복 있습니다.”
도척이 철피복을 받아들더니 감개무량한 표정이 되었다.
“좋소, 좋소! 이것만 있으면 나는 안전할 수 있을 것이오. 클클!”
백유현이 물었다.
“그런데 그게 왜 필요한 거죠?”
도척이 어깨를 으쓱였다.
“알려드릴 수 없소이다. 도령이 알아봐야 좋을 것도 없고. 자, 그럼 약속대로 요 시끄러운 방울을 드리지.”
도척은 단단하게 싸놓은 함 하나를 꺼내더니 백유현에게 내밀었다.
함에는 붉은 줄이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도척은 불안한 눈으로 그것을 보더니 말했다.
“어서 가져가시오! 여기서 그 끈은 풀지 말고.”
백유현이 그 함을 받아들자 상태창이 떴다.
[팔주령(八珠鈴)을 습득했습니다]
[팔주령 : 천부인 중 하나인 청동방울. 특이하게 태양을 상징하듯 여덟 방향의 방사형으로 퍼진 형태를 가지고 있다. 신(神)적인 존재의 힘이 깃들어, 모든 사특한 존재를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고 전해진다]
[??? : 봉인 중]
[??? : 봉인 중]
[??? : 봉인 중]
[기이한 끈으로 묶여 있다. 아마 봉인을 푸는 열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백유현은 씩 웃으며 말했다.
“끈을 풀지 말라고요?”
도척은 그런 백유현의 표정을 보지 못한 채 괴롭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어서 좀...!”
그런데 백유현은 두 눈을 빛냈다.
‘크크...역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럼? 풀어야지!
일순간 사악함이 깃든 눈빛을 뿜어낸 백유현은 도척이 말릴 틈도 없이 끈을 풀어 버렸다.
“크아아악! 끄, 끈을 풀지 말라고 해, 했잖소!”
그런데 그와 동시에 도척이 귀를 막고 미친 듯 몸부림 쳤다.
오히려 백유현은 도척의 그런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렸기 때문이었다.
‘시끄럽다고?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는데?’
그런데 도척은 귀를 막으며 마구 고개를 저었다.
“크으, 시끄러워 죽겠네! 제발 좀 얼른 가지고 떠나시오!”
“도척...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도척이 귀를 막은 채 백유현을 보더니 말했다. 그는 매우 원망스럽다는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당연히 도령에게는 들리지 않겠지. 죽은 자들에게만 들리는 소리니까. 아주 끔찍하고 불쾌한 소리라오! 빌어먹을, 어서 좀 가져가시오! 시끄러워 죽겠으니!”
“아, 그랬군요. 그것 참 괴롭겠네요.”
백유현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도척을 빤히 바라보았다.
도척이 그런 백유현을 보더니 빽 소리를 질렀다.
“뭘 그리 빤히 보고만 있으시오! 어서 가져가라니까?”
그런데 백유현은 느긋한 표정으로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며 말했다.
“아, 뭐가 있나 좀 구경할까 하고요. 무혼단이나 진혼단 정도로는 이제 좀 모자라서 말이죠. 아무래도 이승에서는 통하지 않는 약들이니 너무 아쉬워서...”
“끄윽! 이...이 사악한 도령 같으니!”
도척은 백유현의 속내를 눈치 채고 이를 부득 갈았다.
“좋은 약 좀 없나요? 이승에서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그런 약으로다가. 뭐 남녀노수 두루두루 먹을 수 있는 약이면 더 좋고. 좋은 건 나눠 먹어야죠.”
“크으...! 내, 도령을 흑색명부에 올릴 것이오! 두, 두고 보시오! 끄으윽!”
도척은 아예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한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백유현은 두 눈을 빛냈다.
‘적어도 거짓말은 아닌가 보네. 혼백들에게 상당한 효과가 있어.’
백유현은 팔주령의 상태 창을 다시 띄워 보았다.
그리고 봉인 중 하나가 풀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찢어발기는 방울의 비명 소리 : 혼백들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는 방울 소리를 발하여 도망치게 한다. 반경 수십 장(丈)에 달하는 영역에 효과를 준다. 방울 소리에 노출된 혼백들은 힘이 크게 약화되며, 일순간 혼란(混亂) 상태가 빠진다]
[방울 소리를 멈추려면 한 번 흔들면 된다. 다시 소리를 내려면 또 한 번 흔들면 혼백들에게는 끔찍한 악몽을 선사할 방울 소리가 울려난다]
나머지 두 개의 봉인은 또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까?
아무튼 팔주령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도척조차 저렇게 사색이 될 정도니...
“크으...여기 있소! 제기랄! 얼른 가지고 좀 가시오!”
도척은 뭔가 한 보따리 싸와서는 백유현 앞에 던져 놓았다.
백유현은 그 보따리를 살펴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휴, 이게 다 뭐야. 이거 너무 밑지는 거 아니에요? 미안해서 이걸 다 어떻게 가져가지?”
“헛소리 말고 제발 좀 그만 가주시오! 빌어먹을!”
백유현은 빙긋 웃었다.
이건 마치 손오공의 머리에 쓰인 금고아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런...공짜로 이런 걸 얻어서 어쩌나. 그럼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작은 선물 하나 드리죠.”
백유현은 팔주령을 꺼내 한 번 흔들었다.
뚝-
그 순간 도척은 멍한 눈빛으로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이제까지 뭘 하고 있었나? 하는 느낌이었다.
“아니...도령.”
“왜요?”
도척이 이를 부득 가는 것이 보였다.
“지금 날 놀리시오? 지금 뭘 하자는...”
“아, 이런 걸 좀 해보려고요.”
백유현은 다시 팔주령을 흔들었다.
“끄아아아아-”
그러자 도척은 다시 미친 듯 귀를 감싸안고 비명을 질러댔다.
백유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아까 흑색명부...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
“자...잘못 들은 것이오! 끄아악! 제발!”
“다음에 봅시다.”
백유현은 팔주령을 다시 한 번 흔들고는 사자육전을 나왔다.
철피복을 주고 팔주령을 얻은 것은 백유현에게 훨씬 이득이었다.
‘이거 좋네.’
산혼초와 팔주령을 적절하게 잘 쓰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을 듯했다.
사자육전에서 볼일을 마친 백유현은 다시 무초관에게 갔다.
“영감, 잘 되고 있어?”
갑작스레 나타난 백유현의 말에 무초관이 화들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으헉! 이 빌어먹을 녀석, 인기척 좀 하고 다녀라!”
“인기척 내면 도망갈 거잖아.”
“끄응...미친놈은 약도 없다더니...아무튼 말한 건 다 해 놨다. 빌어먹을! 이제 좀 그만 와라.
“언제는 자주 오라면서.”
“그건...인사치레로...어휴, 말을 말자. 제기랄. 저기 있으니 가져가려면 마음껏 가져가라. 아, 그런데 네 녀석 어찌 돌아온 것이냐? 소월량 그 할멈한테는 안 가본 것이냐?”
백유현은 무초관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좋은 할머니던데? 선물도 주시고.”
무초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마를 찌푸렸다.
“뭐?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그 할멈이 얼마나 괴팍한데!”
백유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아...그럼 영감은 소월량 할머니가 괴팍한 줄 알면서 나를 보냈다? 그것도 내가 돌아오지 못할 거라 예상하면서?”
“아, 아니! 누가 그렇게 말을 했느냐? 난 어디까지나 걱정이 되어서...그래,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뿐이다!”
“그렇지? 그래, 영감이 그랬을 리가 없지. 만약 알고 그랬을 리가 없지. 안 그래?”
“그, 그렇지! 아, 그리고 이것 가져가라.”
무초관은 두 자루의 검을 내밀었다.
간장과 막야였다.
백유현은 간장과 막야를 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
외양부터가 뭔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지지직-
간장검의 검신은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고, 흑색의 뇌전이 끊임없이 감돌고 있었다. 거기다 칼날은 무서울 정도로 예리한 빛을 뿜어냈다. 살짝만 갖다 대도 바위가 베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간장의 등급이 ‘마검(魔劍)’으로 올라갑니다]
[간장의 세 가지 속성의 능력이 강화됩니다]
[뇌신(雷神)->진뢰신(眞雷神)]
[분검(分劍)->뇌분검(雷分劍)]
[참마(斬魔)->멸절(滅絶]
그와 비슷하게 막야 역시 비슷한 변화를 보였다. 막야의 검신에는 검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고, 무시무시한 살기가 느껴졌다.
[막야의 등급이 ‘마검(魔劍)’으로 올라갑니다]
[막야의 세 가지 속성의 능력이 강화됩니다]
[염룡(炎龍)->폭염룡(暴炎龍)]
[철쇄(鐵碎)->쇄아(碎牙)]
[검풍(劍風)->검강(劍?)]
각자 가진 세 가지 속성이 극대화되어 바뀌었고, 고유한 절삭력이나 내구도도 엄청나게 올라가 있었다.
이것이 마검의 힘이었다.
마검이 이정도인데, 고검의 경지에 오르면 도대체 얼마나 강해질 지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대단하네...!’
역시 암부의 명장, 무초관다웠다.
간장과 막야는 인세의 보기 드문 명검이긴 했지만, 본래의 모습대로라면 현재 나타나는 불멸자들을 상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무초관은 간장과 막야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내서 강력한 무기로 만들어준 것이다.
“고마워, 영감.”
백유현은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런데 백유현은 바로 말을 이었다.
그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에 무초관은 움찔 몸을 떨었다.
“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받을 건 받아가야지.”
백유현은 대장간에 걸려 있는 완성된 무구들을 싹 쓸어 무한낭에 담았다.
무한낭은 무초관의 피를 먹어서인지 얌전해져 있었다.
무초관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든 말든 백유현은 만족한 얼굴로 무초관을 바라보았다.
“다음에도 부탁해, 영감!”
“크으...! 네 놈...진짜!”
무초관은 다음 말을 감히 내뱉지는 못하고 입 안으로 오물거리며 씹어 삼켰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백유현은 바로 땅바닥을 발로 차더니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아직 혼절곡에는 따지 못한 산혼초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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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혼초는 역시나 아무리 따도 그 양이 줄어들지 않을 만큼 많았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따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무한낭이 있는 만큼 계속해서 채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산혼초를 따고 있을 무렵, 저쪽에서 패랭이를 쓴 누군가 다가왔다.
“쯧쯧, 이리 함부로 밭을 해쳐서야! 이래서는 지옥 악귀들이 벌을 못 받지 않겠는가?”
백유현이 보니, 한 초로의 사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노인이었다.
게다가 지천에 널린 산혼초에도 별 영향이 없는 존재라니...
“누구신지...?”
백유현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공손하게 물었다.
패랭이를 쓴 노인이 눈을 들어 백유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그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